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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45화 (194/1,000)

00245  31. 혼슈 봉쇄  =========================================================================

- 쾅!

이민호의 명령에 따라 기함에서 마을을 향해 다짜고짜 함포를 발사했다. 뒤따라온 전선들이 포격에 가담하자 부둣가 마을 집들이 연달아 터져 나갔다. 해안선에 바짝 접근한 전선 갑판에 늘어선 승마보병들은 집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에게 총격을 퍼부었다. 해가 지면서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가던, 또는 선술집에서 한 잔 하던 전직 해적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순박한 어민들이 아니라 왜구야. 다 쓸어버려!”

이민호가 갑판에 직접 나가 승마보병들을 독려했다. 비록 조선에서 노략질을 하던 큐슈 북서쪽 왜구는 아니었지만 같은 부류이니 용서할 필요가 없었다.

포구 마을이 온통 불에 타고 동시에 군선으로 쓸 만한 배들이 차례로 부서지고 불타올랐다. 수상쩍게도 이 포구에는 군선으로 전용 가능한, 어선으로 쓰기에는 쓸데없이 큰 배들이 확실히 많았다.

그런데 이곳은 다른 어촌 마을들과 달리 그저 얻어맞고 있지만은 않았다. 전직 왜구들답게 수백 명이 칼과 조총으로 무장하고 해안 포구로 몰려 나왔다. 그러나 왜구들은 지상에 있고 원정함대는 포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왜구들이 배에 타서 싸우려고 부둣가를 뛰어오다가 총탄에 맞아 픽픽 고꾸라졌다. 일제 돌격이 몇 번 실패하고 가만히 숨어 있어도 인명피해가 늘어나자 왜구들이 결국 마을 뒤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해병 상륙!”

이 순간을 기다렸던 이민호가 지시하자 미리 단정에 탄 채 준비하고 있던 해병들이 일제히 노를 저어 포구로 향했다. 단정들을 엄호하기 위해 갑판에 늘어선 승마보병들이 포구 마을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발포했다. 조명탄이 하늘에서 서서히 떨어지는 사이 조명에 노출된 모든 사람 그림자를 향해 총구가 불을 뿜었다.

원정함대는 그 전에 다른 어촌 마을을 공격했을 때는 민가나 사람에게 직접 공격을 가하지 않고 그저 배만 불태웠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달랐다. 이들 전직 해적들은 언제든 해적으로 돌변할 수 있고 다이묘들이 고용하면 수군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오사카만으로 들어가기 전에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이들을 무력화시키거나 최소한 섬에서 떠나 흩어지게 만들어야 했다.

- 타탕! 탕!

해병들이 전직 해적들을 뒤쫓아 숲으로 들어갔다. 야간전이라 희생을 어느 정도 각오했지만 확실히 하는 편이 좋았다.

섬 이름이 기이오시마, 기이의 큰 섬이라는 뜻답게 주변에 이곳 말고는 큰 섬이 없었다. 섬이 제법 넓어서 해적들을 소탕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밤늦게까지 추격전을 펼친 해병들은 동쪽 끝 가시노 마을과 남쪽 끝 스에 마을까지 휩쓸고 배도 모조리 불태운 다음 돌아왔다.

외륜선에 탄 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재웠다. 그리고 범선에 실린 연료와 포탄, 총탄을 전선과 외륜선마다 충분히 보급하고 병력을 재배치했다. 말을 태운 범선들도 오사카만으로 들어가야 해서 해병 약간을 범선에 나눠 태웠다.

- 트아앙~

“제기랄! 잠 좀 자자.”

총소리에 잠이 깬 이민호가 벌떡 일어났다. 바다 건너편에도 해적 무리가 있었는지 사정거리가 안 되는데도 가끔 조총을 쏘고 달아난 탓에 잠이 자주 깨어 신경이 곤두섰다. 시녀 아마가 자리옷 사이로 드러난 풍만한 가슴으로 이민호의 얼굴을 끌어 당겼다.

“신경 쓰지 말고 주무세요.”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여.”

- 쿠웅~ 쾅!

“어이구!”

조총 사격을 받으면 함포로 대응사격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커다란 소리가 밤하늘을 진동시켰다. 어서 자고 새벽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큰일이었다. 물론 출항 이후에도 병력을 재울 수는 있었지만 항해 중에 이민호는 웬만하면 함교에 위치해야 해서 지금 아니면 잘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민호는 밤중에 배가 몹시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잠이 깨었다. 얼굴은 여전히 아마의 가슴 사이에 묻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시녀들이 벌써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탁상시계를 보니 시간은 새벽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깨셨어요? 배는 모두 출항했어요. 아까 함장님이 오셨는데 전하께서 더 주무셔도 된대요. 해병과 기마병들도 아직 자고 있어요.”

부드러운 가슴을 입에 문 이민호에게 아마가 속삭였다. 그래서 이민호는 아기처럼 젖을 문 채 더 자기로 했다. 파도에 배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해적들이 끊임없이 도발해서 시끄러운 기이오시마보다 조용해서 훨씬 잠자기 좋았다.

이민호가 다시 일어난 것은 오전 일곱 시였다. 졸린 눈으로 여전히 아마의 가슴에 안긴 채 아야가 떠먹여 주는 잣죽을 억지로 삼키면서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졸려서 만사가 귀찮았지만 오늘은 할 일이 많아 꾸역꾸역 먹었다. 이민호가 입을 옷을 들고 보조침대에 앉아 있는 민희와 민영이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준비를 마치고 함교에 나가 보니 배는 어느덧 오사카만에 들어서고 있었다. 서쪽에 남북으로 기다란 섬이 아와지 섬, 담로도(淡路島)였다. 함대는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사카로 향했다.

“전하! 후방에 적 함대가 나타났습니다. 중형 세키부네 20여 척에 30척 정도는 고바야입니다. 함대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나? 저놈들 때문에 오사카를 기습하는 건 역시 불가능하겠어. 하지만 당장 싸울 마음은 없는 것 같아.”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서 왜선들이 합류해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어느덧 200척으로 불어난 왜선들이 속도를 올려 원정함대를 따라잡으려 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사카이(界)에서 왜선 백여 척이 몰려나와 원정함대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단 앞뒤로 적선 300여 척에게 포위된 셈이지만 예상했던 일이었다. 원정함대가 혼슈를 휘젓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매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평소 이 정도 수군이 오사카만을 지키고 있었다. 세토내해 서쪽 입구에도 수군이 이만큼 있다고 들었다.

“앞뒤의 왜선을 합하면 350척쯤 됩니다, 전하.”

“계획보다 조금 앞당겨서 해전부터 시작해야겠군.”

오사카 성을 목표로 기습적인 포격부터 퍼부은 다음 수군을 정리하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예. 해적들이 전공을 세우고 싶나 봅니다.”

“시작하게.”

외륜선과 범선들이 정지해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100여 척을 상대하는 사이, 전선 12척이 일제히 함수를 돌렸다. 그리고 후방에서 따라오는 200여 척의 왜선들을 상대했다.

- 쿠쿠쿵!

기함에 이어 다른 전선에서도 함포 사격을 시작했다. 작은 고바야는 한 방만 맞아도 조총병, 수부들과 함께 배가 박살났고, 중형 세키부네도 명중만 하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어 함열에서 뒤떨어졌다. 세키부네 1층 갑판에 포탄이 명중할 경우 수부들 대부분이 죽거나 부상을 입어서 기동력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함포 사격을 맞으면서도 왜선들은 순풍을 받아 빠르게 북상했다. 빗발치는 포격을 뚫고 어떻게든 전선에 접현해 갑판에 뛰어오를 의도였다. 왜군의 장점인 단병접전으로 몰고 가면 가능성이 있다는 계산이었으나, 접근하는 동안 왜 수군이 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작전이었다.

“외륜선들도 잘하고 있군.”

함교 문을 열고 나와 살짝 뒤를 보고 들어온 이민호가 간단히 평가했다. 다만 작은 대포를 단 왜선이 있어서 혹시나 아군에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배가 기동력을 잃을까 걱정됐을 뿐이었다. 그러나 외륜선에 탑재된 함포에서 전면에 대포를 실은 왜선을 최우선으로 격파하고 있었다.

- 깡!

그러나 왜선 200여 척을 감당해야 하는 12척의 전선들은 대포 탑재 왜선들 모두를 미리 제압하지 못했다. 기함에서도 함수 부위가 한 방 맞았고, 수병들이 대포를 탑재한 왜선을 찾아 우선적으로 격침시켰다. 이후에도 끝없이 함포를 쏘아댔다.

불타는 세키부네, 가라앉는 고바야, 바다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왜인 수부들. 이민호가 흔히 보던 장면이 여기서도 재현됐다. 왜 수군은 비장하게 배를 몰아 돌격했지만 4km 거리를 좁히는 사이 함포가 40번 넘게 발사됐다. 아무리 흔들리는 배 위에서 쏘면 명중률이 떨어진다지만 전선의 함포는 발사 절차가 훨씬 간단해서 기존 대포에 비해 명중률이 압도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 타타타타탕!

보병총 사거리 안으로 들어온 왜선은 겨우 20척에 달했다. 그것도 주로 작은 고바야였고, 일제 사격 한 번에 고바야에 탄 조총병들은 총을 쏘기도 전에 몰살당했다. 접현전에 대비해 수부들이 급히 돛을 내렸으나 대나무 사다리를 타고 전선에 뛰어올라갈 왜병들이 남지 않았다. 해병들이 총을 겨누자 수부들이 일제히 바다로 뛰어들었다.

“정리된 것 같군. 선회하라.”

“180도 선회!”

깃발신호가 오가면서 전선들이 기함을 따라 다시 북쪽으로 향했다. 함포를 한두 문만 탑재한 외륜선에서는 왜선을 조총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보병총의 화력으로 거의 희생 없이 왜선 100여 척을 전멸시켰다. 뒤늦게 해전 현장에 도착한 전선들이 도와줄 필요도 없었다. 뒤에서 머뭇거리던 세키부네 두 척이 돛을 올리고 도망갔으나, 함포탄이 따라가서 침몰시켜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오사카 성이었다. 이민호가 기함을 필두로 함대를 추슬러 북쪽으로 항진했다. 망원경을 들어 살펴보니 오사카 성에서 병력이 출진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함포 소리가 은은히 울리기도 했겠지만 서쪽 하늘에서 피어오르는 수백 줄기의 검은 연기를 못 봤을 수가 없을 것이다. 1만 가까운 병력이 성에서 나왔고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기마전령이 여러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망원경을 통해 확인했다.

“도련님! 겐타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겁니까?”

“응. 믿는다.”

상륙 직전에 뜬금없이 계복이 물어서 이민호가 즉각 대답했다.

“도련님! 겐타로는 믿는다 치더라도 혹시 그 사이에 강에 말뚝이 박혀 있다면요?”

“그럼 한두 척 정도는 포기하지 뭐.”

“예. 도련님은 절대 배에서 내리지 마십시오. 위험에 빠질 만한 곳에는 아예 가지 마십시오. 도련님은 반드시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고맙다. 계복이 너도 조심하고, 승마보병 잘 이끌어라.”

폭이 1km가 넘어가는 요도가와의 하구에 외륜선과 범선이 잇따라 접안했다. 계복이 기함에서 내린 단정을 타고 가면서 상륙 대기 중인 승마보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승마보병 상륙!”

외륜선에서 문이 열리고, 범선에서 사다리가 내려지며 말과 병력이 쏟아져 나왔다. 단정에서 내린 계복이 말에 올라탄 다음 기함에 탄 이민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민호가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다. 다들 살아남아야 할 텐데, 이민호는 걱정이 앞섰다.

승마보병 5천 명이 말을 타고 대열을 정돈하는 사이 이민호는 전선 12척을 이끌고 요도가와를 타고 상류로 거슬러 올랐다. 강폭은 충분히 넓었다.

계획 단계에서 이민호는 오사카 성이 자연 해자로 삼은 오가와를 통해 육지로 들어가려 했다. 강폭은 100미터 정도로 충분히 넓고 수심도 깊어서 전선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강 주변에서 왜군이 포위 공격할 경우 곤란하다는 문제로 이 계획은 폐기됐다. 오사카 성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타격하는 것이 목표이니 거리가 조금 떨어져도 큰 상관은 없었다.

- 쿠쿠쿵!

오사카 성을 나서서 대열을 맞추는 병력을 향해 전선 12척이 거의 동시에 함포를 발사했다. 기함의 망루에 오른 무상이 깃발 신호를 해서 전선 12척이 동시에 발포할 수 있었다.

오사카 성의 서문을 통해 나온 왜군 1만여 병력은 포탄 48발이 거의 동시에 낙탄하자 혼비백산했다. 화염폭풍에 휩쓸린 왜병들과 강철 파편에 찢긴 말이 피를 쏟으며 죽어가자 초반부터 기가 죽었다. 여기에 외륜선에 탑재된 함포에서도 불을 뿜었다. 거리가 멀어 정확하지 못했지만 포탄은 1만여 명의 왜군이 포진한 곳에 대부분 떨어져 적에게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이 왜병들은 일본의 천하를 통일한 태합을 지킨다는 자부심에 사기가 높은 정예 병력이었다. 수십 년 동안 풍신수길을 모신 가신들과 무장들이 지휘하는 병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고산국의 승마보병들이 강을 건널 만한 다리를 장악하기 위해 먼저 병력을 이끌고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ㅡ.ㅜ

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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