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2 34. 종전 =========================================================================
“너희들이 안전하게 동래 부산포까지 갈 수 있도록 내가 제안 하나 해볼까?”
“무엇입니까, 전하?”
왜군 기마전령으로부터 불신 가득한 눈길을 받으며 이민호가 장난치는 재미를 더욱 만끽했다. 이민호가 옆에 서 있는 경상우병사의 어깨를 잡으며 왜군 전령에게 제안했다.
“여기 경상우병사 유숭인 영감은 다치바나 가문에 깊은 원한을 품은 사람이다. 그러니 다치바나 가문의 가주인 무네시게를 넘기면 너희들이 동래 부산포까지 퇴각하는 동안 경상우병영 병사들이 추격하지 않도록 해주마.”
“제가 언제요?”
눈치 없는 유숭인의 옆구리를 이민호가 주먹으로 다급하게 찔렀다. 그러나 갑옷이 단단해서 이민호의 주먹만 아팠다.
“전하께서 아까 하셨던 말씀과 영주 이름만 빼놓고 똑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주님들을 하나씩 제거하실 요량이십니까? 그리고 우리가 약속을 지키더라도 경상우병영이 아닌 다른 병력이 추격할 것 아닙니까?”
“쳇! 안 속네.”
왜군 기마전령이 씩씩거리며 돌아갔다. 왜군 주력을 3만에서 절반으로 줄이는데 성공했지만 왠지 날로 먹은 기분이라 이민호는 기분이 묘했다.
오늘 새벽에 해병 진영의 배후를 급습하려 했던 왜군 1만과 이여송의 북병을 야습했던 1만, 울산왜성을 지키던 왜인 위주의 1만은 이미 전멸했다. 하룻밤 사이에 왜군 병력이 6만에서 1만 5천으로 줄어들었다. 유구국 쇼호 왕자가 자꾸 전령을 보내 수급을 절일 소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었다.
이에 반해 연합군의 군세는 비록 명군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지만 조선군을 중심으로 시간이 갈수록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현재 명군 북병이 1만 5천, 남병이 1만, 고산국 기마병과 승마보병이 5500, 경상우병영 기병 4천, 좌병영 기병 3천, 좌수영 수군 1천, 경상좌도 의병 5천까지 아침에만 4만 3천이었다. 오전 중에 경상좌병영 보병 2천과 경상우병영 보병 3천, 경상우도 의병 1만이 합류하면 연합군의 병력은 거의 6만에 달했다. 수군과 해병은 아예 빼고 지상군만 계산했다. 수군에 포함된 간수군 2천도 이민호에게는 언제든 써먹을 수 있는 변수였다.
“제독총병관 대인!”
“도원수 대감! 어서 오시오.”
전라도순찰사였던 권율은 행주대첩과 한성탈환 작전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얼마 전에 도원수로 승진했다. 이여송이 전공을 독차지하려고 조선군을 울산에서 물러나게 했지만 도원수 권율이 울산 가까운 곳에 병력을 배치했기에 이렇게 빨리 전투에 동원할 수 있었다.
욕심 부리다가 병력을 다 말아먹은 이여송은 권율을 보기 부끄러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권율이 일부러 이여송에게도 인사를 건네자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쨌든 조선군 도원수, 명나라 제독총병관, 고산국 국왕까지 연합군의 최고 수뇌부가 한 곳에 다 모인 셈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명군이 기동하는 동안에는 조선군이 적극적으로 작전을 펼치기 어려웠다. 군량 등 모든 보급 문제에서 조선 조정이 명군을 최우선으로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조선군이나 의병은 군량이 부족해 해산하거나 심지어 명군을 위한 군량 운반 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 전체에 쌀이 넘치고 조선 수군이 부산 앞바다를 봉쇄한 다음부터 쌀을 경주까지 배로 직접 운반해올 수 있어 병참이 큰 문제로 떠오른 적이 없었다. 병참 문제로 고민하지 않게 된 장수들은 일단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대인! 드디어 전쟁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렇소. 왜적들을 싹싹 쓸어서 바다에 처 넣어버려야겠소.”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조정에서 왜적과 휴전 협상을 하기 위해 대신을 파견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도성을 출발했으니 오늘 아니면 내일 도착할 겁니다.”
국상 때문에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왜군이 조용해주길 바라는 왕실에서 왜군과 명군에게 휴전을 제안할 예정이었다. 국상 이후 전쟁을 지휘할 경황이 없는 왕실과 조정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딱히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
왕실과 조정 신료들 입장에서 전쟁은 1년 넘게 진행된 상수였고 국상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현안이었다. 이민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원활한 국상 처리를 위한 휴전협상 시도 자체를 비난할 수 없었다.
“뭐요? 그거야 왜군이 울산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이야기 아니오? 상황이 달라졌으니 휴전 협상은 필요 없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엄숙하게 국상을 치르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오늘 당장 끝냅시다, 도원수 대감. 그리고 이 제독!”
“예! 이 노야!”
두 사람의 명나라 관품이 제독총병관으로 같기에 이여송이 이민호를 이렇게 불렀다. 새파란 이민호가 노인 취급이 아닌 노인 대우를 받고 있었다.
노야(老爺)는 노인에 대한 존칭이기도 하지만 명나라 말기에는 고관대작에 대한 경칭으로 굳었다. 늙음을 존중하는 명나라에서는 노인(老人)도 경칭이었다.
“이 제독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거야 당연히 노야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뭐가요?”
“그게, 아무 거나요. 소장은 무능하니 부디 이 노야께서 모든 것을 맡아 지휘해 주십시오.”
이여송은 어젯밤에 왜군에게 야습을 당해 군을 홀랑 말아먹고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렸다. 병력을 추슬러 보니 처음 울산에 도착했을 때의 절반 이하에 불과해 자신감이 뚝 떨어진 모습이었다.
“조선 조정에서 대신이 오면 이 제독을 찾을 것이오. 그러면 무조건 오늘 안에 왜군을 공격해 전멸시켜야 한다고 말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생각할 것을 모두 이민호에게 맡긴 다음부터 이여송은 편해진 셈이었다. 숨통이 트인 이여송이 부대를 재편시키려고 뒤로 물러났다. 전쟁을 끝내는 이 중요한 시기에 최대한 전공을 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공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이여송도 괜찮은 무장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 야간 경계를 못했다고 비난하기도 어려웠다. 야간 경계를 중시한 통제사 이순신을 이 시대 평균으로 잡으면 절대 안 된다.
왜군은 방어하기에 유리한 사뱃재를 오랫동안 지키지 못했다. 고갯길이 방어하기 유리하더라도 일본으로 가려면 동래 부산포로 가서 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군량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왜군은 일부 병력만 후위로 남기고 동래로 이동했다.
후위로 남은 왜군 병력은 주력이 후퇴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주는 임무를 맡았다. 왜군 후위 병력은 1천에 불과했으나 비장한 각오로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분칠해줘도 이들의 본질은 버리는 돌에 불과했다.
경상우병영과 좌병영 기마병들이 다시 서서히 올라오자 사뱃재 언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후위에 속한 왜군 조총병의 화승을 감은 왼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이들의 상대는 기마병이 아니었다.
“와아!”
양쪽 산에서 경상좌도 의병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이들이 보유한 조총은 100정 미만이었으나 의병의 주력 투사무기는 역시 각궁이었다. 양반들이 대거 가담한 탓에 의병은 최소한 궁술에서만큼은 관군에 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의병들은 백병전도 두려워하지 않아 어떤 면에서는 관군보다 나았다.
그런데 국상 중이라 의병들이 전원 흰 옷을 입고 양반들은 백립을 썼다. 갓끈을 흰색 광목천으로 만들어 흑립을 썼을 때보다 활동성이 나아 보였다. 조선 후기까지 흰옷은 상중에만 입었고 평시에 흰옷을 입으면 오히려 특이하게 여겼다. 조선 말기라면 몰라도 조선 중기의 조선인들을 흰옷을 좋아하는 백의의 민족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의병의 공격으로 사뱃재 언덕 일대에서 혼란스러운 백병전이 펼쳐지는 동안 경상 좌우도의 기마병들이 서둘러 진격해서 고갯길에 올랐다. 기마병들이 활을 쏘고 말을 타고 달리며 환도를 내려치자 왜병들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지리의 이점을 잃고 병력마저 부족한 데다 세 방향에서 포위당한 왜군은 지리멸렬해져서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이겼다아~”
“와아아~”
의병과 기마병들이 끝없이 함성을 질렀다. 승리의 함성이라기보다는 동래로 후퇴하는 왜병들을 초조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 정도면 왜군 지휘부도 절망감에 빠졌을 거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다른 병력에 이어 고산국 원정군도 사뱃재를 넘었다. 부산포에 도착하기 전까지 왜군을 직접 치지 못하게 된 승마보병들은 불만스러우면서도 여유가 넘쳤다.
이민호가 고개를 막 넘었을 때 행군대열 앞에 내보냈던 기마순찰병들이 돌아와 보고했다. 키가 작은 므부투가 요즘은 말을 아주 잘 몰고 다녔다.
“왜군이 진채를 건설한다고?”
“예. 전선에서 함포 사격을 할까봐서 산 북쪽에 진을 쳤습니다. 아마도 시간을 끌면서 협상을 시도할 것 같습니다.”
요즘 므부투가 책을 많이 읽더니 정치적인 고려까지 해서 보고하는 경지에 올랐다. 이제 므부투는 더 이상 정찰병이나 전령에 어울리지 않았다. 적당히 승마보병 일부를 떼어주어 지휘관을 시켜야 할 때였다.
이민호는 아프리카를 아프리카인의 손에 돌려준다는 명분하에 남아프리카 일부를 적당히 챙기기로 했다. 다른 순박한 흑인 병사들과 달리 예전부터 므부투하고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아프리카에 흑인들의 나라를 세울 때 고산국과 우호 협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이민호의 주장에 므부투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이렇게 유리한데 우리가 협상에 나설 이유가 없잖아? 다 쳐 죽이거나 항복을 받아내야지. 귀찮게 포로 관리하느니 차라리 싹 밀어버리는 게 편하겠어. 므부투 생각은 어때?”
“국왕전하의 뜻대로 하십시오. 제 생각에는, 저들을 포로로 잡아봤자 높은 놈들만 많아서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행주대첩 직후 한성을 탈환할 때 다수의 왜군 다이묘들을 사로잡아 명나라로 보냈다. 그리고 그 동안 전사하거나 병으로 죽은 다이묘도 꽤 있었다. 하지만 동래에 몰린 왜군 중에 아직 꽤 많은 다이묘가 살아남아 있었다.
이민호가 고민하는 것은 풍신수길의 세력이 지나치게 약화되는 것이었다. 덕천가강의 가신과 군사력이 거의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세력 균형이 무너질 것 같아 걱정이었다.
그런데 고산국이 오사카 성을 공격했을 때 마침 성에 있던 덕천가강이 불에 타 죽었다는 소문이 일본 전역에 떠돌고 있었다. 겐타로가 긴급 보고를 했지만 아직 확실치 않았다. 풍신수길이 덕천가강을 나고야나 오사카에 자주 불렀다는 정보는 예전부터 갖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 에도막부를 열어야 할 덕천가강이 그토록 허탈하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전공 세운답시고 쓸데없이 위험한 짓은 하지 마. 므부투는 나중에 할 일이 많아.”
“봉급은 충분히 받고 있으니 그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부려먹어 주십시오.”
므부투가 정찰병들을 이끌고 동래 쪽으로 달려갔다. 이민호는 므부투가 아프리카로 돌아갈 때 중요한 역할을 맡길 예정이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독자적인 세력을 갖출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만약 배반하면 그때 응징하면 된다.
이민호는 조선 조정에서 보낸 협상단은 이여송으로 막고, 오늘 안으로 왜군을 완전히 끝장낼 생각이었다. 문제는 일본에서 건너올지도 모를 선단이었다. 포로가 됐던 사무라이는 부산포에 왜선 수천 척이 조만간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응화가 이끄는 조선 수군은 기장에 도착해 부산포 앞바다를 차단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나머지 함대도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왜선이 얼마나 올지 모르겠지만 천 척 정도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주인님. 앞으로 일본을 정벌할 계획이시라면 왜추들을 포로로 잡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잘 설득해서 왜추들을 일본 정벌의 앞잡이로 삼으세요. 몸값을 많이 내면 풀어줄 수 있다고 제안해도 좋아요.”
“민희는 일본 영주들이 포로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쟤들 알고 보면 거지야. 몸값도 못 받아. 차라리 영주의 후계자가 인질로서 가치가 더 높겠다.”
하극상과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사무라이들이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것은 가문의 생존이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가주가 할복하고, 자식을 남의 가문에 양자로 보내고, 상황에 따라서는 오랜 세월 섬긴 주군 가문을 배반해야 했다. 대부분 사무라이 출신인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 작품 후기 ============================
두번째 올립니다.
3회는 자신 없네요.
다음 회는 자정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