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66화 (115/1,000)

00166  24. 진주성 전투  =========================================================================

- 타타타탕!

북쪽 성벽에 일렬로 늘어선 해병들이 성벽 아래를 향해 총탄을 퍼부었다. 중간에 수류탄을 연속해서 던지니 왜병들은 피할 곳도 못 찾고 죽어갔다. 북장대를 공격했던 왜병들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날 밤에 폭우가 내리는 중에도 전투는 계속됐다. 도롱이를 맬 겨를도 없이 군사들은 비를 맞아가며 계속 싸웠다.

병력이 교대해서 밥 먹을 틈도 없어서 진주성에 사는 여자들이 소쿠리를 들고 다니며 병사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었다. 그러나 적이 워낙 많이 몰려와서 병사들은 주먹밥을 먹을 틈도 없이 계속해서 활을 쏘았다. 비가 많이 와서 다른 화약무기는 일절 사용이 불가능했다.

- 우르릉~

벼락이 치는 줄 알았는데 성벽 일부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하필이면 동문 북쪽 모서리 방향의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곳을 통해 왜병들이 몰려 들어왔다.

- 타타탕!

간수군들이 비가 오는 중에도 총을 발사하자 왜병들이 많이 놀랐다. 그러나 이미 성벽 일부가 무너진 성이었다. 곧 함락할 거라 여긴 왜병들이 좁은 공간을 통해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다.

흑인 보병 중에서 방패병들이 앞열에 나서서 왜병들의 창칼을 막아내고, 뒤에서 총병들이 화력을 퍼부었다. 대열을 이루지 못한 간수군들은 떨어져서 저격을 하거나 가까운 곳에서 수류탄을 던져 왜군 대열에 폭발시켰다.

보병들이 버티는 사이 경상우병영 기병들이 활과 창을 들고 나타났다. 활을 다시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성이 점령되면 어차피 끝장이니 비오는 중에서 각궁을 쏘았다.

무너진 성벽을 사이에 둔 전투는 한 시간 정도 이어졌다. 성벽이 무너지긴 했어도 그 폭이 좁아서 성 안에 침투한 왜병들을 간신히 몰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너진 성벽을 향한 왜군의 공격은 계속됐다. 진주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일부가 싸우는 중에 다른 일부가 성벽에 목책을 세우고 돌을 쌓아 급한 대로 성벽을 막았다. 전투는 새벽에도 계속 이어졌다.

10월 10일, 왜병들은 더 이상의 공격을 포기한 것 같았다. 어쩌면 군량이 완전히 떨어졌을지도 몰랐다. 왜병들은 피골이 상접하고 그 동안 감자만 구워 먹었는지 입 주변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왜병들이 군막을 걷어 물러서려는 조짐을 확실히 드러냈다. 그러나 진주성을 지키던 병력도 그 동안의 전투로 지치고 숫자도 왜병에 비해 너무 적어서 성을 나가서 왜군을 공격하지는 못했다.

왜병들이 그 동안 전사한 왜군 시체를 태우고 움집을 허물었다. 퇴각하려는 기세가 역력했고 일부 비전투부대부터 먼저 북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유숭인이 분통을 터뜨렸으나 공격하러 나가고 싶어도 지금은 전마가 없었다. 왜군은 아직도 2만여 명이나 남아있었고, 만약 기병 천여 기를 내보낸다 해도 금방 소모될 것이 분명했다.

“국왕전하! 옵니다!”

“뭐가?”

이민호가 어리둥절해서 묻자 계복이 보낸 전령이 보고했다.

“말 천 마리씩 2천 마리가 사천에서 진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안장은 어제 남쪽 진채로 운반해왔으니 먼저 성안으로 들이겠습니다. 경상우병영 기병들에게 미리 장비를 갖추게 하라는 계 대원수 겸 부총병 대인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하인들이 다리를 오가며 안장을 성안으로 날랐다. 전마 값보다는 못하나 꽤 비싼 물건이 안장이었다. 말과 안장을 연결하는 마구도 여러 종류가 다 갖춰져 있었다.

말을 잃은 기병들이 안장을 지급받아 안장 고리에 몇 가지 무기와 잡낭을 연결했다. 기수와 말이 호흡을 맞춰보는 과정이 없었지만 기병들은 수십 년 동안 말을 타던 사람들이라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군적을 바꾸지 않은 것은 수군뿐만 아니라 기병도 마찬가지라서 대부분 나이가 40을 넘어, 보통 30년 넘게 말을 탔다고 한다.

점심때가 지나자 말이 남쪽 진채에 도달했다. 계복은 남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전마를 한 마리씩 차례로 진주성 안으로 들여보냈다.

“제발 빨리 좀 보내줘!”

유숭인이 초조해서 왔다 갔다 했다. 왜병들이 퇴각하는 중인데 말은 아직 절반도 성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남쪽에서 전마들이 다리를 건너 성으로 들어가는 사이 왜군 쪽에서 반응이 있었다. 곧 기병이 진주성 밖으로 몰려나올 것을 알아챈 왜군들이 급히 방진을 갖춰 기병 공격에 대비했다.

“며칠 동안 전쟁 구경 한 번 실컷 제대로 했다.”

“주인님은 그게 구경하신 거여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민희, 민영과 함께 이민호가 다리를 건너 남쪽 진채로 옮겨갔다. 승마보병 3천과 흑인 보병 2천 명이 강변에 줄지어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강 건너편은 퇴각하려다가 기병돌격에 대비해 급히 방진을 짜는 왜군들로 북적거렸다.

“포격 준비!”

해군 수병들이 수레에 실린 함포 4문의 포장을 걷었다. 이민호는 며칠 동안 진주성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이것을 쓰고 싶어 근질근질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써야 효과가 있어서 꾹 참고 있었다.

“경상우병영 기마대 출성 준비 끝! 동문이 열립니다!”

강 건너 성벽에서 진주 병사들과 간수군들이 함성을 질렀다. 왜군도 조선 기마대의 출성 공격에 대비해 장창을 앞으로 내밀고 조총을 쏠 준비를 갖추면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적이 몰려있는 곳에 쏴야 효과가 클 거야. 함포, 쏴!”

- 퍼퍼퍼펑!

배 위에서 쏠 때야 잘 안 맞지만 3인치 함포를 지상의 수레에 거치해서 발사할 경우 꽤 높은 명중률을 보였다. 포탄 네 발이 왜군들이 몰려있는 곳에 떨어져 한 번에 수십 명씩 폭사했다.

“보병총 쏴!”

승마보병 3천과 흑인 보병 2천 중에서 총병 천 명이 일제히 강 건너를 향해 사격을 가했다. 가을이 되면서 수량이 줄어든 남강의 강폭은 2백 미터에 불과했고, 승마보병 절반이 보유한 보병총의 사거리는 400미터에 달했다. 기병총은 아예 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기마병의 출성에 대비해서 동문 앞쪽에 밀집됐던 왜군들이 총탄에 맞아 우수수 쓰러졌다.

남강 건너편에서 행해지는 갑작스런 포격과 총격에 왜군들이 놀라 흩어졌다. 지난 며칠 동안 남강을 사이에 두고 왜병들과 서로 소 닭 보듯 했던 원정군이 갑자기 공격하자 왜병들이 충격에 빠졌다.

그 동안 공격을 할 수 있었음에도 공격하지 않은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됐지만, 이미 늦었다. 지휘관을 맡은 무사들이 몇몇 도망가는 아시가루들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총격이 계속되자 무사들도 곧 포기하고 북쪽으로 퇴각했다.

“기병이 나온다! 출성 공격이다!”

동문 성벽에 오른 진주 병사들과 간수군들이 다시 한 번 일제히 외쳤다. 진주목사 김시민이 시킨 것 같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진주성의 동문으로 향했다. 강변에서 물러난 왜병들이 다시 방진을 짜고 조총을 들어 동문 쪽을 겨냥했다. 화승이 하얀 연기를 뿜으며 조금씩 타들어갔다.

동문을 조준한 조총병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이 동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기마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마병은 자그마치 두 명이나 나왔다.

- 두두두두두~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울리고 땅이 진동하는데 동문을 나온 기병은 겨우 두 명뿐이었다. 왜병들은 잠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 탕!

동문이 열린 직후부터 바짝 긴장했던 조총병 한 명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에 놀란 조총병들이 명령도 없이 연거푸 발사하고 말았다.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기병 두 명이 잽싸게 자리를 옮겨 총탄에 직격당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200보 넘게 떨어진 곳에서 쏜 조총이 정확하길 바란 것이 잘못이었다. 유효사거리에서 벗어나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 총탄에 말이 맞아 쓰러지고 기병 둘은 펄쩍 뛰어 쓰러지는 말에 깔리는 사태를 피했다.

경상우병영 기병 3천기는 북장대 동쪽에 위치한 조그마한 틈인 암문, 나중에 경상우병영과 감영이 들어서면서 진주성의 정문이 될 공북문 자리의 좁은 바위 틈새를 통해 진주성에서 빠져 나왔다. 그 기병들은 잠시 대열을 갖춘 다음 왜병들을 향해 한꺼번에 들이쳤다.

기병들이 왜병의 방진을 향해 활 세 발을 쏜 다음 환도나 기창을 앞세우고 파도처럼 몰려갔다. 말발굽에 짓밟힌 왜군 진영 하나가 통째로 무너졌다.

“승마보병 다리 건너!”

왜군이 강변에서 멀어지자 진채에서는 더 이상 총을 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승마보병들을 진주성 안으로 들였다. 말은 이미 전날에 진주성 안에 옮겨 놓았다.

이민호를 필두로 승마보병 3천이 동문에서 빠져 나왔다. 그 사이 감불과 감동이 새로운 말에 탄 채 각종 요상한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전투 중에도 일부 왜병들이 시선을 빼앗겨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뭐하냐?”

“오랜만에 마상재 좀 해봤습니다.”

“얼른 기마병 지휘해!”

“넵!”

승마보병들이 동문에서 나와서 마주친 첫 번째 왜군 대열은 왜군의 전형적인 천 명짜리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기본적인 대형으로 왼쪽에 기마무사 몇 십,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창병인 야리 아시가루 몇 십, 네 번째가 뎃포 아시가루, 다섯 번째가 궁병인 유미 아시가루 몇 십으로 이루어진 방진이 짜였다. 바로 뒤에는 예비병력인 테아키와 하인들인 모치가 배치되었다.

그런 대형이 앞줄에 세 개가 있고, 그 뒤에 도보무사인 카치의 대열과 예비대인 또 다른 테아키와 말을 관리하는 마졸들이 대형을 이루었다. 그 중간 가신대장 뒤가 바로 다이묘의 자리였다.

“쏴!”

승마 상태에서 보병들이 보병총과 기병총을 쏘았다. 왜병들이 밀집방진을 짠 곳마다 어김없이 유탄이 날아갔다. 첫 발포에서 이미 절반이 쓰러진 왜군 진영을 향해 2탄, 3탄이 날아갔다.

“가자!”

이민호는 경상우병영 기병들이 싸우는 모습을 잠깐 지켜봤다. 화살과 조총탄이 교차한 다음 기병들이 편곤과 환도를 휘두르며 왜병 방진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기병이 활을 쏘면 왜군 철포병들이 거의 동시에 조총을 쏘게 되어 있었다. 조총의 유효 사거리 살짝 벗어난 곳에서 조총탄을 소진시킨 다음 큰 희생을 내지 않은 조선 기병들이 왜병 대열에 뛰어들 수 있었다.

왜군 궁병이 날리는 화살은 환도로 쳐내고, 야리 아시가루들이 들이미는 창은 말의 거대한 몸통으로 뭉개가면서 왜군 방진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창날에 찔린 전마가 쓰러진 다음에도 계속 발버둥을 치며 왜군 창병 몇의 허리나 다리를 부러뜨려 버렸다.

“전마를 저 따위로 쓰니 2천 마리가 생으로 죽었지!”

이민호가 열 받아서 소리를 질렀다. 살아있는 전마를 왜군의 장창방진을 무너뜨리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상우병사 유숭인이 얄미웠다. 저런 식으로 싸운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전마를 공급해줘야 하는데 지금 제주도 상황으로 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기병들에 의해 창병 방진이 가장 먼저 무너지면서 왜병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창병 방진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조총병과 궁병 대열은 기병에 의해 한 순간에 쓸려 버렸다. 편곤 반, 말발굽 반이 왜병들의 사인이었다.

“다음 방진, 조총병과 궁병을 향해 쏴!”

- 타타탕!

이민호는 승마보병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천천히 달리면서 왜군 방진 몇 곳을 공격했다. 그러나 제대로 방진을 부수는 것은 아니고 위험이 될 소지가 있는 조총병 위주로 쓰러뜨리면서 지나갔다.

“어? 저놈들이 달리네? 그런데 방향이 왜 북쪽이야?”

이민호가 승마보병들을 동쪽이 아닌 북쪽으로 끌고 달렸다. 승마보병들의 움직임을 왜군에 대한 포위 기도로 파악한 왜군이 이동속도를 높였다. 어떤 왜군 대형은 승마보병의 진로를 차단하려고 동쪽으로 기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3천의 승마보병들은 일제 사격으로 방해를 뿌리치고 왜군 후퇴 대열을 따라잡았다. 그리고 퇴각로 동쪽에서 멈춘 다음 말에서 내렸다.

승마보병 3천 명이 남북 방향으로 3열 횡대 대열을 이루었다. 1km에 달하는 기다란 대열에서 역시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왜군 퇴각로를 옆에 두고 사격을 퍼부었다.

초반에는 질서정연하게 퇴각하던 왜군들이 측면에서 총격을 받은 다음부터는 진형을 무너뜨리고 무질서하게 도주하기 시작했다. 승마보병들은 마치 사냥을 하듯이 느긋하게 총격을 가했다.

============================ 작품 후기 ============================

진주성 전투에서 전후 정리하는 편이 아직 1회 남았습니다.

내일 올리고 그 뒤에는 모험을 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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