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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205화 (154/1,000)

00205  28. 출병  =========================================================================

순무는 지역별로 관리와 고산국 농부, 고구마 순과 온상을 배분했다. 그리고 부역에 동원된 해안지방 백성들에게 수레에 쌀을 싣도록 지시한 다음 관병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여러 지역으로 서둘러 출발시켰다.

고구마 순을 심는 것은 간단하고 재배기간도 짧으니 잘하면 기근이 금방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이 부족한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 문제였다. 식량은 고산국에 많았고, 부족하면 안남이나 버마, 섬라 등에서 실어올 수 있었다. 이것이 푸저우에 도착한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 복건성으로 쌀을 하루에 수만 석씩 실어와도 소용이 없었다. 지금도 해안 도시에는 쌀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지만 산간지방에서는 식량이 없어 하루에 수백 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바로 수송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순무! 산간지방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없거나 수레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라니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물자수송은 대부분 수로를 이용했습니다만, 가뭄이 들면서 수로가 토막토막 끊겼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도로를 닦고 있습니다.”

복건성은 흔히 하는 말처럼 산 8할, 물 1할, 논 1할이었는데 물이 사라지니 산간지방과 연결되는 수송로가 끊겨버렸다. 복건성은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 지금까지 수송을 오직 수로에만 의존했다가 오랜만의 가뭄에 이렇게 사회기반 시설인 수로가 마비된 탓에 기근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었다.

가뭄에 수로가 막혔으니 육로를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몇 십 년 동안 거의 이용하지 않은 육상 도로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어쩐지 식량을 운반하는 수레 한 대마다 지나치게 많은 백성들이 할당됐다 했더니 바로 이들이 도로를 개척할 인원이었다. 그래도 길을 연결할 수 없으면 백성들이 쌀을 지고 산간지방으로 걸어서 옮겨야 했다.

복건성이 기근에서 벗어나려면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해 길을 닦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수로와 달리 육로는 처음부터 수레가 다닐 만한 길이 아니라서 도로 확장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사람이 이고지고 식량을 나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복건성에는 말이 부족해 말을 동원할 수도 없었다.

이민호는 사람이 식량을 져서 옮기는 거리 한계를 기억하려다가 포기했다. 식량을 옮기는 사람도 먹어야 하니 육상 수송의 한계는 명백했고 의외로 거리가 짧았다. 복건성의 해안지대에서 가장 깊은 산악지대까지 거리가 200km 정도였으니 험악한 산길의 도로 사정을 감안하면 인력 수송의 한계 바깥에 위치했다. 산골 깊은 곳에 사는 복건성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으려면 스스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해야 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평상시에 미리 육로도 닦아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설마 복건성에서 물길이 막힐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돈이 없어서 도로를 확장하기 어려웠다. 백성을 부역에 동원하니 인력은 거의 무제한 동원할 수 있어도 도로공사에 필요한 자재와 도구를 사들이는 데에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순무는 기근 초기에 식량을 구입하느라 예산은 물론 주변에서 빌린 돈도 이미 모두 사용하고 난 뒤였다.

“혹시 몰라서 백은 백만 냥을 가져왔소. 안 갚아도 좋으니 급히 기근을 구제하는데 쓰시오.”

“으! 으! 감사히 받겠습니다. 주애공 대인께서 복 받으실 겁니다. 복건 순무부에서 대대로 갚도록 하겠습니다.”

복건 순무 허부원이 자존심 때문에 버티려다가 어쩔 수 없이 받겠다고 했다. 지방관 입장에서 백성들을 굶겨 죽이는 것보다 더 자존심 상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순무가 개인적인 치부를 할 사람은 아닌 것으로 봤다. 역시나 기근을 해소한 다음 순무가 황제에게 주문을 올릴 때 주애공에게 백만 냥을 빌렸고, 장기간에 걸쳐 갚겠다고 명시했다.

해병들이 은이 실린 상자를 순무부에 날랐다. 백만 냥이면 37.5톤이니 은을 옮기는 것도 큰일이었다.

순무는 돈이 생기면 시급히 쓸 곳을 미리 생각해뒀는지 수령 확인을 하기 전부터 관리들을 내보내 몇 가지를 구입하도록 했다. 주로 건설용 장비와 수레의 금속제 부속이었다.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무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제야 간신히 숨통이 트였는지 순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민호는 순무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기근이 조만간 해소될 것으로 믿었다. 기근 해소에 가장 시급한 것은 고구마나 식량이 아니라 어이없게도 돈이었다.

이민호가 직접 현지에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히 복건성에 식량이 부족하고, 고구마로 기근을 해소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도로가 막혀 산간지방으로 식량을 수송하기 어렵다는 정보는 현장에서 직접 겪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그런데 순무가 이민호에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

“황공한 말씀이지만 주애공 대인께서 복건성의 기근을 이용해 백성을 빼돌리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물론 말하기 좋아하는 썩은 선비들이 하는 소리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복건 순무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 의도를 들킨 이민호가 뜨끔했다. 그러나 복건 백성들을 고산국에 많이 정착시켰다면 그나마 모르겠는데 겨우 몇 십 명 정착시키고 그런 욕을 먹자니 억울했다.

“고산국에서 일하던 복건성 주민이 수만 명이었소. 계약기간이 남았는데도 다들 식량을 이고지고 복건성으로 돌아오지 않았소? 물론 고산국에 남겠다면 말리지는 않았소만, 그런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아요.”

“원래 거주지를 벗어난 백성, 특히 나라 밖으로 도망간 자들을 용서하지 않는 법률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산국은 황제폐하의 은혜가 미치는 땅이니 임금노동이나 임시 거주에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누가 뭐라 해도 주애공 대인께서는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소.”

“하지만 보갑제가 시행되는 이곳 복건에서는......”

“잠깐! 이갑제가 아니라 보갑제라고요?”

이민호가 눈을 크게 떴다. 보갑제는 청나라의 향촌자치제도이고 이갑제가 명나라의 향촌자치제도로 알고 있었다. 이번에 해남도에 갔을 때에도 백성들이 이갑제를 통해 관아에 통제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청나라의 보갑제라니, 어이가 없었다.

“예. 다른 지방과 달리 복건성에서는 보갑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만약 고산국으로 임노동 일을 떠난 자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 보나 갑에서 노동자의 남은 가족과 친척에게 연대책임을 지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모든 보와 갑이 제 지시를 따르는지는 의문입니다. 아마도 고산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결국 복건성으로 돌아와야 가족이 피해를 입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랬군요. 잘 알겠소. 나는 이만 배로 돌아가겠소.”

이런 식이라면 고산국에서 일하다가 복건성의 고향으로 돌아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이었다. 고향에 남은 가족과 친척들이 어떤 고생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극소수만 고산국에 남은 것이다.

이민호가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전선으로 돌아갔다. 순무가 황망히 허리를 굽히며 이민호를 뒤따라 기함까지 배웅했다.

이민호는 고산국에서 일하던 복건성 노동자들이 고산국에 정착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음식문화 등이 다른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보갑제의 강력한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 동안 명나라 향촌사회의 자치제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던 이민호는 속이 무척이나 쓰렸다.

명나라 개국 초부터 주원장이 시행한 이갑제는 부유한 집 1호와 보통 집 10호를 묶어 갑이라 하고 10갑을 모아 리(里)로 묶어 징세와 부역을 부과하는 인위적인 행정단위였다. 이갑제 안에서 누군가 이탈하면 나머지 집에서 공동으로 세금과 요역을 부담해야 했다.

그러나 향토사회의 특권 지주층인 신사층이 확대되고 이들이 갖가지 방식으로 세역에서 빠지면서 누구에게나 동등한 요역을 부과하는 균분균역이 핵심인 이갑제는 점차 붕괴됐다. 방위비와 국가재정 부담이 초기보다 훨씬 늘어난 명나라가 세금인상보다는 백성들을 부역에 동원하는 식으로 정책을 전환하면서 더 이상 부역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농민층에서 유민이 대량 발생했다. 마치 조선에서 전세는 낮은데 공납 부담이 커서 살기 어려워진 것과 비슷했다.

나중에 장거정 이후 모든 세금을 은으로 내는 일조편법이 시행되고 현 단위로 부역을 부과하면서 이갑제의 존재 가치는 사라졌다. 몇 가지 변화를 거쳐 명나라 후기에는 복건성을 중심으로 향약과 보갑제가 지방관들의 주도로 퍼지게 되었다.

그런데 향약과 보갑제는 향토사회의 연대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나중에 이민호가 알아보니까 역시나 고산국에 임노동자로 온 복건성 주민들이 만약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가족들은 물론 같은 보나 갑에 속한 사람들까지 연좌 처벌당하거나 큰 벌금을 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왜요, 주인님?”

이민호가 침대에 앉아 있는데 왕명명이 무릎으로 기어 올라왔다. 불쌍해서 기함 함대사령관의 침실에서 하루 재웠더니 왕명명이 이곳을 자기 방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 짝!

“아~”

얄미워서 엉덩이를 살짝 내리치니까 왕명명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촉을 즐겼다. 큰일 났다. 왕명명은 처녀 주제에 이런 몸이 되어 버렸다.

이민호가 복건성 백성들을 빼돌릴 의도를 왕명명에게 확실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묻지도 못했다. 왕명명이 이민호가 시킨 일은 잘했다. 분명히 이민호의 지시대로 복건성에서 노동자 7만을 모집해 고산국 곳곳을 개발할 수 있었다. 고산국의 황무지를 개발하고 농지를 정리하고 도로를 닦은 것 등은 모두 그들 노동자들의 힘이었다.

“고산국에서 일하던 복건성 백성들이 계약기간이 끝나거나 그 전에도 거의 남김없이 고향에 돌아갔잖아? 안 돌아가면 그 가족이나 친척들이 보갑제에 의해 연좌제를 진다며?”

“예. 그러니 복건 순무가 안심하고 노동자들을 보내줬지요. 설마 몰랐던 거여요? 보고서에 분명히 언급했는데요.”

“나는 보고서 요약본 말고는 안 보잖아. 다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

실제 역사에서 네덜란드가 대만을 개발하면서 복건성 주민들을 임노동자로 고용하고, 이들이 대만에 눌러앉은 것은 복건성의 대기근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때는 명나라 말기에 지방행정이 혼란에 빠졌던 시기였다. 농민에 대한 통제가 거의 이루어지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에 주인님은 분명히 복건성 농민들을 고산국에 정착시키고 싶다고 하셨어요.”

“내가 그랬나?”

“예. 보갑제가 있다지만 무력화시킬 방법은 많아요. 다만 지금은 기근 중이니까 굳이 지금은 복건성 유민들을 유인할 필요가 없어서 내버려둔 거여요.”

기억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보갑제 이야기는 몰랐지만 왕명명은 분명히 복건성의 인구가 고산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복건성 관리들이 어느 정도 눈감아줄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어차피 명초 이래 인구가 꾸준히 줄어든 곳이고,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평가에는 누구든 동의하고 있으니 억지로 이민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 그럼 황제 눈치 안 보고 적당한 인원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유인할 수 없겠어?”

“방법이야 많아요. 복건 순무에게 허락을 받고 복건성 항구에서 농지를 잃은 유민을 공개적으로 일정 인원을 모집한다거나, 보갑제에서 빠지는 값을 대신 치러준다거나.”

“아하! 그렇구나. 진작 물어볼 걸 그랬다.”

복건성을 가장 잘 아는 왕명명을 이민호가 활용하지 못한 탓이었다. 고산국이 병력은 부족해도 임노동자들 덕택에 노동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니 이민호가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절실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기근이 심하니까 그런 시도는 절대 하지 마세요.”

“왜?”

“복건성 백성 전체가 한꺼번에 고산국에 몰려들 수가 있으니까요.”

“끙! 그럴 수도 있겠구나.”

어쨌든 인구 부족 문제는 대충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선에서 이민이 꾸준히 증가하고, 만약 묘족과 대화가 잘 되면 유랑하는 묘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을 상당수 유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지역에 비해 고산국의 인구증가율은 극히 높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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