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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152화 (101/1,000)

00152  22. 출정  =========================================================================

“저희들이 직접 봤습니다, 대인. 삼면에서 포위해 황하로 밀어붙여 절반은 죽이고 절반은 항복을 받았습니다.”

이여송이 이민호의 말을 믿지 않다가 가정들이 보고하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민호에게 축하를 건넸다.

상대가 원나라 기병이 아닌 몽골 유목민이라 해도 명나라 기병이 몇 배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했다. 만약 몽골 기병이 도망친다면 패퇴하는 것이 아니라 유인작전을 하는 것이 아닌지 먼저 의심해야 했다. 그러나 고산국 직할군은 5천이 넘는 몽골 기병을 한 자리에 묶어둔 채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쓸어버렸으니 믿기 어려울 만했다.

“장량보에서 대첩을 올리신 전하께 경하를 드립니다. 전하의 군사들이 비록 말에 탔다 하나 그 몸놀림은 분명 기병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정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보병이었군요. 보병으로 몽골 기병을 잡으시다니, 더 대단하십니다.”

“고맙소, 제독. 내 군사들이 보병이라고 만만히 보고 그 좁은 지역에서 벗어나지 않고 싸우려고 한 몽골 놈들이 멍청했던 거요. 만약 제대로 된 원나라 장수가 있었다면 넓은 곳으로 우릴 유인한 다음 포위했을 거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몽골 기병이 유인을 해도 넘어가시지 않을 것 같군요.”

“고가 겁쟁이라는 뜻이요?”

“하하하! 저도 당연히 유인 작전에 안 넘어갑니다. 몽골 기병을 추격하다가 몰살당한 흔해빠진 멍청이들 중에 하나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보병이 지켜야 할 곳이 많다면 기병이 여기저기 공격하면서 보병을 개활지로 유인해낼 수 있었다. 장군은 버티려고 해도 백성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가면 왕이나 문관들이 버틸 수 없어 장군을 억지로 밖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사실 보병이 한 곳에서 버티면 고립되고,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식량이 곧 바닥난다. 몽골이 괜히 최대 제국이 된 것이 아니었다.

넓은 곳에서 기병이 보병을 포위한다 해도 섬멸을 노리고 즉각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병들이 방진을 단단히 짜고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버티면 기병이 공격해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피차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병은 포위한 채 며칠씩 시간을 끌면서 보병이 스스로 무너지길 기다린다. 물이 떨어져 보병들의 후퇴가 시작되면 그 뒤로는 일방적인 학살이 있을 뿐이었다.

이것이 기병이 보병을 상대로 가장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인데도 하투의 몽골 기병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만심 탓이거나,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이민호가 보기에 몽골 기병들은 영하성을 급히 구원하러 가기 위해서 그 좁은 황하의 강변이라는 지역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결행하다가 쫄딱 망한 듯했다.

만약 고산국 총병들이 화승총을 사용했다면 몽골 유목민들의 선택이 옳을 수도 있었다. 사르후 전투에서 조선 조총병들은 딱 한 발을 쐈을 뿐인데 여진 기병들은 벌써 진영에 돌입해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장전이 빠른 탄피식 후장소총을 상대하려면 기병들도 같은 성능의 총을 들어야 우세를 점할 수 있었다.

“내 군사들이 실상은 보병이란 사실은 제독도 잘 아실 것이오. 그러니 공성전도 기병들보다는 잘할 것이오. 이 제독은 이번 영하성 공성전에 내 군사들을 참가시켜주겠소?”

“물론입니다. 환영합니다, 전하. 저희들이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직할군 군사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아깝지만 모처럼 공성전에 참가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전공을 세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 병력으로 조선 남해안이나 일본에 무수히 많은 왜성들을 공략해야 할 테니 여기서 미리 실전을 시켜보고 싶었다.

만리장성 바로 뒤에 위치한 영하 지역은 기원전부터 자그마치 2천 년 동안 북방 기마민족과 남방 농경민족 사이에서 숱하게 전투가 치러진 곳이었다. 무수한 실전으로 단련된 만큼 성곽의 견고함도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명군이 운제나 충차 등 갖가지 공성장비를 동원해 몇 달 동안 공격했음에도 영하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여송이 요동에서 불랑기포 20여 문을 힘겹게 끌고 왔지만 철탄이나 돌을 둥글게 깎은 포탄이 석성을 상대로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지금은 영하성을 포위한 채 주로 투석기로 성안에 돌을 날리는 공격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었다. 이따금 유격 공자경이 묘족 군사를 이끌고 운제를 통해 성벽 위로 기습 공격을 가했으나 매번 격퇴 당했다. 몽골족이 들판이 아닌 성 안에서 버티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렇게까지 수성을 잘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여송의 동생 이여장은 영하성의 북관까지 연결되는 참호를 팠다. 마치 석축 아랫돌을 빼서 성을 무너뜨릴 것처럼 공사를 해서 보바이가 북관으로 병력을 집중시키고 화살 공격을 퍼부어 공사를 방해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공격은 시선을 끌기 위한 것에 불과했고 주공은 따로 있었다.

“오오! 넓군요.”

“석 달 동안 공사해서 오늘 처음으로 수공을 해봤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이민호는 이여송의 안내를 받아 수공을 위해 파놓은 보를 구경했다. 영하성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건설된 거대한 저수지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오전에 무너뜨렸던 제방을 다시 수리하고 있었다. 수리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수로를 통해 황하에서 끌어들인 물이 보에 차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제방을 한꺼번에 터뜨리면 낮은 곳에 있는 웬만한 구조물은 거센 물살에 다 휩쓸리기 마련이었다. 보를 워낙 크게 만들어서 물이 가득 찰 때까지 이틀을 더 기다렸다가 수공을 다시 할 계획이라고 이여송이 설명했다.

“물을 담는 것보다는 수문을 동시에 터뜨려 한꺼번에 쏟아지는 거센 물살로 성곽을 무너뜨리는 것이 수공의 요체입니다. 헌데 수문을 동시에 터뜨리거나 제방을 무너뜨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제방을 너무 약하게 만들면 물이 차는 동안 미리 무너질 것이고, 튼튼하게 만들면 필요할 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수공은 실패했다. 보에서 영하성까지 거리가 거의 3마장에 달했는데 그 사이 물이 땅 위에 천천히 흐르면 사방으로 퍼지고, 수공의 위력은 급감한다.

“제방 몇 군데에 화약통을 묻어서 동시에 터뜨리지 그러시오?”

“그 비싼 화약을 어떻게! 으음. 맞는 말씀입니다. 시간이 돈이지요. 반란 진압이 길어지면서 군비가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여송이 일어나서 양손을 붙잡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읍이라는 인사인데 이민호도 답례로 같이 했다.

이민호는 이여송 입에서 시간이 돈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이상하게 생각됐다. 그리고 부친 이응화에게 지독히 건방진 놈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이여송이 예의를 차리는 것도 신기했다.

어쨌든 자그마한 것을 아끼려다가 큰 것을 잃기가 쉬웠다. 전쟁 때는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지론이었다.

그 사이 계복은 영하성에서 약간 떨어진 언덕에 숙영지를 건설했다. 군영 주변을 목책으로 두르고 그 앞에 마른 해자 같은 구덩이를 판 다음 가시덩굴로 보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직할군이 야전 훈련을 할 때마다 항상 하던 일이라서 위에서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아도 병사들이 열심히 해냈다.

비록 오늘은 지리를 이용해 승리를 거뒀다고 하지만 영하성에 들어앉은 상대도 그 유명했던 몽골 기병이었고, 유목민들과 달리 저들은 진짜 군인이었다. 저들이 언제 말을 타고 성 밖으로 쏟아져 나올지 몰라 원정군 군사들은 다들 극도로 긴장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여진족 출신인 감불과 감동, 그리고 민희와 민영 등은 몽골 기병을 특별히 여기지 않는 듯했다.

누르하치는 1607년에 조선에 문서를 보낼 때는 건주여진이 몽골의 유민이라고 자칭하기도 했다. 조선과 명나라가 여진족보다는 원나라를 세웠던 몽골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건주여진은 몽골의 유민이면서 동시에 신라와 고려의 후손이기 되기도 했다.

“호호! 주인님은 뭐든지 밀가루에 버무려서 기름에 튀겨버려요.”

“따뜻할 때 먹으면 맛있잖아?”

이민호는 민희, 민영과 같은 천막을 쓰면서 저녁 식사를 함께 준비했다. 세 사람은 쌀과 밀가루, 고기와 채소를 아낌없이 써 가면서 요리 여러 가지를 만들어냈다. 한식은 준비과정이 너무 길어서 야전에서 먹기에는 곤란했고, 식재료를 기름에 튀기면 웬만큼 맛을 낼 수 있어서 편했다. 너무 느끼하면 차를 마셨다.

장량보에서 하투의 몽골 기병을 쳐 없앤 덕택에 배후를 걱정하거나 보급선이 끊길 염려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래서 이렇게 식사할 때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오후 늦게 보급수레 100대가 흑인 보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숙영지에 도착했다. 소수 기마병도 보급대에 따라붙었으나 이들은 호위가 아닌 전령이나 척후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다.

5일에 한 번씩 이렇게 보급을 받기로 한 것 중에서 첫 번째 보급이었다. 이곳 숙영지까지 오는 수레는 300대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수레 700대는 보급선을 지키는 병사나 마부들에게 소요됐다.

명나라 군대는 다른 길로 군량을 보급 받고 있었다. 평소라면 북경, 선부, 대동, 오르도스를 통해 보급선을 유지하겠지만 지금은 오르도스가 반란군에 동조하는 몽골 유목민들에게 막혀 남쪽 서안까지 보급로를 연결했다. 옛 왕조들의 수도였던 장안은 명나라 때 서안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남쪽 길이 험해서 수레가 아닌 말이나 나귀에 군량을 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반란 진압에 동원된 군사가 5만인데 보급에 동원된 백성이 15만을 넘었다. 그래도 매우 효율적인 보급이라고 감군어사 매국정(梅國楨)이 이여송을 칭찬했다는 소리를 나중에 들었다.

“여진 기병이 몽골 기병보다 못할 것은 없어요. 하지만 여진 기병이나 몽골 기병 입장에서는 조선 기병이 상대하기 제일 까다로울 걸요?”

“활 때문에? 사거리가 길면 확실히 유리하겠지.”

몽골 각궁은 250미터 정도 날아가는데 보통은 150미터 정도에서 쏘았다. 이에 반해 조선 흑각궁은 그 이상을 날아갔다. 그러나 장수나 군관급이 쏘는 각궁과 일반 병사들이 쏘는 목궁의 성능 차가 심해 전면전으로 붙을 경우 딱히 조선 기병이 유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기동력은 몽골이나 여진이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니 조선이 방어는 해내더라도 섣불리 공격에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총을 다시 보게 됐어요. 오늘처럼 몽골 기병을 완벽하게 패배시키는 모습은 상상도 못했어요. 역시 주인님이 최고예요.”

민희에게 칭찬을 들으니 이민호도 기분이 좋았다. 강한 자를 숭상하는 여진족 여인에게 듣는 칭찬은 전혀 남달랐다.

그런데 갑자기 바깥에서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고함소리와 비명도 이어졌다. 씽씽 불어대는 모래바람 속에서 말발굽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적이다! 야습이다!”

“역시 왔군.”

숙영지를 건설한 첫 날이니 아무래도 방어시설을 완벽하게 다 갖추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먼 길을 와서 피곤하기도 할 테니 적과 대치한 첫 날에는 반드시 야습이 온다고 봐도 됐다. 웅치에서도 김제군수 정담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규모 왜군을 상대로 이틀 연속 야습을 감행했었다.

이민호가 천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민희가 막았다. 그 사이에 민영이 방탄조끼를 들었다. 이민호가 손을 저었으나 민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냥 멀리서 지휘만 할 거야.”

“언제 어디서 유시가 날아올지 모르니 그래도 입으세요. 주인님은 다른 병사들에게도 전투 전에는 반드시 방탄조끼를 걸치라고 교육 시켰잖아요? 그건 주인님에게도 해당돼요.”

“급해! 지금 이 시간에도 아군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을지도 몰라.”

“민영이가 목숨 걸고 지킨 주인님의 목숨이에요.”

“어휴! 그래. 고맙다.”

이민호는 어쩔 수 없이 둘이 방탄조끼를 착용하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민희와 민영이 이민호 앞뒤에서 모든 부위에 방탄판을 차례로 붙였다. 이민호도 둘이 방탄조끼를 착용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 작품 후기 ============================

자꾸 늦어지네요.

오전에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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