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4 32. 뜨거운 바다 =========================================================================
초저녁이 되면서 수도의 거의 모든 백성들이 아리수 강가에 모였다. 강제성이 없는 군중 동원이라 그 전에 오후부터 극단이나 악단을 동원해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백성들에게는 단순한 불꽃놀이로 홍보했다.
강변 곳곳에 천막이 들어서 무료로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솜사탕과 땅콩, 오징어 구이와 감자튀김 같은 군것질거리도 무제한 공짜로 풀었다.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했다.
하늘이 어둑해지면서 군 취타대가 나발을 불어 불꽃놀이를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폭죽이 쏘아지고 허공에서 갖가지 색이 빛나며 별빛처럼 내려오자 그 아름다움에 취한 모든 사람들이 감탄했다. 일본에 팔기 위해 생산했다가 남은 흑색화약을 이런 식으로 사용했다.
- 빰빠바아암~
다시 나발이 울리고, 어둠 속에서 아리수 강변을 따라 20리 넘는 직선도로 옆에 차례로 불이 켜졌다. 강변에 일정 거리마다 세워진 기다란 나무 전봇대마다 가로등이 밝혀진 것이다. 둥그런 유리공이 빛나면서 어둠을 밝히는 기상천외한 현상에 놀란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이민호는 궁전 남문 문루에 나와 있었다. 어린 아라 공주를 이민호 앞에 세우고 좌우에는 혜영과 의용공주 주상아가 섰다. 다른 후궁들과 시녀들도 도열해서 전깃불이 들어오는 장면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궁전도 밝아졌어요!”
어느 시녀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궁궐과 별궁 여러 곳이 환해진 것을 발견하고 감탄을 터뜨렸다.
고산국에 도착한 지 며칠 안 되는 아라 공주나 민희와 민영 같은 여진족 출신들은 잠시 어리둥절한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조선, 명나라, 일본 출신인 다른 후궁, 시녀들은 많이 놀랐다. 의용공주 주상아는 물론 미카도 처음 보는 불빛에 놀랐다.
“이게 무슨 도깨비불이래요?”
이민호가 예산을 받아 공사를 진행하면서 무엇인지 이유를 밝히지 않아 그 동안 꽁해있던 혜영이 가장 많이 놀랐다. 공사장 인부나 감독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조명을 밝히는 용도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어. 저건 전깃불이야. 아리수 강 상류에 발전소가 여러 개 있는 건 알지?”
“예. 그 돈만 잡아먹는...... 아니 그게 이 불을 키는 건가요?”
“전기를 전깃줄에 흐르게 해서 조명등을 통해 어둠을 밝힐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어. 방직기나 방적기를 돌릴 수도 있지. 물론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돌리고 있지만.”
수력발전소가 예전에 완공되고 나서 그 동안 전기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소금을 만드는데 염전을 이용한 천일제염 외에 전기 제염법을 이용했다. 궁궐 수라간에 들어가는 소금은 햇볕에 말린 천일염과 가마솥에 구운 자염도 있고, 천일염과 제재염을 섞은 꽃소금도 있어서 용도별로 따로 사용했다.
화약을 만들 때 필요한 성분을 전기로 합성하기도 했다. 인공 보석을 만들 때 며칠 동안 돌아가는 회전통도 당연히 전기로 돌렸다. 앞으로 작은 전기아크로를 제작해 고철을 재료로 강철이나 강철합금을 생산할 예정이었다. 금속 생산과 가공에 있어서 한 차원 높이 뛰어오를 것으로 기대했다.
이민호는 백열전구를 먼저 만들어 발전소 주변 지역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했다. 전선에는 아직 전구를 달지 않았다. 효율은 형광등이 백열전구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형광등을 달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형광등 제작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유리관이나 안정기, 필라멘트는 쉽게 만들어도 유리관 안쪽에 바르는 형광체를 만들고 유리관 안에 넣을 아르곤을 공기 중에서 분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고산국 땅은 산맥 서쪽으로 흐르는 급류가 많아 수량이 풍부했다. 덕택에 전기 생산량은 충분하지만 일단 아리수 강변을 따라 세워진 가로등과 시가지 조명, 그리고 궁전 내 조명에만 사용하기로 했다. 앞으로 전기를 쓸 곳은 무궁무진했다. 산업용은 주로 동력, 가정용은 주로 조명으로 쓰겠지만 냉장고과 전기오븐만 만들어도 식생활에 혁명이 올 수 있었다. 지금은 간단히 믹서 시제품만 제작했다.
전봇대라는 말에 맞게 강 하구 요새와 해중국 요새에 전보를 쳐서 통신을 할까 하다가, 아예 전화기를 만들기로 했다. 설계는 했는데 이민호가 워낙 바빠 아직 시험이나 제작은 하지 못했다.
“뭔가 했어요. 흐르는 강물을 쓴다면 원료비는 영원히 공짜네요?”
“수력은 한계가 있어서 나중에는 화력발전소가 필요할 거야.”
지난 한 달에 걸쳐 전봇대 공사를 할 때는 사람들이 이것을 방어시설로 알았다. 왕궁 실내에 이상한 줄을 방안에 들이는 공사를 할 때는 궁녀들까지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제는 전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백성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른들과 아이들 표정이 극명하게 대조됐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면서 걸어갔지만 어른들은 크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제부터 아이들은 전기가 원래부터 있던 것으로 알고 전기로 무엇을 하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어른들은 세상이 빠르게 달라진다며 걱정하거나 국왕이 또 이상한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다음 날 조선소와 기관 제작 공방, 아이누 청년들이 교육받는 사관학교, 제철소 전 단계인 고로를 들러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가지 지시를 하고 건의도 받으니 몸은 덜 피곤해도 머리가 곤죽이 되었다.
궁궐로 돌아와 집무실에서 대충 정리를 한 다음 지시 사항을 최 선생에게 넘겼다. 처녀한테 직접 물어볼 수도 없어 아직 이름도 모르는 최 선생이 공손히 인사하고 집무실에서 빠져 나갔다. 그 대신 왕명명이 폴짝 뛰어왔다.
“주인님~ 헤헤!”
“우리 멍멍이 왔어?”
왕명명이 자연스럽게 이민호의 무릎 위에 올라와 엎드렸다.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조는 고양이와 비슷한 자세였다. 이민호가 왕명명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민호가 손바닥으로 내려칠까봐 왕명명이 움찔거렸다.
“저번에 아팠지? 때려서 미안.”
“아니에요. 훌쩍~ 주인님께 관심 받으려고 히잉~ 앞으로는 바보짓 안 할게요. 흐엥~”
“그래, 그래. 우리 멍멍이 착하지.”
이민호는 왕명명이 왜 우는지 잘 몰랐다. 뭔가 가슴에 맺힌 것이 있는 것 같아 불쌍해서 왕명명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 주인님의 것 맞죠?”
“넌 내 것이 아니라 내 여자고, 난 네 남자야.”
왕명명이 애정을 원하나 싶어서 입을 맞추고 몸 이곳저곳을 만졌다. 생각해보니 아직 안지 않았다. 캐시미어 산양을 키우는 아이샤도 생일이 지났는데 안기는커녕 생일 축하도 못 해줬다. 그 동안 여자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았다.
달리 갈 곳도 없이 이민호만 바라봐야 하는 여자들이 불쌍했으나, 남자가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백성이 아니라 궁궐 여자들부터 먼저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고산국에서 사는 백성들도 불쌍했다.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적응해 살다가 고산국에 와서 몹시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특히 고산국을 조선의 속국이거나 새 개척지로 알고 이민 온 조선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더했다.
양반층의 사회적 권위는 사라지고 모든 권력과 권위는 국왕에게 집중됐다. 국왕은 걸핏하면 전쟁하러 나가고, 후궁들에게 정치를 맡겼다. 배가 불러서 좋긴 한데 곳곳에 참수된 사람 머리가 걸리고 범죄자들은 탄광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고 있었다.
이민호가 백성이라면, 일단 먹고살기 편하긴 해도 이런 나라에서는 오래 살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데 그 동안 헛일을 한 것 같아 이민호는 슬펐다. 전에도 그런 후회를 한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깊은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이 정도도 못하는 정치인들이 많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근거 없는 자부심이 들었다.
“난 할 수 있어.”
“뭘요, 주인님?”
이민호는 가장이고 국왕이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가족을, 그리고 백성들을 먼저 보듬어줘야 했다.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러워하는 왕명명부터 보듬어주기로 했다.
“힘들면 언제든 내게 와. 울더라도 내 품에 안겨서 울어. 알았지? 난 네 남편이니까.”
“정말요? 훌쩍~”
“어명이다! 왜?”
퉁명스럽게 대꾸해준 다음 왕명명의 원피스를 위로 훌렁 벗겼다. 통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아담하고 통통한 몸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같은 근육질이라도 아라 공주의 시녀 아나는 여자 육상 선수 같은 느낌이었고 왕명명은 격투 게임 여성 캐릭터 같았다.
“너 참 귀엽다. 끙~ 그런데 무겁다.”
이민호가 왕명명을 안아 들어서 집무실 소파에 눕혔다. 왕명명은 아주 잠시 바동거리다가 멈췄다. 이민호가 왕명명의 온몸을 애무했다. 왕명명은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저, 주인님! 저녁 수라 드실 시간이에요. 히잉~ 이럴 줄은 몰랐어요. 내일은 일찍 올게요.”
“한 끼 굶고 너를 안겠다.”
설마 왕이 굶을 리야 없겠지만, 이렇게 의지를 보여주자 왕명명이 몹시 기뻐했다.
“너는 등허리가 이렇게 생겼구나. 예쁘다. 팔뚝이 굵네. 가슴이 많이 커졌어. 근육이 아주 탄탄해서 부럽다.”
“그런 말씀은 여자에게 칭찬이 아니에요. 헉!”
이민호가 왕명명의 투정을 무시하고 깊은 곳을 애무해보니까 단단한 것으로 막혀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혹시나 결합순간에 민영처럼 왕명명이 주먹질을 하면 큰일 날 것 같았다. 저 굵은 뼈에 뭉친 저 탄탄한 근육에 힘이 실린 주먹에 맞으면 국왕 시해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손으로 발목을 잡아. 양쪽 다. 그래.”
통닭 자세를 만들어놓고 결합할 준비를 끝낸 다음 왕명명의 몸 위에 이민호가 몸을 실었다. 왕명명이 등을 움직여 도망가려 했으나 이곳은 침대도 아닌 소파라서 금방 막혔다.
“아, 아파요.”
“왜 이리 두껍니. 잠시 가만!”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런 상황을 자주 겪은 이민호에게 요령이 생겼다. 두꺼운 장벽을 뚫고 두 사람의 몸이 완전히 결합했다. 왕명명이 허연 흰자위를 드러내고 눈을 치켜떴다가, 이민호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처음을 가진 남자의 목에 팔을 둘렀다.
“컥! 목 조르지 마!”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아팠어요.”
“잠시 쉬었다가 하자.”
“이제야 저를 안아주시다니, 나빴어요.”
“그럼 물를까?”
이민호는 잠시 왕명명의 상큼한 향기가 나는 입안을 즐겼다. 아마도 혜영한테 배운 듯 혀가 마중 나와 이민호의 혀를 감쌌다. 왕명명이 몸에서 긴장을 풀자 이민호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민호는 새로운 여자의 새로운 몸을 탐색했다. 여자들이 처음에는 긴장하고 고통에 발버둥치는 경우가 많아 이런 것을 딱히 즐기지 않았지만 새롭다는 점에서는 신선했다. 왕명명이 고통 속에서도 색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라 공주님이 오시면서 주인님이 제가 할 일을 줄였을 때 정말 서러웠다고요.”
“일이 너무 많아서 항상 외국에 나가 있었잖아? 지역별로 전문화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흥! 저는 다할 수 있었어요.”
“일을 좀 줄여야 이렇게 둘이 같이 있지.”
“그건 그래요.”
왕명명이 활짝 웃으며 이민호를 끌어안았다. 그러나 이민호가 다시 움직이자 인상을 찌푸렸다. 아파도 기뻐서 입가에는 미소가 어렸다.
4월 5일 오전, 해병 12개 려가 현지 적응 훈련을 위해 먼저 필리핀으로 떠났다. 해병 12개 려 1500명을 수송하는 데는 전선 6척과 보급선 1척만으로 충분했다. 며칠 후에 이민호가 기마병 250기와 호위대를 이끌고 나머지 전선 6척과 보급선 1척을 이끌고 바기오로 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두만강 북쪽의 평원, 아이누 섬의 설원, 일본 오사카의 공성전 등 여러 가지 지형에서 전투를 수행했지만 산악이나 밀림에서 전투는 물론 훈련도 한 적이 없었다.
필리핀은 열대밀림이니 그 가혹함이 배가 될 것이다. 계복이 훈련시키는 것은 도가 텄으니 믿기로 했다. 말라리아모기를 특별히 조심하라고 계복에게 재삼 당부한 다음 함대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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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깜빡 잠이 들어서...ㅡ.ㅠ
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