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51화 (100/1,000)

00151  22. 출정  =========================================================================

“그래 주신다면 소관에게 더 없는 광영이겠습니다만, 황상폐하께서 원려하실 듯합니다.”

“내가 그 정도 군세도 막아내지 못한다면 어찌 군사를 이끌고 토역군을 응원하러 왔다고 할 수 있겠소?”

“하투의 몽골 기병이 5천 명이 넘는다는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민호가 이여송은 제독이니 영하성 근처에 있으라는 식으로 설득하자 이여송이 결국 넘어왔다. 이민호는 이여송에게서 장량보의 위치와 특성, 그리고 하투 몽골족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들었다.

이여송은 이민호에게 몽골 기병 상대로 절대로 야전을 시도하지 말고 보루 안에 들어가서 싸우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언덕에 진을 치고 싸우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민호도 이여송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이여송은 가정(家丁) 두 명을 길잡이로 쓰라고 남겨두고 다시 영하성으로 돌아갔다. 가정은 원래 하인이라는 말이었지만 군제가 무너진 명나라 후기의 사병이었다. 한족은 싸움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어서 유명한 장군들이 거느린 가정들 중에는 섬라와 안남 등 외국인이 많았다.

이민호는 영하성을 구경도 못해본 채 행군 방향을 북쪽으로 틀었다. 이여송이 남겨둔 가정은 이 지역을 잘 알고 있어서 지름길을 통해 고산국 원정군을 안내했다.

장량보는 영하성보다 북쪽에 있었다. 이 지역이 다 그렇듯이 황하를 따라 경작지가 펼쳐져 있었다. 장량보라는 보루는 그 황하 강변 동쪽 경작지 한가운데에 위치했다. 그리고 지금은 수많은 몽골 기병들에게 포위된 채 보루 곳곳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속보! 전진 속도를 높여라.”

이민호가 말 잔등에 박차를 가하면서 행군대열 오른쪽으로 빠져 나갔다. 호위대를 이끌고 언덕에 올라선 이민호가 보루 주변의 전투 상황을 잠시 지켜보았다. 눈이 좋은 계복이 간단히 평했다.

“보루 안에서 하마한 적 기병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점령되지 않았습니다.”

“함락 직전이야. 잘못하면 각개격파 당하는 최악의 경우가 돼서 곤란한데. 하지만 외로운 성에서 싸우는 자들이 고스란히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어서 가자!”

이민호가 언덕에서 내려온 다음 원정군의 행군속도를 더욱 높였다. 보루가 점령되기 전에 도착해야 하니 행렬 가장 뒤에 선 흑인 보병들이 몇 명 낙마할 것을 각오하고 말을 빨리 몰았다. 몽골 기병들이 원정군을 발견하고 반응을 보였다.

“보루를 포위했던 몽골족 기병들이 뭉치고 있습니다. 돌격 진형입니다.”

“숫자가 비슷해 보이니 한 판 정면으로 붙자는 거지. 전원 하마!”

승마보병과 흑인 보병, 해병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각 대별로 두 명씩 말을 지키도록 하고 나머지는 급히 보병방진을 짰다. 기마병 수천 명 앞에 서니 당연히 겁이 나기 마련이었고, 이민호도 불알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서쪽은 황하, 동쪽은 낮으면서도 험한 산지였다. 그 중간 600미터 정도 되는 벌판이 황하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민호는 승마보병들에게 각 려별로 작은 방진을 만들게 하고 두 줄로 세웠다. 그리고 8개 려 1천 명씩을 묶어 서로를 지원하도록 했다. 4 곱하기 2로 구성된 1천 명짜리 큰 방진이 세 개가 되었고, 3천 명이 폭 600미터를 지키니 들판에 꽉 들어찼다.

해병과 흑인 보병은 예비대로 승마보병 뒤에 두었다. 몽골족이 말을 탄 채로 황하를 건널 것에 대비해 해병은 서쪽 강변을 따라 길게 배치하고, 몽골군 일부가 동쪽의 산지로 우회할 것에 대비해 흑인 보병을 동쪽에 배치했다.

- 두두두두두~

원정군이 진형을 짜는 동안을 기다려주지 않고 몽골족 기병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말 5천여 마리가 전력으로 달리자 천지가 진동했다. 이민호가 5천 명을 말에 태우고 돌아다닐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박력이 몽골 기병들에게서 느껴졌다.

조선 기병 같으면 벌써 활을 쏘고도 남을 거리인데도 몽골 기병들은 빈 활만 들고 계속해서 달려왔다. 이민호가 고함을 질렀다.

“초탄 발사 후 각 여수에게 지휘권을 넘긴다. 일렬 쏴!”

- 타타타타타타타타탕~

원정군이 방진대형을 짜면서 방진끼리 시야를 가려서 승마보병 3천 명 중에서 겨우 300에서 400명 정도만 보병총 혹은 기병총을 발사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보병방진을 깨기 위해 밀집대형을 갖추고 한꺼번에 몰려오던 기병 대열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겼다. 높이만 대충 수평으로 맞추고 쏘면 총알이 빗나갈 일은 없었다. 이어서 2열이 총을 발사했다.

이제부터는 125명의 지휘관인 여수들이 알아서 지휘해야 했다. 승마보병들의 주 무장인 보병총과 기병총은 후장총이라 1열이 물러서서 장전하는 동안 2열이 앞으로 나가서 쏘는 식으로 교대 사격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의외로 병사들에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에 전투 경험이 풍부한 여수들은 대원들에게 교대로 사격을 시키고 있었다. 기병총은 단 번에 여섯 발을 모두 퍼부은 다음 문 클립을 이용해 한꺼번에 실탄을 장전했다.

- 퍼벙! 펑!

각 대별로 두 명씩 있는 유탄 사수들은 처음부터 소총이 아닌 유탄을 발사했다. 기마대열 중간 중간에서 유탄이 펑펑 터지자 파편에 맞은 말과 몽골 기병들이 한꺼번에 서넛씩 쓰러졌다.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던 기병들이 이미 쓰러진 말과 사람에 걸려 넘어졌다. 몽골 기병들 중에서 지금까지 활을 한 발이라도 쏜 자는 거의 없었다.

몽골 기병은 적진을 향해 용감하게 돌진해오지 않았다. 이들은 중기병과 경기병이 적당한 비율을 맞춘 원나라 군사가 아니라, 절반 이상이 갑옷을 갖추지 못한 유목민 경기병들이었다. 피해가 급격히 누적되자 몽골 기병들이 전진을 멈췄고, 기병이 정지하는 순간 더 큰 인명 피해가 대량으로 발생했다.

“전진!”

이민호가 말을 몰고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호위대는 멀리서 이민호에게 활을 쏘려는 몽골족 기병을 말을 타고 달리면서 저격했다. 계복은 서너 명 이상 뭉쳐서 달려오는 기병들을 향해 유탄을 발사했다.

승마보병들이 전진하면서 압박을 가하자 몽골 기병들이 우왕좌왕했다. 이민호는 보병방진을 계속 전진시켰다. 몽골 기병들이 결국 밀리면서 승마보병들이 보루까지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

“계복아! 해병 5개 려를 데리고 보루를 점령하고 안에서 쏴!”

“예! 아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계복이 5개 려, 600명의 해병을 이끌고 무너진 벽을 통해 장량보로 진입했다. 잠시 후 보루 안에서 총소리가 연속 울리면서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사이 이민호는 승마보병들을 지휘해 몽골 기병을 북쪽으로 계속 밀어붙였다.

“보병, 이열 종대로 전진!”

이민호가 흑인 보병들을 이끌고 몽골 기병들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나섰다. 흑인 보병들 중에서 왼쪽 줄은 방패와 칼을 들었고, 오른쪽 절반은 총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보병총이든 기병총이든 무조건 직선 사격만 가능했다. 대부분 조선인 출신인 승마보병들이 탄도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가늠자와 가늠쇠를 수정할 수 있는 것에 비하면 흑인들의 사격술은 아직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이민호는 이들에게 유탄발사기를 주지 않고 다만 수류탄만 휴대하고 다니도록 했다. 흑인들이 총기에 좀 더 익숙해진 다음에 유탄발사기도 지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흑인 보병들의 용기와 체력만은 대단했다. 이들은 아직도 수천 명이 남아서 활을 쏘며 버티는 몽골 기병들을 무시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했다.

“정지! 좌향좌!”

이민호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호위대가 간간이 전령 역할을 해줬지만 통신 수단이 너무 열악했다.

흑인 보병들은 겨우 두 줄로 1천 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포위망을 완성했다. 가끔 날아오는 화살을 방패병이 방패를 번쩍 치켜들어 막는 동안 총병들이 사격을 퍼부었다.

“전진! 적을 황하로 밀어붙여!”

두 방향에서 교차 사격을 하자 화망에 걸린 몽골 기병들에게 재앙이 닥쳤다. 보루에서도 전투가 끝났는지 해병들이 몽골 기병들이 뭉친 곳을 향해 유탄 사격과 총격을 가했다. 점점 가까워지자 해병들이 몽골 기병들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몽골 기병들은 세 방향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고, 유일하게 남은 서쪽은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흐르는 황하였다. 몽골 기병들은 이쪽저쪽으로 공격을 해봤으나 포위망은 어느 방향이든 탄탄했고, 돌파 시도를 할 때마다 몽골 기병들의 피해만 누적됐다.

결국 몇몇 기병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흐름이 거센 황하로 뛰어들었다. 말이 수영을 잘하는 동물인데도 불구하고 사람과 말이 한꺼번에 격류에 휘말려버렸고, 다시 떠오르지 못했다.

“항복! 항복하겠다!”

“사격 중지!”

거란족과 비슷하게 일본 갓파의 헤어스타일 같은 모자를 쓴 몽골 기병이 뛰어나오자 이민호가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각 려별로 명령이 전달되는 시간이 걸려서, 완전히 사격을 중지할 때까지 몽골 기병 100여 명이 더 쓰러졌다.

“항복합니다!”

“전원 말에서 내려 집결해!”

“예. 모두 불러오겠습니다.”

드디어 전투가 끝났다. 이곳 장량보에서 몽골 기병 2300명 정도가 포로로 잡혔다. 그리고 그 이상이 전투 중에 들판에, 혹은 보루 안에 쓰러져 있었다.

해병 5개 려가 차례로 보루에서 나왔다. 승마보병은 야전 외에 산악전을, 해병은 해상전 외에 시가전 훈련을 받아서 해병이 근접전을 더 잘하는 편이었다. 해병 여수인 감불과 감동의 여유 넘치는 얼굴을 보니 어려운 전투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이민호가 호위대를 거느리고 반쯤 무너진 보루에 가까이 가는 동안 살아남은 명나라 수비병들이 모두 뛰어 나왔다. 그리고 호들갑스럽게 이민호에게 절을 하거나 읍을 했다. 장량보 수비병이 천 명이라고 들었는데 절반 정도만 살아남은 것 같았다.

“고산국 국왕전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압도적인 승첩을 거두신 전하께 경하 드립니다.”

“우리가 올 때까지 잘 버텨주었다. 전공의 절반은 그대들의 것이다.”

“감사합니다. 지휘관인 참장은 이미 전사하셨습니다만 나머지는 전하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용감히 싸웠으니 황제폐하로부터 정당한 포상이 있을 것이다. 당분간 저 포로들을 이곳에 맡기겠다.”

“맡겨주십시오, 전하!”

이민호는 포로 경비와 노획물 수집을 장량보 수비병들에게 맡기고 원정군 전원을 말에 태웠다. 그 사이 수비병들이 몽골 포로들을 때리며 옷을 홀딱 벗겼다.

“이봐! 포로들에 대한 학대를 멈춰라! 내가 얻은 포로다!”

“죄송합니다, 전하. 포로들 몸에 쓸데없는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잘 대해주겠습니다.”

수비병들은 이민호가 포로들을 북경으로 데리고 개선하는 줄 알았는지 구타를 멈췄다. 그러나 몸에 무기를 감췄는지 샅샅이 수색하는 절차를 확실히 진행했다.

“아군 사상자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교전 거리 차이가 커서 아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아군 사상자는 화살이 몸에 살짝 꽂힌 승마보병 경상자 둘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코가 깨진 흑인 보병 한 명뿐이었다.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고 나자 부상자들도 말을 타고 달리는 것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영하성으로 간다!”

기마병들을 척후와 첨병 려로 내세우고 이민호가 5천 명을 이끌고 남진했다. 황하 강변의 평지라서 말을 달리기에는 아주 좋았다. 이여송이 남겨둔 가정들이 아주 공손하게 길을 안내했다.

한 시간쯤 달리자 푸른 숲 사이에 높이 솟은 영하성이 눈에 들어왔다. 명나라 진압군이 실시한 일차 수공이 실패한 탓인지 영하성 주변은 온통 물바다였다. 발목이 잠길 만한 깊이로 물이 고여 있어서 이민호는 원정군에게 말에서 내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여송이 가정 몇을 끌고 달려왔다.

“고산국 국왕전하! 어찌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전하께서는 장량보를 구해주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미 구하고 왔소. 하투의 몽골 기병이 5천 맞지요? 자세한 결과는 이 제독의 가정들에게 들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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