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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47화 (196/1,000)

00247  31. 혼슈 봉쇄  =========================================================================

검은 옷 두 벌 사이에 빨간 옷이 있으면 풍신수길이 오사카 성에 있다는 신호였으나, 그 대신 파란 옷이 있었다. 시력이 좋은 민영이 먼저 확인했다.

“풍신수길이 지금은 후시미 성에 있군요. 오사카 성에 없어서 아쉬워요.”

“왜? 있으면 직접 목을 베려고?”

“어머! 총을 쏘면 몰라도 직접 목을 베거나 하지는 않아요.”

이민호가 적이라도 사람의 수급을 베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아는 민영이 내숭을 떨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수원에서 살 때는 직접 돼지의 멱을 따고 사냥 나갔을 때는 토끼 가죽도 아주 쉽게 벗기던 민영이었다.

현재 풍신수길은 오사카에서 북동쪽 100리 거리인 교토 후시미(伏見) 성에 있었다. 풍신수길은 관백의 지위를 양아들 도요토미 히데쓰구(豊臣秀次)에게 맡기고 태합으로서 여전히 국정을 관할하고 있었다.

현재 후시미 성 안에 주둔하면서 성을 지키는 병력은 물론 주변에 배치돼 유사시에 풍신수길이 즉각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꽤 됐다. 외국군이 풍신수길의 본거지 오사카 성을 공격하고 있으니 풍신수길은 당연히 구원하러 와야 할 입장에 처해 있었다. 만약 오지 않으면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정권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테니 풍신수길은 반드시 오사카 성에 오게 돼 있었다.

“풍신수길만 오면 좋을 텐데.”

“영동책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포로 저격해 버리게요? 그럼 좋겠지만 풍신수길에게 잘 보이려는 다른 영주들이 먼저 올 거여요.”

원정함대가 요도가와 강 하구에 나타난 즉시 오사카 성에서 전령이 출발했다면 이 시간쯤에 전령이 후시미 성에 도착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풍신수길이 병력을 소집해 급히 출발한다 해도 주력이 보병이므로 해질녘에나 오사카 성에 도착이 가능했다. 원정함대는 그 전에 오사카를 떠날 예정이므로 최소한 오늘은 풍신수길의 얼굴을 못 볼 거라고 이민호는 판단했다.

포격과 유탄발사기 사격이 계속됐다. 천수각과 망루들은 이미 무너졌고 성벽 위에 설치된 야구라도 대부분 부서져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조총병이 있다 해도 야구라가 타오르면서 열기가 너무 강해 성 바깥을 향해 조총을 쏠 수가 없었다.

그 외에도 오사카 성 안에는 행정 관소와 병사 주둔지 등 목조건물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성 안 곳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차차 성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해자가 2중, 3중이라도 내부 건물은 모조리 목조건물이니 일본의 성은 기본적으로 화재에 취약한 편이었다. 그리고 이민호는 지금까지 그 약점을 철저히 공략했다.

그러나 날이 흐려 곧 비가 올 것처럼 습도가 높아 화공의 위력은 강하지 못했다. 그래도 오늘 오후까지만 계속 공격을 퍼부으면 오사카 성을 초토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 타타탕!

해병들이 갑자기 일제히 사격을 하고, 성 서쪽과 남동쪽에서도 승마보병들이 성 방향으로 총격을 퍼부었다. 북쪽 출입구와 해자 위 돌다리에 연결된 서쪽 오테몬 문을 통해 오사카 성의 수비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가만히 있다가는 불에 타 죽을 위기에 처한 오사카 성 수비군이 세 방향에서 일제히 출성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사카 성을 축성할 때 효율적인 방어를 위해 해자 위에 걸친 다리나 해자 없이 땅으로 이어진 출입구를 좁게 만든 탓에 수비군이 출성을 하려 할 경우 반대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왜병들이 몰려나오는 족족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해자로 굴러 떨어졌다. 그래도 왜병들은 끊임없이 몰려나와 보병총과 기병총, 그리고 유탄의 밥이 되었다.

오사카 성 남동쪽 출입구에서도 수천 명이 성 바깥을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승마보병 2천 명의 화력은 출입구를 막기에 충분함을 넘어서 넘쳐났다. 출입구로 돌격하다 죽은 자들보다는 출입구에 오르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다 그 자리에서 총탄에 맞아 죽은 왜병들이 훨씬 많았다.

“나는 쏠 기회도 없네.”

“그냥 가만히 계세요, 주인님.”

병력이 불어날수록 이민호가 직접 총을 쏘거나 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병력이 더 늘어난다면 국왕은 당연히 궁궐에 남아있고 장군을 파견하게 될 것이다. 이민호는 그게 좀 섭섭했다.

어쨌든 왜군의 출성 작전은 실패했고, 세 군데를 합해서 5천이 넘는 왜병들이 죽었다. 다리와 출입구 두 곳, 그리고 해자에 무수히 많은 시체가 널려 있었다. 맑은 물이 거울처럼 비치던 해자가 시뻘겋게 변했다.

그리고 지금도 오사카 성 안에서는 불에 타 죽거나 연기에 질식해 죽는 자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고산국 원정군이 성을 봉쇄하고 있는 한 수비군과 관리, 하인들은 오사카 성 안에서 모두 허무하게 죽는 수밖에 없었다.

“어휴! 냄새야!”

이민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오사카 성 내부에서 화재가 크게 번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체 타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민호는 이만 퇴각할까 싶어서 오사카 시가지를 살폈다. 오사카는 물론 남서쪽 해안 도시 사카이까지 포격이 가해져 눈에 보이는 곳 모두가 불에 타고 있었다. 하늘이 온통 검은 연기에 가려 먼 곳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포탄도 거의 떨어질 때가 되었다. 그리고 왜군 구원병이 올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고산국 원정군의 화력이라면 왜군 1, 2만 정도가 한 방향에서 몰려온다면 쉽게 해치울 수 있겠지만 그 시간에 다른 방향에서 왜군이 더 몰려들 수가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 시간에 세토내해 서쪽 입구를 지키는 왜 수군이 몰려와 오사카만을 봉쇄할 수도 있었다. 오사카 성을 불사른다는 목표가 충분히 달성된 만큼 이민호는 조금이라도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로 결정했다.

“이만 퇴각하자.”

오사카 성 서쪽과 남동쪽을 맡은 승마보병들에게 전령을 보냈다. 그런데 전선과 해병 사이를 지키는 감동의 기마대에서 전령이 달려왔다.

“요도가와 강에 갑자기 물이 말랐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적의 수공으로 판단됩니다. 상류에서 물길을 끊은 것 같습니다. 물이 줄어들면서 전선들이 급히 하류로 움직였으나 중간에 좌초됐습니다.”

“쳇! 역시 수공전문가 풍신수길이구나.”

수공이라 하면 보통 물길을 막았다가 한꺼번에 보를 터뜨려 하류의 적을 물살에 수장시키는 살수대첩을 연상하기 쉬웠다. 그러나 이여송은 보바이의 난에서 황하의 물길을 돌려 성벽을 허무는 작전을 썼다.

풍신수길은 전국시대를 통해 성장하면서 이여송과 비슷한 방법으로 수공을 써서 톡톡히 재미를 보았다. 수공에 당한 성벽이 무너지면 적에게 함락되기 전에 웬만하면 영주가 나와서 항복하고 자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요도가와 강의 물길을 돌려 전선의 퇴각로를 끊은 것이다. 그러나 후시미 성에 있을 풍신수길이 이번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것 같지는 않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계획된 작전인 것 같았다.

“어서 가요! 공주님이 위험해요!”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해야지!”

“그건 감동이 하고 있어요.”

이민호는 호위대에 떠밀려 전선이 강바닥에 좌초된 곳으로 향했다. 전선들은 해병과 기마병을 상륙시켰던 곳보다 상당히 하류로 내려와서 나카노시마 남서쪽 끝에 걸린 돌다리와 거의 같은 위치에 있었다.

이민호는 범선에 말을 승선시키기 위해 강 하구로 가던 승마보병들을 다시 불러 나카노시마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형성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해병은 전선 주위에 포진시켰다. 비싼 전선 12척을 한꺼번에 잃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민호가 깜빡한 것이 있었다. 오가와에 투입된 탐망선 두 척과 단정 36척이었다. 탐망선 두 척은 빠른 속도를 이용해 하류로 빠져 나갔다. 그러나 배다리 역할을 하던 단정은 얕은 물 위에서 간신히 움직이고 있었다. 선저가 강바닥에 닿으면 수병들이 들어서 깊은 물로 옮기는 식으로 어떻게든 움직일 수는 있었다.

“오가와 강이 요도가와 말고 다른 강하고도 연결돼 있어서 완전히 마르지는 않았군.”

“하지만 물이 이렇게 얕으면 별 의미가 없어요.”

오가와 강은 거의 운하 내지는 오사카 성의 외곽 해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도가와 강이 말랐으니 이 단정들은 전선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하류로 가서 범선 및 외륜선과 합류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전선 12척을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민호는 일단 단정들을 나카노시마 서쪽 돌다리 근처로 보냈다. 그곳이 하류에 가깝기도 하고 여차하면 승마보병까지 가세해서 들어서 옮기면 되니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가와 강은 이 섬 서쪽 끝에서 이즈가와 강과 아지가와 강으로 나뉘어 흐른다. 둘 다 사람이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고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얕아서 단정도 노를 저어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감동은 어디 갔지?”

“물이 빠진 원인을 찾으려고 강줄기를 따라 올라갔어요. 주인님.”

당황했더니 조금 전에 보고 받은 것도 잊어먹었다. 민희와 민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민호만 주시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고개를 세차게 저은 다음 감불에게 지시했다.

“감불아! 너도 가서 도와줘라. 한꺼번에 제방을 무너뜨릴 정도면 적 병력이 꽤 될 거다.”

“넵!”

기마병 250기가 땅을 울리며 북동쪽으로 달려갔다. 이민호는 물이 빠진 요도가와 강으로 가서 기함과 전선들을 살폈다. 강바닥에 좌초된 기함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아라 공주는 함교 안에 차분히 서 있다가 이민호가 오는 것을 보고 기쁜 표정을 지으며 갑판으로 나왔다.

“전하!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배가 못 나가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저는 전하만 무사하시면 됩니다.”

입에 발린 말일지 모르겠지만 아라 공주는 이민호의 안위만 걱정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아라 공주가 어린 나이치고는 의외로 침착해서 다행이라 여겼다. 만약 공주가 불안에 떨면서 울고불고 하면 군 전체의 사기가 뚝 떨어질 수 있었다.

감불이 급히 돌아와서 보고하는데 꽤나 절망적인 내용이었다.

“도련님! 여기에서 20리쯤 상류에서 왜적들이 둑을 터뜨려 물길을 돌렸습니다. 무너진 제방이 200보가 넘어가서 쉽게 막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물이 성 북쪽 시가지로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미친놈들! 오사카 시내에 홍수가 나게 하려는 거야? 자기 백성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이?”

이민호도 시가지에 포격을 명령한 주제에 왜군을 비난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을 지켜야 할 자가 죽이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여기 일본 땅에서는 이민호가 침략자였고, 왜군이 왜인들을 지켜야 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왜군은 그 규칙을 어겼다.

중일전쟁 때인 1938년 일본군의 전진을 막기 위해 국민당군이 황하의 제방 세 군데를 동시에 무너뜨려 범람시킨 적이 있었다. 익사자가 100만 명이나 발생하고 수재민은 6백만 명이나 생겼다. 국민당은 일본군이 제방을 폭격했다고 발표했으나 금방 거짓말이 국제적으로 들통 났다. 그리고 황하 물길이 바뀌어 10년 동안 산동반도 남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작전으로 인해 군량 부족에 빠진 국민당군이 민가를 약탈하다가 급속히 민심을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왜 너만 왔어?”

“전투 중이라 병력을 감동에게 맡기고 저는 보고하러 왔습니다. 제방 건너편에서 5천 정도의 왜적들이 조총을 쏘고 있어서 접근하기 어렵습니다만 우회 공격할 계획입니다.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지시하실 내용이 있습니까?”

“적이 너무 많아. 우회 공격하지 말고 일단 적을 잡아두기만 해라. 얼른 가봐.”

왜군은 강둑을 허물어뜨려 물길을 돌린 다음 도주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적을 몰아낸 다음 강둑을 다시 쌓아 물길을 제자리로 돌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사이에 적의 구원군이 올 수도 있었다. 시간과의 싸움이 될 수 있었고, 잘못하면 이민호를 비롯해 원정군 전체가 이곳에서 최후를 맞을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전선 12척을 과감히 포기할까 하다가 한 번만 더 싸우기로 했다.

“해병은 요도가와 강부터 나카노시마까지 지키고 승마보병 전체는 나를 따르라!”

“도련님은 여기 계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계복이 말을 타고 승마보병들을 이끌었다.

“계복이. 적을 몰아낸 다음 여차하면 왜인들을 강제로 징발해서라도 제방을 막아. 급하니 강압적으로 해야지 어쩌겠어.”

“알겠습니다. 왜인들 고생 좀 시키죠 뭐. 제방을 쌓는 것은 왜인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 따르겠죠.”

계복이 승마보병들을 데리고 떠나는 사이에도 총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남쪽 제방을 무너뜨린 왜군 부대가 반대편 제방을 참호로 삼아서 악착같이 저항하고 나섰지만, 얼마 못 가서 우회 공격한 계복의 승마마병에 의해 전멸 당했다.

계복이 전령을 보냈는데, 무너진 제방의 폭이 300보 이상으로 꽤 넓고 거센 물살에 의해 제방이 계속 무너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결국 병력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왜인들을 동원하기로 했다. 불에 탄 시가지에서 이재민이 된 왜인들 수만 명을 끌고 가서 일을 시켜야 했다.

“북동쪽 20리에 적이 급속 행군 중입니다! 군기를 확인하니 풍신수길과 그 가신들이 동원한 병력 합해서 3만 정도입니다. 후속부대 2만이 추가로 나타났습니다.”

“서쪽에서도 몰려옵니다. 기마무사 다수를 앞세운 1만 병력입니다.”

풍신수길의 본대가 곧 도착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방에 파견한 척후들이 다급하게 말을 타고 달려와서 적의 출현을 보고했다. 이곳은 오사카, 현재 일본의 심장이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더 많은 왜군 부대가 몰려올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전선 12척을 모두 포기해야겠다. 이 아까운 배를 불태워야 하나?”

============================ 작품 후기 ============================

오늘 연재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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