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58화 (107/1,000)

00158  23. 해남도 발전 계획  =========================================================================

상세한 계획은 예국과 호국에서 세우기로 하고 정옥남은 인수인계 문제로 필리핀에 다시 돌아갔다. 다른 관리들도 대부분 자리를 뜨고 회의실에는 병국과 호국의 일에 관계된 고위 관리들만 남았다. 이민호가 계복에게 편하게 물었다.

“계복아! 총은 어디서 잃었대? 무장 탈영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없었잖아?”

“돌아와서 보병총을 보유한 모든 부대에 총기 확인을 시키려고 했습니다만, 서부 순찰대에서 보병총 한 정을 분실했다는 보고가 이미 올라와 있었습니다. 총을 잃어버린 자는 체포해서 구금 중이라고 합니다.”

고산국의 모든 지역에 병력을 상주시킬 수 없어 장거리 순찰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부 해안을 담당한 순찰대가 평지에 거주하는 바부자 원주민 마을 근처 들판에서 숙영하다가 총 한 정을 분실했다고 한다. 순찰대는 바부자 원주민들까지 총동원해 마을과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총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술값 대신 팔아먹거나 누가 총과 함께 실종된 건 아니라서 다행이군. 아니면 앞으로도 비슷한 사고가 날까 봐 걱정해야 할까? 일단 총번을 새겨 넣어야겠다. 새 총 헌 총 가리지 말고 일련번호를 새겨. 그래야 분실한 곳을 빨리 찾아서 회수하거나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기는 일을 줄일 수 있지.”

“국가비밀이나 다름없는 중요한 총을 잃어버려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시끄러! 이런 일은 언제든 있을 수 있어. 그런 사소한 일에 물러날 생각을 하지 말고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어렵도록 대책을 세워! 우리가 가진 무기는 주변 모든 나라에서 주시하고 있으니 우리가 아무리 경계하더라도 비슷한 일이 언젠가 또 생길 거야.”

명나라나 조선, 일본이 고산국의 보병총을 입수하더라도 복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보병총이나 기병총에는 이 시대에 생각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혁신적인 요소가 꽤 많이 들어있었다. 보병총에서 몇 가지 복제 가능한 특징만 베낀 수군총이 해전에서 큰 역할을 한 것만 봐도 그런 자잘한 기술의 유용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조총이나 불랑기포도 그랬듯이 그 무기가 유용하고 복제할 수만 있다면 명나라와 조선, 일본은 금방 베껴서 만들어냈다. 동양 3국의 기술력이 당시 기준으로 의외로 높으니 고산국의 무기가 다른 나라로 유출되지 않도록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무연화약은 화학 분야의 지식과 실험이 누적돼야 감을 잡을 수 있으니 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병력이 적고 인구가 압도적으로 부족한 고산국이 주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무기라도 좋아야 했다. 다른 한 가지는 병사들에 대한 훈련과 지휘관들에 대한 교육이었다.

“유럽 전쟁사 번역은 끝났지?”

“예. 지도와 그림까지 그려 넣어서 인쇄 직전입니다. 마카오 유학생들이 고생 좀 했습니다만, 도련님이 원고 좀 봐주시지 그랬습니까?”

“몰라. 바빠. 다들 잘 알아서 하겠지 뭐.”

“제가 읽어보니까 화약을 쓰는 지금 시대나 옛날이나 전쟁 양상은 다 비슷하더군요. 동양도 사실 마찬가지입니다. 핵심적인 지역에 적이 동원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병력을 쏟아 부어 확실히 이긴 다음 적이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까지 최대한 전과를 확대한다. 이것이 전술의 요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그렇긴 하다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지.”

대표적인 예외로 이민호가 아는 역사상의 이순신이 있었다. 소수로 다수의 적을 이기는 것이 화려해 보이겠지만 젊은 지휘관이 섣불리 흉내 냈다간 부대 말아먹기 딱 좋았다.

그런 사례는 전술 교과서 본문에 실리면 절대 안 되고 부록에서도 아주 특별한 사례로 수록해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이왕이면 19금 표시를 달고 교수의 지도 아래에서만 읽는 편이 좋았다.

“조선으로 출발할 원정군 준비는?”

“이번 원정에서 사상자가 적어서 거의 그대로입니다. 휴가를 이틀 더 줬고 그 사이에 흑인 보병들에게 승마연습을 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에 갈 때 모든 인원에게 말을 주지는 못할 겁니다. 다들 말 타고 다니면 보급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이 늘어나거든요.”

“그래. 잘 했다. 솔직히 이번에 흑인들한테 실망했어.”

“말을 못 타는 거요? 그런 단점이라도 있어야죠. 저번에 단체로 목욕할 때 보니까, 어우~ 인간이 아닙니다.”

계복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혜영과 미카 등 여자들이 많았고, 초롱초롱 눈을 빛내면서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민호가 얼른 주제를 바꾸었다.

“험! 험! 화폐 발행 준비는 잘 되어 갑니까?”

명나라는 은본위제가 사실상 아니었고 국가에서 화폐제도를 실시해 시중에 강제로 화폐를 유통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세금을 은으로 받았고, 그것이 은덩어리든 민간에서 주조한 은화 형태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순은으로 계산한 무게만 맞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이배를 접은 모양의 배 형태나 말발굽 모양으로 은을 주조했다. 원나라 시대에 사용하던 은화인 원보(元寶)는 모양이 말발굽과 같아서 마제은(馬蹄銀)이라고도 불렸는데 무게는 45냥에서 54냥 사이였고 은화로서는 가장 질이 좋은 것이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화은(靴銀)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세금을 납부하거나 거래할 때마다 은의 함량과 무게를 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산국에서는 금과 은이라는 두 가지 귀금속으로 화폐를 발행하기로 했다. 다만 금과 은 중에서 어느 쪽을 기준으로 삼을지 정해지지 않았고, 교환 비율도 문제였다. 만약 금과 은의 교환비율을 정해놓으면 얼마 못 가서 비율이 바뀌거나 외국 상인들에게 재정거래의 기회를 줄 테고, 정부가 신용을 잃으면 화폐경제 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16세기 말에 명나라에서 국제 기준보다 은이 두 배 이상 비싸다는 것이 화폐 발행을 앞둔 고산국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만약 고산국이 명나라 기준에 맞추면 명나라처럼 금이 해외로 대량 유출될 것이고, 국제 기준에 맞추면 은이 명나라로 빨려 들어간다. 고산국에서 화폐를 발행하기로 내부적으로 결정했으나 장단점이 극명히 갈려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호국 참판님 대신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주인님.”

“그래. 혜영이가 해봐.”

“명나라는 일조편법 정책을 시행한 이후 세수는 오직 은만을 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금값보다는 은값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일본에 비해 두 배 이상입니다. 그러니 명나라에 은을 주고 금을 흡수하는 식으로 화폐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시행 과정에서 우리의 협력자이며 경쟁자인 포도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됩니다.”

이민호가 다시 고개를 들어 회의 참가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대원수 계복과 병국 참판, 예국 참판, 그리고 왕명명과 함께 국제정보를 다루는 시장과의 미카가 회의에 참가하고 있었다.

단순히 화폐 발행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고산국의 군사 및 외교 전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고산국의 국가전략 수준이었다.

“오늘 발언은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만 알아두시오. 절대 외국으로 누출되어서는 안 되는 비밀이란 뜻이오. 계속해 봐.”

“예.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을 명나라와 약간 차이를 둬서 명나라의 금을 지속적으로 대량 흡수해야 합니다. 현재 금과 은 교환비율이 5.6배에서 5.8배가 유지되고 있는데 고산국은 7배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당분간 금과 은 가격이 요동치거나 대량으로 유입, 유출이 되겠지만 억지로 막지 말고 시장 가격에 따라가면 됩니다. 비록 단기적인 무역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금을 서반아와 포도아의 은으로 교환하면 되니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큰 이익을 낼 수 있습니다.”

고산국이 명나라의 강한 경제적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에 고산국이 명나라의 금과 은 교환비율을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쉬웠다.

그러나 혜영은 통이 컸고, 멀리 미래를 보고 있었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 잘못되면 금과 은이 대량으로 유입 또는 유출되면서 고산국이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럼 명나라 상인들이 고산국에 와서 상품을 살 때는 명나라에서 값이 싼 금을 지급하고, 상품을 팔 때는 은을 받아간다는 거지? 아! 헷갈려. 엄청난 양의 은이 필요할 텐데 감당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서반아와 일본의 은이 대부분 고산국에 들어온 다음 명나라로 흘러가고 있어요. 쌓인 게 적어서 그렇지 고산국의 은 유통량은 주인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많아요. 그리고 그 유통 과정에서 은을 약간씩 남겨먹는 거구요.”

상품 생산량이야 당연히 명나라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무역 규모로만 따지면 중개무역 비율이 높은 고산국이 명나라 전체 무역액의 절반 가까이 따라잡았다. 광동성과 복건성, 절강성에서 행해지는 명나라의 무역은 고산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다만 만리장성 이북 지역에서 유목민들과 행해지는 말과 차 교환 무역,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실크로드를 통한 비단 무역은 온전히 명나라가 독점하고 있었다. 조선이 1년에 네 번 이상 행하는 공무역도 의외로 국제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글쎄. 포도아와 서반아가 무역에 참가하고 있어. 복건 상인들도 마찬가지로 수시로 고산국에 드나들고 있어. 잘못하면 그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줄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야. 만약 그들이 금과 은의 가격 차이를 노리고 명나라와 고산국을 왕복하면서 재정거래를 해버리면 이론상 무한대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자본의 한계와 항해술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산국의 국가적 입장에서 보면 이익을 나눠줘야겠지만 그들을 동원해 은을 팔아 금을 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해온 재정거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민호와 혜영, 그리고 호국 참판만 대화 내용을 알아먹었지 나머지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다. 그러나 고산국을 이끄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결정이었고, 고산국에 살거나 무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회의였다.

하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이런 결정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현대에도 국제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중소 상인들은 어째서 불황이 오는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금 본위제를 시행하고 기준 화폐의 가치를 따라가되, 주조할 때 다른 금속을 섞어 그보다 약간 낮은 품질이 되도록 해. 그래야 국제화폐로 통용되면서 금화가 다른 지역으로 무한정 빠져나가는 것을 피할 수 있어.”

“기준을 어느 쪽으로 잡던 금 또는 은의 유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장이 두 가지이니 화폐를 두 가지로 발행해서 유출입을 제한하는 방법도 있어. 명나라 기준에 맞춘 것 하나, 국제 교환 비율에 따라 하나. 가능은 하지만 썩 좋지는 않은 방법이지.”

두 가지 통화체계는 오스만과 유럽 시장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던 베네치아에서 고민 끝에 쓰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많았다.

“명나라라는 너무 큰 시장 옆에 있으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그렇다고 거래할 때마다 금과 은의 양을 잰다는 것도 웃겨. 그냥 당분간은 금과 은을 한 냥 또는 한 돈 단위로 발행해서 칭량화폐를 대신하는 것으로 하자.”

“기준 가격은요?”

“귀금속 가격에 주조비용 약간을 더한 거지 뭐. 금과 은을 가져오면 9할 정도에 교환해줘. 금화와 은화는 시장에서 부족하지 않게 공급하되 가격이 변하면 변하는 대로 놔두는 게 좋을 거야.”

이 시대 에스파냐 같으면 은화 제조를 민간에게 맡기고 그 대신 주조에 사용될 은에서 일정 비율을 떼어가는 식으로 국고를 채웠다. 칭량화폐나 지방 제후들이 제멋대로 만드는 방식보다는 나았으나, 아직은 귀금속 함량이 화폐의 가격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금이 부족해 금태환 제도가 무너지고, 다시 화폐경제 자체에 위기가 닥치는 시대가 찾아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 사이 이민호도 늙어 죽을 테니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황금상과 경제문제 관련된 내용을 한 회 더 올리고 진주성전투로 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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