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41화 (90/1,000)

00141  21. 웅치전투  =========================================================================

“대감! 기침하셨습니까?”

“만취당, 수보 두 분은 제 천막 앞에서 뭐하십니까?”

“그야 뭐, 왜적을 추격하자고 건의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금산성을 공격 중인 의병과 관군을 도와줘야지요.”

“아! 맞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렇게 해서 아침부터 이민호는 간수군들과 함께 금산읍성으로 향했다. 전령들을 보내 이치와 웅치로 향하던 보급 수레들도 금산읍성 방향으로 돌리게 했다. 그 대신 전주에서 의원들을 모아 웅치와 이치전투에서 발생한 부상병들을 돌보고 일단 전주로 후송하도록 했다. 전사자가 많이 나와서 관을 가득 실은 수레들이 동쪽으로 움직였다. 승첩 소식을 들은 전주 사람들이 기뻐하며 이 부역에 자원했다.

이민호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며 이따금 말 엉덩이에 박차를 가했다. 말에 탄 간수군 450명이 선두에 서고, 권율과 황진의 병사 600명, 이복남이 이끄는 400명이 뒤를 이었다. 다들 피곤에 절었지만 아군 의병 수천 명을 구하기 위해 행군을 계속했다. 척후의 보고에 따르면 이치에서 무너진 왜군은 밤새도록 도망쳐 금산읍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나주판관 이복남의 군세가 빠진 동안 김제군수 정담은 웅치에 남고, 해남현감 변응정의 군사가 북쪽으로 이동해 이치를 맡아 지키기로 했다. 정담은 사실 웅치에 남지 않고 기병과 보병 약간을 추려서 왜군을 추격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왜군 일부가 무주에 남아서 배후를 지키는 바람에 추격은 중단됐다.

김제군수와 해남현감은 원래 전라우수영 수군에 소속된 고을 수령들이었다. 나주판관은 나주목사가 지상전에 동원되는 기간에 그 대리인으로서 수군을 이끌고 싸워야 할 관원이었다. 이들은 지금쯤 한산도에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지상전에 동원되어 왜군과 싸우고 있었다. 병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임진왜란 초반에 판옥선을 겨우 25척 안팎으로 동원하는데 그쳤다. 물론 병력은 수군과 육군으로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으나 삼도근왕군이 용인에서 패배한 직후라 이때 수군을 지상전에 동원했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 수군 소속 고을 수령과 병력을 육전 지휘관들이 빼가는 문제로 이순신이 여러 차례 장계를 올렸었다.

한나절을 행군해서 이민호와 권율이 이끄는 군사들이 금산읍성 서쪽 10리 지점에 진을 친 고경명의 의병군 진영에 도착했다. 왜군이 점령한 금산읍성은 금강 서쪽의 금산군 지역에서 얼마 안 되는 평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 금성산 등 산지에는 금성산성과 핏재산성, 만악리산성, 대암리산성과 용문산성 등 무수히 많은 옛날 백제와 신라, 고려의 산성들이 들어차 있었다.

군사들이 숙영지를 건설하는 동안 이민호가 권율 등 장수들에게 의병장 고경명에게 인사를 하러 가자고 권했다. 그러나 웬 일인지 그 꼬장꼬장한 권율과 노인에게도 치받던 이복남이 어물어물하더니 뒤로 빠졌다. 동복현감 황진은 이민호가 불러도 못 들은 체하고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이민호 혼자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는 의병군에 미리 이름과 관직, 품계를 적은 공장(公狀)을 보낸 후 계복과 함께 의병군의 대장 군막에 도착했다. 웬 선풍도골의 잘 생긴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이민호를 쏘아보았다. 고경명은 퇴직한 관료에 불과했지만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이민호가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문명 높으신 제봉 선생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지중추부사이며 삼도수군통제영의 조방장을 겸하고 있으며 자는 통지라 합니다. 권 광주목사 율 등과 함께 금산성을 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 왔습니다.”

고경명은 젊었을 적에 재주와 용모가 수려하고 대단한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그의 용모와 행실에 대한 이야기가 허균이 지은 <성수시화>에 실려 있다. 황해도관찰사가 고경명의 아버지에게 고경명이 재주와 용모는 아름다우나 행실이 어그러졌다고 말하자, 그 아버지가 고경명이 얼굴은 어미를 닮고 행실은 애비를 닮았다고 자학 개그를 하며 같이 웃었다는 이야기다.

“그대가 그 유명한 지사 대감이시오? 쯧쯧! 수많은 백성들이 대감께 은혜를 입었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소. 하지만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대감은 항상 군왕께 충성하도록 하시오. 표정이 왜 그러시오? 내가 화를 내는 것 같아 짜증나오?”

“아, 아닙니다.”

“아니! 임금이 파천한 판국에 무관들을 보고 내가 화를 안 내게 생겼소?”

“제봉 선생. 우린 지금 왜적을 앞두고 있습니다. 급한 말씀을 먼저 나누시지요. 그리고 저는 무관이 아니라 생원 출신입니다.”

“흥! 관군이라고 그깟 얼마 안 되는 병력을 데리고 와서 유세하는 거요? 저기 방어사 곽 영감의 꼴 좀 보시오! 여차하면 도망가려고 말고삐를 붙들고 있지 않소?”

이민호는 꼬장꼬장한 환갑노인하고 상대하려니 미칠 것만 같았다. 잠시 의병장 고경명에게 꾸중을 들은 이민호를 장남 전 현령 고종후가 장막 뒤로 데려가 대신 사과했다. 30대 후반의 고종후는 문과 급제자라는데 아비처럼 무관을 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 강단과 풍채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감. 그 동안 관찰사 영감께 많이 시달려서 그렇습니다. 양호의 관찰사들이 용인 패배 이후 무슨 약속을 했는지 의병장들을 심하게 닦달하고 있습니다. 관군에 동원될 병력을 의병에서 빼간다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관군이 제대로 못 싸우니 우리가 이렇게 의병을 일으킨 게 아니겠습니까?”

“잘하셨소. 관군이 못하면 의병이 잘하면 되지요. 내가 이끄는 간수군들도 사실 관군은 아니지 않소?”

경비병이라는 뜻의 간수군을 대량으로 고용해 전쟁에 동원한다는 말을 그 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고종후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동안 대감께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고 알고 있습니다. 백성을 군사로 동원하는 것이야 오래된 제도이지만 그와 동시에 국초부터 봉록을 주고 군사를 키운 뜻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도가 이 전 시대에 무너져서 지금 이 모양이지요. 앞으로는 급료를 받는 중앙군이 어느 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문관이시라면서 군대의 중요성을 설파하시다니, 과연 율곡 선생의 전인이시오. 그런데 현재 상황은 어떻소?”

“예. 그제 도착해서 어제 처음으로 금산성의 서문과 남문을 공략했습니다. 왜군들은 병력이 충분히 많은데도 나와서 싸우지 않고 이상하게 금산성에 틀어박혀서 조총만 쏴대고 있습니다. 공격 중에 우리 군에 피해가 꽤 있었습니다.”

고경명은 사실 자리만 차지하고 앉았고, 군왕에게 충성하기 위한 후퇴 없는 공격만을 외쳤다. 그러나 실제 군무는 그의 아들 고종후와 고인후가 대신 처리하고 있었다. 현령을 지냈던 고종후는 군무에도 밝았다.

“입화종정의 부대가 금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만, 금산 동쪽으로 보낸 척후에는 아직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경상도를 담당한 모리군이 지원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경상도 의병들이 잘 막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금산성에만 집중하면 되겠군요. 하지만 병력은 왜군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예. 이치와 웅치에서 그렇게 많이 죽였어도 왜군은 여전히 일만 명을 상회합니다. 원래 전라도 점령군 역할을 맡은 부대라니까 더 많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원군을 차단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겠지요.”

하루 지나서 김제에서 출발한 보급 수레가 도착했다. 이민호가 보급품을 다른 관군과 의병에게도 골고루 나눠주면서, 해동상단 대방에게 편지를 써서 더 많은 보급품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또한 계복이 거의 써버린 유탄을 연도에서 2백 발쯤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나 연도까지 왕복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유탄을 갖고 오더라도 써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서쪽 김제에서 금산에 오려면 산을 넘어야 해서 이곳은 보급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평소라면 금산 북쪽 대전이나 동쪽 금강을 통한 교통로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해동상단의 대방은 주인 이민호의 생사가 달린 문제로 판단해 총력을 다해 보급품을 실어 날랐다.

의병장들은 거의 써버린 비격진천뢰가 충분히 보충돼서 좋아했고, 의병들은 객지에 나와서도 풍족히 먹을 수 있어 기뻐했다. 특히 말먹이 곡식과 건초가 도착해 의병 중 기마병들이 한 시름 놓았다. 또한 화살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여유 있게 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인 7월 11일부터 전주에서 실어온 화포와 대완구를 금산성 남문 방향에 집중 배치했다. 그리고 그 주변은 목책을 세우고 참호를 파서 기본적인 방어 시설을 갖췄다.

- 뻐엉! 콰작! 콰쾅!

참호를 파고 설치한 대완구에서 커다란 진천뢰가 날아가 금산읍성 안쪽 민가의 지붕에 떨어졌다. 곧이어 굉음과 함께 파편이 사방에 날리고 기와집이 불타올랐다. 이후 끊임없이 발사된 비격진천뢰가 성벽을 넘어 들어가 폭발했다. 금산읍성 내부는 곧 불바다로 변했다.

천자총통과 지자총통은 읍성 남문 앞을 둘러싼 옹성과 2층 기와집 형태인 장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집중 발사했다. 대장군에 얻어맞은 장대 한쪽이 우르르 무너지는 장면에서 의병과 관군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렇게 쏴 대는데 왜적들이 안 나오고 베기겠습니까, 대감?”

“진천뢰가 충분하니 차라리 왜적들이 안에서 고스란히 맞아 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포격 중에 이민호가 권율과 대화를 나눴다. 다른 장수들은 각자 병력을 거느리고 왜군이 뛰쳐나올 것에 대비하고 있었다.

의병장 고경명은 전투가 시작되자 의병들을 단속하고 다녔다. 고경명이 전투 지휘는 못했지만 최소한 의병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역할만은 확실히 하고 있었다. 조선 관군이든 의병이든 야전에서 병사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워낙 많으니 어쩌면 전투보다는 그 역할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

“서문과 동문이 열립니다! 왜군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민호가 보낸 간수군 척후가 말을 타고 달려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이민호가 보병총에 실탄을 장전하면서 일어섰다.

“오는군요.”

“대감께서 먼저 총격을 가해주십시오. 대열이 흩어지면 저희들이 공격하겠습니다. 꼭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만취당도 살아남으셔야지요. 얄미운 사위를 혼쭐 내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으드득!”

권율은 왜군보다 사위 이항복에게 원한이 더 많이 쌓인 듯했다.

그 사이 남문을 타격하던 천자, 지자총통을 화포장들이 동, 서 방향으로 돌렸다. 왜군이 장창병들을 중심으로 돌격대형을 갖추고, 그 옆에 나무방패와 대나무 방패를 세운 뒤로 조총병과 궁병들이 서 있었다.

간수군들은 3열로 도열했다. 이민호와 계복이 8개 대, 200여 명씩 나눠서 지휘하기로 했다. 나머지 50명은 왜군의 포위공격에 대비해 후방에 배치했다.

- 뻐엉! 퍼벙!

천자총통에서 쏘아져 나간 커다란 석환은 거리를 못 맞춰 왜군들 앞에 떨어진 것 같았다. 그러나 왜군의 창병밀집대형 앞에 떨어진 석환은 땅에서 몇 번 통통 튀기면서 계속 날아가더니 창병 두 줄을 쓸어버렸다. 마치 볼링공에 맞아 쓰러지는 핀처럼 왜군 창병들이 줄줄이 넘어졌고, 찢겨진 팔다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같은 천자총통에서 석환에 이어 날아오른 작은 쇠구슬 수십 개씩이 세 번에 걸쳐 왜군 창병대열을 덮쳤다. 진가사를 쓰건 투구를 쓰건 상관없이 창병 수십 명이 얼굴과 가슴이 피떡이 되어 한꺼번에 쓰러졌다.

천자총통은 포구 방향부터 석환, 토격이라 불리는 흙, 조약돌이나 작은 쇠구슬을 뜻하는 조란환, 토격, 조란환, 다시 토격, 조란환, 나무로 틈을 메운 목격, 그리고 화약이 들어가는 식으로 장전한다. 바로 이 순서로 석환에 이어 철환 2백여 개가 왜군 창병대열을 덮쳤다.

“이렇게 센가? 함부로 보병방진을 못 세우겠구나.”

이민호가 진정으로 감탄했다. 이 정도라면 19세기에 사용된 작렬탄에 못지않은 강력함이었다. 이민호는 앞으로 웬만하면 조선군과 싸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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