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1 30. 섬에서 섬으로 =========================================================================
왜군이 해안에서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경계 임무에 투입된 병사들은 비상경보를 울리지 않았다. 다만 지휘계통을 타고 당직사관에게 조용히 보고했을 뿐이었다. 당직사관은 다른 배들과 불빛을 이용해 연락을 취하며 공동으로 왜군을 감시했다.
원정군 병사들은 예전과 달리 적이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며 비상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총소리에 원정군 전체가 잠을 깨어 다음 날 항해와 작전에 지장을 받을까 우려한 탓이었다. 다만 적에 대한 감시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고, 왜병들이 해변에 어른거리면 횃불을 흔들어서 쫓아낼 뿐이었다.
해뜨기 전 새벽 일찍 함대가 출항했고, 항상 그렇듯 이민호는 느지막이 함교에 나타났다. 간밤에 왜군이 해안에 나타났는데도 비상을 걸지 않은 것을 두고 함장과 간부 사관들이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이민호가 조용히 듣다가 참견했다. 여기는 조선이 아니었다.
“여기부터 앞으로 계속 적지에서 정박해야 해. 적이 나타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적이 나타날 때마다 총을 쏘면 언제 자고 피곤해서 낮에 어떻게 싸울래?”
“예. 앞으로는 조총 사거리 밖에서만 묘박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작은 배를 타고 조용히 접근하는 적에게 기습을 당하지 않도록 경계를 더 철저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나중에 왜적이 대포를 갖추면 더 멀리 떨어져야겠지.”
당시 일본에는 대포가 거의 없었다. 만약 대포가 있다 해도 이 시대에 대포를 이동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대포 수송에 관련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원정함대에 포격을 하려 해도 그 전에 발견돼 첫 발을 쏘기도 전에 함포탄에 맞고 날아갈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러나 대포의 필요성을 절감한 왜군이 대량으로 갖출 경우 대포 사거리 바깥 먼 바다에서 정박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정함대가 남쪽으로 항해하면서 동쪽은 온통 수평선이었다. 최초로 태평양에 진입했는데도 이민호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수없이 많이 생길 일거리와 개척함대가 마주칠 위험이 먼저 떠오른 탓이었다.
그때 아라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함교에 올라왔다. 시녀들이 함장과 사관들에게 차를 따라주는 사이 이민호가 아라 공주를 함교창 가까이 데려가 수평선을 가리켰다.
“공주! 저 넓은 바다를 보시오. 앞으로 고산국과 유구국의 상인과 모험가들이 누비고 다닐 대양이오.”
“바다를 이용해 상인은 이익을, 모험가는 명성을 얻을 거여요. 백성들은 부유해지고 나라는 점점 강해지겠지요.”
“바로 그렇소. 역시 만국진량(萬國津梁), 세계 만국의 나루터와 다리라는 유구국의 공주답소. 아라 공주가 나의 반려자이듯이 유구국은 고산국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것이오.”
자부심에 차면서도 이민호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공주의 모습이 귀여웠다. 태평양, Mare Pacificum이라는 이름이 마젤란에 의해 지어진지 70여 년이 지났다. 이민호는 태평양을 고산국의 내해로 만들 계획이었다. 유구국은 고산국 백성들에게 부족한 진취적이며 모험적인 성향을 채워주기에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범선이라면 해류와 편서풍을 타고 일직선으로 태평양을 건너 북미대륙 서해안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관을 갖춘 배라면 쿠릴열도와 알류산열도를 따라 신선한 물과 식량을 구해가면서 동쪽으로 항해할 수 있었다. 알류산열도에서 콩이 재배된다면 좋겠지만 무상일수가 짧아 몇 가지 야채 외에는 재배할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이민호는 북태평양 항로에 첫 개척함대를 보낼 때 북미대륙 서해안에서 만난 인디언들에게 콩과 땅콩을 심을 것을 권유하도록 할 예정이었다. 배에 연료만 가득 채우고 가도 태평양을 왕복하기 어렵기에 북미대륙에서 연료를 새로 구해야하기 때문이다. 북미대륙에 관심을 둔 것을 당분간 들키지 않으려면 이 일을 에스파냐 상인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서쪽 해변에 어촌 마을입니다!”
“8호와 9호를 보내 배만 파괴하도록 지시하게.”
이민호가 명령하자 기함의 함장이 기수에게 깃발 신호를 올리도록 했다. 먼저 천자 8호와 9호를 상징하는 깃발을 깃대에 올리고 정해진 임무를 뜻하는 깃발을 연이어 올렸다. 임무는 성곽 파괴, 시가지 파괴, 어선 파괴 세 가지였다.
함대가 남하하는 도중 아직 제대로 된 성곽이라 할 만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성 아래 밀집한 시가지라면 모르겠으나 포탄 아깝게 어촌 마을을 포격할 필요는 없었다. 중간에 어촌 마을이 발견되면 이처럼 전선 한두 척을 보내 포구에 정박한 배를 불태워버리며 함대는 계속 남진했다. 정밀한 해도를 만들고 경도를 관측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일본의 대도시 대부분이 해안가에 세워진 것은 해상교통의 편리함을 추구한 탓도 있지만 내륙 지방에 높은 산맥이 이어져 있어서 넓은 평지가 드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호쿠 지방에는 내륙에 평지가 발달해 항구를 낀 곳보다는 전략적인 위치인 내륙에 성과 도시가 주로 건설됐다. 하치노헤는 예외적으로 오래 전 난부 가문이 정착하기 전부터 발전해온 항구도시였다.
- 쿠쿠쿵!
하치노헤 앞바다에 도착한 원정함대는 포구에 널린 어선들은 물론 시가지에도 포격을 가해 도시를 통째로 파괴했다. 260년 전에 마베치 강가에 세워진 토성 네조(根城)는 이미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거리가 멀어서 확인하기 어려웠다.
“병사들 수백 명이 몰려나온다. 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포탄이 때마침 도로 주변에서 터지고 대여섯 명이 한꺼번에 쓰러지자 왜병들의 대열이 흩어져 버렸다. 군기가 엄한 왜군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아마도 다이묘 난부 마사미쓰가 삿포로에 정예병 대부분을 데려간 탓에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병사들만 성에 남은 것 같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민호가 망원경을 내렸다.
“시가지가 불탄다. 포격 중지!”
해안에 접근했던 원정함대가 서서히 물러났다. 포탄을 아껴야 일본 해안도시 여러 곳에 골고루 불벼락을 내려줄 수 있었다. 원정군은 다시 남하해서 먼저 출발한 범선들을 따라잡았다.
바람은 남동풍, 해류는 북동으로 향해서 남쪽으로 움직여야 할 범선들은 거의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이민호는 공격방향을 거꾸로 선택한 실수를 인정했다. 남동방향, 큐슈 남단에서 시작해 북상했다면 훨씬 수월하게 일본의 해안선을 더욱 빨리 두들기고 다녔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기관이 4개인 전선에 쇠줄을 달아 범선을 예인시켰다.
이후 원정함대는 혼슈의 동해안을 마치 무인지경으로 휩쓸고 다녔다. 이 주변에는 원정함대에 저항할 만한 수군 세력도 없었다.
원정함대가 이틀 만에 센다이에 도착했으나 이때는 지요성과 작은 성 아래 마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다테 마사무네가 1600년에 이곳으로 근거지를 옮긴다.
함포 사격 몇 번에 작은 성채가 무너지고 지요성 아래 마을이 불타올랐다. 사무라이와 병사들은 해안으로 나와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왜인들과 함께 숲으로 도망가 버렸다. 지요성의 왜군 입장에서는 함대를 공격할 수단이 없으니 이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이민호는 미야기를 칠까 하다가 너무 내륙지방이라서 포기했다. 승마보병 5천이 야전이 아닌 공성전을 벌이기에는 상대의 규모가 너무 컸다.
다음 날 원정함대는 후쿠시마 앞바다에 도착했다. 소마와 미나미소마를 치고 다음날은 히타치까지 불태웠다. 적당한 크기의 내륙 도시에는 승마보병들을 상륙시켜 기습을 가해 불태워버렸다.
후타바의 오쿠마라고 지도에 기재된 해안지대가 바로 훗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질 자리였다. 그러나 이민호 때문에 앞으로 그럴 일은 없었다. 주변 언덕의 숲이 적당히 건조해진 것을 확인한 이민호가 포격을 지시해 사방에 산불을 냈다. 이민호의 자그마한 보복이었다.
“좀 더 남쪽으로 가야 공격 목표가 많아지겠군.”
“예. 관동지방과 동북지방은 인구가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일본의 역사는 동진의 역사였다. 천 년 넘게 동쪽으로 전진해서 아이누족을 몰아내고 혼슈 전체를 차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현대 일본과 달리 관동이나 동북지역은 관서나 큐슈에 비해 인구밀도가 훨씬 낮았다.
“남쪽에 왜선 100여 척이 나타났습니다!”
깃대 망루에서 무상이 어쩐지 신이 나서 외쳤다. 공격할 목표가 별로 없어서 그 동안 심심했던 모양이었다.
“도련님! 드디어 우리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왜적들이 병력과 배를 집결시킨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전령들이 왜의 수도에 갔을 테니 관백이 수군 총동원령을 내렸겠지요.”
“계복이 너 바보냐?”
“예?”
“속도.”
“배보다 말이 훨씬 빠르지 않습니까?”
경주마의 속도가 시속 60km 정도인데 이 속도로 계속 달릴 수는 없다. 임진왜란 소식을 알린 파발은 한성까지 사흘 걸렸으니 하루 평균 150km 정도 속도로 달렸다고 보면 된다. 물론 역참에 들를 때마다 말을 갈아타고 달린 속도였다.
그러나 배는 하루 종일 달릴 수도 있었다. 물론 원정함대는 밤에 사람이 아닌 외륜선의 바퀴를 돌리는 소를 재워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열 시간 남짓 움직이지만 그래도 매일 200km 이상 이동할 수 있었다. 천자 전선이 세운 기록은 24시간 동안 항해해서 500km를 기록한 적이 있었다.
범선의 최고 속도는 경우에 따라 더 빨라서 겨울에 북경 입조 후 천진에서 고산국으로 갈 때 거의 600km를 하루에 달렸다. 그러나 범선은 바람 방향이 안 맞으면 속도가 거의 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한 최초의 클리퍼선 시 위치는 광동에서 뉴욕까지 74일 만에 주파했다. 평균 시속 6.7노트에 달하는 속도였다. 클리퍼선 커티 삭의 속도는 당시의 최신식 기선 브리타니아 호보다 빠른 16노트 이상이었다.
“최고 속도나 그렇지.”
“아! 맞습니다. 새로운 곳을 공격할 때마다 왜인들은 마치 우릴 처음 보는 듯했습니다.”
“그렇다면 저 왜선들은 뭘까?”
이민호가 망원경을 들어서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 왜선들을 살폈다. 바람을 받아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돛을 보고 몹시 부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외돛이 순풍을 타서 지금이야 좋겠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반대 방향으로 도망갈 방법이 없었다.
원정군 함대가 넓게 학익진을 펼쳤다. 왜군 함대는 한데 뭉친 어린진이라 중앙돌파에 유리한 진형이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화력의 우세로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망원경으로 왜선의 갑판 상황을 살피려 했으나 태양이 남쪽에 떠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왜선 100여 척은 꾸준히 원정함대를 향해 접근해왔다. 순풍을 받은 왜선은 속도가 빠르므로 중앙 돌파를 노린 진형일지도 모른다고 이민호가 의심했으나, 실제로는 원정함대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범노선의 특성상 전투 중에는 화공을 대비해 돛을 내리는 편이 유리했다. 그러나 왜선들은 돛을 활짝 펼친 채 접근하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왜선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생겼다. 몇 척은 육지 쪽으로 향하고 몇 척은 오히려 먼 바다로 향했다. 왜군 함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민호가 포격 명령을 내렸다.
“이제야 적이 우릴 발견했군. 늦었어. 사격!”
“적 함대 중심을 향해 쏴!”
이민호의 지시를 받아 함장이 명령하자 수병들이 잽싸게 함포로 뛰어갔다. 이민호는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어서 유선전화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다.
기함에 이어 나머지 전선과 대형 외륜선들이 왜선들을 향해 함포를 발사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함포를 발사했으나 표적이 워낙 많아 명중률은 아주 높았다. 순식간에 30여 척의 왜선이 가라앉거나 무너져 내렸다. 왜선들에서 돛이 내려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해전이 진행될수록 이민호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선들이 보병총 사거리에 들어오기 직전, 해병들과 승마보병들이 갑판에 늘어서서 사격 준비를 갖췄다. 그때 함장이 보고했다.
“전하! 적의 저항이 지금까지 전혀 없었습니다!”
“제기랄! 사격 중지!”
기함에서 급히 깃발 신호가 올라가고 모든 전선에서 사격을 멈췄다. 그 사이에도 왜선들은 해류 때문에 계속 북상해서 원정함대에 접근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너희들은 뭐냐?”
“저희들은 군병이 아니라 하찮은 수부일 뿐입니다.”
갑옷은 물론 기본적인 병사 복장도 하지 않은 왜인들이 갑판에 부복한 채 벌벌 떨었다. 이민호가 짜증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왜 군선에 탄 거냐고?”
“오슈(奧州)의 병력을 오사카에 상륙시키고 남풍이 불길 기다렸다가 이번에 돌아가는 길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오슈라면 무쓰(陸奥), 다테 마사무네가 동원한 함대인가?”
“그렇습니다. 조선에 출병한다고 들었습니다. 수륙의 길로 나고야에 병사 1만을 보낸다고 합니다.”
왜선도 세키부네는 얼마 안 되고 그나마 소형이었고, 나머지는 고바야였다. 괜히 포탄만 낭비했다.
그런데 다테 마사무네가 조선으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다는 소식에 이민호는 조금 놀랐다. 실제 역사에서 풍신수길이 관서지역과 달리 관동지역에서는 적은 숫자만 징병하거나, 징병하더라도 조선에 보내지 않고 나고야 성 주변에 포진시켰었다. 그리고 풍신수길이 지시한 파병 인원은 1500이었으나 다테 마사무네는 3천을 동원했다. 그러나 다테 가문에서만 1만이라면 숫자가 많이 달랐다.
“수부들은 고바야에 옮겨 타라!”
정원이 30명도 안 되는 단층 고바야 몇 척에 수부들을 꽉꽉 채웠다. 수부들을 육지 방향으로 보내고 단정을 동원해 해병들이 왜선마다 불을 지르고 다녔다. 불타는 배들이 해류를 따라 북쪽으로 흘러갔다.
“짜증난다. 다 무시하고 강호, 에도로 간다.”
항해사들이 에도로 가는 항로를 계산했다. 이틀로는 부족하고 사흘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원정함대가 동북지방에서 아무리 설쳐도 이 지역 영주들은 저항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에도나 오사카 같은 핵심을 찔러야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제대로 반응할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만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