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229화 (178/1,000)

00229  30. 섬에서 섬으로  =========================================================================

이 시기에는 조정의 명을 받고 광산을 개발하려는 장인이 고을에 들어오면 고을에 광산이 없다고 조정에 보고해달라고 백성들이 재물을 모아 장인에게 뇌물로 바쳤다. 조선 후기에는 광산을 탐색하는 관리를 백성들이 떼로 몰려가 죽이거나 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광산이 개발되면 그 지역 주민들은 끔찍하게 힘든 부역에 장기간 동원될 테니 이렇게 반발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조선 말기나 대한제국 시기에 민간 자본이 광산을 개발하면서부터 백성들이 광산 부역에 동원되지 않을 수 있었다. 광산주는 광부들을 대량 고용해서 채굴 작업을 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광산 개발에 반발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광산주나 광부들이 백성들의 집을 빼앗거나 농토에서 내쫓는 등 갖가지 폐단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 광산이 운영되는 동안 그 지역이 완전히 황폐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 백성들과 광부들이 수백 명 단위로 맞붙어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한 사례도 있었다. 양쪽 모두 생존을 위해 물러서지 못할 처절한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원인은 하나였고 해결방법도 자명했다. 피해보상만 해주면 된다. 그러나 백성과 광부들의 싸움은 계속됐고, 광산 개발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인 조정과 광산주는 그 싸움에서 쏙 빠져나갔다.

“지금까지 광산에서 광석을 캐면 고을 백성들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소.”

“그렇지요, 대인. 현실이 이러니 어느 누가 고을에 광산이 운영되길 원하겠습니까?”

단천군수도 앞으로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할 일이 걱정돼 꺼림칙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군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민호가 은광 개발하는 것을 말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매장량이 큰 단천 은광을 꼭 개발하고 싶었고, 부역 문제에서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에게 일당을 나눠주라고 은화를 좀 가져왔소. 이 지역에서 은이 난다면 백성들도 그 이득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오. 힘든 광부 일을 직접 한다면 더더욱 삯을 확실히 받아야지요.”

“오오! 대인께서는 역시 호, 아니 백성을 아끼시는 훌륭한 분이십니다. 대인께서 지금까지 함경도에 베푸신 은혜가 큰데 은화까지 가져오시다니요. 고맙습니다. 은화를 백미와 쉽게 바꿀 수 있으니 백성들이 대인의 공을 칭송할 겁니다.”

이민호가 돈을 가져왔다고 하니 군수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이제부터 단천 백성들에게 광산 부역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가 되기 때문이다. 군수 강찬이 중간에 착복할 사람 같지는 않았다.

조선의 행정 부패를 논할 때 무보수로 일해야 하는 아전들이 중간에서 착복하는 것이 관리의 부패보다 더 문제였지만 함경도 농민들은 다들 기병이나 보병을 하는 사람들이라 전혀 만만치 않았다. 함경도는 생산량도 적고 백성들 기질도 거칠어 관리나 아전들이 토색질을 하기에 전혀 만만치 않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관리들도 함경도에 오지 않으려 했고, 항상 아전이 부족해서 죄를 지은 아전들을 함경도에 보내는 식으로 충원했다. 반란을 일으킨 국경인의 일가도 죄를 지어 함경도로 이주한 자들이었다. 함경도는 사실 조선에서도 버림 받은 땅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조정에서 개인의 광산 개발을 허용하고 세금을 받는 설점수세제(設店收稅制)를 시행한다면 광산이 많은 함경도는 발전 가능성이 높았다. 물산이 풍부한 남쪽 지역에 사는 농민들이 함경도로 몰려올 수도 있었다.

“제가 대인을 위해 도로가 완공되는 시기에 맞춰 광부를 모집해놓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오호! 광산 일만 하는 광부가 함경도에 있습니까?”

“금광이나 은광을 잠채하던 놈들이지요. 그러나 금이나 은이 난다고 이미 알려진 곳은 그놈들도 함부로 잠채를 못합니다. 목이 잘리기는 싫을 테니까요.”

“그런 곳은 대부분 내수사 소유지요. 감히 왕실 재산을 훔쳐갈 통 큰 도둑은 없을 겁니다.”

이민호는 양심이 약간 찔렸다.

“그렇습니다. 지금 그 광부들이 산맥 깊은 곳에서 새로운 은광을 찾고 있는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들이 왜적을 물리칠 때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저도 그들을 용서하지 않았을 겁니다.”

“애증이 교차하는 자들이겠군요.”

“그러나 이들은 기술이 확실히 좋습니다. 단천읍성을 공략할 때 왜적들 몰래 땅굴을 파고 들어간 자들이니까요. 은혈, 그러니까 은광 갱도를 무너지지 않게 땅속 깊이 파고 들어가는 방법을 확실히 아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인?”

추가로 강찬 단천군수는 덕대를 중심으로 구성된 자생적인 광부집단이 함경도의 산악지대를 떠돌면서 은이나 금을 불법으로 캐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주로 사금을 캐는 광부들이 공동 채굴한 귀금속을 나누는 방식으로 광부 집단이 유지되고 있었다.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금은광이 없을 때에도 꾸준히 금과 은을 생산한 것은 사실상 이들의 공로였다.

“좋소. 그 광부들을 활용해봅시다.”

“대인께서는 역시 관대하시군요. 제 생각에는 이들에게 일당을 좀 더 많이 주고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을 지도하게 하면 채굴 능률도 올라가고, 장기적으로는 백성들 중에서 광부가 될 자들이 꾸준히 나올 것 같습니다.”

“농사짓는 것보다는 수입이 나아야 광부들이 늘어나겠지요. 김 영감!”

“예! 대인.”

이민호는 광산 일을 영덕어부 김 절충에게 맡겼다. 북관대첩 기간 동안 관군과 의병에 군량을 댄 공으로 이번에 가선대부로 승진했다고 한다. 그 품계로 실직벼슬은 얻지 못했더라도 군수가 함부로 대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납속을 하고 영직만 받으면 친구나 고향마을에서 조롱할까 두려워 조정에 군량미를 바치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아서, 납속자에게 실직을 제수하는 문제가 조정에서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워낙 바빠서 고을 수령 같은 것을 감당하기 어렵지 싶었다.

“믿을 사람이라곤 김 영감밖에 없소. 단천 원님과 협조해서 일을 잘 진행해 보시오.”

“예! 제가 책임지고 광산을 운영하면서 은이 생산되는 대로 대인께 바치겠습니다.”

“자꾸 일을 맡겨서 미안하오. 예전처럼 한 달 단위로 보내주면 될 거요.”

“저야 그저 기쁠 뿐입니다.”

이민호가 일을 마치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단천 군수가 목장을 재건해주길 요청했다. 함경도 다른 고을의 목장도 같이 적용될 수 있어서 자세히 들어보았다.

“대인께서도 아시겠지만 국초에는 목장이 200군데나 되고 목장에 속한 말이 7만 필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종조(中宗朝)에는 3만 필이었으며, 명종조(明宗朝)에는 1만 필로 점점 줄었습니다. 감목관 제도를 실시하고 나서야 1만 8천 필로 번식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함경도 여러 고을에 말을 나눠주면 번식시킬 수 있겠소?”

“목자를 좀 고용하면 몇 년 만에 두 배로 늘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정이든 함경도든 목자를 고용할 돈이 없었다. 이민호가 고용하는 것도 이상했다. 개인이 국가에 재산을 헌납할 수는 있어도 고용 비용을 장기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이민호가 여진족에게서 산 말 대부분을 제주도로 보내다보니 제주도가 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함경도와 다른 도에도 목장을 재건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데, 조정과 함경도 고을들에 자금이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망아지를 낳아 키우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려 당장 일본을 정벌할 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말은 임신기간이 1년 전후에 성장에 2년이 걸리니 최소 3년은 써먹지 못한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차라리 앞으로도 계속 여진 말이나 몽골 말을 싸게 들여오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만에 하나 앞으로 여진과 어떤 관계가 될지 모르니 장기적으로는 목장을 운영하는 편이 나았다.

“1만 필을 나눠줄 테니 운영비는 남쪽지방에 말을 팔아가면서 충당하시오. 그래도 남을 테니 늘어난 말을 반씩 나누기로 합시다.”

“마치 소작을 하는 것 같군요. 하하!”

왜군 점령지역인 단천에서 끝내 버티며 왜군과 지독하게 싸운 사람이라 전형적인 무장인 줄 알았는데 강찬은 뜻밖에 문관이었다. 또한 30대 중반이며 조만간 함경도 소모사 직책을 맡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정문부처럼 거친 사나이들의 땅인 함경도에서 문관으로 버티려면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 했다.

단천군 관아에서 나오면서 김 가선과 광산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눴다. 백성들 입장에서는 부역을 대신하는 일인 만큼 품삯은 추가로 얻는 소득이었다. 부역할 때의 식량도 원래 백성이 스스로 지고 오게 되어 있으니 광산에서 식사를 제공한다면 큰 이익이었다. 그래서 단천 백성들이 광부 일을 한다면 일용 잡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 한 달에 은 한 냥으로 품삯을 책정했다.

“한 냥이면 충분합니다. 만약 그 이상을 주면 다른 지역에서 백성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그럼 단천 백성들과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아무래도 함경도에서는 잡곡 위주로 농사를 지으니 항상 쌀이 부족할 거요. 운송비를 감안하면 약간 손해 보더라도 은 한 냥과 쌀 한 석을 교환해주시오. 손해액은 다른 무역에서 보충합시다.”

“전하의 어명을 받들겠사옵니다. 해삼에서 나는 이익으로 벌충할 수 있으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김 영감의 몫을 자꾸 줄이려 하지 마시오. 그래야 내가 안심하고 일을 시킬 수 있지 않겠소?”

전쟁 중이라 쌀 가격이 많이 올랐다. 운송비를 감안하면 김 가선이 손해 볼 것 같아 다른 상행에서 조금 신경 써주기로 했다. 그런데 관아에서 나오자마자 김 가선이 이민호에게 전하 호칭을 써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동해국으로 바로 가보겠지만, 여진족 땅에서 큰일은 없소?”

“예. 동해국 시장은 잘 돌아가고 있으며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지만 의외로 평화롭습니다. 어느 여진족 부락들이 동해국의 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는 있으나 동해국 여진족들도 실력이 만만치 않으니 실제로 약탈을 실행할지는 의문입니다.”

동해국에서 뭔가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누르하치와 협정을 맺었으니 동해국이 침략을 받아 망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경성에서 배를 내리고 다음 날 아침부터 말을 타고 개마고원으로 향했다. 음력 2월 말인데도 산간에는 아직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산인지 고원인지 알 수 없는 눈 덮인 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민희와 민영 등 여진족 출신 호위들이 흥이 나서 눈길을 뛰어다녔다. 몽골에서 수입한 전마들도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민호는 추웠다. 엄청나게 추웠다. 아이샤가 우단, 즉 벨벳으로 조끼를 만들어주고 여기에 두꺼운 털가죽 외투를 걸쳤는데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추웠다.

“산간지역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구나. 이만 돌아가자.”

캐시미어 산양을 키우려면 춥고 건조한 고원지대가 좋다고 하는데 개마고원은 모든 조건에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정말 끔찍하게 추웠다. 아이샤를 사람도 거의 없는 개마고원에 내팽개쳐야 할 것 같아 미안해졌다.

이민호가 모직물 공업을 일으키려는 것은 단순히 상품 생산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조만간 영국이 전 세계로 확장할 때 아시아에서 확장 중인 고산국과 반드시 충돌하게 되어 있었다. 이에 대비한 전략 상품으로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 모직물이었다.

영국은 14세기 에드워드 4세 이후 양모산업과 모직물공업을 보호하면서 현저히 발전시켜 주요 수출상품으로 등장했다. 16세기에는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비난을 한 인클로저 운동이 확대돼 영국의 중세 장원경제가 붕괴됐다. 이것은 산업혁명을 위한 토양이지만, 농부였다가 경작지를 잃고 임노동자로 전락한 배고픈 영국 서민들의 눈물로 점철된 시기이기도 했다. 산업혁명이 18세기에 시작됐으니 영국 빈민들은 200년 동안 생존 한계선 이하의 처참한 생활을 하게 됐고 산업혁명으로 임노동자로 고용되고 나서야 썩은 감자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은 모직물 공업을 보호하고 모직물을 유럽 각국에 수출해 강대국으로서 국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직물 공업은 현재 영국의 약점이기도 했다. 영국의 산업 생산량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양모산업과 모직물 공업을 빼면 영국 국민들은 굶어죽고 자본가들은 거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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