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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91화 (240/1,000)

00291  35. 기술개발  =========================================================================

동가 공주의 고모는 이민호가 거절하자 동해국 수도 아사달에 머물렀는데 그 사이에 예허부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고모가 했던 말과 달리 그녀는 끝까지 이민호를 따르지도 않았다. 역시나 모든 말과 행동을 정치적 고려를 하면서 행하는 인간의 말은 믿을 게 못 됐다.

혜영이 이민호에게서 보고서를 넘겨받아 읽다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민호는 속으로 뜨끔했다.

“누구든 누르하치를 죽이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동가 공주가 선언했어요. 이 선언으로 인해 여진족 사회에 큰 파문이 일고 있으니 주인님이 그 일을 하시면 어때요? 여진족 전체를 수하에 두면서 미녀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에요.”

“싫어!”

이민호는 남자든 여자든 남에게 홀려 자유 의지를 잃고 끌려 다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 동가 공주가 고산국으로 온다면 이것 달라 저것 해달라는 식으로 끊임없이 요구하고 특권을 누리려 할 것이다. 이민호는 그런 것을 감당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도 어린애 취향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누르하치를 이민호가 죽인다고 해도 동가 공주가 이민호에게 시집간다는 보장도 없었다. 음험한 예허부 수장이 동가 공주를 보내기 전에 또 다른 조건을 내세울 것이 빤했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귀찮고 짜증나는 자들과 더 이상 엮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누르하치가 해서여진을 물리쳤을 때 이민호는 건주여진의 성장에 불안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슴이 후련하게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정략결혼을 통해 정치 구도를 만들어나가는 게 여진족과 몽골족이에요. 주인님이 그들과 얽히게 된다면 싫든 좋든 결혼동맹에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주인님은 여진족들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건가요?”

“응. 당분간은. 앞으로 누르하치가 해서여진에 속한 여러 부족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집어삼키겠지. 하나 먹고 소화하고, 그런 식으로.”

“그것을 누르하치 대신 주인님이 할 수도 있잖아요. 여진족과 몽골족을 밑에 두면 대제국을 이루는 것도 꿈이 아니에요.”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애부터 만들자. 이리 와!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내가 아예 밖에 못 나가게 했지?”

이민호가 혜영을 끌어 당겨 책상 위에 올렸다. 혜영이 바동거렸으나 손에 힘이 하나도 실리지 않았다. 6국의 모든 행정기관을 아래에 두고 관리하는 총리이며 동시에 내명부의 수장인 혜영도 이민호 앞에서는 후궁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혜영은 이민호를 위해 정비가 될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었다.

이 시대에 통령이라는 관직명은 일부 영역에 국한된 관리직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명칭을 높여 총리로 변경했다. 조만간 6국이 6조 또는 6부로 확대 개편되면 총리라는 관직명에 수상이라는 별칭이 붙을 것이다.

“안 돼요! 주인님은 밤에 그렇게 고생하면서 그래요? 낮에는 제발 쉬세요.”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지만 말만이라도 고마워. 혜영이 너무 일만 파고드는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좀 쉬게 해줄게. 마침 오늘이지?”

“네.”

“이따가 밤에 다시 보겠지만, 먼저 승은을 받아랏!”

여자 배란일을 아는 몇 안 되는 남자가 이민호였다. 사실 혜영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많이 양보한 셈이었다. 후사를 보는 것은 고산국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국책 과제이며 혜영도 후궁들 중 한 명이라 거부하지 못했다.

속바지가 이민호의 손길에 잡혀 끌려 내려왔다. 혜영은 속옷 대신에 속바지를 입는 날이 더 많았다. 하늘하늘하면서 풍성한 속바지가 묘하게 속옷보다 더 야했다.

“그래도 제발 집무실에서는 이러지 마세요. 집무실 밖으로 나갈 때 호위나 비서들 시선을 받기가 민망해요.”

“이미 늦었어.”

“앞으로는요.”

이민호와 몸이 결합되는 순간 혜영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혜영은 남들 시선이 부끄러울지는 몰라도 그것은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이었다. 어디서건 후사를 보기 위한 중요한 일이며, 왕실 첫 번째 여자로 대우받는 혜영은 오히려 자랑해도 될 만했다.

“생각해볼게.”

혜영은 오직 이민호에게만 착하고 예쁜 여자였다. 40대 중년 참판이나 참의들도 혜영 앞에서는 설설 기었다. 그러나 유일한 남자인 이민호 앞에서는 이렇게 착하고 순종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민호는 버선 위에 드러난 혜영의 하얀 종아리를 이빨로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눈을 반쯤 뜬 혜영의 고개를 돌려 입을 맞췄다. 연신 신음소리를 내는 혜영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 입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이빨끼리 부딪쳤다.

“죄송해요, 주인님.”

“천만에.”

이민호가 빠르게 움직이는 동안 쪽진 머리를 뒤로 한 혜영이 기다랗고 하얀 목을 드러냈다. 아랍의 하렘은 물론이고 조선 왕실이나 명나라 황실에서도 정비와 군주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다른 경우에는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첫째 여자에 대한 예우를 따로 할 필요가 없어 홀가분한 편이었다.

“험! 험!”

“풋!”

끝나고 나서 혜영을 잠시 소파에 눕혀놓고 이민호가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웠다.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책상에 쌓인 서류를 밀쳐버렸다가 이렇게 매번 후회하게 됐다. 앞으로 책상 위에서는 안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혜영이 고개를 돌려 이민호가 하는 꼴을 지켜보면서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외국에서는 큰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구경만 하고 있어. 은근히 불안하네?”

“지금 당장 군사를 일으킬 것도 아니잖아요. 당분간 푹 쉬세요. 주인님은 물론 군사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해요.”

“그건 그래.”

여진에서 누르하치가 홀로 우뚝 서고 조선에서는 국상이 진행 중이고 일본에서도 풍신수길과 덕천가강이 죽었다. 필리핀에서는 다스마리냐스 총독이 향료제도를 공략하기 위해 출정을 서두르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남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동아시아에 격변의 시대가 왔다.

그리고 명나라에서는 사천의 파주 선위사 양응룡이 묘족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명나라 조정에서 군사를 동원하자 금방 항복해버렸다. 이민호는 어째서 명나라가 양응룡을 참수하거나, 체포해 투옥하거나, 최소한 선위사 직책을 거두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양응룡은 이후에도 반란을 일으켰다가 항복하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고, 그때마다 용서받았다.

정옥남은 해남도에서 잘하고 있었다. 해남도에 거주하는 묘족들도 이번 반란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미리 정보를 얻은 이민호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막을 수 있었다. 광동성의 묘족들 분위기도 한때 어수선했으나 옥남이 양광총독과 협의해서 반란 분위기를 사전에 차단했다.

옥남은 해남도에서 진주조개 양식을 대규모로 확대하고 있었다. 아직 진주를 캘 때가 멀었고 그 동안 계속 자본이 투자돼야 했지만 가능성이 충분히 엿보였다. 옥남은 한 달에 한 번 진주를 캐서 고산국 궁성으로 보내고 있었다. 인공 핵을 심은 진주가 아직은 상품성이 없을 정도로 작지만 꾸준히 커지고 있었다.

이민호가 오랜만에 사격장에 나왔다. 최근 금속가공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탓에 19세기에 최초로 개발된 무기까지는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

- 따르르르~ 딸딸딸!

석 달 동안 장인들을 집에 못 가게 만들었던 7총신 개틀링 건의 작동 시험이 있었다. 개발 중 명칭은 7총신 연발총이었다. 손잡이를 돌리면 톱니바퀴에 걸린 총신 7개가 돌아가고 탄창에 담긴 탄약이 하나씩 약실이라고 하기 어려운 총열 뒤에 장전됐다. 그리고 총신이 가장 위에 올라온 순간 총신마다 딸린 격발장치가 작동했다. 탄피, 시험 중이라 탄약 모양을 한 모의탄은 중력에 의해 밑으로 떨어졌다. 시제품이라 아직 개량할 여지가 많았다.

7총신 연발총에 사용하기로 예정된 탄약은 하나는 기존 보병총 총탄, 하나는 20밀리에 해당하는 구경의 작렬탄인데 이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20밀리미터 크기의 작은 탄환을 포탄처럼 작렬탄으로 만든다는 게 이 시대 기술로 쉽지 않았다.

실험실에서 폭발 사고가 두 번 있었고, 세 명이 부상을 당해 한 명은 아직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몸 수십 군데에 파편상을 입은 그 장인은 푹 쉴 수 있게 됐다며 부상당한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그러나 젊은 의사들에게 파편제거 수술을 받는 모르모트가 되어 한동안 고생하게 되었다.

“잘 작동하는군. 하지만 역시 너무 무겁겠소.”

“사실 말에 싣기도 버겁습니다. 최소한 수레에 실어야 합니다, 전하. 하지만 요새 같은 방어 시설이나 전선에 한두 정 배치하면 무서울 게 없겠습니다.”

개틀링 기관총은 남북전쟁 때 소총병 100명 역할을 하도록 고안된 무기였다. 그러나 앞으로 개틀링이라는 이름이 붙을 일은 없었다.

“원정 갈 때 보병부대가 대포 대신에 쓰려는 것이니 좀 더 소형화에 노력해봅시다. 이런 막강한 무기를 보병이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흑흑흑!”

개발을 이끌었던 중년의 장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민호는 그를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쯧쯧! 그 동안 고생하셨으니 수당 외에 사흘 동안 휴가를 주겠소. 앞으로 사흘 동안 출근하지 말고 무조건 집에서 푹 쉬시오.”

“감사합니다, 전하!”

개발 담당 장인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엎어져 잠에 빠져 들었다. 함께 일하던 다른 장인들도 마찬가지로 풀썩 쓰러졌다. 이민호는 그들을 내버려두고 자리를 옮겼다.

“그 다음 물건을 봅시다.”

이번에는 맥심기관총과 비슷하게 둥그런 원통 모양인 단총신 기관총이 사격장 앞에 설치됐다. 총신을 둥글게 감싼 것은 수랭식 냉각장치였다. 총알은 보병총과 같은 것을 사용하며, 최초의 탄띠 급탄 방식이라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사격시험 전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반자동소총을 만들 정도면 기초적인 기관총은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연발 사격을 하면 총열 내부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가 총열이 휘거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는데도 총알이 나가는 쿡 오프 현상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래도 기관총이 제대로 만들어지면 어딜 가더라도 두려울 게 없어지므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 따다다다다당! 철컥!

삼각대 위에 기관총을 놓고 시험 사격이 시작됐다. 그러나 단 몇 발을 쏘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장인이 장갑 낀 손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노리쇠를 당겨 격발되지 않은 총알을 약실에서 꺼냈다. 그리고 다시 사격을 재개했으나 또 총알이 걸렸다.

기관총의 사거리나 위력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투 중에 원활한 사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짐만 될 수 있었다.

“탄띠에 총알이 제대로 고정되지 못했소. 으음. 전투 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큰일이니 아무래도 탄통을 써야겠소. 탄통에 쌓인 총알이 차례로 내려올 테니 탄띠에서 총알이 흘러내리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탄통이 추가되면 무게가 너무 늘어납니다.”

“할 수 없지 않소? 그럼 삼각대 무게를 좀 줄입시다. 다리 속을 비우고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타원형의 구멍을 뚫으시오.”

기관총을 분리해 사수와 부사수 두 명이 나눠 들고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해서 다른 부가장치를 더 붙이기 어려웠다. 냉각방식도 현재는 수랭식인데 나중에는 연사 속도를 줄이더라도 가벼운 공랭식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전하! 개발 기간을 좀 더 늘려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목표한 성능의 절반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능한 소신을 벌해주소서!”

“문제는 조만간 일본을 정벌할 때 이 무기들을 충분히 동원해야 한다는 거요. 7년 전 큐슈 정벌전에서 풍신수길이 왜군을 자그마치 20만이나 동원했었소. 최대한 1만의 군세에 불과한 우리가 보병총만으로 그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겠소?”

“휴우!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이민호도 예전에 무기개발 부서에서 일하던 사람이라서 공돌이를 효율적으로 갈아 넣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경제적인 보상이나 명예보다 중요한 것이 긴박한 필요성이었다.

이 무기를 어느 시기까지 개발하지 못하면 숱하게 많은 젊은이들이 헛되이 죽을 수 있다는 협박은 어느 시대에나 잘 통했다. 장인들은 다시 밤을 새면서 개발에 몰두할 것이다.

============================ 작품 후기 ============================

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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