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0 31. 혼슈 봉쇄 =========================================================================
“역시 제방을 무너뜨린 건 오사카 성을 방어하거나 탈환하기 위함이었어. 저놈들 움직임을 보니 확실히 알겠다.”
“우리 배를 강에 좌초시키려고 노린 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응. 전선이 좌초한 것을 왜군 쪽에서 끝까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민호가 내린 결론에 민희가 크게 놀랐다. 요도가와 강의 물이 말라 전선들이 좌초되면서 원정군 전체가 큰 위기를 겪었는데 왜군이 원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오사카가 적에게 포위됐을 때 시가지를 진창으로 만들어 적의 기동력을 떨어뜨리고, 여차하면 화약이나 군량을 물에 젖게 해서 못 쓰게 만들고, 덤으로 주로 북쪽에서 올 구원군이 넓은 요도가와 강을 쉽게 건너려고 그런 준비를 해놓았을 거야. 강을 거슬러 올라올 몇 척 안 되는 배를 좌초시키려고 물길을 일부러 시가지로 돌리겠어?”
“풍신수길 본군의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보니 정말 그렇겠어요.”
밀물이 되어도 바닷물이 강의 일정 한계까지만 올라가서 좀 더 상류 쪽은 강의 수위가 낮아 배나 다리가 없어도 왜병들이 강을 바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 대신 시가지에 물이 넘쳐흘러 모든 도로가 진창으로 변했다.
물이 빠진 강바닥을 뛰어 건너가던 왜병들이 포탄이 터지는 순간 대여섯 명씩 쓰러졌다. 함포를 쏘는 수병들이 정확한 리드 적용은 못하더라도 감으로 쏴서 꽤 많은 왜병들을 살상했다. 왜군은 완전히 개활지로 변한 강을 작은 부대 단위로 넓게 퍼져서 건너게 해서 포격으로부터의 희생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하마터면 기관을 폭파시키고 전선을 태울 뻔했다. 전선에서 버티고 있었으면 언젠가 밀물이 들어와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밀물이야 하루에 두 번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까지 밀물이 들어올 줄 알았나요?”
요도가와의 수심을 세밀히 측정한 겐타로도 왜군이 설마 강의 수위를 낮추는 미친 짓을 하리라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계복은 겐타로를 계속 의심했지만 이민호는 그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기로 했다.
그 사이 감불이 지휘한 기마병을 전선 다섯 척에 나눠 수용한 함대는 천천히 강 하구 바깥으로 향했다. 그 동안 초조하게 기다리던 외륜선과 수송선에 탄 장병들이 환호를 지르며 용궁에 갔다 돌아온 전선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와중에도 전선과 외륜선들은 계속해서 함포를 발사했다. 왜병들은 제방 같은 엄폐물 뒤에 숨어 더 이상 강 하구로 접근하지 못했다.
“왜병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데 더 이상 죽일 수가 없다니, 아깝다.”
“풍신수길의 마인이 저기 언덕 밑에 있는데 함포로 안 돼요?”
“응. 사거리 밖이야. 이번에 돌아가면 함포와 대포를 개량해야겠어.”
풍신수길의 본진 군기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함포 사거리에 닿지 않았다. 가등청정의 사망 소식을 들은 풍신수길이 다른 다이묘들에게도 경고했는지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다만 병력만 요도가와 하구로 전진시켰다.
이때 양쪽의 이해가 일치했다. 고산국 원정함대는 안전하게 빠져 나가는 것이 목표였고, 풍신수길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산국 함대가 어서 오사카에서 사라져 주길 원했다.
활활 타오르던 오사카 성은 더 이상 태울 것이 없어 불이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함락된 성이 사흘 동안 탄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봄철에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지 오사카 성은 한꺼번에 타오르면서 빨리 꺼졌다. 오사카 성 안팎에서 최소 3만 이상의 왜병들이 죽었다. 왜군 다이묘들은 바닷가 성은 물론 내륙의 성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출발!”
이민호는 출항 명령을 내리고 함교의 함대사령관 좌석에 앉았다. 아라 공주가 먼저 죽을 가져와서 먹고, 다시 밥을 가져와서 더 먹었다. 점심을 걸렀다가 많이 먹은 이민호는 이내 졸음이 쏟아졌다.
저녁이 되면서 가랑비가 내렸다. 외륜선들이 앞에 서고 중간에 범선, 후미에 전선이 배치돼 움직였다. 세토내해 서쪽에 있을 일본 수군의 추격이 염려되고, 또한 역풍을 받으며 항해하려니 이런 함대편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적지 한복판이라 섣불리 전선이 범선을 예인하는 식으로 이동하지 못했다.
원정함대는 오사카만 남쪽 출구로 나와서 70km를 남하한 다음 서쪽으로 항해했다. 혼슈와 시코쿠 사이 세토내해 양안은 공격 목표가 많았으나 섬과 암초가 워낙 많아서 초행길에 함대를 몰고 가는 것은 자살 행위였다. 겐타로가 배들이 자주 항해하는 수로를 기록했으나 해전이 벌어질 가능성을 감안해서 포기했다.
함대는 밤늦게까지 항해해서 시코쿠 남동쪽 무로토 곶에서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동쪽 해안에 정박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해적이 수시로 노략질하던 곳이라 주변에 인가가 없어 안심이었다. 이민호는 함대사령관실에서 지휘관들이 올린 보고서를 취합했다.
“인명 손실이 꽤 크네?”
해병에서는 오사카 성을 포위 공격할 때 조총 유효 사거리를 넘어선 탄환 또는 오오쓰쓰 종류에 맞은 부상자가 8명이 나왔다. 승마보병에서도 부상자 21명이 발생했다. 그러나 제방을 무너뜨린 왜군 병력과 싸우면서 승마보병 전사자가 17명, 부상자가 32명이나 생겼다.
그리고 감불이 야마토군 본진을 습격한 전투에서 기마병 전사자가 12명이나 발생했다. 처음에는 3명이 전사했는데 전사자의 시신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전사자가 생겼다고 했다. 오늘 전투를 통틀어 말은 54마리가 죽었다.
총과 다른 무기류는 다 챙겨서 다행이었다. 전사자 운구가 중요한 것은 군의 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왜군이 고산국의 무기를 복제할까 우려해서였다. 이 시대 동양 3국의 기술로 수류탄 정도는 충분히 복제할 수 있었다.
물론 무연화약이나 3인치 포, 보병총과 기병총은 복제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고산국 총기에 적용된 새로운 개념을 적이 배우거나 다른 나라로 널리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관이라고 부르는 터보 샤프트 엔진은 기본적인 구조가 간단하기에 이 시대 기술로 복제가 불가능하지 않았다. 물론 현재 금속 가공 기술로 터빈을 비슷하게라도 만들려면 무지막지한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조악하게라도 복제하려고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또한 기관은 만약 적에게 노획될 경우 즉각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연료도 비슷하게 만들 필요도 없이 콩기름을 짜서 써도 됐다.
반면에 3인치 포는 노획하더라도 포탄을 만들 수가 없어 사용이 불가능했다. 복제도 불가능한 것이, 만약 이 시대 기술로 포신을 강철로 만들면 발사하는 순간 포신이 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선을 파괴할 생각을 했을 때 이민호는 가장 먼저 기관을 폭파시키려 했었다.
그 다음으로 보급품 재고 현황을 살폈다. 연료는 수송선에 따로 적재한 양을 합치면 아직 절반 정도 남은데 반해 말먹이용 건초는 겨우 7일 분밖에 남지 않았다. 말에게 곡식을 더 먹이고 건초를 아끼라고 명령문을 작성했다.
포탄 재고는 함포당 100발 정도에 불과해 귀환할 때 한번쯤 일어날 해전에 대비한 여유를 생각하면 사실상 바닥났다고 봐도 좋았다. 오사카에서 너무 많이 사용했다.
총탄은 예상보다 많이 남았다. 해안 성곽을 주로 함포로 공격한 탓에 보병이 총격을 할 기회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간몬해협으로 가기 어렵겠네.”
세토내해는 섬과 암초가 너무 많아 피하더라도 큐슈와 시코쿠 사이로 진입해 간몬해협을 빠져 나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함포탄이 부족해 대규모 함대를 만나면 위험할 수 있어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주인님. 침실에서 준비됐어요.”
“뭐가?”
“아나가 그 기간이 끝나 깨끗한 몸이 됐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민희와 민영이 이민호를 잡아 당겼다. 아라 공주의 시녀 셋 중에서 아직 이민호가 안지 않은 아나를 어서 안으라고 성화였다. 이민호는 민망해서 침실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떼었다.
“오늘은 피곤한데 그냥 자면 안 돼?”
“오늘 전선에 탄 공주님과 시녀들이 얼마나 겁이 났을지 생각해 보셨어요? 주인님이 따뜻하게 안아 위로해주세요.”
“끙!”
오늘 전선이 공격받은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배가 요도가와 강에 좌초되면서 많이 놀랐을 것이다. 생명의 위기를 겪을 때 여성의 임신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설이 있다던데 이민호는 믿지 않았다.
“알았어. 하지만 오늘은 그냥 안고 잘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나가 유구국 전통 혼례복장을 한 채 침대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아나는 아라 공주의 시녀들이 다 그렇듯 미인이고, 특히 장군의 딸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무예를 닦아 몸매가 탄탄했다. 여성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같은 방에 여자들 다섯이 지켜보고 있으니 이민호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자자. 고산국에 가서 정식으로 안을게.”
“흑! 제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죠?”
“아냐! 오늘 전투가 길어서 피곤해서 그래.”
아나의 혼례복을 다 벗기고 알몸으로 만든 다음 침대에 눕히고 품에 안았다. 아라 공주는 이민호 등에 몸을 대고 누웠다. 다른 시녀 둘과 민희, 민영도 보조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귀를 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민호는 정말 피곤했다. 그래도 오늘이 신부의 초야나 다름없으니 아나에게 입맞춤을 하고 몸을 좀 만졌다. 복근이 아주 탄탄해서 기분이 좋아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렸다. 허벅지도 굵고 탄탄해서 마음에 들었다.
“몸이 이래서 흉하죠?”
“아니. 너무 멋져. 운동 계속해서 이 몸매를 유지해. 앞으로 아라 공주 잘 지키고 혹시나 나한테 일이 생기면 나도 지켜줘.”
“아라 공주님도 전하를 지키라고 제게 명하셨어요.”
“고마워.”
이민호가 아나의 복근에 입을 맞췄다. 혀를 살짝 대보니 달짝지근했다. 여자 몸이 달콤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으나 진짜로 단맛이 나서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공주님께서 진한 설탕물을 제 몸에 발라주셨어요.”
“그래? 끈적거리지 않을까?”
이민호는 순전히 아나가 몸이 끈적거려 불편할까봐 혀로 다 핥아서 설탕기를 없애주었다. 아나는 온몸이 탄탄한 근육질인데 긴장해서 더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온몸을 혀로 핥고 마지막 깊은 곳의 설탕을 핥아 없애자 아나가 격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여자는 충분히 준비됐는데 남자가 돌아누우면 너무 잔인할 것 같아 아나와 몸을 결합시켰다. 어차피 안을 여자였고,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무예가의 자부심인지 아나는 끝까지 신음소리를 흘리지 않았다. 끝나고 나서 다른 시녀들이 몸을 닦아줄 때 아나는 멍한 눈으로 천장만 바라봤다. 이민호가 아나의 얼굴을 당겨 입을 맞추자 눈을 감고 목을 감아왔다. 어쩐지 아나가 몹시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라 공주가 끝날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린 모양이었다. 이불 안에서 움직였으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민호는 조금 부끄러웠다. 아라 공주가 생글생글 웃으며 품으로 파고 들어와서 이민호의 뺨에 입을 맞췄고, 이민호도 답례를 하며 웃었다. 아나와 아라 공주를 양쪽에 껴안고 푹 잤다.
다음 날 원정함대는 시코쿠 남쪽 바다를 지나 큐슈 휴가의 후카시마(深島)에서 정박했다. 큐슈 남동해안에는 섬이 없어서 약간 우회한 것이었다. 다음 날에는 새벽에 일찍 출항해 역풍에도 불구하고 사쓰마 남단까지 가서 정박했다. 작은 어선 몇 척이 원정함대를 보고 놀라 달아났으나 밤새도록 왜선의 기습 같은 것은 없었다. 사쓰마의 수군은 아직 재건되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원정함대는 저번에 이어 다시 한 번 가고시마만으로 들어갔다. 사쿠라지마 화산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 기둥이 뭉클뭉클 피어오르는 가운데 사쓰마를 향해 함포를 쏘고 해병과 승마보병, 기마병 합해서 7천을 상륙시켰다. 특히 복수심에 불타는 유구국 보병을 내려서 해안 주변을 완전히 밀어버렸다.
그날 오후에 가고시마만에서 빠져 나온 원정함대는 남동풍을 받아 밤새도록 항해해서 아침에 제주도에 도착했다. 제주항이 확장돼서 50척이 넘는 함대가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배를 수리하고 병사들이 쉬는 사이 이민호는 속도가 빠른 탐망선을 타고 전라좌수영과 삼도수군통제영을 다녀왔다.
통제사 이순신은 명나라 군대가 미적거리는 바람에 육지의 전황에 변화가 별로 없다고 했다. 이응화가 이끄는 수군에 의해 부서질 것은 이미 다 부서진 울산왜성 공략도 이제는 지지부진했다.
이여송이 보낸 비밀편지를 읽어보니 5월 중순에 명군이 조선 몰래 단독으로 울산성을 공략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공이 많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참가할 의무는 없었다.
여수에서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제주도로 돌아온 이민호는 다시 함대를 출항시켰다. 역풍이라 원정함대가 유구국 우치나 섬에 도착하는데 사흘이 걸렸다. 미리 부두에 나온 유구국왕이 이민호를 영접했고, 개선을 축하하는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이민호가 대충 돌아보니 예전보다 거리에 활기가 넘쳤다. 백성들의 옷차림도 지난번보다 많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회가 끝나자 쇼호 왕자와 보병들이 산더미 같은 전리품을 수레 수십 대에 실은 채 슈리성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슈리궁성 앞 광장에서 유구국 국왕과 함께 이민호가 단상에 올랐다. 그리고 유구국 보병들을 선두로 고산국 기마병과 해병, 승마보병들을 사열시켰다. 사상자를 뺀 유구국 보병 300여 명이 단상 앞을 당당하게 행진하면서 국왕전하 천세를 불렀고, 행진을 마친 다음에는 고산국 국왕전하 천세를 불렀다.
기마병에 이어 천 명 단위로 나뉜 해병과 승마보병도 마찬가지로 천세를 불렀다. 사열을 마친 다음 쇼호 왕자를 단상 앞으로 부른 이민호가 정식으로 유구국 보병대에게 원정함대 배속 해제 명령을 내렸다. 수많은 유구국 백성들이 몰려들어 이 행사를 구경하며 환호했다.
그 날 낮에 원정함대는 고산국으로 떠나고, 며칠에 거친 항해 끝에 오랜만에 고산국 아리수 강변을 따라 올라갔다. 해중국 요새로부터 반나절 일찍 연락을 받아 고산국 백성들 50만이 몰려나와서 함대의 무사귀환을 축하했다. 고산국 전 인구의 3분의 1이 한 곳에 모이니 아주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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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요약하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