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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156화 (105/1,000)

00156  23. 해남도 발전 계획  =========================================================================

23. 해남도 발전 계획

천진항을 떠난 고산국 해군의 기함은 단독 항해로 산동반도 동쪽을 지나가고 있었다. 임진년 음력 9월 중순이었다. 바닷바람은 벌써부터 차가웠으나 오후의 가을 하늘은 맑고 햇살은 아직 따사로웠다.

“자! 공주! 나를 믿고 어서 팔을 양옆으로 쭉 뻗어 봐요.”

“꺄악! 바로 밑이 물이에요. 무서워요, 전하!”

기함의 뾰족한 함수 부분에서 이민호가 의용공주 주상아와 함께 눈꼴 시린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함수 끝부분에 공주를 세우고 이민호가 바로 뒤에서 꽉 껴안았다. 바로 뒤에 선 주상아의 시녀 네 명이 부러워서 탄성을 지르고, 깃대 망루에 위치한 무상이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공주의 엉덩이 골 사이에서 이민호의 것이 무럭무럭 커갈 때 공주가 간신히 용기를 냈다. 허리를 붙잡은 이민호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공주가 주춤주춤 팔을 벌렸던 것이다.

“아아!”

“어때요, 공주?”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 꿈에서 본 바로 그 장면이에요!”

이민호는 공주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던 중에 서로 입이 너무 가깝게 있어서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이민호가 혀를 들이밀자 이제는 익숙해진 공주가 혀를 쪽쪽 빨았다. 눈치 빠른 계복이 다른 승조원들이 보지 못하도록 뒤돌아서라고 명령했다.

“난파선입니다! 우현 4000보 모래톱에 좌초한 난파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깃대 망루에 오른 무상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분위기를 틈타 처음으로 야외에서 공주에게 야한 짓을 하던 이민호는 무척 실망했다.

선두무상은 해군 함장이 되었고, 무상은 견시 역할을 하는 해군 승조원이었다. 기함에 탑승한 뱃사람들은 전원 고산국 해군에 입대했고, 직책은 그대로 유지했다.

“하필 이럴 때. 공주, 미안하오.”

‘아닙니다, 전하. 조난당한 뱃사람들을 구하소서.”

산동반도 동쪽 끝의 해안 가까운 곳에 배 한 척이 모래톱에 얹혀 있었다. 배는 사선 같은 명나라 정크선이 아니라 조선의 어선과 같은 모양새였다. 그래서 더더욱 구조해주려 가까이 접근했는데, 어선의 갑판에서 사람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배에 탄 어부들은 벌써 다른 배에 구조되고 어선만 남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런 황포돛이 여전히 펼쳐져 있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만약 어부들이 다른 배에 구조됐다면 그 비싼 황포돛이 바람에 찢기지 않도록 접어놓았을 것이다.

“수심이 얕은 모양이니 배는 정지시키고 단정 두 척을 보내라. 아무래도 뭔가 사고가 난 것 같으니 계복이 직접 가봐라. 조심하고!”

“예. 다녀오겠습니다. 1려 3대 앞으로! 단정 두 척에 각기 열두 명, 열세 명씩 타라. 보병총 안전장치 해제!”

계복이 단정 두 척에 병력을 태우고 노를 저어 난파선에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단정 두 척이 어선 양쪽에서 접근하는 동안에도 어선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고개를 내밀어 어선 갑판 안쪽을 기웃거리던 계복이 난간을 잡고 올라섰다. 어선으로 넘어가려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 물러섰다가, 다시 계복을 따라 어선 갑판으로 올라섰다.

이민호는 병사들이 짓는 끔찍하다는 표정과 조심스러운 계복의 발걸음을 보고 대충 감이 잡혔다. 선원들이 이미 몰살한 유령선일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서 시녀들을 불러 공주를 선실로 안내하도록 했다.

“바다에서는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왜구들의 소행으로 인해 좀 끔찍한 장면이 펼쳐졌을 수 있으니 공주는 이만 들어가세요.”

“예. 바닷바람은 해로우니 전하도 얼른 들어오세요.”

“알겠소, 내 사랑~”

그 사이 이민호와 공주의 애정행각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공주의 성격도 더욱 발랄해져서 처음 이민호에게 왔을 때의 그늘을 지금은 공주의 표정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도련님! 도련님이 한 번 오셔야겠는데요?”

계복이 단정을 타고 돌아와 이민호에게 직접 볼 것을 권했다. 이민호가 민희, 민영과 함께 단정에 타는 동안에도 계복은 무슨 일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어선에 끔찍한 것들이 널려있으니 그러려니 하십시오. 시체, 내장, 피 같은 전쟁터에서 흔히 보는 그런 거죠.”

“혹시 선원들이 해적이나 왜구에게 당한 거야?”

“약탈당한 흔적이나 부서진 곳이 별로 없으니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해안선이 이렇게 가까우니 표류하다가 서로 잡아먹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마 뭔가를 두고 자기들끼리 싸운 것 같습니다.”

이민호가 배에 힘을 주고 어선 갑판에 올라섰다. 역시나 계복이 말한 것처럼 어선 갑판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열댓 명 정도가 목이 잘리거나 배에서 창자를 쏟아낸 채 죽어 있었다. 모두 조선인 복장을 한 시체들은 주로 선실로 이어지는 통로에 쌓여 있었다.

“피가 아직 굳지 않고 흐르는 것을 보니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주변에 어선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니 금방 예인돼 갔을 거야.”

그러나 명나라 중기 이후 왜구가 주로 해안지방을 노략질한 탓에 명나라 해안에는 그렇게 많은 어선이 활동하지 않았다. 해금령이 내려질 때마다 해안에서 100리 안쪽 내륙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기 때문에 요즘은 웬만한 해안에는 어촌이 아예 없다시피 했다.

“양반들이 칼을 들고 어선에 탔다? 이상한 일이네.”

“요즘 흔한 피난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아닙니다. 선실로 내려가 보시면 아실 겁니다.”

병사들이 시체를 갑판으로 옮겨 통로를 치웠다. 바닥에 피가 흥건했으나 이민호는 신발에 피가 묻을까봐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민호는 계복을 따라 아래쪽 선실로 내려갔다.

어둠침침한 선실 안에 뭔가 커다란 것들이 천에 덮여 있었다. 계복이 그 천을 하나씩 들쳐 올렸다. 커다란 물체들은 천으로 몇 겹씩 둘러 단단히 포장돼 있었지만 몇 개 빼고는 모양이 거의 일정했다.

“이겁니다. 도련님 눈에 익은 것이 맞죠?”

“맙소사! 도대체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천으로 둘러 쌓여있었지만 이민호는 내용물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민호가 몇 년 동안 열심히 무역을 해서 번 돈을 황금으로 바꿔서 만든 황소와 봉황, 그리고 십이지신상들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내수사가 마련해서 이민호가 명나라에 팔았던 홍삼 값의 절반이었다.

“저는 그림이 그려지는데요?”

“흠. 결국 강화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나 보군.”

조선 왕실에서는 한성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왜군의 침입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판단한 강화도 교동현 관아에 황금상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송 과정에서 백성들이 황금상을 알아봤고, 갖가지 비난이 왕실에 쏟아졌다. 황금상을 명나라에 팔아 화약과 무기를 사오자고 백성들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소문은 이민호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결국 강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켰거나 관아를 공격해 배로 빼돌린 황금상이 이들의 탐욕에 불을 질렀을 것이다. 명나라 해안에 도착할 즈음에 황금상을 독차지하려고 자기들끼리 서로 죽인 것 같았다. 욕심이 과한 자들의 흔한 최후였다.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건 주인님 것이니 고산국으로 옮기셔야죠?”

“이건 분명히 조선 왕실의 재산이다. 나를 바보라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내 몫은 이미 다 받았어.”

“설마, 조선 왕에게 돌려주려고요? 도련님! 호구 소리 이제 그만 들을 때도 되지 않았어요?”

“아니. 갑판에 죽어나자빠진 자들은 도둑이고, 이건 장물이니 내게도 권리가 있겠지.”

일단 고산국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나 바다에서 무거운 황금상을 다른 배로 옮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난파선을 일단 해안선으로 옮기려고 움직였다간 자칫 수면 밑에 숨은 모래톱에 기함이 좌초될 수도 있었다.

황하의 물결에 실려 온 엄청난 양의 황토는 조선 서해안은 물론 심지어 오키나와까지 가서 쌓인다. 산동반도 주변도 당연히 그 영향권 안에 들어서 배가 해안 가까이 항해하다가 좌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난파선을 기함에 연결해 예인하기로 했다. 그 전에 갑판에 널린 도둑들의 시체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난파선을 기함 함미에 연결했다.

- 위잉~ 텅텅텅텅!

기관에서 이상한 소리까지 나더니 간신히 모래톱에서 난파선을 끌어냈다. 어선에서 물이 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민호는 선실로 내려가는 통로에 금줄을 친 다음 호위대 병사 네 명을 교대로 보내 어선과 화물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배를 끌고 고산국으로 향했다. 이민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어선이 제대로 끌려오는지 확인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이민호가 기억하기로 처음 만들어서 바친 황금 황소는 황금 10만 냥이 들었다. 나머지 황금상과 십이지신상은 황금 10만 냥에서 15만 냥 사이의 무게였다.

황금상 3개와 십이지신상 9개를 합하면 150만 냥 정도였으니, 대략 황금 56톤에 해당했다. 현대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2조 8천억 원이 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저 배는 보물선이었다.

“전하! 저 배에 뭐가 있기에 그렇게 자주 들여다보세요?”

“황금이 좀 있소.”

함미에 위치한 함대사령관실 뒤쪽에 작은 유리창이 나 있어서 이민호가 그곳에 서 있었다. 공주가 간절한 눈빛으로 이민호에게 간청했다.

“전하! 이제 제발 주무세요. 벌써 사흘째 한숨도 못 주무셨어요. 매일 하시던 목욕도 안 하시고, 음식과 물도 거의 안 드셨어요.”

“내가 그랬소? 나도 참 소인이구려.”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근해에서 침몰했다는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 호에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금괴와 골동품이 실려 있다고 들었다. 이민호는 겨우 2조 8천억 원밖에 안 하는 황금에 눈이 먼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전하는 결코 소인이 아니십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하오, 공주. 내일은 궁궐에 도착하겠구려. 식사 좀 준비해주시오. 그 전에 먼저 목욕 좀 하겠소.”

이민호는 따스한 물에 샤워를 하면서 졸다가 벽에 머리를 찧었다. 깜짝 놀라 욕실에 뛰어 들어온 공주와 민영이 알몸의 이민호를 욕실에서 끌어내 침대에 눕혔다.

“머리에 피가 안 나니 다행이에요, 전하.”

공주가 무릎에 이민호를 눕히고 머리칼 속을 샅샅이 뒤졌다. 민영은 고개를 돌리고 쿡쿡 웃었다.

“또 추태를 보여서 미안하오, 공주.”

“아니에요. 앗!”

“나한테는 그대가 보물이거늘, 내가 잠시 미혹에 빠졌소.”

느끼한 멘트를 날린 이민호가 공주를 잡아당겼다. 몸을 더듬는데 공주가 손바닥으로 이민호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

“사흘 동안 밤을 샌 다음 갑자기 힘을 쓰시면 위험해요. 수라를 드시고 이만 주무세요.”

“공주님 말씀이 맞아요, 주인님.”

“끄응!”

이민호는 꾸벅꾸벅 졸면서 공주가 떠주는 죽을 먹었다. 그리고 마치 기절한 것처럼 잠에 빠져 들었다. 잠든 이민호를 공주와 민영이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것 같아 이민호는 자는 동안 내내 얼굴이 간지럽다고 느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이틀 후, 기함이 고산국 항구에 도착하고도 하루가 더 지난 그 다음 날 오전이었다. 잠에서 깬 이민호는 배가 너무 고파서 무지하게 먹어댔다.

“도련님! 직접 와서 보셔야죠?”

계복이 선실에 들어와서 이민호에게 황금상을 운반할 준비가 됐음을 보고했다. 항구 바깥에 귀빈용 사두마차 말고도 수송용 이두마차 열두 대가 늘어서 있었다. 기마병들이 3개 려나 동원됐고 항구 주변 경계도 대폭 강화됐다.

“계복이 네가 알아서 궁궐 지하 창고에 보관해. 나는 먼저 궁궐에 갈게.”

“오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시는 도련님! 역시 도련님은 통이 크세요. 그럼 나중에 구경하세요.”

“수고해.”

황금상을 실은 어선을 예인하면서 이민호는 사흘 내내 노심초사하며 불안했는데 이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공주와 함께 마차에 탄 이민호는 창문을 열고 바깥 풍경을 즐겼다. 이곳은 언제나 뜨거운 남국의 태양이 햇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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