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64화 (113/1,000)

00164  24. 진주성 전투  =========================================================================

“조총에 맞아 말을 잃어서 보병으로 싸운 것뿐입니다. 보병들은 초반에 노현과 창원 병영성을 지키다 전멸했고, 지금까지 기병만으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제발 말을 좀 구해주십시오, 이 노야! 전력에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관작이 높다 보니 이민호가 이 나이에 노야(老爺) 소리까지 듣게 됐다. 그리고 유숭인은 말을 보충하면 성에서 나가 왜군과 싸울 생각밖에 없었다.

수성전에서 기병이 유효한 방어수단이 됨을 아는 이민호는 어떻게든 말을 구해주고 싶었다. 성에서 언제든 기병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면 그 사실을 아는 공성군 입장에서는 전술 선택의 폭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우병영 군세가 입성한 다음 왜군의 진영이 좀 더 밀집하고 주변에 목책을 세운 것만 봐도 왜군이 조선 기병에 신경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강 건너에 말이 있긴 있소만, 기병이 쓰기에는 부적합하오.”

이민호는 원정군 승마보병의 말이라도 빼앗아서 줄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승마보병이 탄 말은 분명 전마에 속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전마로 쓰기에는 품질이 너무 나빴다. 흑인 보병들이 탄 것은 짐말 중에서 그나마 나은 것들을 고른 것이라서 아예 제외하고, 승마보병이 타는 말도 체구가 작아서 본격적인 전마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마를 키우려면 좋은 품종의 망아지를 잘 먹여 키우고 훈련도 제대로 시키고 평소에도 꾸준히 관리해줘야 했다. 그러나 승마보병들이 탄 말은 그 어느 것도 갖추지 못했다. 시중에서 백성들이 흔히 타고 다니는 그런 볼품없는 말보다는 낫지만 속도와 지구력 등에서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민호가 주로 배를 타고 다니고 승마보병이 기본적으로 보병이라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된 전마로 바꿔줄 생각을 못하다가 이제 와서 후회하게 되었다. 이치전투에서 간수군들이 말을 타고 왜병들을 추격했을 때 편곤으로 왜병들을 제대로 못 맞힌 것이 기억났다. 간수군들의 승마훈련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말들이 전투 훈련을 받지 못해 겁을 낸 탓도 있었다. 말이 왜병을 너무 무서워해서 말발굽으로 밟아 죽인 셈이다. 직할군 보병들이 타는 말도 기마전투에 동원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이런 전쟁통에 기병이 쓸 만한 전마 2천 마리를 당장 어디서 구한담? 아! 통제 대감에게 천 마리, 제주목사에게 천 마리를 빌려오겠소. 전쟁 중이라 다른 지방에서 구하기 어려울 테니 이번 일이 끝나면 몽골이나 여진에 가서 말을 급히 사와야겠소.”

“시간이 되겠습니까? 왜적들이 곧 성벽을 넘어올 기세입니다.”

“최대한 빨리 구해와야지요. 그 사이 병상께서는 군사들을 며칠 쉬게 하고 급할 때는 김 목사에게 병력을 빌려주도록 하세요. 보급은 제가 맡겠습니다.”

창원 병영성이 함락되는 바람에 경상우병영 군사들은 보급을 받을 곳이 없었다. 이민호는 기병들이 쉴 수 있도록 천막과 담요를 나눠주고 갑주가 없는 자들에게는 기본적인 유엽갑이라도 갖추게 해주었다. 군의들을 데려와 응급 치료도 마쳤다.

그리고 일일이 솥을 나눠줄 수 없어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대량으로 지어 나누어주었다. 전투가 있는 날에는 워낙 많은 체력을 소모하므로 다들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 간장과 두부, 청어 등 부식의 소모량도 많았다. 사천까지 오가는 수레 100량으로 모자라서 이민호가 해동상단에 수레 100량을 급히 더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 목사 영감이 잘하고 있으니 저는 수성에는 관여하지 않고 편히 쉬겠습니다.”

“그래요. 잘 싸우게 내버려두고 우리는 바둑이나 둡시다. 그 전에 잠깐, 말 좀 구하라고 해야겠습니다.”

지휘권 단일화 문제는 서로 적당히 눈치 보면서 해결된 것 같았다. 수성에 관련된 모든 것은 진주목사 김시민이 최종 결정권을 가졌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그리고 이민호가 호위병 두 명을 전령으로 삼아 사천으로 보냈다. 전령은 사천까지 말을 타고 달린 다음 배를 타고 통제영으로 향했다. 그러나 현재 통제사는 수군 연합함대와 함께 대마도에 이어 가덕도를 치고 있어서 통제영에 없었다. 전령들은 급히 해동상단에 가서 분점주와 함께 외륜선 10여 척을 이끌고 제주도로 떠났다.

전령을 보낸 지 4일째에 제주 목부(牧夫) 200명이 전마 천 마리를 몰고 진주에 나타났다. 이민호의 편지를 받은 제주목사 이경록이 급히 끌어 모아서 간신히 숫자를 맞춰서 보내준 말들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이래 여러 곳에서 제주도 전마를 요구해서 지금은 새끼 칠 암말도 부족할 판이었다.

바로 이때 대마도와 부산포, 가덕도와 김해 죽도를 성공적으로 공략한 다음 사천으로 돌아온 통제사 이순신도 급히 말을 모아 진주성으로 보내주었다. 이것은 10일 오후의 일이었다.

10월 7일, 왜군이 방패와 공성도구를 완성하고 오후부터 진주성을 공격했다. 왜군들은 강 건너 고산국 원정군은 무시하고 진주성 공격에만 전력을 집중시켰다.

이민호는 왜군이 방어가 허술해 보이는 원정군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긴장하고 있다가 진주성에만 공격이 집중되자 허탈해졌다. 이민호의 기대와 달리 왜군이 병력을 나눠 공격해오지 않았다.

진주성 남쪽은 서쪽과 북쪽, 동쪽이 남강이었다. 사방 2km 정도인 단단하고 높은 지역을 강물이 빙 돌아가는 전형적인 물도리동 지역이었다.

이민호는 남강 남쪽의 진채를 계복에게 맡기고 흑인 보병 천여 명을 이끌고 와서 진주성 동문 방어선에 추가로 투입했다. 진주성을 포위한 왜군 3만여 명 중에서 주력 병력이 끊임없이 몰려와 공격하는 곳이었다.

진주성 방어에 투입된 병력은 곤양군수 이광악의 군세까지 합쳐서 겨우 380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해병과 간수군 각 600명을 투입했고, 경상우병영 기병 3천이 입성하자 8천까지 불어났다. 여기에 흑인 보병 천 명까지 투입하니 진주성이 거의 철옹성으로 변모했다.

- 타탕! 탕! 탕!

이민호가 이끄는 간수군과 흑인 보병들은 왜군 조총병과 궁병 위주로 사격을 해서 쓰러뜨렸다. 병사들이 저격수 수준의 실력은 아니었지만 조총 사거리 바깥에서 총알이 정확히 날아오니 왜군 입장에서는 간수군이나 흑인 보병들이 무시무시한 저격수나 마찬가지였다.

- 탁!

“이야아~”

대나무 사다리가 성벽 바깥에 걸쳐진 직후 왜병이 사다리를 타고 성벽 위로 뛰어 올라왔다. 총알을 장전하던 흑인 보병이 급한 마음에 총검 안 달린 총구로 찌르려 했다.

그러나 진주성 동문에 배치된 흑인 보병의 절반은 방패병이었다. 체구가 큰 흑인 방패병이 끈으로 묶은 방패를 등 뒤로 돌리고 두 손으로 잡은 칼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려쳤다.

- 푸학!

간신히 성벽에 올라 중심을 잡던 왜병이 투구부터 사타구니까지 두 쪽으로 나뉘어 피가 확 뿜어졌다. 세로로 잘린 왜병의 시체는 성 밑으로 나가 떨어졌다. 거구의 흑인이 든 칼에는 웬만한 동양인들은 흉내도 못 낼 만큼 무시무시한 힘이 실려 있었다.

왜군들이 동문을 집중 공격하는 사이 진주목사 김시민도 직접 활줄을 당겼다.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성 밑에서 독전하고 있던 사무라이의 왼쪽 눈에 꽂혔다. 비명을 지르는 사무라이를 아시가루들이 뒤로 빼가는 것을 본 이민호가 김시민에게 권고했다.

“김 목사!”

“예! 대인.”

“목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진주성 방어군 전체를 지휘하시오. 총은 내가 쏘겠소.”

“아! 예. 따로 지휘할 필요도 없이 다들 잘 싸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화살 한 대라도 보태야지요.”

김시민은 왜군이 진주성에 몰려오기 전에 기병을 이끌고 사방을 돌아다니며 왜군을 공격했던 사람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는 진해읍을 점령한 왜군을 공격해 읍성을 탈환하고, 평소태(平小太)라는 왜장을 생포해 행재소로 보내기도 했다.

“언제 비상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지휘관은 항상 뒤에서 대비하는 편이 낫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시민이 성벽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김시민이 있던 자리를 지나친 총탄이 장대 기둥에 꽂혔다. 마침 김시민은 고개를 돌려서 그 장면을 못 봤지만 이민호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었다.

오후 늦게 진주성 동문 앞 해자가 전부 메워졌다. 왜군은 쉴 틈도 없이 야간전에 돌입했다. 어둠이 내려앉은 진주성 근처는 왜군이 피운 모닥불과 횃불 천지로 변해 적이 더 많아 보였다.

“왕! 왜병들은 저녁도 안 먹고 싸우는 것 같다.”

“먹고 싶어도 아마 쌀이 없을 거야. 아차! 므부투!”

옛날에 하품을 하며 본 영화 내용이 떠올라 이민호가 피그미족 전령에게 콜라라는 이름을 하사했었다. 그러나 지혜로운 피그미족 전령은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째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이민호에게 따졌다. 이민호는 콜라와 관련된 부족이 피그미가 아니라 부시맨임을 깨닫고 그 이름을 다시 거둬들였다. 전령은 출신 부족 이름으로 불러주길 원했다.

“왜? 뭐든 시켜라. 달릴 준비는 항상 되어 있다.”

“강 건너 진채에 가서 주먹밥 좀 해달라고 전해라. 진채에서는 알아서 저녁을 해먹고, 주먹밥 2만 개를 만들어서 보내달라고 해. 진주성 백성들이 왜군에게 돌을 던지느라 바빠 밥을 해줄 틈이 없는 것 같다.”

남자들은 돌을 던지고 여자들은 화살과 돌을 나르고 있었다. 군민 전체가 혼연일체가 되어 싸운다는 말이 있는데 이민호가 진주성에서 실제로 보게 되었다.

“알았다. 주먹밥 2만 개다. 토레 신은 왕의 목숨에 관심이 없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왕이 오래 살길 원한다. 죽지 마라.”

“안 죽는다.”

“죽더라도 후계자를 낳아서 왕처럼 훌륭한 품성을 갖추도록 교육을 시킨 다음 죽어라.”

“훌륭한 호구 품성? 알았어! 빨리 가!”

므부투가 달려간 지 5분도 안 돼서 하인들이 소쿠리에 주먹밥을 가득 담아 들고 왔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복이 밥을 해서 진주성 안으로 보내준 것이다. 계복은 강 건너 불구경하면서 이런 식으로라도 진주성에 지원을 해주려고 했다.

진주성 군사들은 성벽에 투입되어 싸우면서 교대로 성벽 밑으로 내려가서 주먹밥을 먹었다. 이민호도 민희, 민영과 함께 주먹밥을 나눠 먹었다. 쪼그려 앉아 오물거리며 맛없는 주먹밥을 먹는 민희, 민영에게 이민호는 몹시 미안함을 느꼈다.

“며칠만 참아. 전투가 끝나면 통제영에 가서 산해진미를 먹고 전주성에 가서 진수성찬을 매 끼니마다 먹자.”

“저희들은 괜찮아요, 주인님. 그렇게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저희들이 요리 솜씨가 없어 주인님께 이런 주먹밥을 드시게 해서 저희들이 더 미안해요.”

“아유~ 예쁜 것들! 말도 예쁘게 하네.”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더 이상 염장질은 못했지만 눈빛 교환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혜영과 혜진을 위험한 곳에 데리고 다닐 수 없어 대신 시중들게 할 경호원 겸 시녀들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혜영 자매만큼 소중해졌다.

“저희들이 예쁘다니요. 칭찬해주셔서 고맙긴 한데 저희는 절대 미인이 아니에요. 후룬 굴룬, 그러니까 해서여진의 4부 중에서 예허부락에 동가라는 예쁜 공주님이 있어요. 하도 예뻐서 열 살 때부터 구혼자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하다와 우라부터 저 멀리 흑룡강의 홀라온까지 줄을 섰대요.”

“그 분은 정말 대단한 미인이래요. 여러 부족의 베일레들이 동가 공주님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선물을 싸들고 와서 구경한대요.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반드시 상사병에 걸리고 동가의 아버지가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라도 한다고 해요.”

베일레 또는 버일러, 즉 패륵(貝勒)은 이 당시에는 여진족이나 몽골족의 부족장을 뜻했다. 나중에 청나라가 건국된 다음에는 황족의 칭호, 군사지도자 등에 패륵이 붙게 되었다.

“맞아요! 그 미인 때문에 지금까지 부족 몇 개가 멸망했대요. 동가의 아버지가 어느 부족장한테 동가를 시집보내줄 테니까 그 전에 건주여진을 쳐라, 그러면 진짜로 전체 부족을 동원해서 그 강한 건주여진을 공격하다가 멸망하곤 했어요. 누르하치 어른도 동가를 얻지 못해서 노심초사한대요.”

“그래봤자 너희들이 더 예뻐.”

이민호가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민희가 눈을 감고 감촉을 느꼈고 민영은 그저 좋다고 헤~ 웃었다. 만약 둘이 예쁘지 않았다면 눈이 높아진 이민호가 하루도 빠짐없이 안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오전에 더 올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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