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9 25. 차가운 바다, 뜨거운 땅 =========================================================================
편지 중에 류큐왕국에서 보낸 문서도 있었다. 일본 북쪽 아이누 섬에서 한 달 전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반란이지만 아이누 족 입장에서는 침략자를 몰아내는 전쟁 내지는 독립운동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이누 섬 남단에 거주하는 가키자키 가문이 표면상 아이누 족과 교역을 했으나 사실상 아이누 섬 전체에 대한 지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기를 제작할 줄 모르는 아이누 족이 일본 가키자키 가문의 무사들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었다. 아이누 족은 류큐 상인들에게 더 많은 칼과 창, 그리고 화약무기를 요구했으나 상인들은 제작비 때문에 고산국에 문의하는 서신을 보냈다.
류큐왕국에서는 아이누 족에 대한 지원 물량을 급격히 늘릴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이민호도 일본 혼슈 북단에 제2전선을 여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전에도 항상 그랬듯이 반란은 곧 진압될 것처럼 보였다. 아이누 족 전체를 모으더라도 1만 석 혹은 3만 석에 해당하는 작은 석고수의 일개 가문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전력 차이가 너무 크게 났다.
“대방! 요즘 군에서 승자총통을 쓰는가요?”
“수군총과 조총이 다른 지역에서도 생산되면서 승자총통은 점차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남는 것은 대부분 관아 창고에 보관하고 의병에게 소수가 흘러 들어갔습니다만 요즘은 의병도 쓰지 않습니다.”
승자총통은 1579년에 개발돼 니탕개의 난에 쓰이고 임진왜란 때도 사용된 휴대용 화약무기였다. 구조가 간단하고 위력이 강하지만 명중률이 떨어져 급속히 도태된 장비였다. 그러나 근거리 산탄총 비슷하게 활용한다면 괜찮은 무기였다.
“대방은 수영과 병영을 돌아다니면서 안 쓰는 승자총통을 급히 사서 모으시오. 유황과 구리로 바꿔주면 될 것 같소. 안 쓰는 조총도 최대한 모으시오. 조정에 문의해서 고장 난 것을 사서 고치면 쉽게 물량을 맞출 수 있을 거요.”
“예. 급히 의주로 배를 보내겠습니다. 아니, 제가 가서 해결하고 조총과 승자총통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조총은 조정에 진상하는 중요한 전리품이기 때문에 전선의 병사들보다는 오히려 조정에서 더 많이 갖고 있었다. 가끔 일정 물량을 전선에 보내주긴 하지만 고장 난 것이 의주 행재소에 많이 쌓여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말을 사러 가는 길에 요동 도지휘사에게 자문을 전해주시오. 왜장 갑옷 100벌을 황제폐하께 대신 진상해달라고 하는 내용이니 갑옷도 가져가시오. 핏자국이 있으면 닦고 구멍 난 것이 있으면 때워서 나무막대에 입히면 보기에 괜찮을 거요.”
“예! 소인 목숨을 걸고 진상품을 요동 도지휘사께 전달하겠습니다.”
“뭘 그리 긴장하시오?”
대방이 갑자기 바짝 긴장하자 이민호가 더 놀랐다.
“황제폐하께 진상하는 갑옷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요. 그냥 진상품일 뿐이오. 그냥 보통 상품 다루듯이 하시오.”
고산국 궁궐에 있으면서 환관 칙사들에게 하도 시달리다 보니 황실에 보내는 진상품이라 해도 이민호는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후궁들이 원하는 옥 도자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 가지 주전부리 과자를 황제에게 진상한 적이 더 많았다.
이민호에게 있어서 황제에게 바친다는 점에서 과자나 갑옷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왜장이라 칭할 수 있는 기마무사들의 화려한 갑옷 100개는 이민호를 대단한 장수로 포장해줄 수도 있는 도구였다.
급이 떨어지는 기마무사 갑옷 500개는 의주 행재소로 보냈다. 이민호가 명나라 관직을 받은 뒤에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전리품을 바치니 조정과 왕실에서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이민호는 송화강 유역에 넓게 퍼져서 살고 있다는 야인여진 사람들이 욕심낼 만한 물건을 준비했다. 여진족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족한 쌀과 소금, 면포와 철제 농기구는 이미 배에 실었고 다른 물품은 민희와 민영이 알려주었다.
둘의 권고를 받아들여 색이 들어간 유리구슬과 납작하고 반짝이는 놋쇠 장신구, 머리장식용 가화(假花)를 만들 붉은 비단, 그리고 거울이 든 화장품 곽을 많이 준비했다. 통제영 장인들을 소집해 쉬는 시간에 열심히 만들게 하고 이민호도 알록달록 영롱한 유리구슬을 여러 가지 만들었다. 민희와 민영이 예쁘다고 평가하는 구슬 몇 개를 선택해 대량 제작했다.
10월 말에 더 늦기 전에 월동준비를 단단히 하고 출항했다. 이민호는 경상좌도와 아이누 섬에 들렀다가 함경도와 야인여진을 방문하는 경로로 항해 계획을 잡았다.
전선 8척에 기본적으로 탑승하는 해병 천 명 외에 기마병 3백이 추가로 탑승했다. 진주성 전투가 끝난 후 간수군은 절반씩 교대로 휴가를 주었다. 승마보병과 흑인보병은 12월 말에 다시 소집하기로 하고 고산국으로 돌려보냈다. 북풍을 돛에 가득 품은 서양 범선들이 전선에 못지않은 속도로 바다를 달려갔다.
가덕도 천성보에서 경상우수사 오응정을 만났다. 해전은 한 번도 없었고 가끔 낙동강에서 빠져 나가는 왜 소선 몇 척을 잡았다고 했다.
“날이 추워지면서 일본에서 건너오는 배는 없고 대부분이 김해 죽도나 양산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입니다. 그러나 속도 차이가 커서 강 하구만 빠져 나오면 왜선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판옥선 여러 척이 작정하고 며칠 동안 막고 있다가 어쩌다 한두 척 간신히 잡는 수준입니다.”
“쉽지 않겠군요.”
조선에 상륙한 왜군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가을 이후에 군량을 싣고 일본에서 조선으로 향하는 배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왜선 대부분이 외돛이라 북풍이 부는 날에는 대마도에서 부산으로 건너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남풍이 불면 배 몇 척이 조선으로 가는 정도였다.
“예. 그래서 요즘은 낙동강 하구에 말뚝을 박아 왜선의 출입을 막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양산강은 이미 막았고 김해강은 거의 완료 직전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죽도에 왜군이 거의 없습니다.”
“아하! 그런 식으로 봉쇄하는 게 낫겠습니다.”
소득은 별로 없어도 조정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조그마한 전공을 세우기 위해 인력 소모가 장난 아니게 많이 들었다.
경상우수영은 판옥선을 거의 40척까지 늘렸다. 그러나 진주성전투에 곤양군수 이광악과 율포권관 이찬종이 참전했던 것처럼 수군 병력을 육전에 빼앗긴 경우가 많아 30척 수준으로 운용 가능했다. 더욱이 지금은 겨울이라 수군 절반을 집으로 보내고 15척씩 교대로 가덕도에 정박하고 있었다.
오응정의 배웅을 받으며 가덕도에서 떠난 전선 8척이 부산포 앞을 지났다. 절영도에 아무도 없어서 일부러 좁은 초량목을 통해 부산포 앞바다로 들어갔다. 듣던 대로 부산포는 텅 비어 있었고 무너진 움집의 잔해가 을씨년스러웠다. 하늘에는 갈매기만 무심하게 날아다녔다.
전선 8척이 해안을 따라 울산으로 향했다. 왜군의 상륙교두보가 울산 병영성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정확한 정보는 입수되지 않았다. 동해바다는 오늘따라 잔잔한 편이었다.
“함수 오른쪽 15도에 왜선 네 척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깃대 망루에 올라간 무상이 보고했다. 망루에는 각도기가 비치돼 있었다. 조선에서는 사방을 태양력의 1년과 같은 365도로 나눠서 쓰고 있어서 360도로 인식을 바꾸기가 힘들었다.
이민호가 함교에서 바라보니 수평선 위에 바람을 받아 활짝 펼쳐진 돛 네 개가 떠오르고 있었다. 왜선에서는 전선들이 북상하고 있는 것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이민호는 전선들을 분산시켜서 왜선 4척을 반포위하도록 했다. 그리고 왜선들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추격전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뒤늦게 전선을 발견한 왜군들은 바로 항복했다. 세키부네 네 척을 포획하고 보니 배에 노꾼이 없었다. 그리고 왜군이라 생각했던 자들은 왜인 사공들이었다. 저항할 수단이나 도망칠 방법이 없으니 왜인들이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감동이 왜선들을 수색한 다음 함교에 돌아와서 보고했다.
“왜인 60명을 생포했습니다. 왜선 네 척에 조선인 포로 300여 명이 타고 있습니다.”
“함포를 쐈으면 큰일 날 뻔했군. 경상좌도 지역 백성들인가?”
“경상좌도 백성들도 있고 한성과 경기도 등 여러 지역에서 잡혀온 포로들입니다. 울산병영성에 조선인 포로 500여 명이 더 있다고 합니다.”
“나눠서 태우도록 해.”
이민호는 왜선을 괜히 잡았다 싶었다. 조선인 포로들이 나가사키에서 노예로 팔려간다면 고스란히 해중국으로 가게 돼 있었다. 포로들은 자유 선택에 따라 고산국에 정착하거나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간혹 인구가 줄어든 일본 서부 지역 다이묘들이 조선인 포로들을 잡아와 영지 내에 강제로 정착시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구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무과급제자라고요?”
“그렇습니다, 대감. 경주에 사는 김학이라고 하며 함경도에서 3년 동안 군관으로 수자리를 섰습니다. 지난 6월부터 의병으로 싸우다가 열흘 전에 왜병들에게 포로로 잡혔습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학이라는 20대 후반 청년이 이민호에게 정중하게 군례를 올렸다.
“울산에 주둔한 왜군을 치려고 하는데 태화강 안쪽을 알 수 없습니다.”
“왜병들이 태화강 안쪽 깊은 곳에 포구 두 곳을 만들어 그곳에 왜선 100여 척이 정박하고 있습니다. 병영성에 주둔하는 왜군은 2천 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병영성으로 가는 냇가 지나서 태화강변 돌산에 왜성을 쌓아 거기에 울산 주둔 왜군의 대부분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목책을 두른 산성까지 합해서 왜병이 1만 명은 넘을 것 같습니다.”
“아주 귀중한 정보였소. 내려드릴 때까지 이곳 함교에 계시도록 하시오.”
무과급제자이며 실전 경험도 있는 사람이라 확실히 본 것 위주로 상세하게 진술했다. 이민호는 이 사람을 고산국으로 끌어들일까 하다가 관뒀다. 보나마나 고향 집에 가족들이 있을 테니 혼자서 쉽게 결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이민호는 전선 8척을 몰아 태화강 안쪽으로 들어갔다. 수심을 재면서 강에 천천히 진입하는데 아직까지는 충분한 깊이였다. 수면 위로 매끄럽게 날던 물수리가 쭉 뻗은 갈고리 같은 두 발을 내밀면서 물에 텀벙 빠졌다. 그리고 커다란 황어를 잡아 날아갔다.
“우현에 왜군 포루가 있습니다! 왜병들이 움직입니다.”
“선장! 함포로 제압해.”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선장이 함수 함포에 직접 가서 수병들에게 사격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함포가 발사되고, 왜병들이 조선인 부역자와 함께 지자총통에 열심히 화약을 넣고 있다가 포격 한 방에 날아갔다.
전선 8척은 태화강 깊숙이 들어갔다. 저 멀리 왜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나 수심이 낮아 선장이 전진을 멈추게 했다.
“여기서 포격해도 충분합니다.”
“그래. 좌우로 벌려서 열 발씩 쏴줘.”
전선 8척이 2분도 안 돼서 포격을 멈췄다. 높이 솟은 돌산에 쌓은 왜성 곳곳이 무너졌다. 왜병들이 전선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으나 조총 사거리 훨씬 바깥이었다.
왜성 뒤쪽에서 왜군 기마무사들이 말을 타고 몰려나왔다. 500명쯤 되는 기마무사들은 강변을 따라서 달리며 무용을 과시했다. 가문과 이름을 밝히며 용기가 있는 자는 일대일로 붙어보자고 도발하는 자도 있었다. 기마궁수가 사람 키보다 큰 활을 당겼지만 화살은 반도 못 미쳐 강물에 빠졌다.
“쓸어버려.”
- 타타타타탕!
이민호가 지시하자 전선 상갑판에 쭉 늘어선 해병들이 강변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말에서 내려 오오쓰쓰를 발사하려던 왜병도 이마에 총탄을 맞고 뒤로 넘어갔다.
기마무사 500명 중에서 200명쯤 살아남았다. 보병총의 위력을 처음 접해봐서 겁에 질린 기마무사들이 황급히 도망쳤다. 해병들이 재차 사격하자 그 중에 절반이 또 총격에 쓰러졌다. 이미 거리가 멀어져서 3탄은 쏘지 못했다. 지켜보던 김학은 잠시 넋이 나갔다.
“도련님! 해병들을 내리게 해서 갑옷을 노획해올까요?”
“이제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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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