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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86화 (23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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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기술개발

고산국에 돌아온 이민호는 가장 먼저 명나라 황제에게 보낼 주문(奏文)부터 작성했다. 내용은 이민호가 작성하고 형식은 예국에서 도와줘서 그럴 듯한 주문이 완성됐다. 보고서 형식으로서 이번 전투를 마무리하면서 작성한 보고문이라서 조선으로 치면 최종 승첩장계에 해당했다.

이민호는 고산국 원정군뿐만 아니라 명군, 유구국 파병군, 조선군, 조선 수군까지 아울러 공을 논했다. 실제로는 이민호가 명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형식상 이여송의 윗사람이라서 명군의 전공을 논할 자격이 있었다.

이 주문에 기록된 장수는 국적을 불문하고 명 실록이나 나중에 명나라가 망한 다음 편찬될 명사(明史)에 실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민호는 가급적 장수들 이름을 많이 올리려고 노력했다. 이 장수들은 조만간 황제로부터 상도 받게 될 것이다. 부친 이응화의 이름도 이순신 다음 순서로 올렸다.

주문의 부록으로 작성된 전리품 목록이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전리품 일부와 수급은 이미 북경에 보냈다.

“도련님! 이번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북경을 겨울이 아닌 때에 다시 구경하고 싶습니다.”

북경에 누구를 보낼까 고민하는데 활달한 감불이 나섰다. 지난번에 북경에 가서 황제에게 주문을 올리러 갔던 감동하고도 이미 이야기가 된 듯했다. 그러나 감불을 보낼 수는 없었다.

“북경에서 볼 게 뭐 있다고. 차라리 절강성 대도시가 낫지. 그런데 감불이 너는 안 되겠다.”

“왜요? 제가 덤벙대서요? 설마 황제 앞에서 덤벙대겠습니까?”

“아니. 남자답게 잘 생겨서.”

고산국 최고 미남은 단연 옥남이었다. 조각상 같은 미남이며 피부도 하얘서 여자들로부터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조금 느끼하게 생긴 옥남보다는 감불처럼 씩씩하고 훤칠하게 생긴 남자들을 더 높게 쳐줬다. 명나라 황제의 취향도 비슷한 것 같았다.

“제가 잘 생기긴 했습니다만, 그게 이유가 됩니까?”

“황제가 네놈 엉덩이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 같아.”

“히익!”

감불이 화들짝 놀랐다. 요즘 들어 황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조회에 나오지 않는 것은 여전했고 환관들에 이어 호위무장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네 성질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 아냐? 괜히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다. 이번에는 예국참판이 가주시겠소?”

“예! 전하. 황제폐하께서 설마 늙은 저를 탐하겠습니까? 이번에 군량 값 30만 냥까지 확실히 받아오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마시고 일단 주는 대로 받아오시오.”

명나라는 조선에서의 원정을 핑계로 세금을 올리고 백성들에게 각종 부역을 과도하게 부과했다. 그리고 곳곳에서 은광을 개발한다는 이유로 환관들이 온 산을 뒤지고 다녔다.

명나라 후기에 들어서면서 정상적인 세금만으로 국가를 운영하기에는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기간을 정한 한정적인 조치라고 하나 세금을 대폭 올렸고, 그 외에도 백성들을 상대로 여러 가지 경제적인 수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부담은 고스란히 명나라 백성들이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최근 사천의 파주 선위사(播州宣慰使) 양응룡이 묘족들을 선동해서 사천과 그 주변 일대가 시끌벅적했다. 남방에서 곧 내란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퍼지며 분위기가 흉흉할 때였다.

이럴 때는 고산국도 조용히 죽어지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민호는 해남도의 주애공부에 연락해 당분간 묘족과 과도한 접촉을 삼가도록 긴급 훈령을 내렸다.

“풍신수길이 와병 중이라고?”

“예. 공식적인 자리에 며칠째 나오지 않는다고 해요.”

겐타로가 긴급 보고한 내용 중에 재미있는 게 많았다. 풍신수길은 병에 걸려 드러누웠고 덕천가강은 오사카 성에서 불에 타 죽은 것 같다고 했다. 조선에 파병된 다이묘들은 남김없이 몰살당했으며 특히 큐슈 지역의 피해가 커서 일본 전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덕천 가문의 가독은 결국 셋째아들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가 15살 나이에 이어받았다. 장남 마츠다이라 노부야스는 오다 노부나가가 할복을 명해서 죽었고, 덕천가강으로부터 평생 홀대받았던 차남 유키 히데야스는 풍신수길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지금은 유키 가문을 이어받았다.

현재 일본 땅에 배를 건조할 때 사용할 만한 목재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명나라 복건성에서 일본에 파견한 간첩 20명 중에서 12명 이상이 붙잡혀 참수 당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들을 기록한 비밀 주문을 추가로 만들어 감동이 북경으로 가는 길에 들려 보냈다. 감동은 못 생겨서 다행이라고 투덜거리면서 전선 세 척을 이끌고 북경으로 향했다. 개선행사로 이루어지는 북경 시가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이번에도 아미족 민속무용단이 단체로 따라갔다.

이민호는 장인들을 데리고 한동안 원유의 분별증류에 매달렸다. 높은 증류탑을 쌓아 불을 때고 끓는점의 차이로 여러 가지 다른 석유제품을 얻는 방법이 분별증류였다. 휘발유처럼 끓는점이 낮은 제품은 높은 곳에, 끓는점이 높은 물질은 낮은 곳에 따로 모아서 뽑아냈다.

끓는점이 낮은 석유가스 종류는 폭발과 화재 위험 때문에 공기 중에 다 날려버리고 휘발유와 등유, 경유를 얻고 중유 혼합물이 남았다. 이것을 감압증류해서 다시 중유와 윤활유, 파라핀을 추출한 다음 나머지 찌꺼기인 아스팔트를 궁전 앞 도로에 깔았다.

휘발유는 당장 쓸 곳이 없어 증류탑을 가열하는 연료로 사용했다. 나중에는 석유가스 중에서 나프타 성분을 추출하고,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얻어 다양한 물질 합성에 사용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철판으로 만든 커다란 저장고를 실은 대형 외륜선이 고산국과 브루나이를 왕복하면서 끊임없이 원유를 수송했다. 원유가 담긴 구덩이가 조만간 바닥날 것 같다고 브루나이에 파견된 관리가 보고했다. 당나귀 모양의 거대한 채굴시설이 조만간 필요해질 것 같았다. 현재 1개 려 125명이 파견되어 지키고 있었고 노동자들이 도로를 건설하고 유전 주변에 철조망을 치는 작업을 마쳤다.

원유 분류작업에는 마카오 대학에서 화학을 배운 유학생 출신 장인들이 많이 참가했다. 이민호는 이들을 석유화학 전문가로 키울 생각이었다. 플라스틱은 금방 만들어낼 것 같았지만, 석유라는 새로운 물질은 수많은 종류의 물질이 섞인 혼합물이라 분리해서 특성을 파악하기도 벅찼다.

그 사이 단기통 디젤엔진을 만들었다. 경운기에나 쓰면 딱 맞을 허름한 외양과 빈약한 출력이었다. 털털거리는 소음도 경운기와 비슷했다. 그러나 디젤엔진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했으며, 전선에 적재된 기관과 달리 디젤엔진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이 가능했다. 차는 물론 배에도 탑재할 수 있었다.

군함 종류는 장기적으로 디젤기관 둘, 터보샤프트 엔진 둘을 결합해 사용할 계획이었다. 디젤엔진으로 장거리 순항속도에서 높은 연료 효율을 얻고, 터보샤프트 엔진을 가동시킬 때는 급발진이 가능하고 높은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터보샤프트 엔진은 연료 효율이 디젤엔진보다 많이 떨어져서 어차피 언젠가는 주력 기관을 디젤엔진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특히 상선이나 장거리 탐험을 위해 건조되는 배는 앞으로 디젤엔진을 탑재할 계획이었다.

휘발유엔진이 아닌 디젤엔진을 먼저 만든 것은 기관을 작동시킬 때 연료를 꾸준히 발화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점화플러그에서 생성하는 스파크가 필요한 휘발유엔진과 달리 디젤엔진은 연료를 고온 압축시켜 자연 발화가 가능했다. 대신 엔진 크기가 많이 커졌다.

좀 더 발달된 금속가공 기술과 석유에서 추출한 윤활유 덕택에 피스톤 링과 실린더 사이를 완벽하게 밀폐시키면서 마모를 줄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시험적으로 증기기관도 만들었으나 쓸 일이 없어서 박물관으로 바로 들어갔다. 추운 지역에서 나무나 석탄을 때면서 난로와 발전기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 당장은 개발할 게 너무 많아 여력이 없었다.

“연료는 경유가 좋겠지만 급하면 등유나 콩기름까지 아무 거나 써도 돼. 그게 이 기관의 최대 장점이다. 다만 화재는 조심해야겠지.”

“그래도 연료 정제를 잘해줘야 합니다.”

“그게 다 비용이니까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지.”

이민호는 장인들과 대화하면서 완벽한 것보다는 경제성을 강조했다. 휘발유엔진보다 디젤엔진을 택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연료 효율과 정밀성을 포기한 대신 범용성을 우선해야 했다.

소형 휘발유엔진이 필요한 자동차 운송을 고려할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디젤기관이 차라리 좋은 선택이었다. 물론 휘발유엔진도 언젠가는 개발할 계획이었다. 이민호는 아이디어를 주고 다른 산업과 결합시키면서 장인들을 쥐어짰다. 그러나 장인들에게 경제적 보상만큼은 충분히 해주었다.

선박 연구소에 들러서 스크루 프로펠러 시험을 참관했다. 날개가 4개 달린 것과 5개 달린 것의 효율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최근 프로펠러 날개의 각도나 형태 등 많은 것에서 시험과 개량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당연히 날개 5개짜리를 선택하려 했으나 시험 결과 이상하게도 4개짜리가 조금 더 효율이 높았다. 이민호는 날개를 비틀고 다른 형태로 만들어서 다시 시험하라고 지시했다. 장인들의 얼굴이 허옇게 변했으나 이민호도 정확한 답을 모르니 장인들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는 선박용 스크루 프로펠러를 볼 때마다 선풍기를 떠올렸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궁성에 전기가 들어왔지만 아직 형광등을 키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조만간 전기 콘센트를 만들어 선풍기를 사용할 꿈에 부풀었다. 선풍기를 틀고 자면 질식해 죽을 수 있다는 소문을 낼까 말까 고민했다.

- 뿌우~

경적이 울리고 탐사선 세 척이 항구를 떠났다. 기관 4기와 돛대 3개를 갖춘 탐사선 두 척이 완공되고 유구국 범선이 도착해 드디어 탐험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탐사선은 전선과 비슷한 규모였으나 함포 등 무장을 줄이고 식량과 연료, 식수를 더 많이 싣기 위해 내부가 많이 개조된 배였다. 항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와 항해의 성공과 무사 귀환을 빌었다.

남풍과 북태평양 해류를 이용해 북태평양을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여러 지역을 조사, 측량한 다음 캘리포니아 남쪽에서 북적도해류를 타고 서쪽으로 돌아오는 항로를 확인하는 것이 이번 항해의 목적이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북미 서해안 인디언들과 교류해서 콩과 땅콩 등 연료유로 사용할 만한 종자를 심게 하는 것도 이번 항해 목표의 하나였다.

고산국 자원자로 구성된 탐사선 2척의 탑승자 160명과 범선에 탄 유구국 청년 120명, 합 280명 중에서 몇 명이나 살아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식량창고에 비상용 건조식량을 가득 쌓고 괴혈병에 대비해 말린 과일도 잔뜩 준비했다. 이 시대에 풍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질병이었다.

이민호는 이들을 항구에서 떠나보내면서 속으로 많이 착잡했다. 다들 살아 돌아오길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명부를 관할하는 혜영과 미카가 얼굴이 빨갛게 된 채 이민호에게 설명을 듣고 있었다. 여자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이민호도 낯을 붉혔다.

“그러니까 주인님 말씀대로 생리 주기를 기록하고 다음 생리 예정일 14일 전인 배란일에 승은을 내리시면 회임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군요.”

“응. 유명한 서양 산부인과 의사들이 내린 결론은 그래. 아직 다들 젊어서 주기가 불규칙한 경우도 많겠지만 차차 규칙적으로 변할 거야.”

물론 유럽에는 아직 산부인과가 분리되지도 않았고 배란일 계산법도 거의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시기였다. 이민호는 현대인의 상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할 때는 만만한 유럽을 들먹거려 설득하곤 했다.

“몸이 살짝 아프다거나, 분비물이 진득해진다거나 하는 날이 배란일이라더군. 배란일 사흘 전부터 배란일 다음 날까지가 임신하는 적기래.”

“주인님은 참 별 걸 다 아시는군요.”

“그러게 말이야. 잡다한 책을 읽었더니 아는 게 많아졌어.”

연애를 인터넷으로 배우다 보니까 이렇게 쓸데없는 잡지식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실전이었다. 밤마다 힘은 좀 들었지만 이민호에게 결코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현재 시간배경은 1593년 6월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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