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5 16. 임진왜란 개전 =========================================================================
“며칠 전에 경상도 겸관찰사가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네. 전라수군을 경상도에 보내달라는 요청인데 조정에서 허가를 해주었네. 곧 경상도 바다로 출동할 예정이니 자네도 참가해주게.”
“물론입니다. 그런데 무슨 골치 아픈 문제가 있으십니까?”
“군관에게 공문을 들려 남해현 관아에 보냈는데 남해현령뿐만 아니라 첨사, 만호, 권관들이 죄다 진포를 비우고 도망갔다고 하네. 무기고를 지키는 병졸도 하나 없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쯧쯧! 여기서 바다 건너면 남해인데 그곳을 왜군이 점령하면 큰일이니 무기고와 군량창고를 미리 불태워야 할지 고민 중일세.”
며칠 전 김해에 상륙하려는 왜군 수송함대의 규모에 놀란 경상우수사 원균이 예하 수군진포들에 전령을 보내 판옥선을 자침시키고 수군을 해산시켜 버렸다. 졸지에 일본 수군을 맞아 싸워야 하는 최전선이 되어버린 전라좌수영에서는 노량과 남해도 남단에 탐망선을 보내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해현을 지켜야 할 장수들이 무기고와 군량 창고를 내버려둔 채 모조리 도망가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적에게 이용당하기 전에 불태우는 게 원칙이겠지만 도망갔던 장수들이 나중에 되돌아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형님이 군량창고를 불태운 바람에 자기들이 못 싸웠다고 핑계를 삼겠지요. 그러니 창고에 든 물건을 외륜선으로 실어 나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남해현의 장수들이 끝내 안 돌아오면 그 물자를 전라좌수영에서 쓰고, 그들이 나중에 돌아와서 달라고 하면 내주면 간단한 일입니다.”
“그게 낫겠군. 그런데 창고가 없는데 어떡하지? 전쟁 준비를 너무 열심히 해서 지금 수영에 남은 창고가 없네.”
“그러니 제발 좀 적당히 준비하시라고 제가 말씀을...... 벅수골 간수군 훈련소에 빈 창고가 많으니 그곳을 쓰십시오. 대신 경비하는 군사를 따로 파견하셔야 합니다.”
“백성들이 만든 물자를 불태우는 건 너무 아까우니 그렇게 하세. 옮겨오는 일을 유군 소속 간수군들에게 시키면 되겠군. 그건 그렇고, 이걸 보게나.”
“오오! 정밀하게 잘 만드셨습니다.”
이순신이 목곽을 열어 매끈하게 잘 빠진 기다란 총을 내보였다. 이민호가 눈을 크게 뜨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수석총, 플린트락이 유럽보다 30년 일찍 조선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이민호가 기술 지원을 해준 덕택에 제작이 가능했다. 삽화철과 방화철 사이에 부싯돌이 끼워진 간단한 구조였지만 이로써 조선 수군은 화승이 필요 없는 총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격 속도는 기존 조총의 두 배 반에 달한다네. 조총에 비해 불발률도 크게 떨어졌어. 모두 자네 덕일세.”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이민호는 처음에 불접시와 점화약이 필요 없는 뇌관식 총을 만들려 했으나 이것은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개발을 나중으로 미뤘다. 수군의 전투가 육군과 달리 장거리 사격 위주라 총신이 긴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이름은 수군총이라 부르기로 했다. 보병총과 기병총은 이민호가 개발했으나 수군총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개발한 셈이 되었다.
“탄환과 화약을 일체화하는 것, 총신에 일정하게 홈을 파는 것, 총구 뒤에서 장전하는 것은 앞으로도 장인들이 꾸준히 연구하기로 했네. 자네 수하들이 가진 총과 비슷한 것을 내가 꼭 만들어낼 걸세. 이 치사한 친구야!”
“하하! 저도 남만에서 수입해 간신히 만든 것이라서요.”
예전에 이순신이 소총 몇 정을 달라고 했으나 이민호는 끝까지 주지 않았다. 그래도 수사나 군관들이 간수군들에게 개인적으로 보여 달라고 하면 쉽게 보여주면서 총 개발 과정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이민호가 만든 기병총과 보병총을 몇 정 건네주더라도 현재 조선의 기술로는 복제하기 어려웠다. 총탄 밑에 뇌관은 복제가 아예 불가능했다. 이것은 고산국에서 탄약을 생산하는 장인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고 이민호가 궁궐 안에서 직접 만들었다. 일할 때 도와준 백인 궁녀들은 전체 제작 과정을 몰랐다.
“지금 이 시대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병력이야 많을수록 좋고 무기는 좋을수록 좋지.”
후장식 장전, 플린트락, 휠락, 차륜식 방아틀 총 등은 유럽에서도 개념만 나왔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실용화된 것은 아직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수석식 총을 쓰는 조선은 다른 나라보다 몇 십 년이나 앞서가는 셈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현재 기술로 만들었으니 전국에서 이 총을 복제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수군총을 전라좌수영에서 벌써 100여 정을 만들어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했다.
“물론 전쟁이 무기의 우수성만으로 결판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건 그렇지.”
실록을 살펴보면 조선후기 내내 나오는 소리가 있다. ‘하나의 통영인데도 원균이 장수가 되니 군대 전체가 패망하고 이순신이 장수가 되니 가는 곳마다 겨룰 만한 상대가 없었다.’라는 말이다. 전쟁이든 행정이든 인재 선발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조정 대신들이 하는 말은 잘 새겨들어야 한다. 적당한 인재를 장수로 골라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거나 병력을 증강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물론 적당한 인재를 장수로 뽑았는지는 전쟁이 터지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사실 저 말은 영조 26년 호조판서 박문수의 상소에 들어있는 내용인데 수군 진포를 줄이자는 주장에 인용됐다. 그 전에 영조 20년에는 박문수가 배 만들 예산을 달라고 조정에 요청했다가 이순신은 전쟁 중에도 스스로 배를 만들었다며 영조에게 대차게 까였다.
“총은 활보다 명중률이 낮기 때문에 수십 명이 열을 맞춰 한꺼번에 쏘거나, 장전하는데 시간이 걸리므로 그 사이에 다른 열이 나와서 쏘거나, 아니면 단단한 상자를 만들고 총구를 내서 거길 통해 쏘거나 하는 식으로 운용방법을 고민해봐야 합니다.”
“수군에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구먼.”
적의 눈에서 흰자위가 보일 때까지 쏘지 말라는 이야기는 미국 독립전쟁 벙커힐 전투에서 워싱턴이 한 말이다. 총이나 활 같은 투사무기는 명중률이 낮기 때문에 집중 운용해서 적에게 큰 타격을 주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것은 세계 어느 전쟁에서나 통용되던 훌륭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조선군은 개인 사격 능력이 우수한 편이라 집단 사격 방식은 경시된 경우가 흔했다. 판옥선 여장과 방패판 뒤에서 싸우는 수군은 특히 그런 경향이 더 컸다.
“하하! 그러니 형님께서 연구를 하셔야지요. 저 같으면 깃대 높은 곳에 튼튼한 망루를 만들어서 평시에는 탐망을 하고 싸움 중에는 거기서 총을 쏘고 있습니다.”
“돛대는 싸움 중에 눕혀야 하지만 깃대는 항상 서 있으니 그게 좋겠어. 일단 깃대기둥을 굵은 것으로 바꿔야겠군.”
기술은 이민호가 앞설지 몰라도 병력 운용 면에서는 이순신이 확실히 나았다. 이민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이순신의 질문에 응해야 했다. 전투를 몇 번 치르는 동안 삽질도 많이 했던 이민호에게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 몰라요. 그럴 때는 그냥 대포와 총을 뻥뻥 쏘세요. 화포도 많고 화약도 많은데 무슨 고민입니까?”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한데, 전술이란 게 상대가 빤히 알고도 넘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세. 그래야 적을 한 곳에 몰아넣고 사방에서 두들길 수가 있지. 흐음. 내가 고민을 더 해보겠네.”
대화 주제가 병력운용과 전술로 넘어가자 이민호는 더 이상 대답해주지 못하고 손들고 말았다. 전라좌수영에 구리와 철, 유황을 거의 무제한 제공해주고 염초밭에서 대량으로 만든 화약도 전해주었다. 해전 지휘 자체는 이순신이 훨씬 잘할 테니 이민호는 그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기로 했다.
5월 1일 전라좌수영 소속의 판옥선이 수영 앞바다에 모두 모였다. 그러나 전라우수영 전선을 기다리느라 아직 출항하지 못했다. 이민호는 전라좌수영 함대에서 당상관 품계의 객장으로서 다른 직책 없이 부친이 지휘하는 유군에 소속됐다. 유군(遊軍)은 보통 전체 병력의 3할이 배정되며 예비대 정도 개념으로 운용되는 부대였다.
고산국에서 이민호를 모셨던 간수군들이 이민호를 많이 어려워했다. 고산국의 왕인데다 조선에서도 품계가 높기도 하지만 간수군들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이 이민호인 탓이었다. 전라우수영 함대를 기다리는 동안 이민호는 선미루에 올라 부친 이응화와 잡담을 나눴다.
“아버지! 하품 좀 그만하세요.”
“전라우수군은 이번에 못 오고 5월 초 나흘 새벽에 출항할 거다. 그러니 하품 안 나오게 생겼냐? 으아흠~”
“전라우수군은 왜 못 옵니까?”
“육군에 병력을 다 빼앗겼거든. 우리 수사만큼 강단이 없으면 감사나 병사의 압력에 버티지를 못해.”
“맙소사! 그렇군요.”
4월 28일에 있었던 충주 탄금대 전투의 결과가 5월 1일 저녁에 전라좌수영의 이민호에게 전해졌다. 해동상단 대방이 부친 편지를 이응화도 읽어보고 혀를 찼다. 경군 1만 명이 고니시군과 맞서 싸우다 패하고 도순변사 신립은 전사했다고 한다.
류성룡의 <징비록>에서는 병력을 소집해 보니 전마와 무기도 없는 서생들이 뒤룩뒤룩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보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서애집>에는 혜민서 의원들이 군인 녹봉을 받아먹기 위해 경군으로 등록했다가 전마도 없이 넘어지고 자빠지면서 탄금대 전투에 끌려갔다는 식으로 경군을 폄하하기도 했다. 그래도 경군은 기병 위주로 편성된 조선 최고의 정예부대였다.
충청도군 8천이 탄금대 전투에 참전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충청감사 윤선각은 당시 왜군에 의해 길이 차단돼 병력 지원을 하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전라도 병력 1천 명은 충주로 가는 도중에 패전 소식을 듣고 돌아갔다.
그러니 신립이 지휘한 병력은 경군과 경상좌방어사 변기가 이끌던 조령 방어군이 전부라고 봐야 했다. 실록 선조 29년 1월에 신립이 10만 정병을 지휘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식 실록 기사가 아닌 사관의 가필에 불과하니 믿을 게 못 된다. 원래 계획이라면 도순변사 신립이 하삼도의 육군 10만을 지휘했어야 할 수도 있다.
“아버지! 어째서 신립 장군은 천험의 요새인 새재를 지키지 않고 탄금대에서 결전을 시도한 걸까요?”
“신 대감은 충청, 전라, 경상도를 지휘해야 하는 삼도순변사인데 왜군은 세 갈래 길로 북상하지 않느냐? 신 대감 입장에서는 조령만 막고 있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병력이 아직 집결되지 못했으니 움직이면서 병력을 불려나갔어야 했다. 어떻게든 조령을 넘는 왜군을 빨리 쳐부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다. 다만 경계를 하지 않다가 충주성을 먼저 내주는 바람에 양쪽에서 기습을 받게 된 것은 신 대감의 잘못이다.”
“패했더라도 다들 용감하게 싸우긴 했군요. 그래도 병력 대부분을 추슬렀다니 다행입니다.”
“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갔으니 당장 써먹지 못할 병력이다.”
며칠 전에 이민호에게 지시를 받은 해동상단 대방이 외륜선 세 척을 충주 달천까지 몰고 가서 왜군에게 포위된 경군을 구출했다. 마침 장마 직전의 갈수기라서 강폭이 좁아 세 척이 배 갑판에 널빤지를 깔아 전멸 직전의 경군을 모두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마와 무기를 다 버리고 강을 건넌데다 따로 지휘할 장수가 없어서 군사들은 다 도망가 버렸다.
“5월 초4일 새벽에 출항해서 첫 해전은 옥포와 합포에서 벌어진다. 몹시 기대되는구나.”
“지휘 잘하세요.”
“흐흐! 당연하지. 예전처럼 한 척도 아니고 여덟 척을 지휘하게 됐으니 더욱 재미있겠구나. 게다가 유군장이라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더욱 기대가 된다.”
현재 부친 이응화가 지휘하는 배는 중형 외륜선 여덟 척, 병력은 사병이었다가 자원입대 형식을 취해 수군이 된 의용군인 간수군 천 명이었다. 여기에 좌수영 판옥선들에 태우고 남은 화포가 탑재되고 화포장들도 추가로 탑승했다.
“고산국과 해중국은 잘 준비되고 있느냐? 은광은 어떻게 됐느냐?”
“준비는 잘하고 있고 직할군이 탄 전선 세 척은 지금 연도에 있습니다. 은광을 무너뜨리고 돌아오는 길에 배 두 척이 암초에 깨져서 수리하고 있습니다.”
“저런! 모르는 지역에 갔으니 할 수 없지. 그래도 잘했다. 지난번에는 왜선을 그렇게 많이 부숴도 매번 수백 척이 새로 조선에 왔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르겠구나.”
한 척은 연도에 거의 다 온 다음에 고래와 부딪쳐서 선수 부분이 깨졌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사실 고래 입장에서도 숨 쉬러 올라왔다가 배와 부딪쳤으니 날벼락을 맞은 셈이었다.
직할군 해병 천 명은 대형 외륜선들과 함께 해중국 이름으로 참전하기로 했다. 해중국 국왕 명의로 조선국 예조에 자문을 보내 참전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조선 조정에서는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전쟁 중에 비록 속국의 자격이라 하나 외국군을 국내에 끌어들이는 것은 매우 껄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건주여진 누르하치도 조선에 파병을 여러 번 제안했으나 끝내 거절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임금이 평양과 의주로 파천하면서 생각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직할군 승마보병은 숫자를 늘리는 바람에 훈련이 더 필요해서 좀 더 나중에 움직이기로 했다. 명나라에서 올해 초에 고산국으로 칙사를 보내 조선에 전쟁이 날 경우 파병 가능성을 물어온 적이 있었다. 이때 이민호는 긍정적으로 답변했고, 기병 천 이상을 보내되 군량은 자체 책임지기로 했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직할군 승마보병은 고산국 이름으로 명나라 원군의 일원으로서 참전할 가능성이 높았다.
“남해현은 어떻습니까?”
“남해현령, 미조항첨사, 상주포만호, 곡포, 평산포를 찾아봤는데 역시나 아무도 없더라. 장수들이 육지로 올라갔다기에 군량이고 군기고 뭐고 싹싹 긁어왔다. 지키는 사람이 없어서 가져가니 왜군과 싸울 마음이 생기거든 전라좌수영으로 물자를 찾으러 오라고 크게 방을 써서 관아 대문에 붙여 놨다.”
“크크. 잘하셨습니다.”
“그놈들이 나중에 뭐라고 말한 줄 알아? 전라좌수영에서 군기와 군량 창고를 불태운 바람에 왜군과 못 싸웠다고 악악거렸지. 이제는 좌수영에 핑계를 댈 수도 없겠구나.”
서둘러 판옥선을 자침시키고 수군을 해산하고 나서 보니 이게 아니다 싶었을 것이다. 왜군은 육지로도, 바다로도 아직 경상도 해역에 진출하지 못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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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챕터 바꿔서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