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8 29. 행주대첩과 한성탈환 =========================================================================
병력을 추슬러 돈의문, 즉 서대문 방향으로 진격했다. 기마병 500과 승마보병 5천 명, 해병 2천과 유구국 보병 400과 호위대까지 해서 거의 8천에 달하는 병력이라 꽤 많아 보였다.
“집이 멀쩡해요, 주인님!”
“그거 다행이다.”
민영이 호위대 몇 명과 함께 서소문 집에 갔다 오더니 기쁜 얼굴을 했다. 성문 바깥에 기와집이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 대문이 부서지고 물건 대부분을 약탈당했어도 방이 불타지 않아 당장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민호는 오랜만에 온돌방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됐다.
원정군이 서대문에 도착하자마자 문루 주변에 숨은 왜병들을 공격했다. 보병총을 쏘아 왜병들을 문루에서 물러나게 하고 기병포를 가져와 서대문을 아예 깨뜨려버렸다.
깨진 문틈으로 돌입한 해병들이 서대문을 장악하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서대문을 방어하는 왜병은 채 100명도 되지 않았고, 대포를 쏘아 대문이 깨지는 순간 이미 달아나기 시작했다. 멀리서 달려오던 왜병 증원군 500여 명도 그대로 남대문 방향으로 도주했다.
해병들이 서대문을 점령하는 동안 이민호는 승마보병 1천을 서소문, 1천을 남대문으로 보내 왜병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도록 했다. 그리고 1천을 용산창으로 보내면서 만약 적이 많을 경우 즉시 물러서라고 지시했다.
해병들이 서대문을 통과해 주변을 장악하는 사이 이민호는 호위대를 이끌고 문 안으로 들어섰다. 멀리 동쪽에서 총소리가 울리기에 이민호가 서대문 문루에 올라가 있는 해병에게 물었다.
“거기서 동대문이 보이나? 명군이 동대문을 점령했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전하!”
잘 보이지 않는지 해병이 마치 원숭이처럼 문루의 기둥을 타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서까래를 거꾸로 잡고 오르다가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더니 팔작지붕 위로 뛰어 올라섰다.
이민호가 보기에 몸놀림이 좋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 해병이 동쪽을 살핀 다음 보고했다.
“아직 점령하지 못했습니다. 동대문 주위에서 전투 중입니다.”
“멍청이들! 사다리 열 개만 만들어도 넘어가겠다.”
궁금해서 이민호가 직접 서대문 문루로 올라갔다. 동쪽 멀리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대문이 반쯤 부서진 꼴을 보니 거기서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았다. 지붕 위에 오른 해병이 추가로 보고했다.
“보이는 것만 명군이 3만, 왜군이 1만 정도 됩니다.”
“오! 그래? 고맙다.”
한성에 남은 왜병들이 서쪽에 몰려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대부분 동대문에서 전투 중이었다. 명군이 이민호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공격에 나서는 바람에 왜병들이 죄다 동대문으로 몰려갔고, 그 탓에 명군은 쉽게 동대문을 넘지 못했다. 덕택에 이민호가 이끄는 고산국 원정군은 아주 간단히 서대문을 돌파했다.
“계복아! 승마보병 나머지 다 데려가서 명군을 도와줘라. 매복이 있을지 모르니 첨병 운영 잘하면서 천천히 전진해. 급한 건 아니니까.”
“예. 그렇게 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럼 우리가 한성을 먼저 탈환한 게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금도 우리가 먼저 도성에 입성했습니다.”
“뭐? 그럼 곤란한데. 잠깐! 가지 마. 우린 아직 입성한 게 아니야!”
병력을 서대문 주위에 배치시키고 이민호는 호위대와 함께 주변을 살폈다. 한성에 가득했던 기와집과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흩어져 있던 초가집들이 대부분 불타고 무너져 내렸다. 서대문 바로 안쪽이 경희궁인데 이곳도 불타고 무너져 있었다.
“윽! 냄새!”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길거리는 물론 어느 집에 들어가든 시체가 널려있다는 것이었다. 시체가 덜 부패한 것을 보니 왜병들이 며칠 전에 한성 주민들을 학살한 것 같았다.
원래 역사에서는 임금의 대가가 급히 떠나느라 도성에 더 많은 백성들이 남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사창신문을 통해 꾸준히 홍보한 덕에 대부분 떠나고 2만 명 남짓한 백성들이 왜군이 점령한 도성에 남아서 살고 있었다.
이들은 낮에 성문이 열리면 밖에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었다. 일부 백성들은 누가 지배자가 되든 상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그래서 조선 조정에서 안 좋은 시선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간혹 왜장들에게 뇌물이나 딸을 바치고 경기감사 등 관직을 얻은 다음 행세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성을 탈환한 다음 이런 부역자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했다. 그러나 부역자라는 거짓 밀고에 당할 불쌍한 백성들의 피해가 우려됐다.
그런데 평양성이 명군에 의해 점령되고 한성이 조선군에 포위되고 나서 상황이 급변했다. 한성 주민들이 성 밖의 조선군과 내통하지 않는지 왜군의 의심을 사게 된 것이다.
한성에 남은 조선인들은 처음부터 조선 조정과 왜군 양쪽으로부터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성 탈환을 앞두고 조선과 일본 양쪽이 서로 도성 백성들을 상대로 공작을 치열하게 벌였다. 그 와중에 도성의 백성들이 반대편으로부터 더욱 의심을 사게 되었다. 결과는 사흘 전 왜군에 의한 도성 백성들의 학살이었다.
“어흐흑!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며칠만 더 빨리 오셨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잠시 시간이 흐르자 그 동안 도성에 살면서도 간신히 학살을 피한 백성들이 몰려 나왔다. 며칠 전만 해도 얼마든지 한성을 떠날 수 있었음에도 불행의 책임을 일단 군대에 떠넘기는 꼴이 좀 얄미웠다. 이민호가 갓을 쓴 노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요?”
“왜적들이 지난 사흘 동안 도성에 남아있는 조선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집을 불태웠습니다.”
“그 동안 도망이라도 갈 것이지 왜 남아 있었소?”
이민호는 사람들이 답답하게 느껴져 몹시 짜증이 났다. 잠시 시골로 피난 가거나 하다못해 고산국으로 몸을 피했다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돌아와도 됐을 텐데, 괜히 고집 피우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왜병이 야만인이라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했습니다. 이제 와서 후회됩니다. 도성은 완전히 탈환했는지요?”
“아직은 아니오. 천군이 동대문을 함락하기 직전이니 곧 도성을 탈환할 것이오. 나는 도성 탈환을 천군에 맡기고 잠시 물러설 것이오. 그러니 잘 숨어 있으시오.”
“대감! 물러서지 말아주십시오! 명나라 군대가 조선인의 목을 베고 머리를 밀어 왜병의 수급으로 위장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명군이 조선인의 목을 베어 전공으로 삼았다는 것은 실록 1593년 2월 20일자에도 언급된 이야기였다. 명군에서 북병의 주력인 기병 중에서도 여진족 출신이 특히 문제라서 평안도에서 인적이 으슥한 곳에서 홀로 지나가는 조선인을 공격해 목을 벤 다음 머리카락을 밀어 왜병으로 둔갑시킨다는 이야기였다. 이 문제로 북병과 남병이 서로 비난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그것도 위험하지만 도성에 있었다고 하면 부역자로 몰려 벌을 받을 수 있소. 어서 왜병이 없는 곳으로 가시오.”
“대감! 저희들은 이미 죄를 지은 몸입니다. 저희들이 고산국으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스스로 고산국 백성이 되겠다는 말에 이민호가 솔깃했다. 그러나 조선 조정과 협정이나 조약을 체결한 적은 없지만 관행으로 정한 것이 있으니 함부로 백성들을 데려갈 수는 없었다.
“만약 조선에 소유한 땅이 있으면 이민 갈 수 없소.”
“한성이 지옥으로 변했고 땅문서나 호적이 사라졌는데 어떻게 증명하겠습니까? 잠시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저희들을 보호해주십시오.”
“어휴! 그렇게 하시오. 고산국에 갈 사람은 마포나루에 모이시오. 전쟁이 끝나는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든 조선에 돌아와도 좋소.”
이민호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허락했다. 나중에 숫자를 세어 보니 학살 와중에도 한성 백성이 1만 명이나 살아남았다. 그 중에서 조선 조정의 보복이나 부역자라고 비난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8천여 명이 고산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전쟁 중에도 매달 5천 명 이하에 불과했던 이민자 수가 확 늘었다.
고산국으로 가겠다는 8천여 명 중에서 식자층에 속한 양반과 서얼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농민과 상인, 장인들이었다. 고관대작과 끈이 연결된 양반들은 웬만하면 조선에 다 남았고, 생활의 기반이 사라진 잔반과 서출, 나머지 서민들이 고산국 행을 택했다.
이민호는 이들을 안전한 마포로 보냈다. 해동상단의 중형 외륜선들이 이들을 태우고 남쪽으로 향했다.
“제3 보병영에서 전령이오!”
용산창으로 보낸 승마보병 3영에서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전령은 충청수군 판옥선들이 한강에 들어와 용산창에 포격을 하다가 승마보병의 접근을 발견한 다음 멈췄다고 보고했다. 용산창 주변 11곳에 토루를 쌓아 지키던 왜병들은 이미 용산창을 포기하고 한성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또한 용산창에 쌀이 5천 석밖에 안 남았다고 보고했다.
“5천 석? 쳇! 불태우고 퇴각해.”
“예? 용산창을 불태우라는 말씀입니까? 주변에 왜적이 없습니다.”
“그럼 겨우 5천 석을 승마보병 천 명이 지키려고? 병력 낭비야. 수레도 없고 한성에 왜군이 언제 공격해올지도 모르는데 지금 당장 쌀을 옮길 수도 없잖아?”
“알겠습니다. 3영장에게 불태우고 귀환하라는 전하의 명을 전하겠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이 된 전령이 군례를 올리고 다시 말에 올랐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쌀 5천 석을 지키는 승마보병을 위기에 빠뜨리느니 차라리 불태워버리고 전술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게 나았다.
“대감! 대첩을 축하드립니다!”
“오오! 권 사상(使相)! 오늘 아주 수고하셨소이다. 수급은 많이 거뒀습니까?”
전라순찰사 권율이 기병 천여기와 함께 서대문에 도착했다. 환갑 다 되어가는 노인이 하루 종일 전투를 지휘하고도 힘이 넘쳐났다.
“거의 8천 급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최소 5천 급은 대감께서 가져가야 하실 것 같습니다만.”
“수급을 벤 쪽에서 다 가지시오.”
이민호가 쿨하게 선언하자 권율이 어이가 없는지 혀를 내둘렀다. 줘도 이민호가 안 받는다는 것을 아는 권율이라 강하게 권유하지 못했다.
“오늘 싸움에 참전한 병사들 전원을 6품관으로 만들라는 말씀이십니까? 저번에 경상도 진주에서 정병이나 보인 신분의 6품관이 수천 명이 나왔습니다. 보병이나 수군 병졸 신분인 당상관도 수십 명이라죠. 아! 이번에는 함경도에서도 그랬습니다. 사실은 모두 대감의 공이지요.”
“그럼 전라도 군사들에게도 똑같이 하지요. 다음에는 충청도군 전체를 양반으로 만들어줘야겠군요.”
“하하하! 대감이 말씀하시니 농담 같지 않습니다. 아차! 오늘 전투에 참가한 병졸들 대부분이 저번에 이치와 웅치, 금산성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그러니 조정에 수급을 바치면 당상관이 수십이 아니라 수천 단위로 나올 것 같습니다.”
“큭큭! 수급으로 전공을 삼으니 이 모양이 되는 게지요.”
원래 역사에서 군량미를 바치고 공명첩을 받아 양반이 된 자들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군공으로 신분이 상승한 자들이 많았다. 왜병의 수급 하나는 등과, 2급은 6품관, 3급을 바치면 당상관으로 올려주고, 왜장의 수급을 바치면 가선대부에 제수한다는 포상 규정은 아직도 실시 중이었다.
그런데 포상 대상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조정에서 약속을 지켜야 하니 조만간 당상관들이 포졸을 하고 판옥선의 노를 저어야 할 판이었다.
“아! 지금 천군이 동대문에서 전투 중이오.”
“왜군이 도성에 남아있었습니까? 잘됐습니다. 바로 도우러 가야겠습니다.”
권율이 말에 오르자 이민호가 다급히 말렸다.
“권 사상! 사상이 이끄는 병력이 도성에 이미 들어왔으니 궁성을 탈환하는 게 우선일 것 같지 않소?”
“그건 대감께서 하시지 그러십니까? 서대문을 깨고 한성에 가장 먼저 들어온 전공을 대감께서 세우셨으니 화룡점정을 마저 하시지요.”
“그래도 이런 상징적인 전공은 조선 관군이 세우는 편이 낫지 않겠소? 주상전하께서도 기뻐하실 것 같소.”
물론 선조 임금 입장에서는 조선군이 아닌 명군이 도성을 탈환하고 궁궐에도 먼저 도착하는 편이 권력 강화에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여론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생각이었고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
“대감께서는 사려가 깊으시군요. 그건 차마 사양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전공을 차지하기 민망하니 저를 도와주는 장수에게 시키겠습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