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0 19.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해전 =========================================================================
“그렇다기보다는, 물자가 풍부한 전라좌수영이나 해동상단에서 경상우도에 지원을 하고 싶어도 경상도 남해안에 왜적이 돌아다니면 길이 막혀 곤란하다, 이런 뜻이지요. 많지 않은 병력으로 여러 곳을 다 지킬 수는 없으니 왜적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유 군수가 그곳을 토벌하면 좋겠습니다. 경상우도의 거점인 진주성을 확실히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진주성에 이르는 보급선이 끊기면 경상우도와 전라도 모두가 위험합니다. 소관이 남해안의 왜적을 토벌하겠소이다.”
현재 경상우수영의 전력만으로는 경상도 남해안에 들어온 왜선을 단독으로 잡기 어렵고 전라좌수영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했다. 그래서 경상우수영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상우도로 들어가는 해동상단의 상선을 왜선의 공격으로부터 지켜주는 일이었다.
화약과 화살, 군량 등 보급품을 싣고 경상우도로 가서 하역하고 그 대신 피난민들을 싣고 나오는 해동상단의 활약은 눈부셨다. 경상우도 육군이 조금만 도와준다면 지원을 더욱 많이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유 군수의 기마병에 대한 지원은 제가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상선이 입항할 보급 거점을 몇 곳 정합시다.”
“저희가 고맙지요. 황공하게도 소관이 이 동지께 매번 신세만 집니다.”
그 외에도 이민호는 유숭인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유숭인이 전라좌수영에 피난 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도 즉석에서 써서 이민호에게 주었다. 당항포에서는 분명 아군이 전투 중인데도 이곳에서는 시간이 넘쳐흘렀다.
“이 동지! 아예 당항포에 가서 함께 들이치는 것이 나았을지 모르겠소.”
“왜선에도 가끔 화포가 실려 있어서 아군이 피해를 입을까봐 그렇습니다. 차분히 계세요.”
지상에서 보면 배 자체가 훌륭한 방어시설이기 때문에 기병이나 보병으로 수군을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선고가 높은 판옥선에서는 왜선 상갑판이 내려다보이니 아무런 장애가 될 수 없으나 평지에서 공격할 때라면 배의 갑판이 높은 것은 승부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었다.
- 타타탕!
“어이쿠! 드디어 시작했나 보오.”
유숭인이 화들짝 놀라더니 사람보다 더 놀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도는 말의 고삐를 잡아챘다. 산 너머에 배치된 간수군 쪽에서 총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해전이 끝나고 당항포에서 도망치는 왜군 일부가 북쪽으로 가는 길을 먼저 선택한 것 같았다.
과연 당항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보낸 정찰병들이 말을 타고 내려왔다. 이민호가 보낸 간수군 척후가 두 명, 유숭인이 보낸 척후가 네 명이었다. 경상우도의 기마병 척후가 병방에게 구술하고 병방이 세필로 보고서를 적는 동안 간수군 척후가 구두로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당항포 북쪽 길로 왜인 100여 명이 먼저 도망쳤고, 나머지는 이곳 동쪽 길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병력은 무장한 왜군이 500여 명, 비무장한 왜인이 100여 명입니다. 당항포 뒤쪽 들판과 갈대밭에도 왜인들이 다수 숨어 있습니다.”
잠시 후, 왜군 수백 명이 이민호의 간수군과 유숭인의 기마병이 진을 친 곳으로 몰려 왔다. 이민호의 예상대로 왜군은 정확히 동쪽을 향해 후퇴했다. 왜군을 맞아 싸우게 된 유숭인이 만면에 미소를 지어서 이민호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우와! 기쁘다! 이 동지 말씀이 맞았소. 기다린 보람이 있었소.”
“잠깐 기다리시오! 보병들이 총으로 먼저 왜군의 조직력을 무너뜨린 다음에 기마병을 돌격시키시오.”
“알았소. 이거 손이 근질근질하구먼. 다 해치우지 말고 적당히 좀 남겨주시오.”
“다들 명사수인 것은 아니니 왜군이 절반 이상은 남을 거요.”
간수군들은 3열 횡대로 넓게 벌려 서 있었다. 간수군들 대열 좌우에서는 조선 기마병들이 돌격태세를 갖췄다. 당항포에서 배를 다 잃고 허겁지겁 도망치던 왜군들이 걸음을 멈춰 섰다.
“유 군수! 적에게 5회 연속 사격을 실시할 테니 그 직후에 돌격하시오. 저 왜놈들을 쳐부순 즉시 당항포로 가서 잔적을 소탕하시오.”
“맡겨주시오, 이 동지 영감!”
그 사이 500명 정도 모인 왜군들에게도 움직임이 있었다. 조선 보병과 기병을 발견한 사무라이가 창병들에게 방진을 이루라 지시했다. 그 동안 양 옆으로는 조총병들과 궁병들이 빠져 나와 사격 대열을 이루었다.
해전에서 패해 도망가는 와중에도 무기를 갖추고 지휘체계까지 유지하는 왜군의 감투정신에 이민호가 감탄했다. 그 사이 한자가 많은 가토군의 깃발이 이민호의 눈을 몹시 어지럽혔다.
왜군들의 진형이 거의 갖춰지기 직전에 이민호가 사격 명령을 내렸다. 왜군 진형이 움직이면 간수군들이 겁을 먹을까봐 걱정한 탓이었다. 간수군들도 전원 조선인이었으니, 다른 조선 육군 부대들처럼 왜군을 앞두고 우르르 도망가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조총병을 먼저 잡는다. 쏴!”
- 타타타타탕!
아직 사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여유 있게 조총 화승에 불을 붙이거나 불씨를 나누던 왜군 뎃포 아시가루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제2탄은 궁병인 유미 아시가루, 제3, 4탄은 창병인 야리 아시가루들을 향했다. 왜군을 지휘하는 사무라이가 조선군과 싸운 경험이 있었는지 각궁 사거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진을 형성했지만 간수군은 일반 조선 육군이 아니고 무기도 달랐다.
창병 방진이 무너질 때는 창대가 한꺼번에 쓰러지며 서로 부딪쳐 차르르 하며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게 청아한 소음을 냈다. 그 사이에 긴 칼을 든 왜군들이 달려들었으나 제5탄 일제사격에 몰살당했다.
그 동안 간수군들이 사격 훈련을 열심히 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지상이라서 그런지 아주 잘 맞췄다. 어쩌면 배의 롤링과 요잉 등이 사격술에 미치는 영향이 이민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을지도 몰랐다.
“이 동지 영감! 이게 뭐요? 남은 왜병이 없지 않소! 이건 약속 위반이오오오~”
유숭인이 말을 달리면서 이민호에게 남긴 말이었다. 기마병 천여 기가 왜병들이 쓰러진 들판을 지나 재 너머 당항포 쪽으로 사라졌다.
“3, 4려는 전장 정리! 제3여수가 현장 지휘를 맡고 일이 끝나면 당항포로 와라. 1, 2려는 급속 행군!”
간수군 첨병들이 말을 타고 앞서 나갔다. 언덕길에 적이 있었더라도 경상우도 기마병들이 쓸고 지나간 곳이라 위험은 없었다. 그 다음은 이민호가 말을 타고 천천히 앞으로 달렸다. 간수군 150명이 대오를 맞춰 말 뒤를 따라서 뛰었다.
가끔 역사드라마를 보면 장수는 말을 타고 달리고 졸병들은 뒤에서 뛰는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와 똑같은 꼴을 재현한 이민호가 수하들에게 미안해서 좀 천천히 달렸다. 간수군은 주로 배에서 싸우는 해병이라 기동력이 뒤떨어지는 약점이 있어 이민호는 몹시 아쉬웠다.
재를 넘는 길 곳곳에 왜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유숭인이 기마대를 바람처럼 몰아쳐 왜인들이 숲으로 도망갈 시간을 주지 않고 모조리 몰살시킨 결과였다. 화살에 맞은 왜인보다 말발굽에 짓밟혀 죽은 자들이 더 많았다. 길에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죽은 왜인들은 후속 기마병들의 말발굽에 다시 짓밟혀 수급까지 피떡이 되어 있었다.
언덕길에 흩어져 있는 왜인 사망자들 중에는 사공과 수부 외에도 군대를 따라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들도 많았다. 그런 전쟁상인들이 왜병에게서 조선인 포로를 사서 노예로 매매하는 일도 떠맡고 있었다.
현재 이민호는 직접 나서는 대신 포르투갈과 류큐 상인들을 내세워 히라도와 나가사키에서 조선인 노예들을 매입하고 있었다. 이들을 해중국으로 보낸 다음 조선으로 송환하고, 희망자에 한해 해중국이나 고산국에 정착시켰다. 왜인처럼 머리가 깎인 자들은 별 수 없이 머리가 자랄 몇 달 동안 고산국에 남았다. 그 머리 모양으로 조선에 갔다가는 왜군으로 오인돼서 조선인들에 의해 목이 잘리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간수군들에게 시켜 숲으로 도망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은 왜인들을 길옆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뒤에 올 3, 4려가 처리하라고 길옆에 내버려두고 이민호와 1, 2려 병력은 계속 달렸다.
“우와! 장관이다.”
이민호가 말을 몰아 고개를 넘은 순간 내지른 탄성이었다. 불타는 왜선 26척에서 나온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너른 들판에서는 유숭인의 기마병들이 휘젓고 다니며 왜군과 왜인들을 가리지 않고 사살하고 있었다.
비슷한 수는 물론 몇 배 많은 보병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기마병들이 들판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주로 비무장인 왜인들을 쫓아다니며 활을 쏘거나 환도를 내리쳤다. 이민호가 보기에는 태합에 의해 징발되어 조선에 끌려온 불쌍한 왜인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 악귀 같은 왜군과 싸웠던 경상우도 기마병들에게는 아군과 백성들을 잔인하게 죽이던 왜군으로 보였을 것이다.
“왜인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주인님. 저들은 그저 위에서 시켜 조선에 끌려온 것뿐이지 않습니까?”
민희가 옳은 소리를 했다. 수부들은 그저 농민이나 어민에게 부과된 부역의 한 가지로서 배를 타고 노를 저었을 뿐이었다.
“일단 풍신수길이 나쁘지만,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데 대해 일본 백성들은 아무 책임이 없을까?”
“침략행위에 지배자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까? 자칫 왕정제를 부정하는 말씀입니다만, 민심이 천심이라 했으니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층민도 발언권을 가지는 여진이나 조선과 달리 일본 백성들은 지극히 수동적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노예가 됐다면 그 책임까지 져야겠지. 가자!”
이 시대 일본이 현대 문명국도 아닌데 이민호가 일본 백성들에게 너무 과도한 책임을 지운 셈이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지배자에게 과도하게 순응하는 특성이 있다고 이차대전 당시 미국의 일본연구서인 <국화와 칼>에도 잘 묘사돼 있었다.
어느 나라라도 외국을 침공할 때는 그 국가 구성원들에게 동의를 받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의명분이 없어 동의를 받지 못하면 지배자가 아무리 외국을 침공하고 싶어도 못하게 된다. 침략자 몽골도 최소한 이득을 각 부족 구성원들에게 나눠주기라도 했다.
그러나 일본처럼 지배자 개인의 명예욕이나 판단에 따라 침공행위가 이루어진다면 정말 최악이었다. 이 경우 위에서 내린 명령에 그저 순종하는 병사들과 수부들은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워진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이민호는 지금까지 왜인 수부들이 항복할 경우 웬만하면 포로로 잡아줬지만 그들이 불쌍해서 죽이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민호는 현대에서 체득한 인도주의 때문에 차마 포로를 학살하지는 못하고, 그 대신 포로들을 행재소로 보내 그들의 운명을 변덕이 심한 선조 임금에게 맡겨버렸다.
“기마병들 잘한다. 우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을 것 같군.”
바다에는 수군이, 북쪽과 동쪽에서는 간수군들이 막는 사이에 경상우도 기마병들이 그 중간의 공간인 들판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왜인들을 해치워 버렸다. 수백 구의 왜인 시체들이 들판에 흩어져 있어서 어찌 보면 참혹한 모습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수사 3명과 유숭인, 이민호가 당항포에서 만났다. 유숭인이 미리 준비한 관직명을 적은 문서인 공장을 이순신에게 바친 다음 보고했다.
“대첩을 경하드립니다, 좌수백 영감. 제 수하들이 벤 수급 370개를 주장이신 좌수백 영감께 바치겠습니다.”
“유 군수 영감께도 대첩을 축하드리오. 포구에서 해전을 하더라도 아군 기마병이 도와주니까 정말 좋소. 왜적이 도망갈까 봐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싸워도 되는구려.”
그 사이 당항포 북쪽 길을 차단했던 간수군 5, 6, 7, 8려가 포구에 도착했고, 조금 늦게 전장정리를 마치고 3, 4려가 도착했다. 그리고 외륜선 네 척이 당항포에 들어와 바닷가에 산더미처럼 쌓인 각종 전리품을 간수군들이 실어 날랐다. 물론 이민호의 지시에 의해 경상우도 기마병들에게 배분할 전리품 4분의 1은 남겨두었다.
유숭인의 기마대가 참수한 수급이 350여 급, 이민호의 간수군이 동쪽과 북쪽에서 도주로를 차단하고 사살한 수급이 610여 급, 수군이 왜선에 올라서 베고 바다에서 건진 왜군 수급이 560여 급에 달했다. 간수군만 있었다면 포로를 잡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마병이 말을 달리면서 모조리 쳐 죽이는 바람에 포로는 전혀 없었다. 왜인들이 기마병에게 겁을 먹고 등을 보인 채 도주하다가 다 죽어버린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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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또 올리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슬슬 육군 장수들도 겟!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