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1 19.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해전 =========================================================================
“통지가 수급을 적당히 분배해보게. 우수백과 유 군수는 잠시 지켜보시오.”
“예?”
이순신이 이민호에게 지시했다. 수급을 분배한다는 말에 놀란 유숭인이 얼이 빠져 지켜보는 가운데 이민호가 수급을 재분배했다. 이억기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예, 좌수백 영감. 일단 경상우도 기마병들이 재를 넘어가면서 죽인 왜인 30명의 수급을 유 군수께 넘기겠습니다. 수급 몇 십은 말발굽에 다 깨져서 왼쪽 귀만 잘라서 따로 드리겠습니다.”
“고, 고맙소.”
유숭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사이 소금에 절인 수급을 담은 가마니가 간수군에게서 기마병들에게로 넘어갔다. 가마니 아래쪽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으나 이민호도 이제는 비위가 많이 좋아져서 수급을 보거나 상상하다가 토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간수군이 직접 죽이고 목을 벤 왜적 수급이 580급입니다. 일단 간수군의 전공으로 수급 100과를 빼겠습니다.”
“100과라면 좀 적지 않나? 알았네. 수급 100과를 유군장과 통지 자네의 전공으로 장계에 올리겠네.”
이순신이 이민호를 제지하려다가 요즘 간수군들의 분위기를 아는지 금방 수긍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 간수군들이 고산국으로 이민하는 것은 일단 중지시켰다. 침략군에 맞서 싸워야 할 청년들이 전쟁을 피해 국외로 빠져 나가는 것을 좋게 볼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수군들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조선과 고산국의 여러 가지 차이를 실감하게 되었다. 실력 차이와 대우는 물론이고, 생명에도 관계되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살려면 군사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성인 남자들이 무기 하나 들고 적에게 돌진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간수군들은 조선과 고산국을 냉정하게 비교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산국에 관해 여러 가지 어렴풋이 들었던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간수군들은 전쟁이 끝나고 이민 제한이 풀리면 대부분이 고산국으로 이민을 떠날 생각들이었다. 그러니 전공을 세워 조선에서 벼슬을 받아 양반이 되고 싶어 하는 간수군은 거의 없었다.
이민호는 간수군들 중 희망자에 한해 군공마련기에 전공자로서 이름을 올리고 수급을 벤 것으로 해주었다. 왜적 수급 1급을 얻으면 면천, 2급은 6품관, 3급은 당상관에 올려준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나 정식 공문은 이민호도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나머지 480급을 수사 세 분과 유 군수께 4등분해서 나눠드리면 어떨까 합니다. 원래는 해전에 동원한 병력 비율로 나누어야 합리적이겠지만 경상우병영 기마병들이 이번에 처음 참전했고 경상도 육군과 백성들의 사기를 올려줄 필요가 있으니 이번에는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다, 좌수백 영감?”
“예? 아! 아니, 죄송합니다.”
허둥거리는 유숭인에게 이순신이 발언을 허락해줬다.
“괜찮소. 궁금한 건 말씀하시오, 유 군수.”
“고맙습니다, 좌수백 영감. 이 동지 영감은 어째서 수급을 양보하십니까? 물론 나눠주신다면 저야 좋지요. 하지만 저희들은 전투의 승부가 결판난 다음 뒤늦게 끼어들어서 비무장으로 도망가는 왜군들을 쉽게 잡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수급을 더 주시겠다니 몹시 민망합니다. 그리고 수군의 공격을 받아 땅에서 죽은 왜군이 있을 터, 저희가 벤 수급 일부를 수군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동지께서는 저희에게 수급을 따로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간수군의 전공은 다른 장수들이 나누기로 했으니 그냥 받으십시오. 간수군들은 매달 저에게서 월봉을 받습니다. 전공을 세워 양반으로 출세할 마음이 없다니까 유 군수의 전공으로 삼아도 괜찮습니다.”
사실은 좀 다르지만 이민호는 그런 식으로 유숭인에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간수군들이 조만간 고산국으로 죄다 이민 갈 거라고 실토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간수군 전체가 전라좌수영 소속이 아닙니까?”
“물론 간수군들이 형식상 전라좌수영 유군 소속이긴 하지만 사실 간수군이 원래 수군 정병은 아니지 않습니까? 집이 경상도인 자들도 있고 전라우도에서 여수로 와서 간수군에 고용된 자들도 있습니다. 간수군에 고용된 기간 동안 군사로 징병되지 않기로 했으니 간수군들이 손해 보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양보하는 분위기에, 이민호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자꾸 나오자 이순신이 조정에 나섰다.
“유 군수는 이 동지가 말한 대로 사양 말고 더 받으시오. 많을수록 좋지 않소? 우리 수군이 얻은 수급이 1,000급을 넘어가니 너무 많은 것 같소. 제발 수급을 그만 보내라고 순찰사가 사정하는 소리를 조만간 듣게 될지도 모르겠소.”
“이렇게 많이 베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수군을 만난 것이 일생일대의 행운인 것 같습니다. 그 동안 큰 승첩이 없었던 경상도 육군을 대표해서 세 분 수사 영감께 감사드립니다.”
“유 영감이 말을 타고 왜적을 무찌르는 모습을 보니 마치 몇 년 전에 우리가 함경도에서 싸우던 모습 같았소. 앞으로도 수륙군이 합세해서 왜적을 무찌릅시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왜적을 잡는데 수륙군이나 경상도, 전라도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힘을 합해 어서 왜적 침략자들을 몰아내야지요.”
장수들이 필승의 의지를 다진 다음 이순신이 수사들과 유숭인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자! 수사 두 분, 그리고 유 군수는 들으시오. 우리가 오늘 전투를 수행하면서 본 사실 그대로를 각자 장계에 써서 행재소에 따로 올리시오. 다만 간수군이 활약한 사실은 본 대로 쓰되, 간수군이 잡아 나눠준 수급은 언급하지 말고 수하들의 전공으로 해서 적당히 배분하시오. 위에서도 간수군이 얻은 수급을 다른 장수들에게 나눠준다는 사실을 대충 알고 있는 모양이오.”
“예. 각자 직접 보고 행동한 것만 써서 장계를 올려도 위에서 잘 판단하겠지요.”
이번 전투에서 500급을 넘는 수급을 얻은 유숭인은 좋아서 입이 찢어지려 했다. 조선 육군이나 의병이 왜군을 상대로 승리한 경우가 지금까지 꽤 있었더라도 이렇게 적을 완전히 전멸시켜 수급을 벤 경우는 거의 없었다. 7월 말 영천전투에서 권응수와 의병들이 왜군의 수급 517과를 베었으나 앞으로 거의 두 달 후에 일어날 일이었다. 권응수는 경상좌병사 박진이 보내 의병들의 대장이 된 사람이니 의병장으로 분류하기도 애매한 사람이었다.
조선 수군은 판옥선을 타고 화포와 활을 쏘고, 조선 육군은 말을 타거나 성에서 주로 활을 쏘면서 적과 싸우는 것이 전형적인 전투 양상이었다. 주로 창칼을 맞부딪치면서 싸우는 고대 또는 총이나 대포 몇 발 쏜 다음 여전히 창칼로 승부를 결정짓는 이 시대 다른 나라들의 전쟁과 달랐다. 그런데도 전공 확인을 위해 수급을 바치길 요구하는 조정이 현실과 동떨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민호와 장수들은 조정의 요구에 따르기로 했다. 수군에 소속된 간수군 또는 오늘 같은 경우 기마병이 참가해서 땅으로 도망친 왜 수군을 남김없이 몰살시켰으니 조정에서 수급으로 전과를 비교한다 해서 불리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현재 수군이 육군과 비교해 너무 압도적인 전공을 올리고 있는데, 이것은 순전히 조정이 수급으로 전공의 기준을 삼은 탓이었다.
“조정에 바칠 전리품은 왜적이 쓰는 대표적인 무기 한 가지씩만 골라서 봉하시오. 특히 왜장이 입었던 화려한 갑주를 보내면 조정에서 더 좋아하는 것 같았소. 유 군수만 왜장의 갑주를 얻지 못한 것 같으니 내가 하나 넘겨주겠소이다.”
“아니, 괜찮습니다만.”
“나도 하나 내드리겠소. 색깔별로 하나씩 갖추는 것도 괜찮겠구려.”
이순신에 이어 경상우수사 오응정과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유숭인에게 왜장에게서 벗긴 갑옷 한 벌을 내주었다. 유숭인이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조선의 무관들끼리 남는 것을 주고 모자라는 것을 받는 네트워크 비슷한 것이 형성돼 있었다. 오늘은 그 대상이 전리품이라서 멋쩍었을 뿐이었다. 유숭인도 왜장들이 쓰던 말안장 남는 것을 수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번에 왜장의 배에서 방답첨사가 분군기 6축을 얻었소. 3040명의 명단과 피를 바른 서명이 있던데, 이보게 통지! 혹시 여기서 왜놈들 절반이 빠져 나간 것은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여기에 이름이 오른 가등청정의 무사와 병사들 대부분이 지금쯤 함경도로 향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 얻은 수급 1520급 중에서 왜장과 왜군이라고 할 자들은 절반도 안 됩니다. 나머지는 노를 젓는 수부나 사공, 하인, 상인들인데 이들 숫자가 정식 군사들보다 더 많습니다.”
“오호! 그런 식이었군.”
오늘 전투를 만약 현대의 극우 성향 일본인이 본다면, 1만이 넘는다는 경상우수영, 보인까지 합하면 5만에 달한다는 전라좌수영과 우수영이 합세해 왜군 겨우 600명과 일본 민간인 900여 명을 일방적으로 도륙했다고 우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대전에서도 적 보병 1개 대대를 공격하기 위해 아군 보병사단과 기갑여단, 군단포병과 공군 비행단까지 동원되니 다를 것이 없었다.
“이 기쁜 소식을 어서 본도 순영과 조정에 알려야겠군요. 하지만 행재소에 이르는 길이 막혀서 걱정입니다.”
“장계나 조정 소식은 해동상단의 배를 이용해 통하는 것이 좋소. 경상우수영이 남해군에 있고 상단의 상선이 매일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 사이를 운항하니 그쪽을 통해 연락을 하시오.”
“아! 맞습니다. 순찰사도 행재소와 연락이 끊겼다고 걱정하던데 해동상단의 배를 이용하라고 건의하겠습니다. 북쪽으로 올라간 삼도근왕군이 지금쯤 한성을 수복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라도에서만 5만 이상 동원했고 충청도군이 합세한다니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오.”
수사들의 기대와 달리 삼도근왕군 6만이 내일 6월 6일에 용인에서 대패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민호와 이응화 부자는 입을 다물었다. 훈련받지 않은 농민군을 모아 진군시킬 때 어떤 결과가 날지 알고 있었지만 딱히 근왕군의 북진을 막을 명분이 없어 내버려두었다.
그 대신 이민호는 근왕군의 퇴각로 주변에 위치한 여러 사창에 연락해 왜군과 싸우지도 않고 무너져서 도망쳐오는 군사들에게 양식과 옷을 주라고 연락을 해놓았다. 용인전투는 조선의 훈련받지 못한 대군이 소수의 적에게 무너진 가장 전형적인 전투 중 하나로서 병자호란의 쌍령전투와 함께 조선시대 최악의 패배로 쌍벽을 이루었다.
“경상우도에 병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근왕군이 한성으로 올라간 탓에 병력이 부족한 것은 전라도도 마찬가지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산국, 아니 고산목을 다스리는 이 동지 영감께 병력이 몇 천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발 병력을 보내 도와주십시오!”
“안타깝게도 병력 파병 문제를 전쟁 초기부터 주청했으나 조정에서 거부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간수군 천 명만 데리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수가! 쳐 죽일 간신 놈들이 전하께서 몽진하시게 만들고 왜적에게 빼앗긴 강토를 회복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주상전하를 위해 그런 역적들을 토벌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정말 안타깝습니다.”
“예. 이런 시급한 시기에 권력만 탐하는 나쁜 놈들이지요.”
이민호는 조정 대신들 중에서 누가 그런 간신인지 물어보려다가 유숭인이 당황할까 봐 묻지 않았다. 사실 파병 거부는 조정대신들이 아닌 선조 임금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고도 임금의 잘못을 아무 죄 없는 익명의 대신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 신하로서 기본 예의였다.
“어떻게든 경상도에 병력 지원을 해보겠습니다. 그 전에도 물자 지원은 충분히 해주겠습니다. 그러니 유 군수께서도 잘 싸워주십시오.”
“오늘 여러 모로 고맙습니다. 건승을 빌겠습니다.”
경상우도 기마병들이 보무도 당당히 서쪽으로 출발했다. 유숭인이 이민호와 약속한 대로 고성과 사천 등 경상도 남해안을 수복하기 위한 출전이었다.
전라좌수영에서 수군총 20정을 넘기고 이민호는 기마병들에게 무기와 군량을 충분히 보충시켜 주었다. 왜군 100명이라면 조총을 많아야 20정 정도 보유하고 수군총의 성능이 조총에 밀리지 않으니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보름 후 유숭인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다. 이민호, 또는 수군 연합함대에 강력한 우군이 생긴 셈이었다. 그 사이 유숭인이 이끄는 기마병들이 경상도 남해안을 깔끔하게 소탕해 진주로 향하는 보급로와 경상도 백성들이 전라도로 피난할 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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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못 올리고 하나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