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2 35. 기술개발 =========================================================================
물론 이민호는 장인들에게 최대한의 예우와 경제적 보상을 해주었다. 특히 생산 분야 장인이 아닌 무기나 기계류 신제품 개발부서에 속한 장인들은 걸핏하면 밤을 새야 하고 창의성이 중요하므로 농민 평균 수입의 10배를 받았다. 그것도 정규 월급만 해서 그렇고 요즘처럼 바쁜 시기에는 수당이 그 두 배 이상 붙었다.
그러나 워낙 바빠서 총각 장인들이 장가를 못 가는 것은 예전 이민호가 국방과학연구소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방산업체에서 근무하던 친구들도 못 가거나 늦게 갔었다. 개발부서 장인들을 위해 해중국 바닷가에 지은 휴양시설은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시제품이 완성되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오. 구경이 다른 몇 가지를 더 만들고 탄환도 개량해야 할 것이오.”
“탄환은 어떻게 개량해야 합니까? 이 우둔한 늙은이에게 하명하여 주십시오.”
“발사되는 탄두 크기는 그대로 하거나 줄이더라도 뒤쪽 화약을 넣는 부분을 더 크게 만들면 사거리와 위력을 증대시킬 수 있소. 이 경우 총열 구경보다 약실 구경을 훨씬 크게 만들어야 하오.”
물론 총알을 그렇게 만들면 총열이 과열되기 더 쉬웠다. 그러나 당분간 수랭식 기관총을 사용할 예정이므로 총열 과열 문제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었다. 추운 지방에서 사용할 때 냉각수가 얼지 않도록 부동액도 개발하는 중이었다.
수은을 넣은 유리 온도계는 이미 예전에 만들었다. 현대와 같이 물이 끓는 온도를 100도, 얼음이 어는 온도를 0도로 정해서 영하 30도부터 영상 300도 이상을 측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보병총과 탄약 호환을 못하게 됩니다.”
“기관총은 보병총의 위력 몇 십 배를 상회할 것이오. 기관총만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보병들은 권총만 들고 다녀도 될 것이오.”
“그 정도로 중요합니까?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기관총은 보병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될 것이오. 물론 적에게는 악몽이겠지만.”
단발 보병총은 이 시대 기준으로 아주 우수한 무기였으나 적이 야만인이라도 숫자를 앞세워 몰려오면 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특히 야간전에서는 더욱 위험했다.
그러나 기관총이 전면에 나서는 순간 적이 내세우는 수적 우위가 의미를 잃는다. 특히 처음으로 기관총 사격을 당한 군대는 심리적 충격을 크게 받아 단박에 와해되기 쉬웠다. 그래서 잘만 쓰면 적을 보다 적게 죽이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무기가 기관총이었다. 그러나 상대방 지휘관이 인명을 우습게 여기거나 절박하게 승리를 바란다면 인세의 지옥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같은 사격장에서 이민호가 지켜보는 가운데 또 다른 시험이 진행됐다. 이번에는 참가 인원이 훨씬 많았다.
- 타타타타탕~
승마보병들을 동원해 여러 가지 사격 효율 시험을 했다. 보병총은 화승총보다 장전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른 후장 단발총이므로 3열이나 10열 교차 사격은 필요 없었다. 한 발 쏘고 나서 다른 사수들이 사격하는 동안 사선에서 벗어나 장전과 이동까지 하느니 차라리 같은 자리에 서서 계속 쏘는 편이 나았다.
다만 3열 사격과 2단 3열 교차사격은 사격 효율이 아니라 저지력 측면에서 비교해볼 필요가 있어서 이번에 직접 시험 사격을 실시했다. 앞줄부터 무릎 쏴, 구부려 쏴, 서서 쏴 세 가지 자세로 계속 사격을 하게 했다. 그 다음에는 2부대로 나눠 한 발 쏠 때마다 부대를 교체시켰다.
역시나 총병들이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쏘는 편이 단위 시간 당 조금 더 많은 총탄을 쏠 수 있었다. 어디선가 단발총이라도 교차 사격이 화력 투사에 더욱 우월하다는 주장을 듣고 와서 건의했던 간부는 단번에 찌그러졌다.
그러나 이런 것은 직접 시험을 해봐야 알 수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화력 밀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면 언제든 사격 대형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사격 효율보다 중요한 것이 꾸준한 사격을 가해 적군이 아군 방어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선 채로 동시에 사격할 경우 아군 여러 명이 같은 표적을 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도련님. 3열 횡대로 서서 1열씩 차례로 쏘는 게 낫겠습니다.”
“확실히 참고해야겠다.”
계복도 그 문제를 간파해냈다. 결국 3열 사격과 2단 3열 교차사격을 비교한다는 것이 3열 교대 사격을 이끌어냈다. 앞으로 가급적이면 일제 사격은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이민호는 비교 사격을 제안한 그 간부에게 은화 20냥짜리 포상을 해주었다.
미루고 미루던 군제 개편을 드디어 단행했다. 일단 계급제를 도입해 병사들과 장교들에게 대한민국 국군과 동일한 계급을 부여했다.
다만 병에서 부사관, 부사관에서 장교로 올라갈 때 일정한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르게 해서 통과된 사람만 올라갈 수 있게 했다. 장교는 교육기간이 2년제로 늘어난 사관학교 출신, 또는 병이나 부사관으로 일 년 이상 근무한 자가 3개월에서 6개월 사이 교육을 받고 임관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사관학교 교육 연한은 당분간 2년으로 정했다.
부대 편제도 3각 편제로 바꿨다. 오와 대, 려로 이어지는 기존 편제는 기본이 5각 편제라서 지휘관의 지휘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포병이 분리되고 병참과 정찰이 강조되면서 여수의 지휘 부담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곧 17세기에 들어서면 유럽에서 화기가 전장의 중심이 되면서 기병이 축소되고 보병중대와 보병연대 중심 편제로 발전하므로 이에 대비한 측면도 있었다. 물론 이민호에게 익숙한 편제가 가장 좋은 편제였다.
말은 부대의 이동속도 증대에 큰 보탬이 되지만, 동시에 원정함대의 기동 속도를 대폭 깎아먹는다는 것이 지금까지 원정을 다니면서 체득한 교훈이었다. 군마 수송용 범선을 동원하는 것만으로도 작전에 제한이 많았다. 그리고 여진족과 몽골족을 상대할 때나 북미 대륙에서야 확실히 필요하겠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기병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원정이나 장기 경비 파견 임무가 많은 고산국의 특성을 감안해 기병과 승마보병, 해병을 불문하고 기본 전술 단위를 150명 정원인 중대로 정했다. 그 동안 풍부한 전투 경험을 쌓고 사관학교에서 전술 위주의 단기 지휘관교육을 받은 여수가 대위 계급을 받아 중대 지휘관인 중대장을 맡았다.
중대장 밑으로 소위와 중위 너덧 명을 두었다. 소위와 중위는 그 전에 25명을 지휘하던 대정 직책을 수행하는 동안 교대로 사관학교에서 단기 지휘관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다.
중대 밑에 33명으로 구성된 소대 3개가 기본 전투 편제였다. 소대는 3개 분대로 나뉘고 10명 정원인 분대는 소총병 8명과 유탄발사기 사수 2명으로 구성됐다. 소대 정원 나머지 3명은 소위나 중위인 소대장, 중사 계급인 부소대장, 그리고 전령이었다.
그 외에 중대본부 밑에 화기반과 보급반을 두었다. 화기반장은 보통 포병 교육을 받은 대정 혹은 고참 병사가 중사 계급을 받아 임명됐다. 중대 화기반은 나중에 기관총 2정을 운용할 예정이었으나 지금은 소총병이었다. 브루나이나 해남도처럼 독립경비중대로 파견될 때는 기병포를 운용하는 포반이 한둘 배속될 예정이었다.
중대본부에 속한 정찰병이 4명, 전령도 4명, 행정병이 2명, 의무병은 2명이었다. 의무병은 상부 제대에서 파견된 인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중대원이었다.
나머지 30명은 보급관과 보급반이었다. 중대 보급관은 사관학교 단기교육을 받지 않은 고참 대정이 상사 계급을 부여받은 다음 맡았다. 중대가 전선에 타거나 말을 타고 움직일 때는 소총소대와 차이가 없어졌다. 그러나 만약 중대가 보병으로서 작전을 해야 한다면 보급반원 30명으로는 중대 전체에 대한 보급이 어려울 수 있었다. 이민호도 그것을 감안하고 편제를 짜면서 여차하면 소총소대에서 1개 분대씩 빼서 보급반을 증원하기로 했다.
중대 150명 인원 전체에서 소총수와 유탄사수를 합해 90명이었다. 전투병 비율이 5분의 3에 달했으니 이 시대 기준으로는 무척 높은 편이었다. 물론 나머지 인원도 총기를 휴대했다.
대대는 3개 중대와 기병포 8문으로 이루어진 1개 포병중대, 그리고 보급대로 이루어졌다. 포병중대장, 약칭 포대장은 유사시 보병중대나 해병중대 소속 포병반을 함께 지휘할 수 있었다.
앞으로 총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기병의 역할이 제한되는 추세로 변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보병연대는 3개 보병대대와 1개 포병대대, 1개 기병대대로 편성할 예정이었다. 보병대대에 편제된 포병 때문에 1개 보병연대에 기본으로 예속된 포병세력은 2개 포병대대에 해당했다. 물론 아직은 경량 기병포가 충분히 보급되지 못해 포병 절반 이상은 당분간 소총수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집무실로 감동과 감불, 므부투를 불러 연대장에 임명하는 의식을 열었다. 화려한 정복에 무궁화 세 개짜리 대령 계급장을 달아주니 감불이 얼떨떨했다.
“그래서 저희들이 보병연대장을 해야 한단 말씀입니까? 저는 기병인데요?”
“그래, 임마! 250명 끌고 다니다가 2000명을 거느리게 된 기분이 어때?”
“답답한 굼벵이 보병 놈들이나 계산하느라 머리 빠개지는 포병까지 지휘하라고요? 섭섭합니다, 도련님.”
역시나 감불이 반발했다. 기병 지휘관으로서 감불은 아주 훌륭했지만 보병연대장으로서 어떨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감동도 앞으로 쏟아질 일거리를 걱정하느라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시답잖은 놈! 언제까지 말 타고 싸울 거야? 제병과 합동부대를 지휘할 줄 알아야 장군이 될 수 있다. 이제 뒤에서 지휘만 해.”
“계복 형님 같은 장군이 될 수 있다고요? 뭐, 그럼 한 번 해보겠습니다.”
“대령 고감불을 보병 1연대장에, 대령 고감동을 2연대장에 임명한다. 대령 므부투를 3연대장에 임명한다.”
전령이나 정찰 임무만 맡던 므부투를 연대장에 임명하는 것을 계복이 극력 반대했었다. 그러나 흑인 병사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자가 므부투였고, 사관학교에서 단기 지휘관교육을 마쳤다.
당분간은 조선인 출신 부연대장이나 참모들이 므부투를 잘 보필해주도록 했다. 그러나 조만간 부연대장이나 참모들도 모두 흑인으로 채울 계획이었다. 이제 서서히 흑인 지휘관을 키울 때였다. 3연대는 연대치고는 인원이 특히 많아 3천 명이 넘었다. 보병대대도 5개였다.
“국왕전하! 흑인 병사만 따로 3연대를 편성한 이유가 있습니까?”
“응. 므부투도 알다시피 흑인 병사들은 조만간 고향에 돌아가야 하잖아. 일단 올해 말에 일본으로 원정을 떠날 테니 기병으로 전환된 승마보병들을 그 기간 동안 잘 조련하도록 해.”
“저희들은 언제 아프리카로 갑니까?”
“말래카와 실론을 거쳐 인도양에서 해적들을 청소한 다음이니까 아마도 3, 4년 이내가 아닐까?”
“전하! 저는 고산국에 남으면 안 됩니까? 흑인 병사들 중에서 절반 정도는 남고 싶어 할 겁니다. 돌아갈 고향이 아예 없어졌거나 찾을 수 없습니다.”
므부투가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서양 세력의 동진을 차단하고 아프리카와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흑인 병사들을 보내야했다.
“너희 흑인들은 일단 무조건 아프리카 대륙으로 가서 흑인 국가를 세워야 한다.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제국도 좋고 지역별로 몇 개 나라로 나뉘어도 좋다. 그러나 무조건 노예사냥꾼들을 몰아내고 노예시장을 폐지해라. 백인이 침략하더라도 막아낼 힘을 길러라. 그 다음에는 얼마든지 돌아오든지 해. 너희들은 고산국 백성이니까 그럴 권리가 있다.”
“흑인 병사들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영원히 충성하겠습니다.”
“낯 뜨겁게. 당장 나가! 원수부에서 예하 지휘관과 참모들이 너희들이 오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거다.”
정식 편제는 아니지만 원주민 부대도 지역별로 구성했다. 동해국에는 유사시에 기병 1개 연대와 보병 1개 연대가 동원될 수 있고 평상시에는 아오지 첨사 등의 부족원들이 치안을 유지했다. 해남도에서는 한족과 묘족, 려족이 각각 1개 중대씩 구성해서 화승총과 창칼로 무장했다. 필리핀에서는 종교별로 힌두교, 이슬람교, 로마 가톨릭 신자들을 1개 중대씩 용병으로 고용했다.
원주민들의 생활수준을 감안해서 고산국 병사들이 받는 봉급의 절반만 지급했는데도 원주민 병사가 직업으로서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원주민 부대에서 근무하다가 가족을 전부 이끌고 고산국으로 이민 가기도 했다. 한꺼번에 이민이 몰려올 우려가 있어서 지역별로 한도를 책정하면서 묘족은 특별히 이민을 더 많이 받아들였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조선에서 고산국으로 이민 가는 행렬은 꾸준했다. 광해군이 이민 조건을 많이 완화해준 덕분이었다.
============================ 작품 후기 ============================
다음에는 해군입니다.
오전은 힘들겠고 오후에 한 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