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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135화 (8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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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막간

부산포해전에서 하루 종일 싸운 수군 장수들보다는 못하겠지만 이민호도 그 동안 피로가 많이 쌓였다. 늦잠 푹 자고 한낮에 일어났더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해서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식탁에 앉았다. 그릇에 담긴 웬 누런 설사 같은 것에서 모락모락 김이 나고 있는 것을 보며 이민호는 이게 꿈인가 하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이거 똥이야!”

꼬마 설비(雪非)가 코를 막으며 손으로 누런 국물을 가리켰다. 이민호도 궁금해서 물었다.

“이게 뭐지?”

“인도 특산 커리와 빵이에요. 빵이 싫으시면 밥을 드셔도 돼요. 주인님이 이 음식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이민호가 예전에 먹던 카레가 걸쭉했던 반면 이것은 거의 국물 소스에 가까웠다. 이민호가 졸린 눈을 부비고 다시 보니 고산국 궁궐에 있어야 할 혜진이 좌수영 저택에 있었다. 혜진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는 요리사 모자까지 썼다.

“혜진이 왔구나. 여긴 웬 일이야?”

“주인님 밥해주려고 왔죠. 주인님은 입이 짧잖아요.”

“나는 뭐든 잘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카레 덮밥이다. 앞으로 그렇게 불러. 고기는 줄이고 감자를 더 넣는 게 좋겠어. 그런데 인도에서 이런 게 수입이 되나?”

이민호가 빵을 멀찍이 밀어놓고 국물 같은 카레와 밥을 숟가락으로 쓱쓱 비볐다. 혜진이 그렇게 먹는 게 아니라고 말렸지만 카레라이스는 이민호에게 익숙한 음식이었다. 오리지널 인도식으로 맨손으로 주워 먹는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민희와 민영은 수저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가 이민호를 따라 조심스럽게 밥과 카레를 뒤섞었다. 이민호는 공복에 자극적인 식사를 해도 괜찮을까 아주 잠깐 고민했지만 아직 한참 팔팔한 나이였다. 설비도 용기를 내서 혜진이 가르쳐준 대로 빵에 카레를 담아서 먹었다.

이민호가 한 술 떴다가 잠이 확 달아났다. 이민호에게 익숙한 카레라이스와 달리 향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물어보니 향신료를 열 가지 넘게 섞은 것이라 했다.

“기를 넣어서 드세요.”

“오호!”

혜진이 권한 우유와 액체 버터가 혼합된 기라는 것을 섞으니 맛이 아주 그럴 듯하게 변했다. 며칠 동안 간수군이나 사공들이 해주는 밥만 먹다가 혜진이 해준 밥을 먹으니 꿀맛이었다. 민희와 민영도 요즘은 그럭저럭 밥을 잘하지만 여진족 여자에게 음식을 맡기면 반드시 후회하게 돼서 나중에는 아예 시키지 않았다.

“포도아 상인들이 고산국과 무역하면서 적자가 심각하게 쌓인다고 해요. 그래서 뭐든 가져와서 팔려고 해요. 혜영 언니도 가능하면 사줘서 포도아의 적자를 줄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본까지 왕래하면서 잘만 이익을 보면서 엄살은! 은이 모자라면 쌀이나 운반하라고 그래.”

혜진까지 앉아서 다섯이서 본격적으로 식사를 했다. 혜진이 그 동안 메뉴 개발을 많이 했는지 인도와 아랍식 요리 몇 종류가 식탁에 올라왔다. 향신료에 버무린 닭고기 튀김 요리는 이민호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혜진이 닭고기에서 뼈를 발라서 설비에게 살코기만 주었고, 설비가 맛있게 잘 먹었다. 평소 막내 티를 내며 천방지축이던 혜진이 더 어린애와 함께 있으니 제법 언니 노릇을 잘했다. 그래서 이민호가 보기에 조금 웃겼다.

식사를 마치고 설비가 아이들과 놀러 중문 밖으로 나가고 민희와 민영은 설거지를 맡았다. 전라좌수영의 다른 양반, 중인들의 집이 다 그렇듯 이민호의 저택에도 경상도 피난민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집이 오랜만에 북적북적해서 제법 사람 사는 곳 같았다.

이민호는 오랜만에 배불리 맛있게 먹어서 행복했다. 차를 마시는 동안 혜진이 물었다.

“포도아 상인들이 담바고 또는 담배라고 불리는 약용식물을 가져왔어요. 태워서 연기를 들이마시면 소화불량이 낫는대요. 의료용으로 수입할까요?”

“담배를 약재로 판다고? 쳇! 그놈들은 담배가 뭔지 빤히 알면서 그 따위 수작이야. 그거 막을 수 없을까?”

그러나 단기간에 동북아시아 전체에 담배가 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민호는 막으려고 시도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요즘 명나라에서는 아편중독 환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산업공해가 없는 현대 이전의 사람들은 폐가 건강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주인님 뜻대로 하세요. 수입 금지 품목으로 지정하면 간단하니까요.”

“한두 해라면 몰라도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나라 안팎으로 들락거리잖아. 결국은 담배가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거야.”

“주인님이 처음부터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군요. 신기해요.”

“막을 수 없다면 아예 재배해 버려야겠어. 그리고 몸에 해로우니 20세 이하와 임산부, 아기가 있는 집에서는 못 피우게 정하자.”

“혹시 담배가 독인가요? 그럼 그런 것을 팔면 안 되잖아요.”

“독이나 다름없이. 그래도 많은 사람이 피우게 되니 어쩔 수 없어.”

가능하면 담배를 수출만 하고 고산국 사람들은 안 피우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강압적으로 막으면 사람들이 담배 대신 아편이나 대마초를 구해서 피우게 된다.

“담배 농장과 공장을 만들어야겠어. 국내소비량에 맞춰서 판매하고 남는 게 있으면 수출하지 뭐. 전매사업으로 묶어야겠군.”

“그렇게 할게요. 포도아 상인들에게는 담배 말고 그 종자를 들여오라고 해야겠어요. 그 외에도 적자를 보전할 만한 일을 만들어서 시킬게요.”

“그래. 나는 요즘 전쟁에 나가느라 정신이 없으니까 언니하고 잘 해줘.”

혜진이 묘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어렸을 적에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의 죽음을 본 혜진은 조선 왕실은 물론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별로 없었다.

“주인님은 이제 조선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는데 왜 그리 열심히 하세요? 전쟁터에 나가면 위험한 일이 많잖아요.”

“나는 조선에서 태어나 자랐어. 나라를 세웠더라도 조선은 여전히 내 나라야. 만약 나 같은 입장에 처한 다른 사람이 나라의 불행을 모른 척한다고 생각해 봐. 내가 봐도 기분 나쁠 걸? 남들에게 트집 잡히기 싫어서라도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저는 조선을 싫어하지만 그래도 반역자는 미울 것 같아요. 백성들을 위해 힘을 써주세요.”

“그래. 돈도 안 되고 몸만 피곤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어.”

혜진이 고산국에 있는 혜영이 보낸 편지를 내밀었다. 이민호가 차분히 읽으면서 점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며칠 전에 명나라에서 태감이 칙서를 들고 왔는데 9월 초순까지 병력을 이끌고 산해관으로 올 수 있다면 가급적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래도 보바이의 난 때문인 것 같다고 혜영과 왕명명이 판단을 덧붙였다.

수도 한성이 왜군에게 함락되고 전 국토가 풍전등화인 지금 외국을 위해 싸운다는 것이 이민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솔깃한 제안이 하나 있었다.

“오호! 반란 진압을 성공적으로 마칠 경우 세습직 주애백을 시켜준다고? 해남도의 백작이라. 거 괜찮네.”

주애(珠崖)는 해남도의 별칭이었고, 해남도는 대만 섬보다 살짝 작은 넓이였다. 그러나 이민호는 그 동안 무역으로 힘을 불려왔기에 영토 크기는 상관없었고, 무역항으로 쓸 만한 남쪽의 항구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민호가 주애백을 세습하더라도 해남도 전체를 고산국의 영토로 편입하거나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명나라 관직 체계에 확실히 포함됨으로써 앞으로 행동의 자유가 제한될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해남도의 면적과 명나라 조정의 정치적 노림수보다는 해남도의 위치가 가진 특이성에 주목했다. 안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에 영향력을 미치기에는 필리핀보다 지리적 조건이 훨씬 나았다.

그리고 고산국과 필리핀, 주애군을 이으면 삼각지대가 형성된다. 솥의 발처럼 서로 지원하는 형세를 이룰 수 있고, 남중국해의 북쪽 절반을 손 안에 둘 수 있는 기회였다. 주애군에서 무역을 한다면 서양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고산국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고, 말래카해협에서 가까우므로 무역을 더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명나라에서도 얻을 게 있었다. 정화의 원정 이후 안남에게 계속 밀리던 운남성 남쪽 전선을 안정시키고, 서양 해적들의 도발과 노략질로부터 명나라의 남쪽 바다를 고산국이 지켜줘야 했다. 그것은 이민호가 바라던 바였다.

“해적이나 해양세력에게 바다를 내주는 대신 해안지방을 지키는 전통적인 방어 전략인가? 나를 경계하면서도 철저히 이용해먹겠다는 심보로군. 좋아! 그렇다면 내가 이용당해주지!”

이민호는 당장 혜영에게 답장을 썼다. 칙서를 가져온 태감은 귀비들을 위해 옥 도자기를 고르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다니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이민호는 다음 날 고산국으로 출발하는 외륜선에 편지를 맡겼다.

고산국에서 병력만 모아놓고 쓰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잘 됐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반드시 이민호가 군대를 이끌 필요가 없으니 유사시에는 계복에게 지휘를 맡겨놓고 이민호만 조선으로 가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왜군이 평양을 점령한 시점부터 상당 기간 전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니 이민호가 조선에 남아있을 필요도 별로 없었다. 물론 전쟁이 기존 역사와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도 있었다.

이민호는 상을 치르고 있는 수군 전사자들의 집에 들러 조문하고 부상자들에게는 의원과 약재를 보냈다. 유족이나 부상자의 생활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땅을 떼어주고 소도 보냈다.

수군이나 간수군에 대한 백성들의 평가는 아주 좋았다. 육군이 연전연패하는 와중에 수군이 근무는 고되더라도 죽을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간수군은 평소에 받던 월봉에 더해 전투수당이라는 가외의 수입이 생겨 인기가 더욱 올라갔다. 수군처럼 죽을 가능성이 적어 입대 희망자가 3천 명이나 쌓였으나 요즘은 퇴직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수군에서 퇴직하는 순간 여지없이 수군이나 육군에 징병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스무 번이나 싸워서 수급을 5천 개를 얻고 수군은 두 명이 죽었대요.”

“어머나! 두 명이나 죽다니. 이번에는 훨씬 더 치열하게 싸웠나 봐요.”

시중에는 수군이 싸운 전과가 과장된 소문이 나돌았다. 이번 수군의 2차 출동을 통해 사천포, 당항포, 부산포 등에서 얻은 수급이 유숭인이 가져간 것까지 합해서 2500과 정도, 포로는 낙동강 하구에서 잡은 250명에 사천포에서 잡은 213명 외에 여기저기서 좀 더 잡아서 합하면 500명을 살짝 넘었다.

과장이라면 원균이 임진년 7월까지 왜선 900척을 격파했다는 수준은 되어야 했다. 이정암의 기록인 <서정일록> 7월 22일자에 나온다.

그러나 민심은 여전히 뒤숭숭했다. 며칠 사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문이 너무 흉흉했기 때문이다. 일단 6월 6일에 삼도근왕군이 용인에서 패배해 수만 명이 일패도지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지금은 한성 경강이 아니라 행재소와 연결하는 조운선과 상선들을 통해 이민호가 가장 먼저 패배 소식을 들었다. 소문처럼 삼도근왕군이 몰살당한 것은 아니더라도, 전라도와 충청도의 병력을 모조리 긁어모아서 북진했으므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용인에서 삼도근왕군을 물리친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남해안에서 조선 수군을 상대하기 위해 남하하는 도중 얼떨결에 큰 공을 세우게 됐다. 그러나 삼도근왕군을 한성 가까이 끌어들여 포위 섬멸하려 계획했던 다른 왜장들에게 폭풍처럼 까였다고 한다. 와키자카는 나중에 용인에서 승첩했다고 대놓고 자랑도 못했다.

며칠 후에는 평양성이 함락되고 그 전에 임금이 의주로 몽진했다. 평양성에 군량으로 백미 10만 석 이상을 보관하고 있다가 이것이 모조리 왜군의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 동안 왜군 진격로 주변에서 청야작전을 위해 쏟아 부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임금이 한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평양 백성들을 내버려두고 도망가고, 특히 몽진할 예정이라면 쌀을 미리 옮기거나 시간이 없다 해도 최소한 불태워 없애야 했었는데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못했다고 욕을 많이 먹었다. 특히 고니시군이 군량이 부족해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었으므로 아쉬움이 더 컸다.

이민호는 상소를 올려 선조 임금을 위로하고 근왕을 위해 간수군들을 이끌고 의주로 올라가도 되는지 물었다. 사실 매번 일이 생길 때마다 하는 인사치레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왜적으로부터 고산목과 남해안을 지키라는 어지가 내려왔다. 임금은 이민호가 병력을 움직이겠다는 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오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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