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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197화 (146/1,000)

00197  27. 순행  =========================================================================

이민호는 주상아와 함께 2층 숙소로 올라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주상아 공주가 이민호의 품에 안겨들었다. 지금까지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했던 공주의 표정이 지금은 극도의 흥분으로 바뀌었다.

“전하! 제가 뭐라고 이렇게 귀한 보석을 주셨어요?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상아가 이민호의 품에 안긴 채 펑펑 울었다. 백은 20만 냥 이상이라는 포르투갈 상인들의 평가를 믿는 모양이었다. 루비가 가짜라고 이민호가 말한 적이 없으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루비는 가짜가 아닌 이 시대 기준으로는 진짜였다. 다만 정확히 구분할 경우 루비가 아닌 스피넬이었고, 천연 보석이 아닌 인공 보석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비싼 것을 제가 갖고 있을 수는 없어요. 전하께서 여러 가지 일을 하시는데 자금으로 써주시면 좋겠어요.”

“아니오. 공주 그대는 이것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니 갖고 계시오. 그 동안 선물 같은 것을 주지 못해서 섭섭했을 테니 이것으로 보상받는다 생각하시오.”

“아무 것도 아닌 저를 아껴주시는 전하께 감사해요. 저는 전하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어요.”

주상아가 더욱 감동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래서 겨우 며칠 만에 인공 루비를 만들어낸 이민호는 속으로 찔끔했다. 진실을 말하면 실망할 것 같아 묻어두기로 했다 그러나 결정 인상법을 위한 회전장치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만들어 완성까지 거의 6개월 가까이 걸렸다.

그날 밤 공주가 활짝 몸을 열어 이민호의 몸을 한껏 받아들였다. 평소와 달리 공주가 적극적으로 이민호의 온몸에 입맞춤을 퍼부었다. 이민호는 좋긴 한데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아무래도 평소의 수동적인 공주가 더 나았던 것 같았다.

역시나 일을 마친 다음 공주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민호가 자꾸 장난으로 눈을 맞추려고 했으나 공주가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공주가 이렇게 뜨거운 여자인 줄 몰랐소.”

“아니에요. 저 음탕한 여자 절대 아니에요.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나 봐요.”

주상아가 얼굴이 빨개지며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이민호가 다시 불끈 힘을 냈다.

이민호의 몸 아래에서 주상아가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헐떡이고 있었다. 평소에 운동을 꾸준히 해서 마치 TV에서 보는 유명 모델이나 연예인 같은 몸매였다. 모델이나 연예인들을 실제로 보면 비쩍 말랐다던데 주상아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건강한 몸매였다.

얼굴은 이민호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다. 해서여진 예허부 공주의 고모보다 주상아가 이민호의 취향에 더 맞았다.

“공주. 혹시 말이오.”

공주가 정신을 못 차리기에 이민호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좀 잔인한 것 같지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바로 그 자리에서 알아내고 싶었다.

“명나라 황실에서도 공주들에게 주안술 비슷한 것을 가르치오? 그러니까 용모를 가꾸기 위한 황실의 비법이 있는지 물어보는 거요.”

“네? 네.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 늙은 태감이 매일 얼굴 안마를 해줬어요. 화로에 담은 뜨거운 모래에 넣었다가 기름을 바른 손으로 제 얼굴을 살살 만졌어요. 저는 그게 너무 싫었지만 모후께서는 제가 참아야 커서 예뻐진다고 하셨어요.”

공주의 설명을 이민호는 경락 마사지 비슷한 것으로 이해했다. 북경의 황실에서 본 공주, 군주, 현주들이 제각각 다른 얼굴이면서도 예뻤던 것이 조금 이해가 갔다. 해서여진에서 쓰는 방법은 붕어빵 제조와 비슷해서 거부감이 들었지만 명나라 황실의 비법은 각자의 개성을 살리므로 이민호의 허용 범위 안에 들었다.

궁금증을 해결한 이민호는 공주를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을 활용했다. 예전 생에서 야동을 봐둔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시장 관사는 바로크 건축양식의 석조건물이었다. 마치 베르사유 궁전처럼 건물 안에 목욕탕은 물론 화장실도 없었다. 아무리 신분이 낮은 궁녀의 침실이라도 화장실 겸 목욕탕이 기본으로 딸린 고산국 궁궐과 전혀 달랐다. 시녀들이 물수건으로 두 사람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이민호가 공주에게 팔베개를 해줬다.

“보석도 괜찮은 무역상품이긴 한데, 구할 곳이 없구려.”

“보석은 섬라나 버마에서 많이 나요. 조공품이 죄다 보석일 때가 많았어요.”

“그 버마와 섬라가 조만간 대판 싸움이 붙을 모양이오. 대량으로 구입하고 싶은데 지금은 불가능할 것 같소.”

이민호는 같은 품질의 보석이라도 색깔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을 이해는 하지만 인정하지는 못했다. 열처리를 잘하면 보석의 색이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인조보석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더라도 인기 없는 색깔의 저렴한 보석을 최고급 비둘기 핏빛으로 바꿀 능력이 있었고, 그 능력을 활용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같은 품질이더라도 색깔에 따라 수십 배나 가격 차이가 나는 보석 시장을 노리기로 했다.

“다른 나라에서 좋아하는 보석은 모르겠지만 명나라에 팔려면 비취가 가장 좋을 거여요.”

“엉? 맞소!”

전통적으로 동양인들에게 행운을 불러온다는 보석이 옥이었다. 재물과 운수를 중시하는 중국인들은 특히 더 좋아했다.

경옥의 사용은 17세기 들어서 시작됐지만 연옥은 고대부터 아시아에서 유통됐다. 경옥과 연옥을 합쳐 비취라 불렀다. 2010년 중국이 미얀마에서 수입한 비취의 수입 총액이 1조 2천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 당시는 진주가 더 희귀했으니 가격도 훨씬 비쌌다. 해남도에서 진주양식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자금 문제로부터 해방될 것 같았다. 바로 그 진주 때문에 해남도로 가고 있었다.

이민호는 해남도와 버마를 중심으로 보석 교역을 고려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리랑카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어떤 보석이 나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다이아몬드가 대량으로 산출되는 것이 확실했다. 영국과 네덜란드 해적을 막기 위한 거점과 중간 기항지들이 죄다 보석 산지라는 사실을 알고 이민호가 실소를 지었다.

다음 날 이민호는 주상아 공주와 함께 마카오대학교를 방문했다. 고산국으로부터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만큼 강의실과 연구시설, 기숙사와 식당은 아주 깔끔했다. 대학교 주변 민가를 사들여 밀어버리고 유럽식의 교수용 숙소를 건축했는데 선교사들은 청렴의무 때문에 쓰지 않았다. 그래서 기혼자인 유학생들에게 개방해줬다.

이민호는 연구기금을 듬뿍 기부하고 교수진에게 은 서른 냥씩, 고산국 유학생들에게 은 열 냥씩 하사하며 격려했다. 교수로 일하는 선교사들이 기념식수를 하라고 권해서 커다란 나무를 교수대표, 학생대표와 함께 대학교 교정에 심었다.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성당 두 곳과 빈민구호소에도 헌금을 많이 했다. 그리고 선착장에 모인 수많은 마카오 주민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배에 올랐다. 마카오에 오면서 상품은 하나도 실어오지 않았지만 마카오의 포르투갈 상인들은 언제든 고산국에 갈 수 있으니 상관없었다.

마카오에 정박했던 모든 범선들이 전선 세 척을 100리 넘게 따라오면서 배웅했다. 아마도 포르투갈 국왕을 겸하는 에스파냐 국왕도 이런 열렬한 환송은 받지 못할 것 같았다.

그 날 저녁에 해남도 남단 삼아에 도착했다. 옥남이 주애공부뿐만 아니라 삼아 관아에서 일하는 명나라 관리들을 데리고 선착장에 마중 나와 있었다. 옥남이 이민호에게 주애공부 공작 관사라고 안내하는데, 해남도에서 르네상스 양식의 2층 석조 건물을 보게 될 줄 이민호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겨우 몇 달 만에 건물을 후딱 지었구나. 공국에서 설계도를 따로 받았나?”

“여송에서 궁전을 지을 때 설계도를 베껴두었습니다.”

건물은 아주 깨끗하고 방은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명백히 주애공 이민호만을 위해 만든 건물이었다. 옥남이 널따란 이민호의 거주 공간 외에도 주상아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호위대들에게 본관의 방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별관에는 전선을 타고 온 수병들과 해병들의 숙소로 정해주었다.

정원에는 아열대의 나무들이 적당히 배치돼 있고 그 너머로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닷물이 자동으로 유입되고 빠져 나가는 수영장까지 갖춰져 있어서 이민호는 조금 놀랐다. 수영장은 궁궐 후원에 있는 것과 똑같았다.

“너 혹시 궁궐 후원에 들어와 본 적이 있어?”

“아닙니다. 호위대가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본궁에 갔을 때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후원의 구조를 봐두었습니다.”

“간첩 같은 놈!”

옥남의 주둥이가 댓 발이나 튀어나왔다.

“제가 가진 지식을 오로지 국왕전하를 위해 썼지 않습니까?”

“오냐. 봐주마.”

저녁 식사도 아주 훌륭했다. 옥남이 주애공부를 제대로 다스리는 게 아니라 이민호를 위한 접대 준비만 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일은 제대로 하고 있어?”

“묘족의 거주지를 약간 옮겼습니다. 려족이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주애공부로 향하는 모든 길을 묘족의 주거지로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너는 묘족을 믿어?”

“관군보다는 훨씬 믿음직합니다. 전하께서도 묘족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전하의 이름으로 운영하는 은점이 운남성의 묘족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시킨 일은 확실히 잘 하고, 안 시킨 일도 찾아서 하는 옥남은 분명 인재였다. 꼬박꼬박 보고도 잘했다. 역적의 아들만 아니라면 훨씬 중요한 일을 맡길 수도 있었을 텐데, 이민호는 속으로 안타까웠다. 물론 특유의 반골정신은 여전했다.

“만약 묘족이 반란을 일으키면 어떡할래?”

“여긴 관군이 몇 없습니다. 그럼 죽어야죠.”

“몇 년 안에 사천성이나 귀주성에서 묘족이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해남도의 묘족이 영향을 받지 말란 법이 없어.”

양응룡의 반란은 임진왜란, 발배의 난과 함께 만력 3정에 들어간다. 이 반란에 묘족이 적극 가담해서 묘족의 난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네 생각은 어때?”

“사병을 약간 둘까 합니다. 려족과 묘족, 한족 가정(家丁)들을 일정 숫자로 고용해 반란이 일어날 때마다 위험한 종족은 빼고 출동시키면 어떻겠습니까?”

“혹시 해남검파라는 무술 유파는 없어?”

“한족이 운영하는 무술 도장은 몇 개 있습니다만, 이름이 다들 다르던데요?”

역시나 무협지에 등장하는 해남검파는 해남도에 없었다. 물론 해남도의 무술 도장들을 다 합해서 해남검파라고 억지로 이름 붙일 수는 있었다.

“지주, 지현들이 언제 올 수 있지?”

“사흘 후에 주애공부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관리들이 진사 출신이라 다들 만만치 않습니다.”

해남도에 3주 22현이 있으니 관리들이 꽤 많이 올 것 같았다.

다음 날 오전에 전선 한 척을 띄워 건너편 작은 섬으로 향했다. 어부들에게 돈을 주고 백패 진주조개를 몇 십 개 구했다. 이민호는 대야에 가득 담긴 진주조개를 하나씩 꺼내 주사기 바늘을 통해 살 안에 핵을 심었다.

“전하! 혹시 조개에 비료를 주는 건가요?”

“컥!”

이민호가 주사기를 이용해 차나무 줄기에 액체 비료를 직접 주입한 적이 있었다. 주상아는 그때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주사기를 통해 사람에게 약을 투여하는 본래 목적으로는 아직 한 번도 써먹지를 못했다.

“진주조개 양식을 해볼까 하오. 조갯살 안에 작은 이물질을 심었소. 조개가 살면서 그 이물질을 중심으로 진주층이 커져서 진주가 만들어질 것이오. 그러나 상처 때문에 절반 정도는 죽을 수 있소.”

“저도 해보고 싶어요.”

“조갯살이 두툼한 곳에 찔러 넣고 주사기 뒤쪽을 누르시오. 이렇게.”

주사기를 들고 설명하고 보니 밤일을 연상시켜서 이상했다. 결국 주상아와 시녀들, 민희, 민영과 호위대들까지 주사기를 하나씩 들고 일을 마쳤다.

숙련자가 해야 진주조개의 생존율이 높을 텐데 다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렀다. 그리고 진주 핵을 여러 개 심어 진주 여러 개를 한꺼번에 채취할 수도 있지만 시험용으로 하나씩만 심었다.

핵을 심은 조개를 철망에 넣어 물 흐름이 좋은 곳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매달아두었다. 폐사율을 확인하고 시간이 가면서 진주층이 얼마씩이나 성장하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민호가 계속 붙어있을 수 없다는 고민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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