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5 22. 출정 =========================================================================
원정군 전체에게 출전수당과 승리수당을 지급하고 이틀 간 휴가를 주면서 휴가비를 따로 지급했다. 보급품이 충분히 쌓이자 그 동안 보급품을 운반하던 마부들에게도 휴식을 주면서 마찬가지 대우를 해주었다.
원정군 병사들은 가족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국적인 중앙아시아 풍의 서역 물건을 사거나 동료 병사들과 함께 특이한 음식을 먹는데 휴가비를 사용했다. 이민호는 병사들에게 가급적 휴가비는 영하에서 다 쓰라고 권했는데 다들 말을 잘 들었다. 영하의 전후복구 사업이 조금 더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다.
기마병들을 헌병으로 삼아 영하 시내에 순찰을 시킨 덕에 별다른 사고가 나지 않았다. 명나라 군사들은 고산국 군사들을 만나면 어쩐지 주눅이 들어 시비를 거는 일도 없었다. 속국 병사라고 무시당할 수도 있었지만 처음 도착하자마자 그 무섭다는 몽골 기병 상대로 확실하게 전공을 세운 덕택이었다.
승첩을 축하한다며 회족들이 민속춤 공연을 연 날에 이민호는 직할군들을 이끌고 단체로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음악에 맞춰 야릇한 원색의 복장을 입은 무희들이 은근히 야한 춤을 추어 그 동안 군영에만 있던 병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무희들은 금빛이 나는 길쭉한 아랍식 항아리를 머리에 얹고 빙글빙글 도는 닝샤(寧夏) 후이족(回族)의 전통 무용을 공연했다.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아랍식 복장에 배꼽까지 드러냈는데 손동작은 왠지 모르게 중국식이었다. 마치 아랍과 중국을 짬뽕 시킨 춤 같았다.
“정말 이국적인 춤이에요.”
“그래?”
민희와 민영이 감탄하며 춤 동작을 따라하다가 쑥스러워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정통 아라비아 벨리 댄스를 봤던 이민호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민호는 음식을 나르는 회족들이 병사들을 몹시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반 명나라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소수민족들이 느끼는 중앙 조정의 군사력은 그저 공포일뿐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던 이민호는 웬 건물 잔해 앞에서 한숨을 내쉬는 노인을 만났다. 오지랖 넓은 이민호가 그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노인은 왜 그리 슬퍼하시오?”
“저는 무하마드라고 합니다, 대인. 명나라에서는 보통 마(馬) 씨라고 부릅니다. 닝샤 모스크, 그러니까 명나라 말로 영하 청진대사(淸眞大寺)에서 이맘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스크가 무너졌군요.”
“그렇습니다, 대인. 영하성 전체가 반란에 휘말리고 거센 물살이 몰아치는 바람에 미나렛을 제외하고는 청진대사 거의 전체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금요일인데 신앙심 깊은 무슬림들이 예배를 할 곳을 잃어 슬퍼하고 있으니 이맘으로서 어찌 안타깝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맘은 이슬람 종교공동체의 지도자 정도 위치였다. 예배할 때 지도를 해주는 사람이거나 설교를 맡기도 했다. 속세에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않는 순수한 종교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순박한 이맘이 이민호의 마음에 들었다.
미나렛은 예배 시간을 알리는 높은 첨탑인데 이곳 미나렛은 영락없이 중국식 누각이었다. 이름도 명나라에서 환배루(喚拜樓)라고 불렀다. 지역에 따라 모스크의 첨탑이 기독교 양식이나 페르시아 양식을 따르기도 했으니 기와를 얹은 첨탑이라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민호는 이슬람에 대해 별 생각은 없고 사원 건물이 현지 건축 양식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능하면 그 종교가 발생한 지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야 도시 건축물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좋고, 나그네 입장에서도 볼 게 많아진다고 생각했다.
“모스크가 명나라 건축양식으로 지어졌군요. 아라비아 돔 형식으로 짓고 주변에 높은 첨탑을 세울 수는 없소?”
“서안의 대청진사는 당나라 때 세워진 이슬람 사원입니다만, 역시나 중국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습니다. 알라를 경배할 때 신앙심이 중요하지 예배하는 건물의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훌륭한 생각입니다. 제가 이맘께 모스크를 재건할 자금을 약간 기부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맘께서는 힘을 내시고 신도들을 잘 이끌어주세요. 다만 황하에 홍수가 나더라도 물에 잠기지 않을 언덕에 지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민호는 호위병들을 시켜 은이 가득 담긴 상자 몇 개를 가져와 수공에도 버티며 유일하게 붕괴하지 않은 누각으로 날랐다. 이맘이 화들짝 놀라더니 갑자기 부들부들 떨었다.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알라께서 보내주신 천사 지브릴을 뵙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설마요. 나는 고산국의 국왕이오.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보바이의 난을 진압하러 온 것뿐이오.”
천사 지브릴은 아랍풍의 터번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는 가브리엘이었다. 이민호는 영하 원정이 예상보다 훨씬 일찍 끝난 덕택에 군자금이 많이 남아서 그 일부를 모스크 건립비용으로 기부한 것뿐이었다. 혹시나 나중에 이민호가 일을 진행하는데 회족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무너진 모스크에서 이맘이 천사를 만났다는 전설이 영하에 오래도록 남았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사원이 준공되면서 이름이 결정됐는데, 이민호의 정식 이름을 딴 ‘술탄 고미노 모스크’였다. 명나라 식으로는 ‘고왕(高王) 청진대사’가 되었다.
이민호는 회족의 유지들을 만난 자리에서 반란 때문에 고생했던 그들을 위로하고 회족 일반 백성들을 잘 보살펴주길 당부했다. 이여송이 영하의 회족들을 반란군으로 지목해 탄압하려는 것을 말렸던 사람이 이민호였고, 회족 유지들도 그 사실을 알고 이민호에게 고맙게 생각했다.
몇몇 회족 유지들이 이민호에게 딸을 바치려 했다. 아랍 지역 같으면 무슬림 여자가 비무슬림 남자에게 시집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이곳은 무슬림이 극소수에 불과한 명나라 북서부라 그 문제에 있어서만은 유연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고산국이 너무 먼 곳이라 데려가기 불편하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이들은 이슬람을 믿지만 언어는 일반적인 북부 한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민호에게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회족 대부분이 오아시스에 관개시설을 만들어 농사를 짓거나 유목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대규모 농업을 하는 고산국에서는 딱히 그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하! 제 이름은 아이샤에요. 고산국은 따뜻하고 평화롭다고 들었어요. 저는 국왕전하를 따라가고 싶어요.”
좋은 옷을 입은 회족 유지의 딸이 이민호에게 들이댔다. 이민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녀의 아비뿐만 아니라 다른 유지들도 그저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 이 지역에서는 용기 있는 처녀가 미남을 얻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이민호가 사양했다.
“길이 멀다니까. 그리고 넌 어려.”
“저는 말을 탈 줄 알아요. 그리고 음식도 할 줄 알아요. 국왕전하께 분명히 보탬이 될 거여요.”
“괜찮아. 내 밑에 정예 병사들과 숙수들이 있어.”
비록 원정 중에는 물이 부족해서 튀김과 고기만 먹느라 고생했지만, 궁궐에 가면 산해진미와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만으로 참아냈었다. 소녀가 스스로 능력을 팔았다.
“저 혼자서 양 400마리를 키울 수 있어요! 피 한 방울 안 흘리고도 양을 잡을 줄 알고 숫양을 거세시킬 줄도 알아요.”
“으음. 훌륭하긴 한데. 너는 어려서 아직 집에 있어야 할 때야.”
“제 나이 열여덟이에요. 일반 백성 같으면 벌써 시집가서 애를 둘은 낳을 나이에요.”
몽골인들의 유목 기술을 회족도 대부분 공유했다. 회족은 정착민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기술이 몽골족보다 더욱 심화, 발전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이곳도 비단길의 일부였다. 상업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 도입한 기술이 곡물 생산량이 부족한 영하를 살찌우고 있었다.
그래서 이민호도 조금 갈등했다. 그러나 소녀가 어려 보이고, 집 떠나면 고생할 것이 빤해서 그저 머리만 쓰다듬었다. 이민호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을 느낀 소녀가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양털을 깎아 실을 뽑아내 천을 짤 수 있어요. 여러 가지 무늬를 넣는 방법도 알아요. 카슈미르에서 데려온 산양의 털은 천으로 만들기 어렵지만 저는 할 수 있어요.”
“오오! 아이샤 너 정말 훌륭한 인재다. 나하고 같이 가자.”
이민호의 눈에 소녀가 갑자기 무척 예뻐 보였다. 이민호는 아이샤를 목축 및 직조 기술자로 초빙하게 됐다.
“어어? 그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전하!”
아이샤의 아버지와 유지들이 몹시 당황하더니 다른 방으로 잠시 몰려가서 회의를 했다. 캐시미어 모직 기술은 이 지역에서 아직 비밀에 속한 고급 기술이었고, 캐시미어 산양의 원산지인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방에서도 아직 제대로 된 직조 기술이 없었다.
회의하러 몰려간 방에서 고성이 터져 나오더니 잠시 후 유지들이 방에서 나왔다. 아이샤의 부친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았다.
“휴우!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제가 아이샤의 뛰어난 능력을 깜빡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군요. 그래도 명나라와 초원지대에서는 그 모직물을 판매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뭐, 좋소. 조선과 일본, 그리고 남만에만 판매하겠소.”
유지들은 경제적 이익보다는 유사시에 회족의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이민호와 연계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아이샤의 일을 도와줄 젊은 여자 여섯을 더 붙여주었다. 다들 회족 유지 가문들의 딸이었고, 아이샤라는 이름이 두 명이 더 있었다. 아이샤는 예언자 무함마드, 즉 마호메트의 아내 이름이라 이슬람 사회에서 인기가 좋은 이름이었다.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다는데도 몇 가지 기술을 지닌 젊은 여자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 중에 두 명이 몽골어를 할 줄 알아서 이민호 입장에서는 공짜로 통역까지 얻은 셈이 되었다.
이민호는 아이샤의 아버지에게서 털빛이 고운 이 지역 캐시미어 산양 암놈 50마리, 숫양 네 마리, 그리고 직조기 몇 틀을 샀다. 아이샤의 아버지는 예전에 족장을 했던 가문의 가장이라 다른 유지들보다 산업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고산국에서 소와 돼지를 키우는 외에는 목축을 하지 않았다. 양과 소, 말을 풀어놓고 키울 만한 초지도 부족했다. 산기슭에 폭이 좁은 초지가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민호는 캐시미어 산양에 욕심이 났다. 적당한 초지를 정 못 구하면 제주도에서 키워도 될 것 같았다.
이민호는 아이샤를 데리고 거처로 돌아왔다. 다른 여자들은 내일 짐을 챙겨서 오기로 했다.
“그런데 너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냐?”
“저야 국왕전하의 아내이니까요.”
문제는 아이샤가 이민호의 침대에 거침없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아이샤를 데려올 때 이민호가 애매한 태도를 취한 탓에 민희와 민영이 혼란에 빠져 아이샤를 막지 못했다. 속이 비치는 옷을 입은 아이샤가 이민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얼씨구? 너 그런 소리하다가 민희와 민영이한테 얻어맞는다?”
“두 분은 정식 귀인이시죠? 저한테도 후궁 직첩을 주세요, 전하. 낮아도 상관없어요. 꺄악! 이제부터 궁궐에서 살게 돼서 너무 좋아요.”
“꿈도 크네. 궁궐에서 산다고 다 왕비나 후궁은 아니다. 좋아. 넌 이제부터 무수리다. 하는 것 봐가면서 차근차근 나인까지 올리고 19세가 되면 상궁으로 직첩을 올려주마.”
“네에~ 감사해요. 앞으로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캐시미어 산양을 키우기 전에 먼저 아이샤를 잘 키워야 할 것 같았다. 이민호는 민희와 민영에게 시켜서 조선말을 할 수 있게 아이샤를 가르치도록 했다.
이민호가 아이샤를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이샤를 얻음으로 인해 유럽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 하나가 갖춰졌다. 그리고 회교도가 다수인 동남아 국가들에 접근할 때 아이샤가 많은 도움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여자가 일곱 명이나 새로 생겨서 이민호에게 부담이 되고 다른 아내들 보기에도 곤란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남자하고 결혼해도 된다고 말해주자 회족 여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어쩔 수 없이 고산국 궁궐에서 살아도 좋다고 약속했다.
며칠 후 칙사가 영하에 도착해 보바이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전공을 세운 장수들에게 상을 나눠주었다. 이민호는 장량보를 구원하는 외에 숙영지 야간 전투와 보급로 전투 등을 통해 몽골 기병 6천을 죽이거나 사로잡은 공으로 세습직 주애백도 아닌 주애공에 임명됐다. 어차피 해남도 전체가 통째로 굴러들어온 것은 마찬가지인데 같은 명예직이라도 백작보다 공작이 좋은 것만은 확실했다.
계복과 감불, 감동에게도 명나라 벼슬이 주어졌다. 계복은 도독동지 총병관, 감불과 감동은 도독첨사 참장이었다. 8개 려 천 명을 지휘하는 선임 여수들에게는 유격장군을, 여수들에게는 천총 직책을 내렸다.
명나라 벼슬을 받은 지휘관들은 이게 뭔가 하는 표정으로 머리만 긁적였다. 물론 전원 이주도독부 소속으로서 정식 명나라 벼슬은 아니고 단순한 명예직이었다.
그 외에도 고산국 직할군 영하 원정군은 빠른 시일 내에 조선 영토에 진입해 조선을 구원하고, 이민호는 즉시 황실로 와서 황제를 알현하라는 조칙이 내려왔다. 이민호는 원정군을 배에 태워서 고산국으로 보내면서 도착하고 나서 사흘 동안 휴가를 주었다. 휴가가 끝나면 원정군을 이끌고 9월 말에 통제영에 도착하라고 계복에게 일러두었다.
영하에서의 일을 모두 마친 이민호는 호위대만 이끌고 오르도스, 대동, 선부, 토목보를 지나 거용관에서 만리장성을 통과해 북경으로 입성했다. 만리장성 인근의 사막과 목초지, 유목민들을 살펴본 것이 이번 원정에서 이민호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 사이 미리 황하에서 내려 보낸 기함이 지금은 천진에 정박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황제를 알현하고 황제가 직접 내려준 주애공의 직첩을 받아들었다. 이제 해남도는 명목상 여전히 명나라 영토였지만 사실상 이민호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왔다. 이민호는 서비스로 황제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이번에는 몽골 놈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앞으로는 여진족이 더 큰 문제일 거야. 국초부터 지금까지 몽골을 견제할 의도로 여진족을 이용한 것은 사실인데, 잘못하면 이들이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겠어. 이성량도 없고, 이성량이 있어도 문제고, 고민일세.”
“영원백 이성량은 현재 파직되지 않았습니까?”
“그래. 누르하치를 배후에서 조종해 건주여진은 물론 전체 여진족을 관리하던 사람이 이성량일세. 한데 이 사람이 조금 도와줬더니 누르하치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어. 단기간에 미친 듯한 속도로 건주여진을 통합했네. 벌써 3년 전이야. 작년에 이성량이 파직된 것도 건주여진이 통합됐기 때문일세. 호랑이 새끼를 키워준 셈이 된 거야.”
명나라뿐 아니라 동양 전체의 정보를 쥔 황제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어설프게나마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 황제의 의중을 떠보고 싶었다.
“숫자도 얼마 안 되는 야만인 여진족 따위가 대국의 위세를 깎아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금나라의 후예인 여진을 우습게 보면 안 돼. 어쩌면 원나라보다 더 강해질 수도 있어. 그런데 조정 대신들은 그것을 모르지. 영원백 이성량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가능성을 무시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야. 국왕 자네도 앞으로 여진족을 경계해야 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만약 여진족을 토벌한다면 국왕이 병력을 이끌고 도와줄 수 있겠나? 새로 점령한 땅은 모두 자네에게 주겠네.”
잠시 고민하던 이민호가 황제의 이어진 말에 얼씨구나 떡밥을 덥석 물었다. 이민호는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한 다음에는 덩지가 너무 커져서 다루기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여진족을 군사적으로 정벌한다면 그 시기가 이를수록 좋았다. 그러나 명나라에 충분히 경제적, 군사적 부담을 준 다음이 좋을 것 같았다.
“저는 폐하의 신하이니 당연합니다, 폐하.”
“고맙네. 비록 번왕이지만 국왕 자네가 짐에게 가장 든든한 우군이야. 조정에 자리를 꿰찬 문무관들은 다들 멍청이만 있어. 환관들은 바로 내일 목이 잘릴 줄도 모르고 권력과 돈에 욕심을 내는 불나방들이지.”
“왜적을 물리친 다음에는 여진족을 정벌해야 합니다.”
“아니, 그 전에 일본을 정벌해야 해. 기분 같아서는 아주 호되게 죄를 묻고 싶군.”
“과연 그렇습니다. 황제폐하의 심안은 깊고도 현묘하십니다.”
이민호는 호위대를 이끌고 천진으로 가서 기함에 탔다. 의주로 갈까, 해남도로 갈까 한참을 고민하던 이민호는 결국 해남도를 인수하기 위해 고산국으로 향했다.
선조 임금과의 관계는 여전히 껄끄러웠다. 그래서 이민호는 당장 조선에 들어가지 않고 이여송의 거만함을 이용하기로 했다. 보바이의 반란에 참전했던 이여송의 요동군이 압록강에 도착하려면 아직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했다.
============================ 작품 후기 ============================
정리하는 편은 이렇게 길어집니다.
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