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50화 (99/1,000)

00150  22. 출정  =========================================================================

계복이 원정군을 태운 함대를 이끌고 도착했을 때 명나라 조정의 명을 받은 관원들이 이미 수레 천 대를 모아서 대기해 놓고 있었다고 한다. 수레 천 대면 부족하나마 원정군 1만여 명의 군량 보급을 할 수 있는 숫자였다.

병력 7천에 마부와 노무자 5천, 말 5천 마리가 하루에 먹어대는 양은 어마어마했다. 고산국에서 쌀 1만 석과 말먹이 콩을 준비했으나 이것은 겨우 석 달 치에도 못 미쳤다. 보바이의 반란이 벌써 6개월을 끌고 있으면서도 진압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3개월 치의 군량은 누구나 부족하다고 여겼다.

일단 배에 실린 보급품을 수레로 옮겨 전쟁터와 포구 중간의 보급거점으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됐다. 그 작업을 마친 다음에는 다른 곳에서 새로 구입한 군량을 마부와 하인들이 꾸준히 보급 거점으로 실어 날라야 원정군의 지속적인 전투가 가능했다.

이민호는 민희, 민영과 함께 말을 타고 배에서 내렸다. 계복이 너른 들판에 7천의 병력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흑인 병사들 다수가 말에 타고 있어서 이민호가 의아했다.

그런데 말에 탄 흑인 군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흑인들은 세상에 태어나서 말을 처음으로 타본 자들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했다. 벌써 열흘 동안 훈련을 받았는데도 아직 말안장에서 제대로 균형을 잡고 앉지 못했다.

“흑인은 다 보병인데 왜 말에 태웠어?”

“승마보병 3천 명 외에 흑인 보병 1천, 해병 1천을 말에 태웠습니다. 명나라 관원들이 수레를 끌 짐말을 2천 필이나 지원해주었거든요.”

“오오! 그거 고마운 일이군. 그런데 열흘이나 훈련시켰는데도 말을 제대로 못 타? 운동 신경 좋은 흑형답지 않게 왜 이래?”

명나라 조정에서 협조한 것은 수레 천 량 말고 짐말 2천 필도 있었다. 물론 백성들에게서 징발한 것이니 나중에 전쟁이 끝나면 다 돌려줘야 했다. 만약 전쟁 기간 중에 말이 죽거나 수레가 파손되면 명나라 조정에서 주인에게 물어줄 테니 이민호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전쟁은 되도록 빨리 끝내는 편이 좋았다. 시간이 갈수록 전비가 무한급수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나라 조정에서는 고산국 원정군에 대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단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100km쯤 떨어진 연안군에 보급 거점을 세우기로 하고, 원정군 전체가 함께 가파른 산길로 움직였다. 짐말 한두 마리가 끄는 수레 천 대가 한 줄로 서니 전체 행렬이 10km가 넘었다.

이런 길을 말이 끄는 수레만으로 보급선을 유지하려면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선부나 대동처럼 만리장성에 가까운 군사도시들은 수로를 통해 운반할 수도 없고 도로 사정도 형편없어서 운송비 때문에 쌀값이 비싼 지역이었다.

하루에 백 리 넘게 강행군을 해서 이틀 후에 연안군에 도착했다. 연안은 도시 전체가 산과 산 사이의 좁은 계곡을 따라서 발달했다. 그러나 계곡 주제에 도로가 사통팔달,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을 했을 때의 종착점이 바로 이곳이었다.

이민호는 이 지역 관리들과 노인들을 찾아다니며 검은 물, 석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서지리지>에 ‘고노현에 유수(洧水)가 있어 불에 잘 탄다.’는 기록이 있는데 연안의 옛 이름이 고노현이었다. 그러나 석유는커녕 비슷한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연안에서 북서쪽으로 300km쯤에 영하가, 북쪽으로 300km쯤에 오르도스가 있었다. 기마병이 활동할 적절한 위치라고 보기에는 조금 멀었다. 그리고 이곳은 산길이 너무 험해서 보급 거점을 북쪽 100km 정도에 위치한, 지금은 쓰지 않는 옛날 보루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전원이 말을 타고 250리 길을 가는데 이틀 반이 걸려. 어이가 없다.”

“말을 탔다 해도 보병이니까요. 동행한 수레도 있지 않습니까?”

계복이 이유를 말해줘도 이민호는 계속 투덜거렸다. 기병이라면 높은 기동력이 최대 장점인데 전체 병사들을 기껏 말에 태웠어도 승마술이 딸리니 장점을 전혀 살릴 수가 없었다.

말라붙은 개천 길을 따라 이틀 넘게 걸려 도착한 곳은 옛날 오아시스였다. 그러나 지금은 물이 말랐는지, 아니면 강이 지하로 숨어서 흐르는지 나뭇잎은 푸른데 땅에서 물을 찾기 어려웠다. 우물이 군데군데 있어서 안심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물도 이미 말랐다.

낡은 보루는 괜찮았다. 흙을 쌓아 만든 보루는 낡고 허름했지만 방어하기에 적당한 크기와 위치에 있어서 이민호의 마음에 들었다. 말에 타지 않은 흑인 보병 2천이 뒤늦게 도착해 보루와 보급로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수레를 끌고 온 마부와 하인들은 흑인 보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연안 방향으로 돌아갔다.

여기서부터 나무를 보기 어려운 황토고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낮에는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가 낮아서 숨이 턱턱 막혔고,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해서 몹시 추웠다. 이곳은 한반도에 황사라 칭하는 모래먼지를 날리는 바로 그 황토고원이었다. 모래바람 때문에 시계가 뚝 떨어졌다.

다음 날 아침 이민호는 기병과 승마보병 3천, 말에 탄 흑인 보병 천과 해병 천을 이끌고 보루를 떠나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사막으로 나섰다. 영하는 북서쪽 200km 정도 거리였다.

병사들은 모두 열흘 치 식량을 휴대하고 요대에 찬 놋쇠 물통 외에도 가죽물주머니 네 개를 말안장에 묶었다. 여기에 더해 각 대별로 큰 물통을 따로 운반했다. 사막을 우습게 봤다간 큰 코 다치니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았다. 그리고 황하는 흙탕물이라 물을 마시려면 최소 하루 이틀은 물통에 놔둬야 토사가 가라앉았다.

“쿨럭! 전원 두건 착용해!”

이민호가 지시를 내렸을 때는 군사들 다수가 기침을 해대고 있을 때였다. 군사들이 은행강도가 쓸 듯한 시커먼 두건을 뒤집어쓴 다음 방탄모를 쓰고 턱끈을 조였다. 그러나 모래바람이 하도 강하게 불어서 이민호는 사막작전에서 고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눈을 뜰 때마다 빠르게 날아온 모래가 눈알을 때려서 몹시 따가웠다. 다들 눈물을 질질 흘리며 행군을 계속했다. 모래폭풍 안에 있을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서 가끔 소리를 질러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행군했다.

1만 2천 명이 넘게 출발했는데 실전에 5천을 투입할 수 있다면 이 시대 기준으로 전투병 비율이 꽤나 높은 편에 속했다. 사실 현대전에서도 실제 싸우는 병력이 전체 병력의 3분의 1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었다.

승마보병이나 유사시에 대비해 승마 훈련을 받았던 해병은 나았지만 흑인 보병들이 승마술에 워낙 서툴러서 문제가 많았다. 아직 적이라곤 구경도 못해봤는데 낙마사고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결국 전체 군이 흑인 보병의 이동 속도에 맞춰 천천히 진군했다.

모래바람이 가라앉자 멀리 지평선까지 온통 모래뿐이었다. 이민호는 영하까지 말로 이틀 걸리는 길을 사흘에 걸쳐 느긋하게 가면서 병사들이 주변 사막 지형에 적응하도록 했다.

온 천지가 황하처럼 황량하게 누런색이라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심지어 바람이 좀 부는 날에는 황토가 날아올라 하늘도 온통 누런색이었다.

“미세한 모래가 많이 들어갔으니 총 소제를 제대로 해라. 콩기름은 반드시 헝겊으로 닦아내야 불이 나지 않아!”

밤에 숙영을 할 때마다 대정들이 천막마다 돌아다니면서 총기 청소를 시켰다. 병사들은 천을 조금 찢어 뭉쳐서 총구를 틀어막았으나 꽂을대로 닦아보면 모래가 누렇게 묻어나왔다.

- 탕! 타타탕! 탕!

갑작스런 총성에 놀란 병사들이 천막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민호도 얼른 천막에서 나와 말에 올라탄 다음 적이 어디서 오는지 살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에 처음 총격을 가했던 대의 대정과 그 상급자인 여수가 함께 이민호에게 와서 보고했다.

“국왕전하! 초병들이 정체불명의 기마병 10여 명을 발견하고 대 전체를 깨워 적을 충분히 끌어들인 다음 사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서 적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겠지. 그래도 잘했다.”

이민호가 생각해 보니 직할군에게 야간사격 훈련을 시킨 적이 없었다. 목표가 흐릿하게 보인다면 훈련을 시키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적 한 명이 총에 맞은 듯했으나 다른 적들이 그를 말에 태우고 떠났습니다. 저희들이 지키는 방향의 사막에 말 세 마리가 총에 맞아 쓰러져 있습니다. 휴대품을 살펴보니 장사하러 다니는 대상이 아닌 군사가 틀림없었습니다.”

“잘했다. 초병들은 물론 대 전체에게 상을 주겠다.”

실처럼 가느다란 초승달이 떠 있었지만 사막의 밤은 충분히 적의 접근을 알아차리게 도와줬다. 이때부터 밤이 깊어진 뒤에도 불침번들이 확실히 번을 섰다. 이런 곳에서 꾸벅꾸벅 졸았다간 언제 적이 침투해서 목을 따갈지 몰랐기 때문이다.

연안에서 출발한 지 닷새, 보급거점에서 출발하고 사흘째 되는 날인 9월 2일이었다. 이민호는 오늘도 행군로 전방 10리에 첨병을 내보내고 그 앞에 거리별로 척후를 세우고 영하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주변에 불타거나 허물어진 보루 세 곳을 지난 다음이었다.

50명 정도 되는 기병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본진에 접근해왔다. 척후들이 이미 그들의 정체를 보고한 다음이라 군사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민호가 행군 대열에서 빠져 나오고 호위대가 제 위치에 서자 기병들이 다가왔다. 좋은 갑옷을 입은 기병들이 일제히 말에서 내렸고, 그 중에서 40대 초반의 장수가 이민호에게 인사를 올렸다.

“흠차 제독 남북 수륙 관병 어왜 섬서 토역 총병관 이주도독부 좌도독(欽差提督南北水陸官兵禦倭陝西討逆摠兵官夷州都督府左都督) 겸 이국공, 고산국 국왕전하께 문후 올립니다. 멀리 영하까지 잘 오셨습니다. 소관은 섬서토역군무총병관(提督陝西討逆軍務總兵管) 이(李)라고 합니다.”

“이 제독께서 수고하시는구려. 영하성에 대한 공성은 잘 진행되고 있소? 고가 어떤 일을 도와드려야 하겠소?”

이여송과 그의 형제들인 이여백, 이여매 등은 물론이고 보바이의 반란을 토벌하러 온 총병관과 부총병급 고위 무장들인 소여훈, 마귀, 유승사까지 모두 이민호를 마중 나왔다. 같은 전역에서 제독총병관이 두 명이나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이민호는 지원 정도만 맡기로 미리 명나라 병부와 합의해서 이여송의 작전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그래도 이민호가 확실히 이여송보다는 높은 자리였으니 이여송에게 명령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예. 영하성의 성벽이 높고 단단하여 공성전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석 달 동안 황하 물을 끌어들여 일거에 성벽을 무너뜨리려고 수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적 보바이가 오르도스도 아닌 황하 건너 하투 지역의 몽골족들에게 구원을 청한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하투 몽골족들이 기마병 수천 기를 동원해 장량보를 급습하고 있다는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전하께 인사를 마치는 즉시 장량보로 가서 보루를 지키겠습니다.”

하투(河套), 허타오는 내몽골 중서부 황하 주변의 평원 지역이었다. 황하를 따라 굽어가며 오르도스 사막을 말발굽 모양으로 감싼 초원 지역이니 영하도 하투에 당연히 포함된다. 그러나 하투와 오르도스는 사막과 하천 유역으로 생태계가 극명하게 갈리면서도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한 경우가 많아서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이곳은 흉노와 선비, 거란과 몽골 등 여러 유목 민족들이 살다가 지나갔고, 중국의 역대 왕조와 유목민들이 서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천 년 동안 처절하게 싸운 곳이었다. 원나라가 망하고 북원이 초원으로 쫓겨 갔지만 토목보의 변에서 드러났듯이 명나라가 몽골족을 막기 위해 많은 국가예산을 지출하고도 버거워했다. 중원을 누가 장악하든 만리장성 지역에 국가예산 대부분을 국방비로 쏟아 붓고도 항상 부족했다.

“몽골족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전하. 그렇게 빨리 병력을 집결해서 치러 오다니, 미리 짠 것이 틀림없습니다. 역시 원나라 도적놈들의 후예입니다.”

“이 제독이 중요한 영하성에서 자리를 비우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장량보에 대한 지원을 고가 맡으면 안 되겠소? 고가 그 몽골족과 싸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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