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86화 (135/1,000)

00186  26. 동해여진  =========================================================================

“좋은 이름이 생각나거든 언제든 제시하시오.”

“나라 이름은 천천히 정하시는 편이 나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민감한 문제라서 여쭙겠습니다. 전하께서는 혹시 이 땅을 조선 영토로 편입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여진 추장 아오지의 질문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다른 부족의 약탈에 시달리느라 항상 불안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자유로이 살아온 여진족들이었다. 보호가 절실히 필요했다면 벌써 조선에 귀화하고도 남았을 테니 아직 여진족으로 남은 사람들은 자유민으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여진족들은 이민호가 느슨한 통치를 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만약 세금을 많이 부과하고 조선처럼 군역이나 요역에 동원해 여진족들을 힘들게 할 경우 반란을 일으키거나 언제든 영토 밖으로 이주할 사람들이었다. 이민호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소? 조선은 국경선 지키기도 바쁘고, 명나라와 이익이 겹치는 이 지역에서 명나라를 거슬릴 생각이 전혀 없소. 두만강 건너편 땅은 조선에 공짜로 줘도 안 받을 테니 걱정 마시오. 혹시라도 본직이 이곳을 조선 영토로 넘길 것 같으면 반란을 일으켜서 독립하시오.”

“저희들이 어찌 감히 반란을 일으키겠습니까? 그리고 만에 하나 저희들이 독립하더라도 국가를 유지할 능력은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오지 추장은 안심하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니 다른 추장들도 나라를 세우는 문제에 있어서 쌍수를 들고 찬성했다.

“적이 침범해올 경우 여진족 백성들을 군사로 동원할 수는 있을 것이오. 이건 당연한 일이오. 그러나 세금을 낼 필요는 없소. 이 시장을 통해서 얻는 자금만으로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할 테니 말이오. 아 첨사도 시장에서 세금을 걷지 않는다 해서 불만이 없지요?”

“불만이라니 당치 않습니다. 시장에서 세금을 걷지 않더라도 저희들은 충분한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안전을 보장해주신 것만 해도 얼마 전까지 저희들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저 전하께서 이곳을 버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민호는 남는 물품을 아오지 첨사 등에게 넘겨 위탁판매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다른 여진 부족들에게서 매입한 말은 일정 숫자가 차면 경원부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나머지 모피나 진주는 수시로 배를 보내 고산국으로 가져가고 그 대신 농기구를 가져오기로 했다.

그러나 쌀과 소금은 여진족 전체에서 요구하는 양이 많아 앞으로도 꾸준히 넘겨줘야 할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영덕 어부 김 절충이 조선인이라 조정의 허락 없이 사사로이 무역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종의 꼼수로서 이민호의 명으로 쌀과 소금을 운송하는 역할만 맡았다.

경원부 동쪽의 이 좁은 벌판만 확고히 지킬 수 있다면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의 영역을 제외한 만주 전역을 손에 넣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물론 북쪽 평원이나 흑룡강 주변은 인구밀도가 극히 낮아 지키기 어렵지만 건주여진과 해서여진도 인구가 적어 넓은 영토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강성한 두 여진이 꾸준히 야인여진을 침공해 인구와 재산을 약탈하는 것은 경제적 동인 때문이었다. 만약 이민호가 이 욕구를 적당히 채워줄 수 있다면 건주여진과 해서여진은 더 이상 가난한 야인여진을 침공할 필요가 없었다.

야인여진 지역과 가까운 해서여진과는 동가공주를 통해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행됐다. 해서여진은 명나라와의 무역에서 밀려난 이후 이곳 시장이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민호의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건주여진에 밀린 해서여진은 참으로 불쌍한 형편에 처해 있었다.

“아 첨사! 내년 초에 조선에서 왜적을 몰아낸 다음 본격적으로 건국을 시작합시다. 동해여진 부족들을 결집시키고 흑룡강여진과 합세하면 더 이상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이 무시하지 못할 거요. 그렇지 않소?”

“그래도 힘 차이가 많이 날 것입니다. 저희들이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저희들은 앞으로도 그저 국왕전하만 믿겠사옵니다.”

야인여진은 수가 너무 적어 자기 지역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했다. 이런 판국에 야인여진에서 병력을 징발해 다른 곳에서 기마병으로 쓰기는 틀린 것 같았다.

만주에 사는 여진족을 다 합해도 인구가 겨우 50만에서 100만 이하였다. 성인 남자를 모두 군인으로 동원하더라도 10만을 절대 못 넘겼다. 야인여진 중에서도 동해여진이라면 그 중에서 또 다시 소수였다.

그러나 여진족이 뭉치면 막강한 기병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민호는 몽골인과 혼혈된 해서여진이나 건주여진이 아니라 흑수말갈의 후예인 야인여진을 여진족의 정통으로 보고 있었다. 금속제 화살촉과 갑옷을 지원해줄 수 있다면 적은 수로도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봤다.

“전하! 함경도 경내에 사는 번호(藩胡)를 유인하소서. 번호 추장들이 수시로 제게 사신을 보내 전하께 의중을 여쭤봐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흐음. 번호들의 숫자도 꽤 되는구려.”

이민호가 생각해 보니 함경도에 거주하는 여진족들의 숫자도 많아 물경 몇 만을 헤아렸다. 이들은 조선의 고을이나 진보 주변에서 보호를 받으며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기회가 되면 조선인 마을을 약탈하거나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해서 조선 조정의 큰 골칫거리였다.

1583년 일어난 니탕개의 난은 경원부의 번호들이 기마병 1만 이상, 적호의 병력까지 가담할 때는 최대 3만을 동원한 대규모 반란이었다. 평소에는 유순하다가도 여차하면 반란을 일으키는 번호는 조선 조정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들 때문에 국방에 소요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함경도에서 번호를 빼낸다면 조선 조정에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 분명했다.

“그들을 받아들이겠소. 아 첨사와 협의해서 두만강변이나 이곳 북쪽 적당히 빈 땅에 자리를 잡으라고 하시오. 그들에게도 무기와 농기구를 지원해주겠소. 하지만 만약 조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배반하거나 남의 부락을 약탈할 경우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 전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먹고 살 길을 마련해준다면 번호들이 어찌 위험한 약탈에 나서겠습니까?”

이후 두만강 주변에 살던 여진족들 중에서 함경도의 조선 영토에서 거주하던 번호들이 동쪽으로 대거 이동했다. 이민호는 이들에게 함경도를 절대 침범하지 말라는 약조를 받은 다음 철제 농기구와 화살촉을 대량으로 넘겨주었다.

시장 주변에 거주하면서 이민호의 영향력 밑으로 들어온 여진족 인구가 며칠 사이에 1만 이상이 추가로 불어났다. 그러나 아직 함경도 내에 사는 번호의 절반도 넘어오지 않았다. 봄이 되기 전에 이들도 모두 두만강을 넘어올 것으로 기대했다.

저녁에 여진족 추장들이 모여서 바로 그 자리에서 이민호를 국왕으로 추대했다. 참가한 여진족 추장들 모두가 국왕 만세를 불렀다. 정식 개국과 즉위식은 봄에 하기로 했다.

물건도 적당히 팔아서 장사를 접고 떠날까 하는데 시장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멀리서도 여진족들이 말을 몰고 와서 말과 갖가지 물건을 팔고 생필품을 사서 돌아갔다. 아직 이름이 붙지 않은 만주를 여진족 거주 지역이라 본다면, 시장이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두만강 동쪽은 물론 만주 전체에 거대한 경제적, 문화적 충격을 주고 있었다.

아오지 등 추장들이 번호의 이동을 이유로 요청하는 바람에 이민호는 어쩔 수 없이 며칠 더 머무르기로 했다. 함경도에서 살던 번호들은 조선말을 구사하는 자들이 많아서 이민호 입장에서 편했다. 가등청정이 지휘한 왜군을 섬멸한 것으로 번호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진 이민호가 나서면 번호 추장들이 설설 기었다.

이민호는 동해여진과 멀리 북쪽 흑룡강 지역에서 온 자들에게는 특별히 선물을 베풀어 호감을 사려고 노력했다. 철제 농기구나 무기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라 몇 가지 사소한 철제품만 선물로 받아도 다들 무척 기뻐했다.

선조실록 34년 2월 20일자 기사에는 1600년 노토부락과의 전투 때 포로로 잡힌 조선인 철장이 건주여진으로 가기 전까지는 건주여진에서도 도끼와 낫 등 철제품을 대량 생산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다. 여진족들 사이에 대장장이는 소수 있더라도 철광석에서 쇠를 뽑아내는 기술이 지난 세월 동안 실전됐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당시 철제 농기구는 여진 지역에서 매우 고가의 물품이었다.

“송화강변에 사는 작은 마을의 추장 마보타이와 여러 추장들이 국왕전하께 문안드립니다.”

“어서 오시오. 먼 길에 수고가 많으셨소.”

거래는 수하들에게 맡기고 이민호가 추장들을 불러 대화를 나눴다. 먼저 술 한 잔을 하사하자 추장들이 단번에 들이켰다. 어쩐지 조공무역 비슷하게 진행됐다.

“오는 길에 아오지 등을 만났는데 국왕전하께서 동해여진 땅에 나라를 세우신다고 들었습니다.”

“동해여진에는 작고 약한 마을들만 있어서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으로부터 보호해주려는 것이오. 북쪽으로 넓게 영토를 확장할 생각은 없으니 추장은 걱정 마시오.”

“동해여진 여러 마을들의 홍복입니다. 하오면 저희 송화강여진도 거두어주실 수는 없는지요? 국왕전하께서 하해와 같은 성은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기원하옵니다.”

이민호는 이곳에서 기반을 다진 다음 언젠가 북쪽 송화강 유역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가만히 있어도 해서여진과 건주여진에게 핍박받던 송화강 여진족들이 새로운 강자 밑에서 보호받기를 원했다.

“송화강여진은 흑룡강여진과 다른 사람들이오?”

“송화강이 흑룡강의 지류라서 분류하기에 따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만 송화강여진이 다수이옵니다. 그 북쪽으로는 사람이나 마을을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살지 않습니다. 혹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야만인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기도 합니다.”

야만인도 단계가 있었다. 조선에서는 여진족 전체를 야만인으로 봤고 명나라에서는 중국 문명이 전파된 정도에 따라 숙여진과 생여진으로 구분해 생여진을 야만인으로 봤다. 그러나 생여진에 속하는 송화강여진이 야만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 북쪽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너무 멀어서 본직이 군사를 보내 그대들을 보호해주지 못하오.”

“군사는 저희들이 운영하고 그저 국왕전하의 그림자 밑에 의지해 보호받길 청하옵니다.”

“이름만이라도 동해국에 속하길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런데 어째서 추장들이 딸을 바치는 것인지, 이민호는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곤란했다. 이민호가 거절하려 하자 민희와 민영이 나서서 받아들이라고 간청했다. 추장의 딸은 여진족 부족과 이민호 사이에 정치적 유대를 이어줄 뿐만 아니라 출신 지역을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정보원이 된다는 식으로 설득했다.

이민호는 어쩔 수 없이 화려한 여진족 전통 신부복을 차려입은 애들을 받아들였다. 다들 열두 살 언저리라서 졸지에 고아원 차리게 생겼다고 이민호가 한숨 쉬었다. 그러나 꼬마 신부들은 국왕전하에게 시집가게 됐다고 좋아했다.

송화강 추장 다섯 명의 딸들인 신부가 여덟 명에 그 여동생이나 조카 등 잉첩까지 합해서 24명이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시녀들은 돌려보냈다. 민희는 성인이 다 된 시녀들이 돌아가는 것을 아까워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도련님이 다 받아들여야지 어떡합니까?”

“계복아! 네가 여기 왕 할래? 신부들도 다 네가 데리고 살아라.”

계복이 움찔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신부들이 많아 마음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저는 능력 없어요, 도련님. 네 명만으로도 벅찹니다. 고산국에 돌아가면 밤이 무섭습니다.”

“나는 어떻겠냐!”

“궁궐에 돌아가시면 고루고루 성은을 내려주세요. 잘못하면 귀인들이 처녀로 늙어죽겠습니다.”

계복이 실실 웃으며 대꾸하자 이민호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그때 아오지 첨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알현을 청했다. 이민호는 무슨 큰일인가 하고 불렀다. 아오지는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누르하치를 만나고 나서 이번 편이 끝날 예정입니다.

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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