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17화 (66/1,000)

00117  18. 고산국에서의 보름  =========================================================================

범선은 요새 아래 포구에 정박시켰다고 전령이 보고했다. 얼마 전부터 무장이 과도하거나 흘수가 깊은 외국 선박들을 요새 아래 포구에 정박시키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었다. 주로 마카오에서 출발한 포르투갈 범선이 이 포구에 정박했다. 그 대신 포구부터 수도까지 마차가 교차할 정도로 넓은 도로가 잘 닦여 있었고, 배에서 내린 상인들에게 마차와 마부를 빌려주었다.

그러나 이번에 온 범선은 포르투갈 상선이 아니었다. 파발을 접수한 예국 참의는 갈레온을 타고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고 이민호에게 보고했고, 이민호는 깜짝 놀랐다.

“마닐라 총독이 정식으로 보낸 사신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전하.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정기적으로 판매하는 옥 도자기를 에스파냐에게도 판매해주실 수 있는지 여쭈러 왔다고 합니다. 남양에서 활동하는 유구왕국 상선들의 중간 기착 문제가 있어서 조만간 접촉할 예정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싶습니다. 궁궐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에스파냐 사신들에게 마차와 기마 호위병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잘 됐군요. 그렇게 하시고 알현과 만찬은 최 참의가 알아서 준비해주시오.”

“예, 전하!”

최 선생의 부친은 원래 궁궐 앞 해관에서 근무하던 중급 서기였었는데 능력이 출중하고 문장도 좋다고 판단해 예국 참의를 맡겼다. 수장인 예국 참판을 이민호가 겸하고 있으므로 사실상의 외교 책임자였다.

마닐라에서 보낸 에스파냐 사신들이 오후에 고산국 궁궐을 방문했다. 명나라 칙사가 올 때와 반대로 에스파냐 사신들이 지나는 도로와 요새, 궁궐의 성벽마다 무장한 직할군 병력이 잔뜩 배치됐다. 침략자 에스파냐에게 약해 보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궁궐을 방문한 사신단은 수행원을 빼면 귀족 두 명에 신부 한 명이 실제 사신들이었다. 사신단 대표는 돈 후안 마르티네스 로페스 데 보르히아였고 차석은 돈 페드로 란조르 데 고이티라고 했다. 둘 다 작위 없는 하급 귀족인 이달고(Hidalgo)였으며 부칭과 출신 지역 이름을 함께 써서 권위를 높였다.

이민호는 정전에서 그들을 맞이한 다음 알현실로 옮겨 회담을 가졌다. 이들이 원하는 옥 도자기 견본을 진열하니 직접 만져보면서 아주 좋아했다. 마카오에서 스페인어를 배운 젊은 관리가 이민호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옥 도자기는 세계 어디에 가도 살 수 없소. 비싼 것은 알고 있지요?”

“물론 압니다. 과연 국왕전하께서 자부심을 가지실 만합니다. 물론 저희에겐 이 고귀한 도자기를 살 재력이 있고, 유럽에 가져가 충분한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저 포르투갈 촌놈들처럼 말이지요.”

“지금은 같은 나라 아니오? 다른 나라라 해도 같은 군주를 모시고 있으니 말이오.”

1580년 포르투갈의 국왕 세바스티앙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모로코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 전사하고 뒤를 이은 추기경왕 엔히크마저 2년 만에 죽자 포르투갈 왕위 계승 전쟁이 발생했다. 결국 엔히크 추기경의 조카인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포르투갈 왕좌를 계승하면서 필리프 1세로 즉위했다.

이렇게 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같은 왕을 섬기게 되었으나 통치는 분리하는 동군연합에 불과했다. 그러나 1598년 펠리페 2세 겸 필리프 1세의 사후에는 두 나라가 사실상 합병되는 과정을 밟았고, 포르투갈의 반발이 이어지다가 독립은 1640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국왕전하께서 마카오를 자주 방문하신다더니 역시 잘 아시는군요. 하지만 포르투갈 사람들과 저희들은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습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 이후 지구를 절반씩 나눠서 진출하기로 했으니 사실 만날 일도 없지요.”

1494년 교황의 중재에 의해 세네갈의 베르데 곶 군도 100레구아 서쪽을 기준점으로 삼는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체결됐다가 포르투갈의 요청에 의해 270레구아 서쪽을 기준점으로 지구를 나누었다. 포르투갈은 기준점 동쪽인 아프리카와 인도, 아시아에서 독점권을 가졌고 나중에는 브라질을 발견해 식민지로 삼았다. 포르투갈은 항구를 건설해 거점으로 삼고 무역에 중점을 두었다.

16세기 전반 향료 산지인 몰루쿠 제도를 두고 에스파냐와 다투던 포르투갈은 위약금 35만 두캇을 제공하고 몰루쿠 제도를 포르투갈 영역으로 삼는 사라고사 조약을 1529년에 체결했다. 그 대신 필리핀을 에스파냐가 차지하는 것을 포르투갈이 양해해 주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에 따라 포르투갈 선박들은 말래카 해협을 통해 인도 고아를 거쳐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향했다. 반면 에스파냐 선박은 필리핀에서 태평양을 횡단해 마젤란 해협을 돌아가거나 멕시코에서 화물을 내려 반대편에서 다시 싣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를 이용했다. 이렇게 두 나라의 사업 영역을 철저히 분리했지만 명나라와의 무역에 있어서는 두 나라가 서로 협력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네덜란드와 영국은 이 조약의 합법성을 부정하고 무역로와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인도양과 카리브해 등에서 해적선이 준동하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보물선을 약탈했다.

“같은 나라가 아니더라도 이웃 나라인데 친하게 지내지 그러시오? 어쨌든 옥 도자기의 생산량에 비해 포르투갈의 수입량이 적어서 에스파냐에서도 포르투갈이 수입하는 양만큼 살 수 있을 것이오.”

“오! 감사합니다. 고산국의 명성이 유럽에 더욱 진동할 것입니다. 이런 훌륭한 예술품을 만드는 고산국은 진정한 문명국입니다.”

본격적인 협상 전에 약간의 여흥으로 직할군과 호위병들이 사신들 앞에서 사격 시범을 펼쳤다. 사신들은 소총의 사거리와 정확도에 놀라고 장전 속도에 기겁했다. 마지막에 호위병이 6연발 기병총을 쏘아대자 아주 뒤집어졌다. 당연히 사신들이 총을 팔아달라고 졸라댔지만 이민호는 단번에 거절했다.

화승이 없는 플린트락이나 연발 개념 등은 유럽에서도 알고 있었지만 아직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실전에 쓰는 나라가 없었다. 사신들은 고산국의 기술력에 놀랐다. 방문하기 전에는 고산국을 침략할 생각을 가졌더라도 이 시점에서는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리고 팽호도의 해적을 전멸시킨 고산국의 소문을 마닐라에서도 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고산국을 위해 일하는 수많은 배들이 남양에서 항해하며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고산국은 크지는 않더라도 서양인들에게 부강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었다.

“명나라의 황실에서 황후와 후궁들이 사용하시는 귀한 물품이니 돈을 낸다고 무조건 팔지 말고 구매자의 신분을 봐가면서 팔아야 하오.”

“지금도 옥 도자기의 소비자는 왕족이나 대귀족들이니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스파냐 사신이 대뜸 대답을 했지만 과연 약속을 지킬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신이 온 김에 전부터 구상했던 제안을 내놓았다.

“요즘 남방 브루나이 등에서 목재와 쌀을 싣고 오는 일을 하는 우리 배들이 중간에 정박할 항구가 없어서 곤란하던 참이오. 혹시 마닐라 항에 내 휘하 배들을 위한 전용 부두를 내어주거나, 필리핀에 남는 바닷가 땅이 있다면 항구로 쓸 만큼만 내줄 수 있겠소? 요즘 마닐라 상황이 안 좋다고 들었소. 에스파냐가 요청한다면 고산국 함대를 보내 명나라 해적들을 퇴치시켜 주겠소.”

“음. 그것은 총독께 문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왕전하의 배라고 하시면 고산국, 해중국, 그리고 류큐왕국의 상선들입니까?”

“제각각 다른 나라들이오. 공식적으로는 말이오.”

사신과 눈을 맞추면서 이민호가 씩 웃었다. 이민호는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사실 속으로 무척이나 떨고 있었다. 회담에 배석한 예국 참의와 혜영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어서 부러웠다. 사신단 대표는 한참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거대한 규모였던 팽호도의 해적을 물리친 고산국 해군을 보내 도와주신다니 고맙습니다. 하지만 에스파냐는 유럽의 강대국이며 해양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만큼 아무래도 명나라 해적은 저희가 직접 퇴치해야 할 것 같습니다.”

“힘드실 텐데, 유럽 강대국의 자존심이 있을 테니 더 이상 권하지 않겠소. 레판토해전에서 오스만제국의 대 함대를 물리친 에스파냐 아니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말씀하시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우호국의 어려움을 이해하여 항구를 내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다만 마닐라 항이 아니라 마닐라에서 조금 떨어진 서쪽이나 북쪽 지역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필리핀 전체가 에스파냐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고산국에서 인정한다는 뜻을 협약에 명기한다는 조건입니다.”

에스파냐의 필리핀 정복자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는 1565년 세부 섬을 무력으로 정복한 이래 북쪽으로 탐사를 넓혀갔다. 1570년 원래부터 부유한 무역항인 마닐라에 300명의 군대를 보내 장악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루손 섬을 비롯한 필리핀을 식민지로 개척했다.

그러나 필리핀에는 향료가 나지 않아 에스파냐는 마닐라를 교역의 거점으로 삼았을 뿐 아직 필리핀 전체를 경제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필리핀에 체류하는 에스파냐의 인원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주로 상인으로 활동하는 명나라 사람들 숫자가 너무 많아서 에스파냐는 심지어 마닐라마저도 아직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다. 필리핀 중부 비사야 제도 곳곳에서 설치며 가끔 마닐라를 노리는 해적들을 진압하는 데에도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마닐라 안의 성벽도시 인트라무로스는 아직 건설 중이라 방어력도 약했다.

이때는 명나라 해적이나 상인 집단으로부터 마닐라를 지키기에도 급급해 넓은 농토와 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사탕수수 등의 플랜테이션 농업은 꿈도 못 꾸는 시기였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갈레온 무역이 쇠퇴한 18세기 말에 들어서서야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마닐라 외부에서 천주교 선교는 활발한 편이었다. 총독부가 필리핀 남부의 이슬람국가들과 싸우면서 필리핀 전체에서 이슬람 선교를 금지시키자 정치적, 군사적 정복보다 선교가 더 빨리 진행되었다. 1565년 초대 총독 레가스피와 함께 필리핀에 온 신부들에 이어 1578년 교황의 명령에 의해 주교구를 세우기 위해 신부들이 파견됐다.

“그것도 좋소. 나는 훌륭한 무역 상대인 에스파냐와 하찮은 땅을 두고 전쟁을 할 생각이 없으니 말이오. 필리핀에서 땅을 조금 내어준다면 작은 항구를 만들고, 그 뒤에 배후 도시를 하나 만들고 싶소.”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조차지를 무상으로 내드려야 마땅하겠지만 저희도 멕시코 부왕이나 에스파냐 황제폐하께 설명할 근거가 필요합니다. 어떤 식으로 보상을 해주시겠습니까?”

“고맙소.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이번 옥 도자기의 거래액을 절반으로 감해주겠소. 동일한 금액으로 옥 도자기를 두 배로 가져가도 좋으니 알아서 선택하시오.”

“국왕전하께서는 듣던 대로 엄청나게 통이 크시군요.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총독을 쉽게 설득할 수 있으니 조차지 문제는 저와 협의해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할인보다는 두 배를 매입하는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영구적인 영토 할양에 가까운 조건이었지만 어차피 현재 에스파냐가 전체 필리핀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도 없으니 쉽게 협상이 진행됐다. 총독부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돈을 벌면서 우호적인 세력이라도 얻자는 뜻 같았다. 그래서 이민호는 전쟁 없이 남의 땅을 쉽게 얻게 되었다. 마치 미국이 루이지애나와 알래스카를 프랑스와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것과 같았다.

필리핀 전체에 대한 욕심이 들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루손 섬 북부만 해도 거의 대만의 넓이에 육박했다. 농사짓기에 기후도 더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능사는 아니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또한 현재 임진왜란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필리핀을 정복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하기도 어려웠다.

만약에 군사적으로 정복하겠다고 나설 경우 마닐라에 거주하는 에스파냐 사람들 겨우 몇 천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멕시코나 에스파냐 본국에서 병력을 보내면 골치 아플 수가 있었다. 필리핀을 두고 에스파냐와 전쟁을 하느라 몇 년씩 묶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포르투갈도 에스파냐와 동군연합의 국가이기 때문에 비단과 옥 도자기 등 상품의 유럽 수출이 막힐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조만간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아시아 무역에 본격적으로 참가하면서 각종 분쟁을 일으킬 테니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있었다. 네덜란드와 영국 해적들은 아직은 주로 인도양에서 활동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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