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0 16. 임진왜란 개전 =========================================================================
16. 임진왜란 개전
4월 13일 오전, 거북선이 취역하는 날이었다. 3월 말에 진수해서 노를 저어 항해하고 대포 쏘는 시험까지 이미 마쳤다. 그러나 돛이 어제 완성돼서 오늘 처음 돛을 달고 항해를 하게 되었다.
이민호는 전라좌수사 이순신, 전라순찰사의 군관 남한과 함께 좌선에 타고 수영 앞바다로 나갔다. 오늘 왜군이 부산포 앞바다를 가득 채우는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민호는 더욱 거북선의 취역을 반겼다.
“이 목사도 장대에 올라오시오!”
“예! 수사 영감.”
이민호도 당상관이라 이순신이 불러서 장대로 올라갔다. 순찰사의 군관이 함께 자리한 탓에 서로에 대한 호칭도 바뀌었다.
그리고 이민호는 신학대학을 나온 적이 없는데도 고산군이 고산목으로 승격되면서 목사가 되어버렸다. 물론 고산목이라는 명칭은 대외적으로 비밀이었고, 명나라에 오가는 대외문서에는 여전히 고산국으로 칭했다.
“어서 오시오, 이 목사. 나는 이 목사만 보면 즐겁다오.”
“하, 하! 제가 선물을 드려도 받지 않으시는 분이 어째 그리 즐거우신지요.”
장대에 오르니 어제 처음 만나서 인사한 순찰사 군관 남한이 흐뭇한 표정으로 흰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백성의 살림과 변방의 군비를 충실하게 만들어줬다는 이유로 남한이 이민호에게 굉장히 고마워했었다.
파도를 헤치며 나아가는 거북선은 이민호가 알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자주 봤던 거북 등껍질 같은 것은 없었고 등판에 목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다만 못을 안쪽에서 박아 뾰족한 끝이 밖으로 튀어 나온 것은 같았다.
훈련은 곧 시작됐다. 좌선에서 깃발 신호를 보내자 거북선에서 역시 깃발로 응답하고, 그 즉시 거북선에서 돛을 내렸다. 빠르게 노를 저어 달리던 거북선 우현에서 화포 6문이 동시에 발사됐다.
- 퍼버버벙!
대각선 방향으로 2마장쯤 떨어진 곳에 떠 있던 낡은 어선이 지자총통에서 발사된 차대전에 맞아 박살이 났다. 지자총통 4문, 현자총통 2문을 발사해 한 발이라도 맞은 것은 바다가 잔잔했던 덕택이었다. 1마장은 1리, 대략 400미터다.
“오오! 빗나간 시석들도 거의 비슷하게 도달했소. 좌수백께서 화포장들에게 훈련을 많이 시켰구려. 수백의 노고를 잘 알겠소이다.”
“허허! 남공께서 군사들 훈련시킨 것만큼이야 했겠습니까?”
이민호는 군관이라고 하면 제대로 인사하기 전까지는 도대체 어느 정도 위치인지 알 수 없었다. 같은 군관이라도 일반 양인에서 당상관까지 품계가 저마다 달랐는데 남한이라는 순찰사 군관은 현직 당상관이었다. 게다가 이순신이 순찰사 이광의 군관으로 있을 때 남한이 한참이나 높은 상급자였다.
- 퍼버벙!
거북선이 이번에는 좌현에서 화포를 일제 발사했다. 끝이 뾰족하고 사람 허벅지만 한 화살이 날아가고 둥글게 깎은 자그마한 석탄과 철탄이 새까맣게 날아가 어선을 뒤덮었다. 차대전에 한 방 맞고 이미 너덜너덜해진 어선이 조란환 수십 발에 관통됐다가 이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무로 만든 어선이라도 조건에 따라서는 빠르게 가라앉기도 했다.
“일반 전선의 상장을 다르게 꾸민다 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잘 만드셨소. 돌격선으로 아주 괜찮겠구려. 순사또께 잘 말씀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좌수영은 규모가 너무 작아서 이런 거라도 있어야 왜선 수백 척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좌수백이 올린 장계 등본을 읽어봤는데 역시나 왜놈들이 쳐들어올 것 같아 걱정이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왜선이 많고 왜인들이 수전에 익숙하더라도 수백께서 수졸들을 이끌고 부디 잘 싸워주시오.”
“바로 그게 제가 할 일이지요.”
흐뭇하게 웃던 노인 무장이 이번에는 이민호에게 물었다. 현대 한국 초딩들이 즐긴다는 VS 놀이가 조선 중기 늙은 군관의 입에서 나왔다.
“이 목사! 저기 포구에 정박한 윤선하고 저 거북선하고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 것 같소?”
“컥! 흠. 흠! 당연히 거북선이지요. 윤선에는 간수군이 들고 다니는 조총밖에 없습니다. 조총을 아무리 쏴도 자그마한 탄환으로는 거북선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반대로 거북선이 윤선에 바싹 붙어서 화포를 쏘면 어떻게 막겠습니까? 상대가 안 됩니다.”
“허허! 그렇지요. 이 목사 말씀이 맞소.”
이민호가 보기에 거북선이나 판옥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거북선이 적과 아군 양쪽으로 심리적인 효과를 크게 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판옥선과 같은 선체에 화포를 주 무기로 쓰는 무장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북선이 두터운 등판 무게 때문에 더 느릴 것 같은데도 판옥선보다 빠른 것이 신기했다.
“이 수백! 그럼 귀선까지 해서 좌수영에 전선 30척이 되는 거요?”
“아닙니다. 영5선이 기한이 지나고 낡아서 새로 만든 배가 저 귀선입니다. 그러니 좌수영에는 여전히 29척입니다. 영선생께 잘 말씀드려서 좌수영 선척 수나 좀 늘려달라고 해주십시오.”
“전선 숫자를 늘리는 것은 백성의 물력과 인력을 소진시키는 거라 어려울 거요. 조만간 전쟁이 날 것 같으니 미리 늘리면 좋으련만, 문관이나 토호들의 반대가 심하다오.”
판옥선이나 거북선을 한 척 만들려면 어마어마한 물력과 노동력이 필요했다. 30년 이상 금산(禁山)을 해서 산꼭대기에서 자란 쭉쭉 뻗은 소나무를 자르고 그것을 선소까지 옮겨 판재로 만드는 일만 해도 엄청난 인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여기에 배를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철만 해도 단순히 가격만으로 따지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무인들이 좌수백이나 이 목사 같은 분들만 계시면 내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텐데 말이오.”
“그런 말씀하지 마십시오. 남공께서는 아직 정정하십니다.”
순찰사 군관 남한은 쭈글쭈글한 얼굴에 신선 같은 미소를 지으며 수영을 떠났다. 늙은 무인의 마지막 남은 인생이 행복으로 가득 찬 것 같아 이민호도 뿌듯했다. 그러나 남한은 몇 년 뒤 늘그막에 운봉현감에 제수돼 병치레를 하면서 공무를 수행하게 된다.
4월 15일, 왜선 수백 척이 부산포 앞 절영도에 정박했다는 통보가 경상우수사, 경상좌수사, 경상감사에게서 날아왔다. 그러나 통보된 시점에는 이미 이틀이나 지난 일이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전라감사, 방어사, 전라병사, 전라우수사에게 긴급 전령을 보내고 5관 5포에도 사인(舍人)들을 보내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한양에도 파발을 띄워 부산포의 변고를 알렸다. 여기에 더해 이순신은 이민호가 권한 대로 간수군 천 명에 대한 지휘권을 요청해 조정으로부터 승인을 얻어냈다. 명목상 해동상단 소유로 등록된 중형 외륜선 여덟 척도 전라좌수영에 소속됐다.
그 동안 사병 천 명의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웠던 조정 대신들은 이순신이 간수군들을 정식 군영 아래 편제하겠다고 하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민호는 간수군 천 명을 고스란히 넘겼지만 편제 변화 없이 그대로 수사 직할인 유군에 소속돼 부친 이응화가 계속 지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제 전쟁 기간 동안 간수군들은 다른 군역이나 요역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대신 간수군들은 전라좌수영의 위수 지역에서 마음대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간수군들이 휴가를 받아 집에 가려면 유군장 이응화에 이어 수군절도사에게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다.
타 지역 출신 간수군들은 성하마을에서 세를 얻어 살거나 좌수영성 서쪽 벅수골에 훈련소로 사용했던 주둔지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주 가난한 자들이나 주둔지에서 살지, 간수군들 중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민간인의 셋집에서 살려고 했다.
병사들이 내무생활을 싫어하는 이유는 현대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군기 잡겠다고 달달 볶아대는 고참, 병사가 눈에 띄기만 하면 작업을 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간부들 밑에 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만 여유가 생겨도 주둔지에서 나와 셋집을 얻어 이사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어서 당장 출발해. 배에 탄 사람들이 기다리잖아.”
“히잉~ 도련님하고 같이 있고 싶은데. 하루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요?”
혜영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데 반해 혜진은 이민호에게 찰싹 달라붙어 아양을 떨고 있었다. 전라좌수영의 소포 선착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둘을 지켜보고 있어 그런 대로 낯이 두꺼운 이민호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람들 본다. 좀 떨어져 있어.”
“보면 어때요? 도련님도 부끄러움을 아는군요. 에구~ 머리만 크고 다리가 짧아서 뻑하면 넘어지고 그러더니 벌써 다 컸어요.”
“입 잡아당기지 말고. 너 영원히 내 처제로 남고 싶어?”
“앗! 그건 안 되죠. 나도 왕비가 되고 싶어요.”
혜진이 얼른 손을 떼고 깔깔 웃었다. 그리고 아직 여기서 할 말이 남았는지 혜진이 민희와 민영에게 다가갔다. 혜영이 옷소매를 잡아당겼으나 혜진은 언니를 뿌리치고 말을 걸었다. 분위기가 살벌해서 이민호가 겁을 먹고 한 걸음 물러섰다.
“그 동안 뭔 일 있었지?”
“예. 작은 아가씨. 감사하게도 도련님께 승은을 입었습니다.”
고민희와 고민영은 혜영과 혜진 자매에게 이민호에게 하듯 언제나 정중하게 대했다. 이민호와 밤을 보내고도 그런 관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흥! 나는 아직도 댕기머리인데 호닌과 굴마훈은 좋겠다. 도련님을 잘 모셔줘.”
“목숨을 걸고 도련님을 지키겠습니다, 작은 아가씨.”
“도련님의 호위를 잘 부탁하네. 자네들도 조심하게.”
“예. 큰 아씨.”
민희와 민영이 허리를 굽혔다. 처음 포로로 잡혔다가 이민호의 수원 본가에 갔을 때 혜영이 많이 챙겨 주어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다른 여진족들과 비슷한 나이인데도 혜영은 여진족 포로들에게 어머니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혜영과 혜진은 중형 외륜선을 타고 전라좌수영을 떠났다. 선미루에 오른 혜영이 눈물짓고 혜진은 폴짝폴짝 뛰며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민호는 집사들에게 맡긴 좌수영과 수원, 한성 서소문의 집이 조금 걱정됐으나 혜영과 혜진을 조선에 둘 수는 없었다.
“도련님. 고산국 궁궐에 파란이 일겠는데요? 일단 공주님과 미카 아가씨가 자리를 잡고 있지 않습니까?”
“모르지. 일단 혜영과 혜진에게 귀인 직첩을 줬으니 알아서 하겠지.”
이민호는 아직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고산국에는 다른 나라의 정실 왕비에 해당하는 정빈(正嬪)이 아직 없었고, 귀인만 여섯으로 늘어났다. 부친 이응화가 이런저런 규수들의 사주단자를 보여주었으나 이민호는 딱히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계복은 걱정이 많았다.
“동등한 신분이면 싸움이 나기 쉽습니다.”
“같이 지낸 세월이 다른데 동등하다고 보나? 그리고 혜영 자매가 보통 여자들이야?”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휴~ 혜영 아씨가 슬쩍 턱을 치켜들고 내려 볼 때면 저도 아주 오금이 저립니다. 아랫것들이 만만한 도련님을 대할 때하고 달리 혜영 아씨 앞에서는 다들 벌벌 떨잖습니까?”
“그래. 나 만만하다.”
“헤헤!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이민호는 천자 전선 세 척을 이끌고 동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부산포를 구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14일에 이미 부산포가 함락됐고 15일에는 동래성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4월 13일 왜선들이 몰려올 때 마침 부산진첨사 정발은 절영도에서 군사들을 시켜 사냥을 하고 있었다. 사냥은 군대 훈련의 일환으로서 전형적인 지휘, 통제 훈련이었으니 놀았다고 비난하면 안 된다. 만약 왕이 군사들을 이끌고 사냥을 한다면 외국 침공을 앞둔 대규모 군사훈련 아니면 정사를 내팽개치고 노는 것이니 상황에 따라 구별해야 했다.
부산진은 수군 첨사진이니 이곳에서 싸운 군사 600명은 당연히 수군이었다. 임진왜란 1년 전에 조선 조정에서는 왜군의 수전 능력을 과대평가해 수군을 폐지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반대해서 다시 조정의 논의를 거쳐 수군은 존치되었고, 일본에서 가까운 경상좌수영 수군만 성곽에서 방어하기로 군사전략을 바꾸었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경상우수영의 진포 여럿이 임진년에 동래부 관할 지역으로 옮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포 성의 수군들은 대부분이 전사할 때까지 싸우다 죽어갔다. 왜군들에게 흑의장군이라 불린 첨사 정발도 전사했다. 고니시군이 사로잡은 조선 수군 포로는 겨우 세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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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