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4 30. 섬에서 섬으로 =========================================================================
아사달에서 아이누 섬까지 천자 전선으로 가면 하루 거리였으나 몇 척 없는 범선들을 대동하느라 하루 반이 걸렸다. 아직 이름도 정하지 않은 아사달 남쪽 포구에서 정동으로 항해해 아이누 섬 서쪽에 위치한 길이 50리 정도의 섬에 도착했다.
섬 둘레 거의 대부분이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으로 된 섬이라 정박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섬 남쪽에 해변 평지가 있었으나 암초가 많고 물을 구하기 어려워 김 가선이 권한 섬 동쪽으로 이동했다. 몇 곳에 계곡이 있어 물을 구하기 쉬울 것 같아 그 중 파도가 낮은 곳에 함대를 정박시켰다. 김 가선이 지난번에 왔을 때 정박한 곳이라고 했다.
“배 타고 그냥 다니면 상관없는데 해도에 기록해야 하니 이름이 필요하겠어. 서쪽에 있으니 하늬 섬이라고 하자.”
“주인님! 너무 흔한 이름이잖아요. 구별할 수 있게 지어야죠.”
“그럼 아이누 섬 서쪽 섬이니 줄여서 아하 섬이라고 하겠다.”
이민호가 항상 그랬듯이 대충 이름을 지으니 민희와 민영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영덕 어부 김 가선이 나섰다.
“제가 아이누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저 높은 산을 가무이 산이라고 합니다. 섬 말고 산을 칭하는 말 같았습니다.”
“오! 그거 좋소. 가무이 산. 아이누말로 신의 산인가 보군요. 산하고 섬하고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 가무이 섬이라고 하겠소.”
이민호는 아사달 남쪽의 포구 이름을 뭘로 정할까 고민했다. 해도에 기입하기 위해 항해사가 옆에 대기하고 있었다.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과거의 것을 베끼는 것이 최고였다.
“곰나루로 정하자. 한자로 옮길 때 뜻 위주로 웅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명나라도 외국 여러 나라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러니 그냥 음차를 해서 적어.”
“예. 전하! 한글과 한자로 곰나루라고 기입하겠습니다. 어? 곰 발음이 나는 한자가 없습니다. 고옴나루로 할까요? 이제 보니 옴도 없습니다. 고음나루로 하겠습니다.”
“한자는 금나루다. 가장 쉬운 한자로 써라.”
그렇게 해서 한자 지명은 금나루(金那壘)가 되어, 포구인데도 오히려 보루나 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김 가선 영감! 이곳에서도 해삼이 나오?”
“물론입니다, 전하. 일본인들이 해삼 100마리를 쌀 한 되에 바꿔갔다고 합니다. 저는 100마리에 쌀 한 말을 줬습니다.”
“도둑, 아! 아니오. 잘하셨소.”
“다음부터는 조금 더 주겠습니다.”
이곳의 해삼 종자를 가져와 김 가선이 함경도에서 양식을 하고 있었다. 아직 명나라에 본격적인 판매를 하지 않았지만 견본으로 아이누 건해삼 몇 개를 절강 상인들에게 보여주니 아주 기겁을 했었다. 시장이 해삼은 강북, 전복은 강남으로 구분되어 아이누 해삼을 본격적으로 판매한다면 앞으로 절강상인 혹은 북경상인들과 접촉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음. 종묘 배양을 해서 계속 잡을 수 있다 해도 바닷물이 너무 차가워서 물질을 하기 힘들겠군요.”
“예. 그래서 차라리 인공 양식이 나을 때가 많습니다. 전하! 저기 아이누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김 가선이 계곡 아래를 가리켰다. 아이누 특유의 문양을 새긴 천 옷 위에 두툼한 모피를 통째로 걸친 아이누 인 20여 명이 등에 물건을 잔뜩 지고 배로 접근했다. 몹시 헐떡거리며 창을 지팡이로 쓰는 걸로 봐서 함대가 섬 남쪽을 지날 때부터 배를 따라서 산길을 달려온 것 같았다.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제가 필요한 것을 물어보고 교환하겠습니다.”
“그래도 조심하시오.”
김 가선이 고용한 간수군 두 명을 데리고 단정을 타고 해안에 도착했다. 양쪽이 서로 공격의사가 없음을 맨 손을 들어 증명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김 가선은 일본어를 할 줄 모르지만 이 섬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본어를 모르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했다. 김 가선이 손짓 발짓을 하면서 말린 해삼과 모피를 사고 쇠 창촉과 쇠 화살촉, 그리고 쇠도끼와 괭이, 쌀을 팔았다. 김 가선은 아이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골고루 준비해왔고, 한 가지만 주는 법이 없었다.
만족할 만한 거래를 마치고 아이누 사람들이 몹시 기뻐할 때 김 가선이 쇠로 만든 호미 몇 개를 더 건네면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누 사람들이 호미로 땅을 직접 파보면서 신기해했다. 섬에서 화전을 일구며 사는 사람들이라 쇠도끼와 괭이, 호미가 유용하게 쓰일 듯했다. 김 가선이 돌아왔다.
“그건 무슨 가죽이오?”
“바다에 사는 가지어 가죽 같습니다.”
“윽!”
이민호가 울릉도와 독도에서 잡지 않았던 강치의 가죽이었다. 그러나 이 섬은 강치가 지나가는 길목에 불과해서 많이 잡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네덜란드와 영국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태평양에 들어오면 강치든 바다사자든 몰살을 당하게 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바가지를 씌운 것 아니오?”
“저들에게도 충분히 만족한 거래였을 겁니다. 왜인들하고 거래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사고 심할 때는 아무 것도 못 받고 빼앗기거나 죽음을 당한 경우도 흔하답니다.”
“저런!”
아직 오후지만 오늘 밤은 여기서 정박하기로 했다. 해병들이 상륙해 물을 구하고 땔감을 베는 사이 아이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물건을 바꿔 갔다. 면적은 넓어도 인구가 얼마 안 되는 곳이라 거래는 금방 끝났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자유 시간이었다. 이민호가 해변에서 잡아 온 해삼을 아라 공주에게 보여주었다. 무역국가인 유구국 공주답게 아라 공주가 손바닥만 한 해삼의 진가를 바로 알아보았다.
“세상에! 이런 게 있군요. 돌기가 길고 굵고 게다가 6열이에요.”
조선과 일본 관서지방에서 나는 해삼, 인공양식을 하기 전에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발해 해삼은 돌기가 4열이었다. 열대지역 해삼은 돌기 자체가 없었다. 명나라 사람들은 돌기에 해삼의 영양이 몰려 있다고 생각하기에 돌기 크기와 굵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컸다.
이민호는 해삼을 볼 때마다 ‘여성용 기구’나 특수형 콘돔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을 아라 공주가 맨손으로 꾹꾹 눌러 만지고 뜨거운 물에 조리하고, 심지어 칼로 토막을 내어 자를 때마다 이민호의 몸이 움찔거렸다. 아라 공주가 살을 작게 잘라 입에 쏙 집어넣고 이빨로 잘근잘근 씹는 순간 이민호가 진저리를 쳤다.
“맛은 조리 방법과 향신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식감이 정말 좋아요. 여송이나 동양 해삼보다 백 배 이상의 가치가 있겠어요. 전하! 왜 그러세요? 표정이 안 좋아요.”
“아니, 아니오. 괜찮소. 아프지 않소.”
이민호가 아랫도리를 가리며 대답했다. 아야를 비롯한 시녀들만 얼굴이 빨개졌다.
현대 홍콩의 해삼 시장에서 홋카이도 해삼과 필리핀 해삼의 가격 차이는 열 배에서 스무 배 사이였다. 그러나 해상운송이 어려운 이 시기에 희소성을 갖춘 아이누 섬 해삼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가격은 팔기 나름이었다.
“유구국에서 아이누 섬에 몇 번이나 배를 보냈는데 어째서 해삼을 무역할 줄 몰랐을까요?”
“아이누 사람들이 해삼은 너무 흔한 거라 생각해서 교역할 생각을 못했을 거요. 대신 유구국에서는 승자총통을 금덩이를 받고 팔았지요. 공주도 알고 있소?”
“헤헤! 좀 비싸게 팔아먹었지만 아이누 사람들은 금의 가치를 잘 모르잖아요.”
미리 알고 있던 이민호나 해삼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지, 유구국 상인들은 해삼 성체 몇 마리를 이민호에게 갖다 주면서도 명나라와 무역할 생각을 전혀 못했다. 바닷물이 너무 차가우니 뭐가 나는지 바다 속을 들여다 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일본인들도 아직 이 시대에는 관서 해삼은 물론 홋카이도 해삼을 명나라에 팔 생각을 못했다. 청나라 중기에 들어서서 일본과의 해삼 무역이 시작되면서 일본인들이 해삼을 먹는 것이 금지된다. 그래서 발달한 게 해삼을 말리기 전에 뺀 창자에 간을 한 해삼창자 요리였다.
다음 날 아침 이민호는 수송선들을 가무이 섬 동쪽에 그대로 정박시키고 전투 함대만 이끌고 아이누 섬 남쪽을 지나가며 해안선을 살폈다. 지난번에 파괴했던 일본인들이 세운 성과 마을은 무너진 채 그대로였고 최근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일본인들이 아이누 섬을 포기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전투함대는 다시 가무이 섬으로 돌아가 수송함대와 합류한 다음 아이누 섬 북서쪽 끝으로 항해했다. 다음 날 오전에 포로토코탄, 큰 호수 마을에 도착했다.
배가 도착하기도 전에 아이누 사람들이 바닷가로 몰려나왔다. 추장이 몹시 기뻐하며 이민호를 환영했다.
“전하! 오실 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반갑네.”
수염이 덥수룩한 추장이 나이는 올해 들어서 스물한 살이라고 했다. 장사하러 와서 이렇듯 환영받으니 이민호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라 공주도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마을에 도착해 보니 추장이 말한 것처럼 정말로 큰 호수 마을에 외지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어 아예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이곳에도 두만강 동쪽 아사달처럼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민호는 아라 공주와 시녀들, 일본어를 아는 몇몇 해병들을 장사하라고 내보냈다. 역시 일본어를 조금 아는 몇몇 아이누 사람들을 고용해서 통역사로 일하게 했다. 이중 통역이 너무 답답해서 이민호는 조선말을 깨우친 아이누 아이를 데려올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수많은 아이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준비해 온 쌀과 농기구, 무기가 빠른 속도로 재고가 빠져 나갔다. 그리고 모피와 금이 배 밑 창고에 차곡차곡 쌓였다. 겨울이 갓 지나고 봄이 되기 전이라 모피의 품질이 아주 좋았다.
이민호는 포로토코탄의 무역은 아라 공주에게 맡기고 전선과 상선 절반을 이끌고 동쪽으로 항해해 오호츠크해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사금이 많이 나온다는 강에 가 보니 수많은 아이누 사람들이 소쿠리를 들고 사금을 캐고 있었다. 지난번에 기함에 탔던 추장이 마중 나왔다.
“국왕전하 어서 오십시오. 사금을 조금만 더 캔 다음 포로토코탄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사금이 많이 나오는가?”
“물론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엇! 국왕전하 입에서 침 떨어집니다.”
“추릅~ 아주 많이 나는군. 좋았어.”
소쿠리 안에 사금이 가득 들어있었다. 황금을 보기를 돌 같이 한다는 분도 계시지만 눈앞에 번쩍거리는 황금이 가득히 있으니 이민호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사금 채취 현장에서 바로 교역을 했다. 소문을 듣고 몰려온 아이누 사람들이 직접 강에서 사금을 캐서 철제 농기구로 바꿔 갔다. 겨우 한나절 노동으로 얻은 사금을 귀한 철제 농기구와 바꾼 아이누 인들은 무척 좋아했다.
이민호는 양심이 많이 찔렸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것보다 좀 더 많은 것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해병이나 승마보병들이 배에서 내려 강에서 사금을 캐려는 것을 막았다. 사금은 아이누 사람들의 것이니 어떻게든 그들이 먼저 이익을 봐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금은 금방 이민호 손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아이누 사람들을 고용해서 사금을 캐는 거나 거의 마찬가지 비용이 들었다. 구태여 아이누 사람들을 몰아내고 해병들을 동원해 사금을 캘 이유가 없었다. 사금보다는 차라리 아이누 사람들과의 우호가 더 중요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여자들이 배로 몰려왔다. 그리고 몸에 단 황금 장신구를 떼어 유리구슬과 교환했다. 이민호는 많이 미안해져서 쌀을 비롯해 이것저것 더 많은 것을 주려고 노력했다. 황금이 톤 단위로 금방 모였다.
“주인님! 수달을 닮은 이 동물 정말 귀여워요. 저한테 조개를 선물로 줬어요.”
민영이 꺅꺅거리며 즐거워하는 바닷가에 이민호도 가 봤다. 이민호를 본 해달이 얼른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도망가네? 저놈 수놈인가 보다.”
그러나 다시 물에서 나온 해달이 커다란 조개를 들고 달려와 이민호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어서 받으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 이민호가 조개를 받았다. 해달이 인간을 만나면 자기를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조개를 선물로 바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실제로 겪어보니 기분이 묘했다.
약간 떨어진 곳에서 해달 수십 마리가 몰려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해달은 조류에 떠밀려가지 않도록 해초에 몸을 감거나 서로 손을 잡고 누워서 더 귀여워 보였다.
“민영아. 이건 해달인데, 이번에 우리가 잡아가야 할 놈들이야. 서양 상인들에게 해달 모피를 팔기로 했거든.”
“이렇게 귀여운 아이들을 죽여서 가죽을 벗긴다고요? 말도 안 돼요! 주인님~ 다시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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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늦었네요. 오전에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