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112화 (61/1,000)

00112  17. 옥포해전  =========================================================================

“옥포에서 많은 적을 놓쳤는데도 수급이 엄청나게 많군.”

“그러게 말입니다. 수급 절이는 데만 소금이 스무 가마가 넘게 들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적이 육지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바다 한 가운데에서 공격해서 목을 베거나 포로로 잡아야겠습니다.”

“그게 좋겠네. 판옥선 몇 척으로 적선들을 바다 한 가운데로 유인해서 포위한 다음 다 때려잡아야겠어. 앞으로도 이번 같은 식으로만 계속 싸운다면 전쟁을 금방 끝낼 수 있을 걸세. 자네가 너무 잘해주었네.”

“형님께 칭찬을 받으니 감개무량합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잘난 사람들끼리 서로의 얼굴에 금칠할 필요는 없었고, 대화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이순신의 표정이 좀 묘했다.

“그리고 원 수사가 왜적의 총탄에 맞았네. 하지만 특별히 목숨에 지장은 없을 거라고 하더군. 총탄을 배에 맞았는데도 살아남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예에?”

이민호는 깜짝 놀랐다. 이민호가 소총을 쐈을 때 분명 원균의 몸에 명중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지방층이 두꺼운 배에 맞은 것 같았다. 사실 이민호가 멀리서 소총을 조준할 때 원균의 배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배에 맞을 확률이 가장 컸었고, 실제로 배에 명중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민호의 실수였다. 보통 총알을 써서 왜군들이 픽픽 쓰러졌을 때와 달리 거구의 원균이 총에 맞는 순간 뒤로 날아간 것에 신경을 썼어야 했다. 저지력이 상승했다면 반대로 관통력이 떨어졌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원균의 지방이 문제가 아니라 총알이 문제였다.

이민호는 왜군이 쓰는 납탄을 두들겨서 탄두를 만든 다음 기존 총탄의 탄두와 교체했다. 만약 소총 탄약에 흑색화약을 사용했다면 총알의 비행속도가 느려 탄두의 변형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이민호가 개발한 소총은 무연화약을 쓰고 있었다. 연질의 납에 구리 피갑을 씌우지 않은 탓에 비행 중은 물론 착탄 순간에도 납탄의 형상에 심하게 변형이 일어났다. 그래서 총알이 간신히 갑옷을 관통한 후에 더 이상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납이 사방으로 확 퍼져버렸다. 관통을 못한 대신 저지력만 상승한 탓에 원균이 뒤로 날아간 것이다.

사실 이민호가 그런 것을 알고 있었더라도 총탄 제작 시설이 없는 이곳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이민호는 왜군의 조총으로 위장해야 했기에 탄두에 구리 피갑을 씌울 수 없었다. 슬러그탄과 무피갑탄은 납탄에 피갑을 씌우지 않는 탄종이지만 그 납은 순수한 납이 아니라 경질의 납 합금이라 변형이 덜 일어나는 재료였다.

“원 수사가 살았다니 참으로 다행이군요.”

“그렇지?”

두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잠시 말이 없었다. 원균이 계속 경상우수사로 남는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원균에 대한 암살 시도가 두 번이나 실패했다. 이민호는 아무래도 하늘에서 막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원균은 왜적의 총탄에 맞은 이후 선실에 누워 있다고 했다. 그 왜적이 이민호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민호의 가족들밖에 없었다.

나중에 이민호가 원균을 다시 봤을 때는 뚱뚱한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근육질의 미중년 거한으로 변해 있었다. 총알을 빼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후에는 다시 예전의 비대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민호가 경상우수영 좌선으로 병문안을 갔다. 상의를 벗지는 않았다. 사실 원균의 상세를 정탐할 목적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이민호는 원균의 부하도 아니고 품계도 같으니 편하게 대했다.

“수사 영감께 문안 왔소이다. 차도가 있으십니까?”

“끄응! 어서 일어나 왜적을 처치해야 하는데 이 상처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니 안타깝소.”

“왜적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으셨으니 영광스러운 상처이지요. 일단 몸을 추슬러 나중을 대비하셔야 합니다.”

“고맙소. 어서 일어나서 전공을 세워야 하는데.”

“평택현이 땅이 넓고 기름지더군요.”

평택읍 지역은 송탄과 합쳐져 경기도 평택군이 되기 전에 평택현으로서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 소속이었다.

“지금은 한양에 집이 있긴 하지만 그곳은 내 고향이오. 왜 그러시오, 이 첨지?”

“전쟁 중인데 왜군이 접근하지도 않고, 바다에 접해 물산은 풍부하고,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영감께서는 이미 벼슬이 당상에 이르렀으니 굳이 위험하게 무관을 계속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차라리 만석의 땅을 경영하면서 여유 있게 음풍농월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영감께서는 혹시 그렇게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으십니까?”

“뭐요? 그럼 나에게 땅을 주겠단 말이오? 그것도 만석지기 땅을?”

이민호가 가진 거라곤 돈과 여자밖에 없으므로 이번 문제도 돈으로 때우기로 했다. 앞으로 7년 동안 관직에 진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만석의 소출이 나는 땅을 원균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다. 조정에서 억지로 벼슬을 내리더라도 부상을 핑계로 사양하기로 하는 조건이었다. 소유권은 7년 뒤에 넘겨주기로 했다.

남해현의 관아 곳간을 턴 문제로 부친과 다투던 남해현령 기효근도 원균과 같은 방식으로 고향에 돌려보내기로 했다. 전쟁터에서 싸우다 보면 쉽게 부상을 입는 법이었다. 기효근을 불러와서 이야기가 쉽게 끝났다. 현령에서 천석꾼으로 변모하는 것에 불만이 없어 보였다.

합의가 되어 원균에게 말하자 기효근이 용감하게 싸우는 도중 부상당한 일을 원균이 세밀하게 창작해서 장계에 추가했다. 뜻밖에 원균의 소설 창작 능력은 아주 뛰어났다. 직접 해전에 참가한 이민호조차도 기효근의 분전과 부상 과정이 진짜 사실이 아니었나 의심할 정도였다.

“원 수사께서는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실 분입니다. 일개 무부로 썩기에 아까운 분이십니다.”

“이제 고향에 돌아가 문장을 갈고 닦아야지요. 으하하!”

원균은 경상우수영 함대를 전투 없이 해체한 일로 처벌을 받을까봐 걱정이 많았다. 기효근도 남해현 관아를 버려두고 도망간 일이 경상감사에게 적발되는 바람에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번에 전라좌수영 함대를 졸졸 따라다니며 전공을 세웠으니 최소한 도주죄로 참수 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민호는 원균이나 기효근 밑에서 일할 소작농들에게 무척 미안했다. 그러나 경상우수영에 소속된 수군이 소작농이나 노비들보다 훨씬 많았고, 지켜야 하는 백성의 단위도 전혀 다르니 일부 소작농들의 불행에는 눈을 감기로 했다.

“살려주십시오! 그때는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봅니다.”

“팔은 괜찮나? 괜찮지 않은 것 같군.”

이민호에게 활을 쏘아 민영을 다치게 한 군관을 따로 만났다. 그는 총알이 관통한 어깨 부상이 도져서 더 이상 군관 일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조선 무관으로서의 생명인 오른팔을 못 쓰게 된 것이다.

이민호는 실직이 아닌 것이나 다름없는 첨지중추부사에 불과했지만 전라좌수영에서 장수로 싸우는 것을 조정에서 정식으로 허락받은 사람이었다. 비록 객장의 신분이라 해도 다른 수영의 군관이 함부로 목숨을 위협할 만한 신분이 아니었다. 이순신이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조정에서 알게 되면 그 군관에게 크게 문제가 될 수 있기에 군관은 이민호에게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다.

군관이 계속 이민호에게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기에 치료비로 쓰라고 은전을 주면서 용서해주었다. 만약 민영이 잘못 됐다면 어떻게든 잡아 죽이고 말았을 테니 그 군관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 군관은 군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정양키로 했다.

원균과 그를 따르던 장수 기효근과 몇몇 군관들이 집에 돌아가니 경상우수영에는 소비포권관 이영남, 영등포만호 우치적, 옥포만호 이운룡, 사량만호 이여념 등 젊고 용감한 장수들만 남게 되었다. 지세포만호 한백록도 아직 30대였다. 한백록의 자(字)가 수지(綬之)라서 이민호는 그를 부를 때마다 웃음을 참아야 했다.

의외로 경상우수영 장수들이 전라좌수영보다 훨씬 젊었다. 경상우수영 장수들이 20대가 많은데 반해 전라좌수영에는 방답첨사 이순신 빼고는 쉰 냄새 풀풀 나는 노인네들이 많았다. 그것이 두 수영의 전투 방식을 다르게 만드는 것 같았다. 원균이 돌격을 잘하는지는 이민호가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경상우수영의 젊은 장수들이 돌격을 잘한다는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이순신도 그 장수들이 조금 무모해 보이긴 하지만 군인으로서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수군 지휘관의 두 가지 덕목이 과감함과 치밀함인데 이순신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예외로 두고 보통은 한 사람이 두 가지 모두를 갖출 수는 없었다. 같은 함대에 두 종류의 무장들이 섞이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물론 대장은 치밀한 사람이 맡는 것이 유리했다.

“주인님, 왜 우세요?”

“백만 평 땅이 아까워서. 속상해.”

이민호가 민영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위로를 받았다. 만석지기란 이민호가 처음 조선에 왔을 때 부친 이응화가 보유했던 재산이었으나 이제는 쉽게 남에게 넘겨줄 수 있을 정도로 재산을 모았다.

그래도 원균에게 땅을 주려니 솔직히 몹시 아까웠다. 이민호는 원균에게 자객을 보내 죽여 버릴까 싶다가도 꾹 참았다. 아직 이 시점에서는 원균이 패악을 저지른 것이 적어 원균이 죽어 마땅한 짓을 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임금의 거가가 5월 7일 평양성에 들어가서 그곳에 행재소를 차렸다. 조선군의 주 방어선은 아직 임진강에 있었고, 각지에서 계속 병력을 충원해 보냈다. 수도 한양을 점령한 왜군은 수도가 점령됐는데도 조선 국왕이 항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한성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계속된 패배에 신음하던 평양 행재소에 이순신의 장계가 도착하자 모든 조정 대신들이 기뻐 날뛰었다는 소리를 이민호는 나중에 들었다. 왜군 수급에서 베어낸 왼쪽 귀가 한 섬이나 되었고, 양 발목에 쇠사슬을 찬 왜군 포로 224명이 수군이 획득한 각종 전리품을 등짐으로 지고 남포에서 평양 행재소로 걸어가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뒤에는 전리품을 산더미처럼 실은 수레 수십 대가 따랐다. 수군이 크게 이기고 있다는 선전을 하기 위해 소형 외륜선 네 척이 동원돼 저들을 실어 날랐다.

보통 공을 세운 군관이 장계를 들고 어전에 가서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이민호의 부친이며 당상관인 이응화가 직접 포로들을 끌고 행재소에 찾아갔다. 전라좌수영 유군장인 이응화는 임금과 조정 대신들에게 영웅 대접을 받았고, 파발이 끊긴 남쪽 소식을 많이 알려주었다. 사실 조운선은 물론 해동상단의 외륜선들이 여전히 남해안과 서해안을 운항하기 때문에 소식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었지만, 남해안에서 직접 당상관이 행재소로 찾아온 것은 이응화가 처음이었다.

이응화가 의외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푸는 소질이 있어서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이틀 동안 이응화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한다. 몽진 과정에서 조정 대신들이 해동상단 덕택에 밥을 먹을 수 있어서 호의적이었는데 이응화가 전공까지 세웠다니 더 예뻐 보였을 것이다.

첫 승첩이고 하니 참전한 수군 무장들에게 골고루 상급이 내려졌다. 대장인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종2품 상계 가의대부로 2품계 승차했고, 이응화와 이민호, 그리고 원균은 종2품 하계 가선대부로 품계가 하나씩 올랐다. 이민호는 동지중추부사로 승진했고 조선의 관직 체계상 영직이나 마찬가지인 고산목 목사를 겸임했다.

열심히 싸운 전라좌수영 소속 무관과 고을 수령, 군관들은 품계가 두세 자급씩 뛰어올랐다. 이응화가 대신 가져간 원균의 장계로 인해 경상우수영 소속 무관들도 전공에 따라 품계가 올랐다. 원균은 약속대로 부상을 핑계로 경상우수사에서 물러나겠다고 조정에 청했고, 조정에서는 전황이 급하다며 즉각 수락했다.

선조 임금은 어전에서 이응화에게 경상우수사를 제수하겠다고 했으나 이응화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사양했다. 남들에게는 영광이겠지만 이순신 밑에서 싸우고 싶어 하는 이응화의 꿈을 짓밟는 소리였다.

관직에 연연하지 않는 이응화로 인해 아들인 이민호에 대한 평가도 덩달아 좋아졌다. 이민호가 조선 백성들에게 인기가 너무 좋아 임금은 물론이고 조정 대신들까지 은근히 경계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 작품 후기 ============================

오전에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원균을 어서 수군에서 빼버리는 게 속이 덜 상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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