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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85화 (234/1,000)

00285  34. 종전  =========================================================================

이민호는 전선과 범선에 병력과 말을 태운 다음 부산포 앞바다에 정박한 조선 수군 함대로 향했다. 고산국 전선이 비록 크다 하나 250척의 판옥선과 거북선에 완전히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민호는 단정을 타고 통제영 상선에 올라 이순신과 작별인사를 나눴다. 바로 고산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이순신이 몹시 아쉬워했다.

“통제 대감! 저번에 한 약속 잊지 마십시오.”

“물론일세. 통지 자네만 따라다니면 오늘 같은 해전을 또 할 수 있겠지? 몹시 기대된다네.”

전공을 너무 많이 쌓아 노를 젓는 수졸들까지 당상관으로 이뤄진 함대가 되고도 이순신은 전공 욕심이 많았다. 전공을 세워 포상 받는 것을 욕심내는 것이 아니라 전과를 올리는 승리를 즐기는 것은 여느 무장들과 같았다.

“왜군에 이만한 함대를 다시 만들 여력이 남아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가사키에 거주하는 겐타로를 통해 올해 초에 풍신수길이 영지마다 군선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 것을 이민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군선이 집결한 곳을 알지 못했는데 부산포에 갑자기 왜선 2천 척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아마도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배를 숨기기 좋은 세토내해에 배를 집결시킨 것 같았다.

“에잉~ 그럼 실망인데?”

“그래도 저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셔야 합니다.”

“물론일세. 장계를 올린 다음 조정에 체차시켜 줄 것을 요청하겠네. 그리고 국상 기간이 끝나면 윤선을 타고 고산국에 가겠네. 홀대하지는 말아주게.”

“어느 누가 감히 통제 대감을 홀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민호는 활짝 웃는 낯으로 상선에서 내릴 수 있었다. 이순신을 고산국에 초빙한 다음 실컷 부려먹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일단 이순신을 교수로 모시고 전선 함장들 전술 교육부터 단단히 시켜야 할 것 같았다. 전쟁은 그 다음이었다.

부친과도 작별을 고했다. 이응화는 오늘 해전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대첩을 거두고도 불만이세요?”

“통상께 꾸중을 듣지는 않았지만 나한테 많이 실망하신 모양이야. 통상께서 급히 남쪽을 막지 않았더라면 왜병들이 가득 탄 왜 소선들을 다 놓칠 뻔했어.”

“그 정도 잘 싸웠으면 됐죠. 통제 대감과 따로 지휘해서 자그마치 왜 대선과 중선 300척에 소선 800척을 잡았어요.”

“고산국 전선이 없었으면 힘들었을 거야. 통상께서도 고산국 전선을 뜯어보고 싶어 하시더라.”

“그건 불가능해요. 동력 부분을 모방할 수 없거든요.”

혹시 이순신이 이민호를 도와주려는 이유 중에 전선의 기관을 뜯어보려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의 금속가공 기술로 그런 기관을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국상기간이기도 하니까 정식 혼례를 올리라는 소리는 당분간 안 하마. 대신 애나 빨리 만들어라. 며느리들이 너만 쳐다보고 있잖아.”

“예, 예.”

민희와 민영이 어쩐 일로 얌전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소곳이 서 있다 했더니 시아버지를 만나기 때문이었다.

“심각하게 들어, 이놈아!”

“예.”

워낙 손이 귀한 집안이라 이민호를 이놈 저놈 하고 부를 사람은 부친밖에 없었다. 누나는 매형과 잘 살고 있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고 나라를 세우는 바람에 친구를 사귈 기회가 거의 없었다. 유일한 친구인 안방준은 공부하느라 바쁘더니 전쟁 기간에는 의병을 일으켜 경상도까지 싸우러 다녔다. 안방준은 사창신문을 만들고 여러 가지 한글 책을 간행하는 등 조선에서 살면서도 이민호에게 도움을 많이 준 편이었다.

“이제 관직에서 물러나 친구들하고 바둑이나 둬야겠다. 가끔 편지로 소식이나 전해다오.”

“예? 아직 젊으신데 왜 물러나세요? 고산국으로 오세요. 실컷 부려먹어 드릴게요.”

“네놈이 그럴 줄 알고 고산국에 안 간다. 손주 낳으면 백일 때 불러라. 그때 손주도 볼 겸 고산국에 구경하러 가마.”

나이 들어서 기반을 옮기기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이민호가 일본을 정벌할 때 다시 도와주기로 했다.

다시 단정으로 돌아와 함대사령관실로 향했다. 도진의홍, 시마즈 요시히로는 잡자마자 이미 기함에 보냈었다. 미카와 시녀들이 원수를 어떻게 처리했을지 상상하며 이민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민호가 함대사령관실 안에 들어섰다. 일본 여자 무사복을 차려 입은 미카와 시녀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이민호를 맞이했다. 미카를 필두로 일본 출신 여자들이 이민호에게 정중하게 절을 했다.

“주인님. 원수를 갚도록 해주셔서 그 은혜가 백골난망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주인님께 목숨을 바쳐 그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의 만분지일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도진의홍은 죽였겠지?”

“죽이지 않았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의 목을 베고 살을 저며 포를 떴을 거라 생각했던 이민호는 꽤 놀랐다.

“응? 왜? 미카 가문의 원수잖아?”

“주인님은 저희들의 주인님이십니다. 사로잡은 다이묘에 대한 처분은 오직 주인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 명예를 지킬 수 있도록 시마즈에게 할복하라고 해도 미카는 받아들일 거야?”

“주인님의 처분에 따릅니다.”

미카가 눈썹을 차분히 내리 깔았다. 이렇게 순종적이지만 원하는 게 없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민호가 남자 호위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담아 와.”

“넵!”

잠시 후 호위들이 시마즈 요시히로의 목을 구리 항아리에 담아 왔다. 미카와 시녀들은 흔들리지 않는 눈길로 그 목을 주시했다.

“복수가 이렇게 쉬워서 허탈하지 않아? 이제 말은 편하게 해.”

“그렇지 않아요. 주인님을 모시게 돼서 정말 기뻐요. 비록 관백이라도 도진의홍을 죽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주인님은 제가 요청한지 겨우 몇 년 만에 간단히 사로잡아 죽이셨어요. 사쓰마가 완전히 초토화된 것을 봤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혹시나 삶의 의미를 잃고 허무해지면 어떡하지?”

“그럴 일은 없을 거여요. 주인님은 항상 바쁘시니 제가 옆에서 도와드려야 해요.”

“고마워, 미카.”

이민호가 미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품에 안았다. 오랜 숙제 하나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시마즈 요시히로를 북경에 산 채로 보내면 황제가 더 기뻐하겠지만 이민호는 미카를 위해 유명한 다이묘 하나를 이 자리에서 베었다. 지금까지 미카가 일한 것을 생각하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날 밤 미카와 시녀들이 이민호를 위해 최상의 봉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민호도 그 봉사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다음 날 전라좌수영에 들러 장계를 동봉해 해동상단을 통해 조정에 보냈다. 이민호는 편의상 조선의 품계를 계속 갖고 있기로 했다. 현재 품계는 종1품 숭록대부였고, 벼슬은 의정부 우찬성이었으나 출근한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었다.

“대방은 어째서 여수에만 계시오?”

“근래 일이 가장 많은 곳이 여수입니다, 도련님. 동해국과 아이누 섬으로 보낼 물건 대부분을 만들거나 모으고 그쪽에서 오는 모피나 해삼 등을 가공해야 하니까요. 단천은광에서 보낸 은도 여기서 다시 정련됩니다.”

고산국에서 조선 남해안 지방과 무역하는 양도 많았고, 여수는 수출입 상품의 집산지였다. 그리고 여수는 남해안 어업의 중심 기지라서 주변에서 해산물을 말리거나 가공해 한성으로 보내는 중심지이기도 했다. 경상도 재건을 위한 지원 업무도 여수에서 맡기로 했다.

“여수가 위치는 좋은 편인데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물때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습니다. 봉산동과 가까운 곳에 어느 때나 입항할 수 있는 항구를 건설했으면 합니다.”

“전라좌수영과 협의해서 그렇게 하시오. 그리고 일본 정벌에 대비해서 간수군 숫자를 줄이지 마시오. 장계에도 그 내용을 언급했소.”

“관군도 아니면서 무기를 든 젊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 양반들이 좋게 볼 리가 없습니다.”

“1, 2년만 참으시오. 조정에서도 우리들의 충심을 믿고 있으니 정벌이 시작되면 선비들도 조만간 알아줄 것이오.”

간수군은 정원이 2천 명에 불과했으나 그 동안 조선과 고산국을 연결해주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간수군에서 근무하다가 대우가 더 좋은 고산국 승마보병으로 옮긴 자들도 많고, 간수군이 쓰는 보급물자가 흘러 나가 조선 백성들이 고산국의 부유함을 유추하게 되어 호감을 갖게 된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요즘도 가끔 바다에서 왜구가 나타나 상선을 공격하니 간수군을 줄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꼭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여수를 떠나 오후에 제주항에 입항했다. 제주목사 이경록이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고산국 병사들에게 호궤를 베풀었다. 수천 명이 다들 개다리소반 하나에 가득 쌓인 술과 음식을 즐겼다. 조선에서도 이국적이라 할 제주도 음식을 다들 좋아했다.

“호궤 한 번 하다가 기둥뿌리 뽑히겠소, 형님.”

“제주도는 예전처럼 가난한 고을이 아니야. 이 정도는 한 달에 한 번씩 해줄 수 있네.”

이경록은 이제 제주목도 잘 사는 고을이 됐다며 큰소리 쳤다. 제주도 목장에 말 사육 두수가 많이 늘어 눈길을 어디로 돌려도 말이 보일 정도였다. 조운선만 한 커다란 어선들이 만선 깃발을 휘날리며 항구에 들어오고 바닷가마다 여자들이 소금을 가득 쳐서 생선을 말렸다.

육지에서 건너온 상선들이 쌀과 말먹이용 잡곡, 소금을 하역하고 해산물과 과일을 싣고 떠났다. 차 종류는 대부분 고산국으로 가져갔다.

“물론 통지 자네 덕택일세. 제주도 백성들을 대표해서 자네에게 절이라도 올리고 싶네.”

“그런 건 싫다니까요! 남자한테 절 같은 것 안 받아요.”

“자네가 내 의제만 아니라면 진작 사위 삼았을 텐데 말이야.”

이경록은 이민호와 족보 꼬인다는 이유로 그토록 자랑하던 둘째 딸을 이의배라는 이에게 시집보냈다. 소문을 들어보니 대단한 미녀였고, 그래서 이민호는 의형제 따위 취소하고 싶었다. 물론 욕심만 그렇고 궁궐에 여자를 더 들일 생각은 없었다.

“산양은 잘 큽니까?”

“그 털북숭이? 한라산 꼭대기에 외양간을 만들어서 목부들이 잘 키우고 있네. 새끼를 잘 낳더군. 보러 가겠나?”

“아닙니다. 잘 키워보십시오. 혹시 압니까? 제주도민이 해산물이나 감귤이 아니라 산양 때문에 먹고 살지.”

“지금도 육지 사람들보다 잘 살고 있네.”

아이샤가 데려온 캐시미어 산양 몇 마리를 한라산 산록에 보내서 키우고 있었다. 제주도가 따뜻한 곳이라지만 한라산은 겨울에 눈이 쌓이는 고원지대이니 실패할 가능성을 각오하고 시험 삼아 이식시켰다.

그 외에 캐시미어 산양을 철원과 개마고원, 아이누 섬에도 몇 마리씩 보내서 내년 초에 산양의 성장과 털의 품질을 비교하기로 했다. 털을 깎아 고산국에 보내서 모직물을 생산하면 되니 구태여 강우량이 많은 고산국에서 산양을 키울 필요가 없었다. 대신 아이샤는 모직산업의 기초를 닦기 위해 방적기와 방직기 개량에 힘을 쏟았다.

다음 날 함대가 제주항을 떠났다. 아직 남풍이 부는 시기라 전선이 범선을 예인하면서 천천히 고산국으로 향했다. 유구국 외륜선들은 제주항에서 출항한 직후 바로 나하로 직행했다.

유구국 병사들은 전투를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수급을 5천 개나 얻었다. 울산왜성 전투에 참가해 용감히 싸우긴 했지만 사실상 고산국 기마병이나 승마보병들 따라다니면서 공짜로 주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쇼호 왕자는 수급 절반을 이민호에게 넘기고 절반은 유구국의 전공으로 삼았다.

이번 전투에서 명나라를 제외하고 조선과 고산국이 얻어 소금에 절인 수급이 8만 급이 넘어갔다. 이것을 전부 북경으로 옮기는 것도 큰일이었다. 해동상단에서 중형 외륜선들을 동원해 북경에 가서 확인시킨 다음 불태웠다.

이로 인해 명나라 조정은 물론 민간에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왜구 겨우 몇 십 명에게 관군 수천이 무너지고 남해안 대도시들이 점령된 사건을 겪은 명나라 사람들은 왜구보다 강한 왜군을 쳐부순 조선과 고산국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임진왜란이 다 끝났습니다.

벌써 3시네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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