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13화 (62/1,000)

00113  17. 옥포해전  =========================================================================

임금이 이번에는 이민호에게 경상우수사를 제수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이응화는 아들놈이 무관으로서의 능력이 전혀 없어서 단기간에 경상우수영을 말아먹을 것이라며 임금을 말렸다.

사실 이민호처럼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수군절도사를 맡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순신이 올린 장계에는 이민호의 입김이 많이 작용해서 이민호는 그저 병력만 동원하고 두드러지게 열심히 싸운 표가 나지 않았다.

사실 이민호는 적진포해전에서 원균한테만 총을 쐈지 왜군에게는 한 발도 쏘지 못했다. 무기로 아군이 아닌 적을 쏘라고 강조한 이순신의 말은 원균뿐만 아니라 이민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었다.

새로운 경상우수사로 오응정이라는 무신이 임명됐는데 이민호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몽진 가는 선조 임금을 호종하며 대동강 수탄장을 맡았던 오응정은 제수되자마자 해동상단에서 내준 외륜선을 타고 급히 경상도로 내려와 부임했다.

오응정은 전라좌수영 앞 바다 건너편에 위치한 남해현 관아를 임시 수영으로 삼아 흩어졌던 경상우수영 군사들을 다시 끌어 모았다. 그리고 자침시켰던 판옥선들을 수리해 한 달 사이에 판옥선 20여 척의 쓸 만한 세력으로 불렸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조선 기술자들을 보내고 해동상단이 군선의 자재와 군량을 제공하는 등 최선을 다해 경상우수영의 재건을 지원했다. 이들이 해전에서 활약한 것은 앞으로 한 달 후의 일이었다.

5월 9일 전라좌수영에 도착하니 고산국에서 보낸 긴급 통지문이 이민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나라에서 칙사를 보냈는데 이민호가 고산국 남쪽 지방을 순행 중이라고 둘러댔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혜영이 직접 써서 보낸 문서였고, 중요한 일이니 꼭 오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첨지 영감께 문후 올립니다.”

“오! 오랜만이오.”

영덕 어부 김 가가 이민호의 집에서 며칠째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영덕 어부가 아닌 영덕 재벌로 불러야 할 정도로 그는 많은 재산을 모았다. 좋은 일도 많이 한다고 풍문으로 들었다.

“위험한데 어찌 오셨소?”

“밤에 부산포 앞바다를 지나가면 됩니다. 왜선들은 밤에 함부로 바다에 못 나옵니다.”

조선 어부들이야 야간조업에도 익숙하지만 조선 수군도 사실 밤에 항해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니 더더욱 외국 땅에 온 왜 수군은 표류 중인 배 외에는 밤에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첨지 영감께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 저는 어부 출신의 상인이지만 이 나라 백성이기도 합니다. 친우들과 의병을 모아 적과 싸우려는데 첨지 영감의 뜻은 어떠신지요? 그리 하면 제가 맡은 일을 첨지 영감께 돌려드려야 하기에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백성으로서 당연히 그리 하셔야지요. 하지만 내가 그대를 동해의 양식사업 책임자로 삼은 뜻이 있지 않겠소?”

이렇게 일을 잘하는 사람을 다시 찾기 힘든데 의병으로 나서겠다니, 이민호는 골치가 아팠다. 그러나 피 끓는 우국지사들은 어느 계층이든 있기 마련이라 함부로 반대하기도 어려웠다. 억지로 자리에 앉혀 놓아봤자 제대로 일도 못할 것이다.

“첨지 영감과의 약속이긴 하지만 나라가 왜적에게 침략을 당했는데 저만 일을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고민하는 뜻은 알겠소. 하지만 다 의병으로 나가서 싸우면 일은 누가 하고 관군과 의병에게 군량은 누가 대준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현재 김 가에게 딸린 식구들이 굉장히 많았다. 해삼이나 명태를 잡는 바닷가 백성들은 물론 황태와 해삼을 말리는 사람들, 양식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물건들을 수송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족히 수천 명은 되었다. 이민호는 소는 누가 키우냐고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꾹 참고 하던 일을 하시오. 그리고 내가 따로 지원해줄 테니 의병과 관군에게 군량을 대주는 일을 하시오. 이것은 직접 싸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양향(糧餉)이 군사보다 더 중요해진다오. 올해 연말이나 내년 봄쯤 감영에 군량 몇 백 석을 바치면 당상관 벼슬도 쉽게 얻을 거요.”

“겨우 몇 백 석에 당상관이라뇨. 전쟁이 길어지면 팔도에 식량난이 온다는 말씀이시군요.”

“벼슬은 별로 필요 없겠지만 전란에 나라를 위해 기여했다는 증거로는 충분할 거요. 남들이 창칼과 활총으로 백성을 구하는 동안 그대는 쌀과 어물로 백성을 구하시오. 백성이 근본 아니오?”

“옳으신 말씀입니다. 첨지 영감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이민호의 지시에 따라 김 가가 경상도 북부 해안과 강원도, 함경도 곳곳에 창고를 지어 쌀을 보관하고 있었다. 관군과 의병의 군량과 백성의 양식으로 준비했지만 자체 군사력이 없어 잘못하면 왜군에게 고스란히 군량으로 바치는 경우가 생길까봐 산속 깊이 숨겨 놓았다.

영덕 어부 김 가는 봉래해삼 말린 것 2천 근과 황태, 반건조 오징어를 바쳤다. 이민호가 짭쪼름한 덜 말린 오징어를 하녀에게 구워오라고 해서 한 마리를 뜯어먹었다.

“첨지 영감께서 주신 돌기 해삼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2촌 정도 크기로 키운 종묘를 주변 바다에 방류하기도 했으나 일부는 첨지 영감의 말씀에 따라 커다란 수조를 만들어 다 자랄 때까지 키우고 있습니다. 물레방아를 돌려 깨끗한 물을 계속 순환시키니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김 가가 견본으로 두 마리를 어항에 담아왔다. 물이 미지근해서 그런지 돌기가 많은 북해도 해삼은 축 늘어져 여름잠을 자고 있었다. 수온이 조금 더 올라가면 폐사한다고 보고했다.

“아직 작지만 토실토실하군요.”

“벌써 많이 컸습니다. 내년 봄에 출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돈이 될 거요. 사료가 아깝다 여기지 말고 해삼의 살을 찌우시오.”

“예. 사료로 쓸 미역과 다시마를 건지는 어선을 열 척이나 고용했습니다. 해초 양식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어미 해삼에게는 해초 외에도 잡어와 게, 감자를 갈아 섞어서 사료를 주고 있습니다.”

자연산 해삼은 암반지역에 살면서 개펄이나 모래에 섞인 유기질을 먹고 살았다. 이민호는 인공 양식할 때 어분과 미역, 전분 등 몇 가지를 배합해 쓴다고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성분과 비율은 몰랐다.

그래서 김 가가 수조 몇 개를 만들어 해삼들을 따로 키우며 여러 가지 사료를 주면서 성장도를 비교, 시험하고 있었다. 산란과 수정 후 유생 단계에서 보호할 때는 다른 사료를 먹여야 했다.

양식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성공만 한다면 대박을 보장하니 이민호와 김 가도 북해도 해삼 양식에 매달리고 있었다. 해삼 무역을 위해 북해도까지 왕복하기에는 너무 멀고, 일본인이나 아이누인이나 마찬가지로 다 위험했다. 북해도 해삼의 이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찬 바다 얼음물에서 잘 자란다고 빙삼이라고 지으려다가 어감이 나빠 포기했다.

다음 날 아침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불러서 외륜선을 타고 흥양의 도양장으로 함께 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간척사업에 투입돼 일을 하고 있었다.

방답이나 순천부보다 쉽게 바다를 막을 수 있는 흥양 땅이 간척하기 훨씬 좋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그 이전 조선 초기부터 꾸준한 간척이 이루어져 흥양 지도는 매년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전라좌수영에서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여 한꺼번에 넓은 농토를 얻게 되었다. 당연히 그 배후에는 이민호가 있었다.

작년에 이미 농지로 개간한 땅에서는 모내기를 마친 벼가 파릇파릇 자라고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 봄에도 비가 자주 와서 소금기를 뺄 시간을 많이 줄여주었다. 바다를 메워 넓은 땅을 얻게 된 이순신은 자부심에 가득 찼다.

“자네가 권고하고 지원해준 덕택에 넓은 농토를 얻게 되었네. 백성들이 먹고 살 농작물이 자라고 올해에는 특별히 왜군을 상대할 때 군사들을 먹일 군량이 되겠지.”

“그렇습니다.”

“저 바다가 폭이 20리쯤 되는데 축대로 막을 수 있다면 농토 수천 만 평을 한꺼번에 얻을 텐데 말이야. 아니지. 소록도와 거금도, 금당도를 육지와 연결하는 식이면 훨씬 쉽게 일이 진척되겠어.”

그런 식으로 간척사업을 벌인다면 족히 2억 평 넘는 농토가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무척이나 미안했지만 이순신의 계획이 너무 광대해서 이민호가 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 하지만 더 이상 간척지를 넓히지는 마십시오. 이것으로 충분하고, 혹시라도 쌀이 모자라면 고산국에서 가져 오면 됩니다.”

“농지는 넓을수록 좋지 않은가? 쓸모없는 갯벌보다야 논이 낫지.”

“그렇긴 합니다만, 어민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갯벌에서 아녀자 몇몇이 겨우 조개나 낙지를 잡는다고 여기지 마시고, 물고기들이 알을 낳는 장소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갯벌이 줄어들수록 조선의 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질 겁니다.”

이민호는 아주 오래 전에 갯벌이 논보다 생산성이 13배나 높다는 방송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13배인지 9배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했으나 갯벌의 생산성이 의외로 높은 것만은 확실했다.

“으음. 어민들도 백성이니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봐야겠군.”

“앞으로 농토가 모자란다면 만주를 조선 땅에 편입시키면 됩니다.”

“허허! 건주여진이 욱일승천하는 기세인데? 자네도 함경도에서 싸워봤으니 알겠지만 여진족을 도모하기는커녕 침략을 막는 것만도 버겁다네.”

“건주여진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서 텅텅 빌지 혹시 압니까?”

“허!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여진족들은 청나라를 세운 다음 만주를 봉금지역으로 선포하고 산해관을 넘어가서 중원에서 살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만주족 대부분이 한족에 동화돼서 사라져버렸고, 그 때문에 만주가 얼렁뚱땅 중국 땅이 되었다. 이민호는 만주를 잃어버린 우리 조상의 땅, 또는 고토 회복해야 할 광개토대왕의 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아깝게 여겼다.

“왜적들에게 침략을 당했으니, 나중에 우리가 복수하러 왜적 땅을 공격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논의가 선비들 사이에서 벌써부터 나오고 있네만, 자존심 상하게도 그게 쉽지는 않을 걸세. 일본 인구가 조선보다 많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부터 공공연히 알려진 이야기일세. 일본에는 지난 백 년 동안 전쟁으로 단련된 병사도 우리보다 훨씬 많지. 조선은 전란 뒷수습을 하느라 바빠서 보복은 꿈도 못 꿀 거야.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세.”

“조선은 일본에 보복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다는 뜻이군요. 그럼 만약 고산국이 단독으로 일본을 공격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형님께서 저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다만 형님께서 몇 년 동안 관직에서 물러나셔야 합니다.”

이민호는 다시 전란이 일어날까 두려운 조선이 고산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발을 뺄 것으로 계산했다. 심하면 조선의 무관들이 개인 자격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막을지도 몰랐다.

“허허! 자넨 참 배포가 크군 그래. 좋아! 만약 자네가 일본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면 내가 그깟 관직 몇 년 휴직하고 자넬 돕겠네.”

“정말입니까?”

이민호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그냥 한 번 떠본 것에 불과한데 엉겁결에 가장 믿을 만한 장수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도 왜적들을 싫어하고 후손들이 앞으로도 계속 일본이 침략할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고 싶네.”

“빙고!”

“응? 얼음 창고를 만들어서 어디에 쓰게?”

“아닙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고산국은 작은 곳으로 아는데, 자네 농담 아니었나?”

이민호는 조선에서 일본을 징치할 의병을 모집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 것으로 기대했다. 만약 병력이 부족하면 간수군 모집하는 식으로 사병을 모집해 운용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부족하면 명나라나 여송 사람들을 고용해 전쟁에 투입할 수도 있었다. 병력을 동원할 방법은 많았고 다만 믿을 만한 장수가 없어 걱정이었는데 고민이 단숨에 해결됐다.

“으하하! 형님은 제 함정에 빠지신 겁니다. 몇 년 동안 실컷 부려먹겠습니다.”

“그거야 상관없지만, 일단 왜적을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야 하네.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어. 피난살이도 무척 고달프지.”

“예. 내년까지 전쟁을 끝내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내년 초라니? 전쟁은 빨리 끝낼수록 좋은데 그렇게 오래 갈까?”

이민호에게는 아주 유쾌한 날이었다. 그리고 원래 역사대로라면 이순신은 1598년 말까지 일을 해야 했으니 내년까지 전쟁을 끝낼 수 있다면 이민호가 그를 한 5년 동안 부려먹는다 해도 양심에 꺼리지 않았다. 이민호에게 의욕이 샘솟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