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2 26. 동해여진 =========================================================================
“싫다! 당장 싸우자니까 왜 자꾸 말을 걸어?”
“저기. 그럼 6대 4로 줄여주마. 너희들 몫이 6, 내가 4. 싫어? 그럼 7대 3. 그래도 싫다고? 그럼 판매액이 아니라 이익을 절반씩 나누자. 더 이상 양보 못해준다. 욕심은 그만 부려라!”
“누구 것을 갖고 네 마음대로 양보해줘? 어서 싸우자니까?”
“으음. 이게 아닌데.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봐라!”
노토와 계복이 티격태격 말다툼하는 사이 이민호가 추장 아오지를 불렀다. 민영은 보병총으로 노토를 조준하고 있었고, 민희는 호위대원들에게 방패를 들고 이민호 주변에 포진하도록 시켰다.
여진족의 활은 걱정할 필요 없었으나 여진족 기병들 사이에 조선인이 섞여 있다가 편전을 날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포로가 됐다가 여진족에 가담하거나 혹은 군역과 세금이 무거워 여진 지역으로 탈출한 함경도 백성들이 꽤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애기살이 이민호의 목이나 얼굴에 박힌다면 바로 끝장이었다.
“추장! 노토부락은 건주좌위 소속 아니오?”
“전하! 건주좌위니 우위니 하는 것은 지역적인 구분에 불과하고, 여진족은 어느 땅에 소속되는 법이 없습니다. 땅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진족을 명나라가 토지에 묶어두려는 헛된 시도에 불과합니다. 노토는 건주여진은 물론 후룬 4부에 속한 강맹한 예허부, 그리고 홀라온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확실히 소속된 것이 아니라면 박살내도 후환이 없다는 소리와 같았다. 실제 역사에서 함경도군이 노토부락을 토벌하고 난 뒤에 누르하치나 다른 부족에서 항의한 적은 없었다. 누르하치는 압록강을 넘어 조선 영토에서 산삼을 캐다가 조선군에게 잡혀죽은 여진족에 대해서는 꽤 오랫동안 항의했었다.
함경도를 자주 침공한 홀라온 또는 홀자온, 기록에 따라 홀온은 위키백과의 설명과 달리 야인여진 소속이 아니라 해서여진 후룬 4부 울라부의 다른 명칭이었다. 1593년 9월에 누르하치에게 잡혀 포로가 됐다고 선조실록에 기록된 훌라온 추장 부자태 혹은 부자탁고 또는 복장태는 울라부 패륵 부잔타이였다. 별명은 하질이인데 왼손잡이라는 뜻이었다.
“너희 기마병 중에는 만만한 야인여진이 많은 것 같구나. 야인여진에게 그럴듯한 옷을 입혀봤자 야인여진에 불과하다. 으하하!”
“나는 여진족 말은 한 마디도 못 알아듣는 조선인 출신이다. 저기 열댓 명 빼고는 대부분이 조선에서 태어났다. 신립 영감의 조카도 있다.”
계복이 두만강 주변 여진족에게 가장 끔찍한 이름을 내세우자 노토가 깜짝 놀랐다. 만 명 단위의 여진족 기병을 지휘하던 추장들만 골라서 화살 한 발로 보내버린 신립은 죽고 나서도 여진족에게 여전히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
“서, 설마! 온성의 신 영감은 그까짓 왜군과 싸우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신 영감이 전쟁에서 질 리가 없는데 수하들이 다 도망간 탓이겠지. 너희 기마병들도 전투가 시작되면 죄다 도망갈 것이다!”
“도망갈지는 싸워봐야 알지. 어쨌든, 지금 싸울 테냐, 아니면 물러설 테냐?”
“사람이 많은 시장 근처에서 싸우기는 좀 그렇지 않나? 적당히 평화롭게 넘어갈 방법은 많다. 잘 생각해봐라.”
계복이 계속 강하자 나오자 노토가 망설이는 듯했다. 건주여진 입장에서 야인여진이라면 수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도 자신이 있었지만, 조선인 기마병이라면 활이 문제였다.
실록에서 선조 임금은 조선군과 여진족이 가진 활의 품질과 성능 차이를 열 배 이상으로 보기도 했다. 물론 가장 좋은 흑각궁은 다른 활에 비해 우월하나 평균적인 병사들이 가진 활은 여진의 활보다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흑각궁이 대표적인 활이라 여진족들은 조선의 활을 겁냈다. 추장 노토도 조선군이 가진 활의 위력 때문에 섣불리 싸우자고 큰소리치지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 1600년 함경 북병사 이수일이 노토부락을 쳤을 때 여진족 전사들은 죄다 산으로 도망갔고 조선군이 마을을 파괴하는 동안 멀리서 지켜보며 그저 울부짖기만 했다.
“아오지 추장! 그런데 기병은 야인여진이 더 강하지 않소? 따뜻한 방에서 자는 노토부락이나 건주여진이 뭐가 무섭소?”
“건주여진이나 노토부락은 말 타는 솜씨는 좀 떨어지지만 제대로 만든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나오기 때문에 우리 야인여진이 상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힘을 합치지 못한 탓이 더 크겠지만 동원하는 병력 규모가 다릅니다. 저희 야인여진은 건주여진이나 노토부락이 발호하더라도 숨죽이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본직이 노토부락을 없애도 되겠소?”
“없애면 저희들이야 좋겠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럼 없애겠소.”
이민호는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1600년 초에 함경도 북병사 이수일이 노토부락에 대한 원정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전 1594년에 함경 북병사 정현룡이 영건보의 거추 역수를 토벌했다.
“야포, 쏴!”
이민호가 손을 젓자 토성에서 포탄 두 발이 여진족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노토부락 추장이 말과 함께 공중에 떠서 날아갔다.
- 콰쾅!
굉음이 울리고 강렬한 빛과 진동, 그리고 거센 바람에 여진족이 탄 말들이 일제히 놀라 날뛰었다. 여진족들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린 곳에는 움푹 팬 땅 주변에 갈가리 찢긴 말과 함께 추장 노토가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 있었다.
팔 다리가 떨어져 날아가고 몸통만 남아 사지가 위치한 구멍에서 시뻘건 피를 흘리는 노토를 보고 여진족들이 겁에 질렸다. 야포 사거리 안에 멋모르고 들어온 것이 잘못이었다.
추장이 죽었는데도 복수할 생각은 못하고 슬금슬금 물러나려는 노토부락 여진족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이들을 놓아주면 계속해서 함경도를 약탈할 것이기 때문이다. 계복이 이미 사격준비를 마치고 있던 기마병 300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쏴!”
- 타타탕! 펑!
해병들은 600명이 토성과 시장을 지키고 있었으나 교전에 참가할 기회가 아예 없었다. 계복이 이끄는 기마병 300명이 사격 몇 번을 가하고 야포가 다시 발포하자 노토부락의 기병 800기 중에서 대부분이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노토부락 여진족들은 겁에 질려서 화살 한 발 날리지 못했다. 동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이 벌벌 떨다가 이어서 죽어갈 뿐이었다.
뒤에 배치됐던 100기도 안 되는 노토부락 기마병들이 싸울 생각을 아예 접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형제고 부자지간이고 친구고 뭐고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여진족들이 탄 말에도 공포가 전염됐다. 유탄이 터지면서 말의 발목이 날아갔으나 말은 계속해서 한참을 뛰고 나서야 이미 죽은 주인과 함께 넘어졌다. 그 말은 다시 버둥거리며 일어나더니 등자에 주인의 발이 걸려서 끌려오든 말든 주인을 짓밟아가며 도망가려다가 결국 쓰러져 죽었다.
- 두두두~
고산국 기마병 300기가 추격에 나섰다. 뿔뿔이 흩어진 여진족들을 다 잡지는 못했으나 절반 이상을 섬멸할 수 있었다. 여진족 몇 명은 두만강을 넘어 조선 영토로 도망가려다가 얼음장이 깨지면서 강물에 빠져 죽었다.
추장과 주력 기마병을 잃은 노토부락의 앞날에는 몰락만이 예정돼 있었다. 노토부락의 세력 약화를 알아챈 주변 부락들이 노토부락을 내버려두지 않고 꼼꼼하게 약탈할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고 단 몇 분 만에 두만강 주변의 세력구도가 완전히 무너졌다.
“으으! 이런 전쟁은 생전 처음 구경합니다. 아니, 이렇게 짧은 시간에 노토의 정예 기마병을 몰살시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른 부락 여진족에게 말하면 믿지 못할 것입니다. 조선의 화포나 승자총통은 절대로 이렇게 강하지 않았습니다.”
이 추운 날에 추장 아오지가 진땀을 줄줄 흘렸다. 시장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근대식 전투를 구경하게 된 다른 여진족들도 기겁했다. 밤에 야습을 해서 고산국의 물건을 약탈할 계획을 세웠던 몇몇 여진족들은 미처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총격과 포격을 너무 심하게 가한 탓에 노획한 전마 중에서 멀쩡한 것은 300필 정도밖에 없었다. 나머지 전리품은 시장이 열린 지역의 여진족 마을 세 곳의 기마병들이 챙겨가도록 허락해주었다.
이들도 노토부락 기마병이 시장을 공격하면 싸움에 가세하려 했기 때문에 전리품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무기와 휴대용 군량 등 잡다한 부산물만 생각했던 이민호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고맙습니다, 전하! 저들이 입은 갑옷은 엄청난 재산입니다. 전마 값의 열 배 이상입니다!”
“그렇소? 잘 됐구려.”
이민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아까웠다. 그러나 추장 노토가 입은 갑옷이 갈기갈기 찢겨졌기에 기념품으로 쓸 만한 갑옷 하나 달라고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민호는 손해를 벌충하고 싶었다.
“본직이 이곳에 종종 들를 테니 이 지역을 확고히 지키도록 하시오. 아오지 추장에게는 고산국의 종3품 첨사, 다른 추장 두 분에게는 종4품 만호 직첩을 내리겠소.”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아오지 추장이 무릎을 꿇었고, 다른 추장들도 달려와 이민호에게 절을 했다. 엄청난 재산을 나눠줬으니 무료로 용역을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 여진족들에게도 앞으로 고산국을 위해 일하는 것이 이익이었다.
이런 이름뿐인 벼슬을 준다 해서 실질적인 의미는 별로 없었다. 이곳이 고산국 영토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누르하치도 명나라로부터 임기 10년의 도독 벼슬과 임기 3년의 용호장군 직함을 받았지만 잘만 명나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런 직첩을 받은 여진족 유력자들은 그것을 기반으로 여진족 사이에서 세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들에게 직첩은 중요한 문서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띄었다. 고산국 기마병이 강력하다는 소문이 나자 힘없는 야인여진에 속한 여진족들이 더욱 안심하고 시장에 찾아왔다.
며칠 후 멀리 예허부에서 몽골 말 3천 필을 몰고 근처를 지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런데 더 특이한 소식이 함께 따라왔다.
“동가 거거가 온다!”
“뭐야? 동가 공주님이 정말로 여길 온다고?”
이민호와 함께 말 200필을 거래하고 있던 야인여진의 늙은 추장이 모든 걸 내버려두고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동가가 온다는 북서쪽 방향으로 바람처럼 달려갔다. 뒷모습은 영락없이 미녀에게 반해 구혼하러 쫓아가는 청년이었다. 다른 여진족들 대부분이 그 추장과 마찬가지로 우르르 몰려가서 삽시간에 시장이 휑하니 비어버렸다.
“아오지 첨사! 동가가 누구요?”
“후룬 예허부의 공주입니다. 정식 이름은 예허나라 부시야마라입니다. 여진족 최고, 어쩌면 천하제일의 미녀입니다.”
“아! 저번에 들었소. 여자가 예쁘다고 해봐야 우리 민희, 민영만큼 예쁘겠어?”
이민호가 해주는 말에 민희와 민영이 방긋 웃었다. 둘의 미소를 본 이민호는 행복했다. 더 이상 여자를 늘릴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민희가 다시 한 번 이민호에게 권했다.
“주인님. 동가 공주는 정말 미인입니다. 세 살 때부터 유명했었고 여진족들에게 물어보니까 지금은 훨씬 더 미인이 됐대요. 기회가 된다면 꼭 차지하세요.”
“올해 겨우 열 살이라며? 됐어! 꼬마는 사양이야.”
“의용공주님도 열 살이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의용공주님이 만약 나이가 어리다면 거절하실래요?”
“흐음. 그건 좀 생각해봐야겠는데?”
해서여진, 즉 호론 또는 후룬(扈倫) 4부는 올라(兀羅) 또는 울라(烏拉), 호이파(輝発), 하다(哈達), 예허(葉赫)로 구성되어 있었다. 예허는 선조실록에 여허로 기록됐다.
아오지 추장의 냉정한 평가에 의하면 동가 공주는 사람 잡는 덫이었다. 지난해에 예허부의 패륵인 동가의 부친이 하다부의 패륵 다이산에게 동가를 시집보내겠다고 해서 좋다고 허겁지겁 달려오던 다이산을 복병으로 포위해서 죽였다.
해서여진 후룬 4부에서 예허부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하다부는 패륵을 잃고 나서 이어진 내분으로 말미암아 지금은 세력이 확 줄어들어 여차하면 멸망할 수준으로 쇠락했다. 바로 지난해에 벌어진 일이었고, 그때 동가의 나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나중에 몇몇 패륵들도 동가에게 장가갈 욕심으로 부족을 멸망으로 내몰고 나서도 나중에 다시 속아 넘어가 결국 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