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8 35. 기술개발 =========================================================================
“한 마리 잡았소!”
“와! 정말 큰 고기에요.”
이민호가 다시 낚시에 몰두하는 사이 주상아 공주가 직접 칼을 잡아 숭어의 배를 갈랐다. 창자를 꺼낸 다음 지느러미를 자르고 비늘을 긁어냈다. 시녀에게 시키지 않고 직접 요리하는 주상아 공주가 더 예뻐 보였다. 물고기에 고춧가루와 생강을 풀어 끓인 매운탕은 이민호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고산국 인기 요리였다.
그러나 함께 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민호는 남자 호위들을 낚시에 참가시키고 나중에는 아예 그물을 던져서 숭어를 150마리쯤 잡았다. 1인당 세 마리 넘게 돌아갈 양이었다. 주상아 공주는 갖고 온 고춧가루와 양념을 다 써서 30마리는 탕으로, 나머지는 구이로 요리를 만들었다.
“아주 시원한 맛이다!”
재료는 흔한 숭어였지만 야외에 놀러 와서 직접 해먹는 요리라서 꿀맛이었다. 기생충 감염을 우려해 물고기 회를 먹지 못하게 해서 고산국에 회 요리는 없었다. 이민호가 소원대로 따뜻한 곳에 살게 돼서 좋았으나, 더운 곳으로 갈수록 전염병 문제가 심각했다.
바로 이것이 남방으로 진출하고 싶어 하는 이민호의 발목을 꾸준히 붙들고 있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남아시아에 아예 진입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으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판에 전염병 문제까지 겹쳤다.
마카오 대학을 중심으로 의학과 생화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포르투갈 교수와 고산국 유학생, 졸업생들이 아직 제대로 된 항생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바로 얼마 전에 세포 개념을 알게 됐으나 아직 원소나 분자합성 개념도 못 가진 사람들에게 시간도 제대로 안 주고 무조건 만들어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페니실린 개발은 그 끝이 살짝 엿보였다. 이민호는 박테리아의 세포벽 형성을 방해하는 페니실린을 합성하는 푸른곰팡이가 여러 종이 있을 수 있다고 조언해줘서 연구자들이 가장 적당한 푸른곰팡이를 찾고 있었다. 이민호는 다시 푸른곰팡이 배양방법을 알려줌으로써 대량 배양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페니실린은 아직 주사제로도, 알약으로도 완성되지 않고 임상시험 중이었다. 의학과 화학이 좀 더 발전하면 다양한 항생제가 개발되겠지만 그 전에 지금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병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열대지방에 진출하는데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말라리아의 경우에도 치료제는커녕 아직 예방약도 못 만들었다.
“전하! 아~ 하세요.”
“아!”
의용공주 주상아가 젓가락으로 껍질이 붙은 기름진 숭어 살점을 이민호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민호도 통통한 살점을 골라 공주에게 떠먹여주었다. 이 맛에 사는 것 같았다.
오후에 왕립사관학교를 방문했다. 수업시간 중이라서 학생들은 안 보이고 교장 김학과 교수 몇 사람만 나와서 이민호 일행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김학은 조선에서 전쟁이 끝난 것을 알고 고향에 며칠 다녀온 다음 다시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교장 오랜만이네. 잘 되가나?”
“예! 전하! 이쪽으로 오십시오.”
정식 브리핑은 아니고 사관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을 요약한 종이판을 갖고 김학이 설명했다.
“아이누 사관생도들이 출신 지역마다 사투리가 심한 편입니다만, 1단계 사전편찬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생도들의 조선말 구사능력은 평균적으로 열다섯 살 수준이며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직은 고차원적인 전술상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전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뭔가?”
이민호가 빙긋 웃었다. 김학이 똑똑한 사람이라곤 하나 그 역시 이 시대 사람으로서 한계가 명백했다.
“저들을 우리 사관생도와 똑같은 수준으로 교육시켜도 되겠습니까?”
동서양의 전쟁사와 전술교육이란 것이 단순히 전투 방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동원체계와 보급병참 문제도 당연히 교육과정에 포함됐다.
이 시대 유럽의 전쟁은 국가가 모든 것을 투입하는 총력전은 아니었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전쟁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만큼 인력과 자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현대 총력전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래서 무관들도 직위가 올라갈수록 당연히 정치제도와 산업생산 문제도 알아야 했고, 이것을 사관학교에서 미리 가르쳐야 했다. 얼핏 보기에는 전쟁에서 무기 등 기술이나 전술이 중요한 것 같아도 크게 보면 전략을 넘어 결국 정치로 귀결되기 쉬웠다.
“중요한 문제를 이제야 제기하는군. 아니, 적당할 때에 제기했네.”
“그 동안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만, 일부 뛰어난 생도들이 유럽과 중국의 번역서 양쪽을 모두 읽으면서 비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쟁을 다룬 어느 책이든 군주나 야전사령관 정도가 알아야 할 정도로 쓸 데 없이 고차원적인 문제를 다룬 내용이 더 길었다. 그러나 수재들은 반드시 필요한 것을 뽑아서 체화하거나 오히려 더 발전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자기가 수재나 천재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이민호는 살짝 두려웠다.
“훌륭하군. 아이누 생도도 고산국 출신 생도와 동등하게 교육시켜라. 이것이 내가 김 교장에게 처음 내렸던 명령일세. 고산국에 수재가 더 많으니 걱정 말게.”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어서 걱정됩니다. 저들은 한때 일본 혼슈 지방 절반을 영유했던 자들입니다.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은 지금이야 문제가 없다지만 나중에 독립을 생각할 것입니다.”
“역시 김 교장도 그렇게 생각하는군. 먼저, 사관학교는 최고 교육기관이 아니야. 나중에 육군대학과 해군대학, 대학원 과정이 생길 테니 저들이 배우는 것은 기초사관 교육에 불과해. 그리고 나는 아이누 사람들을 지배할 생각이 별로 없네. 아이누 사람들이 독립국을 만들면 또 어떤가?”
“예? 아이누 섬을 장기적으로 우리 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능력이 되면 독립하라지. 다만 나중에도 서로 협조하는 게 이익이라면 우리 편에 붙겠지. 그런 의미에서 생도들을 새나라 건국의 주역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교육시키게.”
이민호는 아이누 섬에 일단 나라가 만들어져서 일본과 대립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사관생도나 추장들 각자의 권력욕이나 사상 차이, 고산국과의 관계설정 문제 등을 이유로 자기들끼리 싸우든 쿠데타를 일으키든 상관없었다. 이민호는 그들의 내부 정치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아이누 인들은 아직 철기 제작 기술 자체가 없는 종족이라 고산국 도움 없이 쉽게 발전하기도 어려웠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일본에 흡수돼 민족 자체가 소멸되는 길을 걷느니 고산국과 협력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권력지향주의자들은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항상 이것이 문제였다.
“기술은 뭘 가르쳤나?”
“예. 예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갖가지 생활 기술을 익히게 했습니다. 중요한 것으로는 대장장이 기술 여러 가지, 목공기술, 건축과 토목, 심지어 벽돌 굽기도 가르쳤습니다.”
“아이누 인들이 기술을 소중히 여기더군.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어.”
“전하께서는 저들을 전쟁에 동원할 생각이 아니었습니까?”
“전쟁에 동원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나라를 세우는 핵심 세력이 될 수도 있겠지. 졸업은 언제 시킬 계획인가?”
김학에게 아이누 청년들을 맡기면서 적당한 시기에 졸업시키라고 했다. 김학이 한참 고민하더니 어렵게 대답했다.
“저들은 지금 당장 졸업해도 아이누 섬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낼 것입니다. 저는 좀 더 많은 아이누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좋아. 2기를 모집해야겠군. 정기적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보게.”
그러나 다들 젊은 나이에 결혼하기 때문에 생과부를 고향에 두고 와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김학은 물론 아이누 청년들의 건의로 2기부터는 부부 동반으로 고산국에 오기로 합의했다.
생도 부인들에게도 교육을 시켜주는 대신 교육비가 조금 올랐다. 공짜는 없었고, 아이누 섬에서는 아직 사금이 풍부하게 나왔다. 그리고 아이누에서 장기적으로 수출할 상품을 생산하는 문제도 이민호가 맹렬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말과 양모, 해삼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해달 모피를 서양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가격은 아이누 사람들에게는 아직 비밀에 붙였다.
궁성에서 가까운 대장간은 이민호가 자주 들르는 편이었다. 너무 자주 들러서 탈이었다.
입구에 들어선 이민호를 알아본 장인들이 치를 떨거나 건물 뒤편으로 도망갔다. 충분한 인력을 충원해서 교대시켜주는데도 장인들은 끊임없이 몰려드는 일감 때문에 괴로워했다. 이런 일에 이미 익숙해진 늙은 장인이 이민호를 안내했다.
“어때요? 강선이 잘 파집니까?”
“예! 전하. 열흘 걸릴 일이 한두 시간으로 줄었습니다. 전기 원동기 덕택에 잠 잘 시간이 늘었습니다.”
총열에 강선을 파는 문제는 유럽에서 15세기에 시작된 이래 수백 년 간의 사격 경험과 금속가공 기술의 발달이 결합되고 나서 19세기에 어느 정도 해결됐다. 현대에서야 아프가니스탄의 늙은 장인이 간단한 도구만으로도 강선을 파지만 15세기에 처음 강선을 깎은 이래 고산국 정도 정밀도로 강선을 뚫는 경우는 없었다.
쇠막대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일정한 구경으로 구멍을 뚫고, 다시 그 구멍 면을 다듬고 연마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총열에 절삭구를 넣고 회전시켜 나선형으로 돌아가면서 홈을 파는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도 그렇게 많이 걸려요?”
“전기가 동력으로 사용되면서 손으로 돌리던 때보다 엄청나게 빨라진 셈입니다. 이번에 하사해주신 윤활유도 생산시간 단축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통짜 쇠막대가 아니라 파이프, 그러니까 원통형으로 안이 빈 쇠막대를 준비했다가 안쪽에 홈만 파면 어떨까요?”
“총열을 뚫기 전에 철봉에 열을 가해 두들겨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중간에 구멍이 뚫린 것에 홈만 팔 경우 총열이 약해져서 발사할 때 총열이 터질 우려가 있습니다.”
길쭉하게 만든 총탄이 같은 구경의 구슬 모양 탄환에 비해 질량이 크고 비행 특성도 좋았다. 그러나 총탄이 비행 중에 양력과 중력, 항력을 받으므로 앞뒤가 뒤바뀌어 날아가는 전도 현상을 일으키기 쉬웠다. 이는 사거리와 명중률 저하로 나타났다.
총알에 가해지는 여러 가지 다른 힘들을 초과하는 회전력을 총알에 주게 되면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은 이민호에게 상식이었다. 총알에 회전력을 줄 수 있도록 총열 안에 강선을 파는 일이 소총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알겠소. 안전이 먼저요. 그럼 분업이라도 하세요. 구멍 뚫는 일 따로, 홈을 파는 일 따로 말입니다. 생산성이 문제에요.”
“한 사람이 다 하는 것이 보다 정밀합니다만, 어명에 따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데 강선이 파진 봉을 원통형 쇠막대에 넣은 다음 망치로 두들기거나 강한 힘으로 눌러서 만드는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그 정도 압력을 줄 기계를 만들려면 또 엄청나게 일해야 할 텐데, 괜찮겠소?”
“다음에 하시죠.”
장인이 자신이 없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넘어갔다. 이민호도 강선을 파는 몇 가지 다른 방법을 알지만 이 시대에는 전통적인 절삭구로 파내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보병총을 개량할 때가 왔다. 아무리 보병총이 단발총이라 하나 장애물 없이 탁 트인 야전에서 겨우 세 배 병력밖에 못 막는 것으로 판명 난 이상, 그 이상의 사격 속도와 정확도가 필요해 개량하기로 결심했다. 탄창식 반자동소총 개발이 목표였다.
중점적으로 개량할 부분은 총열과 격발장치, 그리고 장전 장치였다. 노리쇠를 잡아당겨 탄피를 뽑고 새 탄알을 장전하는 볼트액션 단계를 넘어서는 반자동 사격이 개발 목표였다. 즉, 총탄을 발사하면 가스 압력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탄피를 방출하면서 새 탄알을 약실에 물려서, 사수가 다시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발사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물론 현재의 소총만으로도 야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보장할 수 있지만 인명피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개발에 들어갔다.
먼저 비교적 구하기 쉬운 크롬과 휘수연석에서 추출한 몰리브덴으로 합금강을 생산했다. 이것으로 총열을 만들어 4조 우선의 강선을 파서 기존 보병총의 총열을 대체했다. 시험해보니 사거리가 3할 정도 늘고 정확도는 5할 이상 향상됐다. 시가전보다 야전을 할 경우가 더 많은 이 시대에 사거리는 중요한 요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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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수집하다가 멍하니 읽다 보니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