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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96화 (245/1,000)

00296  35. 기술개발  =========================================================================

“음. 궁성 안에서도 방탄판을 확실히 착용하고 있군. 훌륭한 근무태도야.”

“그러면서 슬쩍 어딜 만지세요? 닌자가 아직 남아있을지도 몰라요.”

방탄판 때문에 가슴을 만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민호는 허벅지와 허리 등 민아의 몸을 실컷 만지작거렸다. 다른 호위들처럼 민아의 몸도 탄탄한 근육으로 이뤄져 있었다.

평소 이민호 주변을 지키는 호위들은 가만히 서서 주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피는 일만 했다. 그러나 호위들이 항상 그렇게만 생활했다면 결코 만들 수 없는 것이 호위들의 탄탄한 몸이었다.

이민호 주위에서 호위하는 이들이 호위대 정원 절반 이하인 것은 이유가 있었다. 당직이 아닌 시간에 궁성 내부에 마련된 호위대 주둔지에서 꾸준히 수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민호는 주변 여자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

이민호가 민아의 목을 입술만으로 살짝 물었다. 혀를 내밀어 핥다가 민아의 귓불을 깨물었다. 처음으로 남자에게 애무를 당한 민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게다가 상대는 여자 호위들의 유일한 남자인 이민호였다. 민아는 입에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민희! 본궁 전체를 수색하고 있어? 닌자가 방에 숨어있을지도 몰라. 귀인들을 확인해보고 피해자가 있으면 바로 보고해.”

“예. 지금 수색중이에요.”

“별궁에도 연락해보고.”

“별궁은 이상 없어요. 다만 침전에 적이 침입한 흔적이 있어요.”

국왕이 사용하는 방인 침전에 침입 흔적이 있다면 닌자들의 목표는 이민호가 확실했다. 궁성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닌자들에게 침전 위치를 알려준 것 같았다.

돈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고산국 사람들이라서 돈으로 매수하기보다는 생명을 위협해 알아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침전 위치를 알려준 자는 입막음을 위해 닌자들에 의해 이미 죽었을 거라고 봐야했다.

곧이어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다. 혜영과 혜진도 무사했고, 호위들이 문과 창문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민호는 둘에게 당분간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을 호위를 통해 전하게 했다.

그 후에도 후궁들의 안전이 확인될 때마다 이민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민호가 신경 써야 할 후궁들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민희가 다른 호위에게 보고를 받는 중에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안 좋은 소식임을 직감한 이민호가 벌떡 일어나자 민희가 보고했다.

“미카 귀인의 방에 사상자가 생겼어요.”

“가보자.”

“주인님은 잠시 후에 오세요.”

그러나 이민호는 바로 움직였다. 8명으로 늘어난 호위대가 따라가는 가운데 이민호가 3층 중간에 있는 미카의 방으로 향했다.

미카는 일본 출신이라 여러 가지 미묘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미카가 닌자들을 불러들였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시마즈 가문과의 은원 때문에 암살 목표가 됐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이민호가 미카의 방에 도착했다. 방문에서부터 전투 흔적이 남아있었다. 피비린내가 훅 끼쳐오자 호위들은 물론 이민호까지 권총을 뽑아 들었다.

“미카! 괜찮아?”

“주인님. 저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은데...... 흑!”

미카는 궁성 본궁에서 시녀 3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시녀 네이는 보통 해중국에 머무르며 전복 양식장을 돌보고 있기에 오늘도 자리를 비웠다.

미카의 침실은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야행복을 입은 닌자 네 명이 목이 베이거나 가슴에 나기나타가 꽂힌 채 피분수를 뿜으며 쓰러져 있었다. 다른 닌자 두 명은 발목이나 무릎이 반쯤 베인 채 밧줄에 묶여 있었다. 사로잡힌 닌자들의 몸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나왔으나 둘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민호가 관심을 둔 것은 닌자가 아니라 미카의 시녀였다. 시녀의 배에 기다란 일본식 단도가 박혀 있었다.

“어서 의사를 불러!”

이민호가 소리를 지르자 호위 한 명이 후다닥 뛰어갔다. 치명상을 입은 미카의 시녀가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다.

“도키코?

이민호가 미카의 품에 안겨 있는 시녀를 알아봤다. 저녁 때 이민호의 침전에 와서 민희와 함께 이민호에게 안겼던 시녀 도키코(時子)였다. 오늘이 배란일이었으니 수정에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도키코의 배에 꽂힌 일본식 단도에서 피가 살짝 흘러 나왔다. 대량 출혈을 우려해 일부러 단도를 뽑지 않은 것은 잘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내장을 다치면 생존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 도키코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 이렇게 먼저 가서 죄송해요. 원수를 갚아주셔서 고마워요. 그 동안 미카님과 함께 주인님 덕택에 행복했어요.”

“도키코! 가만히 있어. 곧 의사가 올 거야.”

이민호가 도키코와 눈을 마주쳤다. 살짝 미소를 짓던 도키코가 눈을 감더니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이민호가 놀라 숨을 들이켰다. 미카가 흐느껴 우는 사이 이민호는 멍한 표정으로 도키코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미카! 적은 누구지?”

“알 수 없어요. 닌자 집단들이 서로 기술을 교환하기 위해 통혼을 해서 요즘에는 기술이나 장비만으로 구별하기 어려워요.”

물론 복장을 비교해 닌자의 소속을 구별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다른 집단의 복장을 입는 속임수를 쓴다면 이간질에 넘어갈 뿐이었다.

“저 닌자 두 명은 정신을 잃었지만 당분간은 살아있을 거여요. 죽였으면 간단했을 텐데 무리하게 사로잡으려다가 도키코가 당했어요.”

첩보 수집이 주 임무인 닌자는 전투에 약하고 나기나타는 비록 무사 가문의 여자들이 수련하는 무기라지만 짧은 무기 종류를 상대할 때는 극히 강했다. 생포해서 닌자의 배후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무리하다 당했다는 미카의 말이 맞았다.

이민호가 벌떡 일어났다. 남을 죽이려면 자기가 먼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일본과 전쟁을 하면서 이민호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미카의 시녀가 죽을지는 몰랐다.

“미안하다, 미카. 나는 내 여자도 지키지 못한 못난 놈이다.”

“주인님! 제 아버지가 살아계시는지 확인해주세요.”

미카는 냉정한 여자였다. 딸로서 부친의 안위가 걱정된다는 뜻이 아니었다. 만약 나가사키에서 일하는 니시무라 겐타로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면 이번 일의 배후에 시마즈 가문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나가사키에서 겐타로를 습격한 닌자는 시마즈 가문에서 보낸 자들이었다.

그러나 시마즈 가문이 과연 겐타로와 고산국이 연결된 것을 파악했을지 이민호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고산국과 거래한 것을 증거로 겐타로가 고산국의 대리인이라고 쉽게 의심할 수는 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겐타로는 포르투갈 상인들과도 거래하며, 고산국 상선들도 겐타로 외에 다른 일본인 상인들과 거래했었다.

“시마즈 가문에 가신들이 남아있다 해도 이제 힘이 거의 없을 거야. 아마도 다른 다이묘겠지. 닌자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알려진 도쿠가와 가문이거나.”

“주인님. 미카 귀인의 방이 본궁 3층 중간에 있어요. 단순히 방의 위치가 원인일지도 몰라요.”

민희가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궁성의 본궁은 4층 석조 건물이고 위치가 낮은 2층과 지붕에 가까운 4층은 외부 침입에 취약하므로 3층이 중심 층 역할을 했다. 설계 단계에서 3층 중간 방을 가장 넓게 만들어 국왕의 침전으로 설계했었으나 계단 옆이라서 완공 즈음에 바꾸게 되었다. 그래서 국왕의 침전은 3층 동쪽 끝으로 옮겼다.

이민호는 건국 초부터 여러 가지 역할을 맡았던 미카에게 가운데 넓은 방을 주었다. 시녀 여러 명과 함께 지내는 미카를 배려해주기 위해서였다. 미카처럼 시녀 여러 명을 거느린 주상아 공주는 아예 별궁에서 지냈다. 여기서 시녀란 평생 주인과 함께 할 신하 같은 여자들이었다.

“침전에 아무도 없어서 중간 넓은 방을 공격했다는 거야? 아직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해봐야지. 민희가 수사를 맡아라. 당분간 나도 밖에 나가지 않고 궁성에서만 지낼게.”

“예. 반드시 배후를 밝혀낼게요. 나가사키에도 확인해볼게요.”

허겁지겁 달려온 의사가 와서 한 일이라곤 도키코의 사망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의사는 오히려 닌자 두 명의 출혈을 멈추는 치료를 해서 아무리 어쩔 수 없이 한 일이라지만 미카의 방에 모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닌자들은 곧 호위대에게 끌려갔다.

사로잡힌 두 명 외에 사살된 닌자는 모두 33명이었다. 그리고 궁성 내부에서 발생한 고산국의 사망자는 모두 네 명이었다. 세 명은 호위대에게 지휘를 받는 궁성 경비부대 소속이었고, 한 명은 밤에 화장실 가다가 운 없게 닌자들에게 걸린 시녀였다.

이민호는 해안경비대와 해군에 비상을 걸었다. 아직은 작은 배 위주인 해안경비대는 주변 해역과 해안선만 수색하고, 해군 각 전대별로 할당된 수색 해역은 고산국 북부 해안부터 큐슈 서해안까지였다.

해군은 전선만 수십 척이나 동원됐지만 텅 빈 바다에서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해안경비대 소속 작은 순찰선이 북쪽 해안에서 왜선 한 척을 발견했다.

즉시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왜선을 지키던 왜병 여덟 명이 사살되고 왜인 노잡이와 수부 46명은 남김없이 생포됐다. 대 세키부네를 선착장으로 예인한 순찰선 선장은 물론 승무원 전원이 바로 그 날로 일계급 특진했다.

민희는 노잡이와 수부들을 심문해서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들이 출발한 지역만 알아도 닌자의 정체를 대충 절반은 알 수 있었다.

이틀 후 이민호는 민희에게 보고를 받았다. 민희는 닌자들을 아편에 취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고문을 가해 배후를 실토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닌자들은 혀를 깨물지도, 독약을 삼키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고문을 받았다.

“닌자들은 끝내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죽었어요.”

“역시나 그렇군. 내가 알아보라는 것은?”

“주인님이 시키신 대로 죽거나 생포된 닌자 35명 전원의 키를 쟀어요. 분명 키가 작은 일본인들이지만 관동 지역 일본인들 평균보다 키가 약간 커요.”

“후보를 절반 정도로 좁혔군.”

전국시대에 대표적인 닌자 집단으로 코가 닌자와 이가 닌자가 있었다. 코가는 교토 동쪽, 이가는 교토 남동쪽 지역이었다. 그리고 이가 닌자는 덕천가강과 관련이 있었다.

실제로 일본에서 닌자가 적 중요 인물을 암살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라서 닌자들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같은 경우 다이묘가 강압적으로 명령을 내린다면, 닌자 집단에 속한 수십 명이 돌아오지 못할 임무에 투입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닌자들도 결국 그 지역을 장악한 다이묘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왜선은 기이오시마에서 출발했고, 노잡이들의 출신 지역도 바로 그곳이에요.”

“오사카를 공격하기 바로 전 날 밤에 그 해적섬을 공격했었지.”

닌자들은 혹시라도 정체가 탄로 날 것이 두려워 일부러 먼 지역에 가서 배를 빌리고 노잡이들을 고용한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몇 단계 걸쳐 출발지역을 세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닌자들의 지휘자가 나라 지역 사투리를 구사한 것으로 기억하는 노잡이들이 있어요.”

“나라라면, 역시 이가 닌자로군.”

“네. 의뢰자의 신분이 도쿠가와 가문일 가능성이 커요.”

역시나 닌자들의 목표는 미카가 아니라 확실히 이민호였다. 닌자들은 시녀를 협박해 국왕 침전의 위치를 알아내고 급습했으나 그곳에 아무도 없어서, 3층 중간에서 가장 넓고 화려한 방을 습격한 것 같았다. 그러나 방에 있는 사람들이 여자라고 깔봤던 닌자들은 미카의 시녀들이 휘두른 나기나타에 모조리 도륙되고 말았다.

도키코는 국립묘지에서도 안쪽에 자리 잡은 왕가의 묘역에 최초로 안장됐다. 앞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민호가 묻힐 곳에서 가까운 자리였다. 도키코는 종1품 귀인으로 추증됐다. 살을 섞었던 여자의 죽음을 처음으로 접해본 이민호는 이 사건으로 인해 충격을 많이 받았다.

============================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밤을 새서라도 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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