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7 30. 섬에서 섬으로 =========================================================================
- 쿠쿠쿵!
- 타타탕!
기함의 함포와 보병총이 불을 뿜었다. 포구에 정박한 왜선 50척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먼저 거미 새끼들처럼 언덕길로 달리거나 산으로 흩어지려는 왜병들을 목표로 삼았다.
포구에 들어온 다른 전선들도 포격과 총격에 동참했다. 그 사이 지상포대가 두 곳에서 발견돼 하나는 발포하자마자, 다른 하나는 발포하기 직전에 함포에 의해 격파됐다. 왜군 지상포대에서 발포한 석환이 기함 바로 옆에 떨어지면서 허연 물기둥이 높이 치솟았다.
“전하! 항해일지에 기록해야 하는데 왜적들이 등에 멘 군기 종류가 너무 많아서 적의 정체를 정확하기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에 파견된 여러 영주들이 자기 영지에 요청한 보충병들이 조선으로 떠나기 전에 이곳에 집결한 것 같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적어.”
“예. 많은 순으로 다섯 가지만 적겠습니다.”
이등항해사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민호가 다시 보니 이곳 이키 섬이 영지인 마쓰우라 가문의 문장부터 이키 섬의 방어책임을 맡은 9군 호소카와군의 군기도 있고, 그 외에 무수히 많은 다이묘들의 군기가 어지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풍신수길은 자존심 때문인지 아직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어나는 것은 병사들과, 수부나 하인으로 끌려간 민간인들이었다. 조선에 파병된 다이묘들은 줄어든 병사 숫자만큼 영지에 보충병을 보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바다를 건너가는 동안 절반이 맞아죽거나 물에 빠져 죽고 상륙지인 동래부 인근에서부터 한성으로 갈 때까지 나머지 절반이 맞아죽거나 굶어죽었다. 그래서 한성에 도착한 보충병은 거의 없었다.
전투는 잠시 계속됐다. 도망가는 적의 등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은 전투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이었다. 언덕 아래에 수천 구의 시체가 쌓이기까지 약 5분 간 포격과 총격이 지속됐다. 왜군 쪽에서는 아예 저항을 포기했다.
“함장! 함포는 지상 시설물을 부수도록. 해병은 단정 내려서 왜선 수색해.”
기함이 먼저 포격을 가하자 다른 배에서도 기함을 따라 토굴을 목표로 삼았다. 왜군이 주거지로 쓰는 토굴이 포탄에 맞아 무너지는 사이 단정에 탄 해병들이 왜선으로 건너갔다.
잠시 후 해병들이 돌아와서 보고하길, 왜선에는 쌀과 된장 약간과 천 조각 같은 쓰레기만 잔뜩 있다고 했다. 하부 적재칸이 쌀로 가득하지 않다는 것은 이 왜선들이 직접 조선에 가지 않거나, 혹은 아직 출항준비가 덜 됐다는 뜻이었다. 가끔 수부로 보이는 왜인들이 기함으로 잡혀왔으나 왜인들은 덜덜 떨면서 살려달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이민호는 해병들에게 왜선을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지시했다. 왜인들도 땅에 내려주고 멀리 가라고 했다. 왜인들이 굽실거리며 인사한 다음 총격이 무서워 숲으로 뛰어들었다. 제자리에 주저앉은 왜인도 있었으나 더 이상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
“다음 목표, 하카타로 이동!”
이민호가 지시하자 항해사들이 함장에게 항로를 제시했다. 기함이 선두에 서고 고산국 원정함대는 이키 섬에서 동쪽으로 50km 떨어진 하카타로 향했다.
하카타는 <고사기>에 언급될 정도로 오래된 도시이며 한반도나 중국과 가까워 옛날부터 무역항으로 번창했다. 원나라가 침공할 때 공격 목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하카타(博多)와 후쿠오카(福岡) 시가지는 같은 도시가 아닌 근접한 지역에 불과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구로다 가문에서 이봉해서 이름을 지었으므로 아직 후쿠오카라는 이름이 붙지 않을 때였다.
원정함대는 오후에 섬과 사주 사이를 지나 하카타에 도착했다. 그러나 전에 이민호가 방문한 적이 있었고 가끔 포르투갈 배가 정박하는 무역항인 하카타에 대한 포격은 하지 않았다.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불평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목표는 바로 서쪽 나지마 성과 성 아래 마을이었다.
나지마 성은 작지만 지쿠젠의 다이묘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거성이었고 주변에는 온통 사무라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현재 영주는 12살에 불과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맡고 있었다.
히데아키는 풍신수길의 정실 네네의 조카로서 풍신수길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다카카게가 양자 히데카네와 함께 조선에서 전사하자 풍신수길에 의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사후 양자로 입적했다. 지난해에 이미 종3위 긴고쥬나곤(金吾中納言)의 관위에 올랐다. 역사대로라면 정유재란 때 왜군 총대장으로 참전한 왜장이었다.
나지마성은 다이묘의 거성치고는 작은 편이라서 주변 성 아래 마을과 동시에 포탄을 뒤집어썼다. 천수각이 없는 성이라서 성벽과 내부 건물 위주로 포격이 이루어졌다. 10분 정도 포격을 계속하니 무너진 돌무더기와 불타는 집들 말고는 남은 게 없었다.
“다음, 고쿠라로 향한다. 속도를 높여라.”
“도착하면 해가 질 것 같습니다, 전하.”
“상관없어.”
고쿠라(小倉)는 현대의 기타큐슈였고, 간몬해협 서쪽 출구에 위치했다. 그 주변은 겐타로가 보낸 밀정들이 세밀하게 해도를 작성했고 수심도 정확히 측정했다. 혼슈를 공략하기 위한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세밀한 해도를 갖고 움직인다면 야간 항해도 문제없었다.
범선들이 역풍을 받아 속도가 느려지는 바람에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고쿠라 성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민호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해가 지고 나서는 왜선들이 모두 포구에 정박해 고쿠라 근해의 경비가 허술해졌다.
지금까지 고산국 함대가 야간에 해안 도시를 공격한 적이 많았다. 특히 대마도의 엄원항은 왜선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펼치는 바람에 거의 항상 야간에 공격했다. 그러나 일본인의 상식으로는 해안 마을에 대한 함대의 야간 공격이 드물기 때문에 실제로 야간 공격에 당해보기 전에는 대비하지 못했다.
“성은 바다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고 불빛은 밝다.”
바다와 가까운 강변에 세워진 고쿠라 성은 이상적인 야간 포격 목표였다. 이민호는 불빛 신호를 이용해 전 함대를 동원한 일제 포격을 시도해봤다.
- 쿠쿠쿠쿵~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규모가 꽤 큰 편인 고쿠라 성의 천수각이 포격을 받아 단 일격에 무너져 내렸다. 전선 12척과 대형 외륜선 18척에 탑재된 함포 84문에서 뿜어진 포탄의 위력이었다. 이어서 포구에 정박한 왜선과 고쿠라 성 내부 건물들에 포격이 진행됐다.
고쿠라 성은 풍신수길의 가신이며 부젠국 고쿠라의 영주인 모리 가쓰노부의 거성이었다. 모리 가쓰노부(毛利勝信), 즉 모리 요시나리(森吉成)는 4번대 대장으로서 조선에 파병중이었다. 사쓰마의 시마즈 요시히로가 모리 요시나리가 지휘하는 4번대에 속해 있었다. 현재 이 성은 1600년 호소카와 타다오키가 개축하기 전의 형태였다.
“전하. 수라를 거르시면 아니 되옵니다.”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자 공주가 시녀들을 거느리고 함교에 행차했다. 아라 공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을 공손히 들고 있었다.
“싸움이 끝난 뒤에 병사들과 함께 먹겠소, 공주.”
“지금 가볍게 죽을 드시고 싸움이 끝난 다음 편하게 드시옵소서.”
이민호가 시녀들을 안은 다음부터 아라 공주의 말투도 좀 달라진 것 같았다. 마치 어른 흉내를 내는 어린아이 같아서 이민호가 속으로 웃었다.
아라 공주가 죽이 담긴 그릇을 내밀었다. 눈망울이 측은해서 이민호가 그릇을 받았다. 그 사이에 시녀들이 함장과 항해사 등 함교 근무 요원들에게 죽을 나눠주었다.
“고맙소.”
이민호는 긴장 상태라서 먹기 싫었지만, 입을 대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먹기 힘들 것 같아 억지로 먹기로 했다. 이민호가 뜨끈한 잣죽을 후루룩 소리를 내가며 마셨다.
가평의 산을 사고 나서 금광 개발은 못하고 잣나무만 잔뜩 심었다가 매년 잣을 엄청나게 많이 수확했다. 전복은 비싼 상품이라서 죽 재료로 못 넣고 이렇게 잣죽을 간식으로 먹곤 했다.
“따뜻한 죽에 공주의 사랑이 듬뿍 담긴 것 같아 이전에 먹던 것보다 훨씬 달콤한 것 같소.”
“어머머! 황공하옵니다, 전하.”
말을 마친 이민호는 손발이 막 오그라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이민호는 그를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었다.
포격을 마친 다음 함대는 바람을 타고 북서쪽으로 항해했다. 누가 봐도 조선으로 귀환하는 방향이었다. 그러나 육지에서 충분히 멀어진 다음 함대는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해도에 나온 대로 미시마(見島)가 곧 나타났다.
고산국 원정함대는 섬 북동쪽으로 접근해 자그마한 포구 마을을 점령했다. 잠자리에 들려던 사무라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집에서 나오다가 총탄을 맞고, 그것으로 전투는 끝이었다. 수십 가구에 불과한 왜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그마한 어선들을 가라앉힌 다음 함대 전체가 포구에 정박했다.
다음 날 아침 원정함대는 시마네와 이즈모의 해안 마을들을 불사르면서 동진했다. 이번에는 다이묘들이 연합해서 배를 끌고 나오지 못했다. 고산국 함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일본 전역에 퍼진 까닭이었다.
돗토리로 가는 도중에 이민호의 뇌리에 퍼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지난번에 혼슈 북부 해안을 따라가면서 해안 마을을 초토화시킨 적이 있어서 쓸 만한 목표가 별로 없다는 사실도 감안했다.
“항해사! 해도에 울릉도가 있나?”
“울릉도는 추정 위치만 있습니다, 전하.”
“함대, 여기서 북북서로 항로 변경. 울릉도로 향한다. 오후부터 무상 외에 견시 4명을 함교 사방에 배치해서 섬을 찾아라.”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임진왜란 때 왜인들이 분탕질해서 조선인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책이 출간된 1614년 현재 왜인들이 점거하고 있다고 썼다. 일본 어부 두 집안에서 1618년 막부로부터 도해면허를 받아 조업했으나 어부나 막부나 모두 울릉도가 조선 영토인 것을 알고 한 행위였다. 어쨌든 안용복이 울릉도와 독도에서 왜인들을 쫓아내기 전까지 한 동안 왜인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오키 제도를 동쪽에 두고 함대는 계속 북상했다. 이민호는 별 일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아라 공주가 오늘따라 이민호만 졸졸 따라다녔다.
“전하!”
“왜 그러시오, 공주?”
이민호가 의자에 앉아 서류 작업을 할 준비를 하는데 공주가 목에 매달렸다. 공주가 뭔가 말을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것 같아 이민호는 차분히 기다렸다.
“일본 도시들을 부수고 성을 무너뜨리고 포구를 불태우고 배를 침몰시키고, 너무 멋지세요. 세상의 어느 누구도 상상 못한 일들을 전하께서 해내고 계세요. 이런 일은 어느 누구도 못할 거여요.”
“내가 하고 있잖소? 어려운 일은 아니오.”
“배와 군사만 있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상대는 일본이에요. 보통 사람들은 내기 힘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칭찬해줘서 고맙소.”
이민호가 공주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뭘 하든 반짝반짝 뜬 눈으로 이민호만 지켜보고 특히 식사시간에는 밥을 떠먹여주려 해서 이민호는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았다.
“북동쪽 30리에 섬 두 개가 보입니다!”
오후 늦게 무상이 보고했다. 울릉도가 아닌 독도를 먼저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민호는 항로를 약간 북서쪽으로 틀도록 지시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화산섬 울릉도가 시야에 잡혔다.
다시 한 시간 반 후에 울릉도 동쪽으로 접근한 함대는 현대 지명 도동에 닻을 내리고 정박했다. 바닷가에 움막 몇 개가 보이고 왜인들이 한 곳에 몰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민호는 해병들을 시켜 그들을 체포해오도록 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오타니 집안과 무라카와 집안에서 고용한 사람들입니다.”
이민호가 묻자 왜인 어부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너희들은 일본인인데 조선 영토에서 뭐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조선 사람들이 없어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고기가 아니라 강치인데?”
솥에 넣고 끓이는 것은 밥이 아니라 강치의 기름이었다. 해변에는 껍질이 벗겨져 시뻘건 고깃덩이로 변한 강치들의 사체가 널려 있었다. 이때는 해양 동물도 물고기로 간주하던 시대라서 일단 명칭은 넘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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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해에서조차 전세가 많이 기울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로 망하게 할 수는 없겠지요.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