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9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사쓰마는 강한 나라인데 어떻게 해결을 했소?”
전국시대뿐만 아니라 나라시대부터 메이지 초기까지 지방을 구니(國)라고 부르고 다이묘들이 완전히, 또는 어느 정도 독립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민호도 그렇게 불렀다. 시마즈 가문의 전 당주 시마즈 요시히사는 1587년 큐슈를 거의 다 제패하기 직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큐슈 정벌을 함으로써 패배했다. 요시히사는 삭발한 다음 항복했는데 이는 패배한 다이묘가 스님이 되면 처벌을 하지 않는 당시 관행을 노린 것이었다.
그러나 삭발했다고 해서 반드시 스님이 된다거나 은퇴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사쓰마는 외부적으로는 시마즈 요시히로가 당주직을 수행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시마즈 요시히사가 여전히 전권을 틀어쥐고 있었다.
“시마즈 가의 당주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와 제 아들은 물론 그 후손들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가문과 영지를 되찾으려 하지 않겠다고 천지신명께 맹세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에 대한 감시를 풀어주겠다는 답장이 왔습니다.”
“니시무라 씨에게 아들이 있었소?”
“물론 없지요.”
겐타로가 이민호 얼굴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러나 사위가 있지요.’라고 말하는 듯해서 이민호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겐타로는 처음부터 가문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식과 가문 이야기로 의욕이 넘치던 미카도 마찬가지로 가문을 되찾아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의지가 없었다. 겐타로와 미카는 멸문 당한 주군 가문과 동생 가문, 그리고 동료 무사 가문들의 복수를 하고 싶어 했던 것뿐이었다.
이들과 약속을 지키려면 작은 영지를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시마즈 가문을 정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됐다. 이민호는 류큐왕국과 미카를 통해 시마즈 가문하고 이중으로 안 좋게 얽히게 되었다. 하필 강한 남자들이 존중받는다는 그곳, 시현류의 본고장이라는 사쓰마하고 악연이 연결되자 이민호는 골치가 아팠다.
“사쓰마는 온화한 지역이라 살기에 괜찮습니다, 주인님.”
“하루에 서너 번씩 화산이 폭발하는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1년에 천 번씩 폭발하며 화산재를 날리고 뜨거운 용암이 흐르는, 지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활화산 사쿠라지마가 사쓰마에 있었다.
임진년 3월 초에 전라좌수영에 가니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느라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군절도사 이순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수군진포를 검열하고 전라감사와 방어사, 한성에서 내려온 순변사 신립은 각지를 바삐 돌아다니며 군기와 인원을 점고했다.
바로 옆 경상우수영의 소식도 자주 들려왔다. 3월 한 달 내내 감사 김수가 19개에 달하는 수군 진포와 전선을 보유한 바닷가 고을들을 빠짐없이 돌아다니며 점고하느라 다들 아주 뒤집어졌다고 한다.
이민호는 간수군들의 5일 훈련, 5일 휴가 체제를 4일 훈련, 6일 휴가로 바꾸었다. 경상우수영에서 모집한 간수군들을 전라좌수영으로 옮겨서 훈련을 시키면서 하루를 경상우수영까지의 왕복 시간으로 빼주기 위해서였다. 중형 외륜선 다섯 척이 항상 포구에 정박해 있고 다섯 척은 간수군들을 태우고 해상훈련에 나섰다.
항해 목적은 명목상 고기잡이였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간수군들이 해상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진짜로 그물을 내려 고기도 잡았기 때문이다. 복건 상인들을 통해 필리핀에서 수입한 마닐라삼으로 만든 그물이라 무척 튼튼했다. 밧줄도 마닐라삼의 섬유를 꼬아 만들었다.
시중에 <고산국기(高山國記)>라는 언문책이 유행하고 있었다. 작년에 한양에서 유명한 숙수를 고산국 궁궐에 초빙해 궁녀들에게 요리 지도를 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 여자가 조선에 돌아가더니 일기 형식으로 여행기를 써서 책을 낸 것이다. 보성의 안방준이 금속활자로 인쇄해 전국에 판매하는 이 책은 여행기인데도 시와 소설만큼 인기가 좋았다.
숙수는 고산국의 이국적인 풍물과 궁궐에서의 생활, 궁녀들에게 요리법을 전수한 이야기와 다채로운 열대 음식 재료 등을 자세히 기록했다. 그리고 그때 당시 허수아비 국왕 노릇을 했던 고봉명과 왕비의 이야기도 상세히 썼다.
남의 시각으로 본 고산국 이야기를 이민호도 재미있게 읽었다. 고산국이 지상천국은 아니더라도 이상향 비슷하게 호평을 해준 것 같아 기뻤다. 그러나 사실은 몇 달 전에 고산국 궁궐에 들렀던 안방준이 이민호와 협의해 내용을 좀 고친 다음 책으로 낸 것이었다. 물론 원작자인 숙수는 돈을 받고 편집자의 월권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고산국 예국 수장 이 참판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아주 나쁜 놈이네? 그런데 상왕 이 인간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었군.”
여행기를 다 읽은 이민호는 이렇게 감상평을 밝혔다. 옥좌에서 물러나기 전에 고봉명 국왕이 주변 사람들, 특히 호위하는 직할군들을 포섭해 궁정 쿠데타를 노린 듯했다. 그러나 허수아비 국왕의 말을 믿고 따라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왕이 된 지금은 별궁에서 몸무게가 두 배나 나가는 마오리족 왕비에게 눌려 지내고 있었다.
명목상 그가 국왕이니 정변을 일으켜서 정권 탈취에 성공한다면 반정(反正)이라고 명분을 세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존 체제에 대한 공격이 반란이라는 것은 국왕 신분으로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만약 입헌군주제의 국왕이 군사를 동원해 정권을 장악한 다음 친정을 하겠다고 선포하면 이것은 체제 전복이며 국가에 대한 반역이었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고산국은 이민호 개인의 것이었다. 그것은 고산국에 사는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이민호 개인이 일으켜 세운 나라이며, 만약 이민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고산국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허약한 구조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물론 이민호가 사라진 다음 야심 넘치는 자가 고산국을 장악할 수도 있겠지만, 고산국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캄캄한 밤에 전라좌수영 이민호의 집 대문이 살짝 열리며 계복이 슬쩍 들어왔다. 계복을 기다리고 있던 이민호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성공했겠지?”
이틀 전에 이민호는 심복인 계복에게 암살 임무를 하달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경상우수사 원균을 죽이는 중요한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이민호는 이 문제를 두고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결국 부친의 충고를 받아들여 과감히 암살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만약 총을 암살도구로 사용한다면 이민호나 간수군들이 단박에 용의자로 지목될 것 같아 총기 암살은 피했다. 사실 멀리서 총을 쏴서는 지방층이 두꺼운 원균의 배를 관통시킬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원균의 식생활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한 결과, 식사 때마다 밥과 술, 어물과 고기를 가리지 않고 엄청나게 많이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축농증이 있어 후각이 마비됐다는 결정적인 정보도 알아냈다.
그래서 이민호가 암살 도구로 준비한 것이 강렬한 냄새가 나는 열대 과일 두리안이었다. 두리안을 술과 함께 먹으면 식중독에 걸려 심할 경우 죽게 된다. 지난해에 별 생각 없이 두리안을 공물로 가져왔다가 식중독에 걸린 사람이 생겨서 조선에 수입 금지된 것이 두리안이었다.
그 이후 고산국에서도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먹지 말도록 경고하고 시장에서 팔 때도 경고문을 붙이는 유일한 과일이 된 것이 바로 두리안이었다. 물론 그렇게 경고해도 술과 함께 먹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엄청나게 고생하거나, 심지어 죽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실패했습니다.”
“뭐야? 그걸 먹긴 먹었어? 술하고 같이 먹으면 죽거나 식중독에 걸릴 텐데?”
“예. 먹고 나서 잠시 뒷간에 갔다 오더니 속이 허하다고 계속 먹어대던데요.”
“강철 위장이었나?”
실망한 이민호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원균이 죽지 않더라도 최소한 몇 달 동안 드러누워 경상우수사에서 물러나길 원했다. 그렇게라도 해서 경상우수영의 전력을 보존하고 싶었으나 원균의 특수한 능력 때문에 역사의 흐름 그대로 가게 되었다. 이제 경상우수영의 전력은 전투 한 번 없이 통째로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원균이 전투도 안 하고 판옥선들을 가라앉히는 꼴을 그냥 지켜봐야 하나? 그것을 이유로 파직시킬 수 없을까?”
“적이 너무 많을 경우 배를 자침시키고 육지로 물러나는 것은 수영의 절목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런 이유로 죄를 받지 못할 겁니다.”
“바로 그게 문제야! 아까운 판옥선 80척, 아까운 수군 1만 수천 명!”
그러나 배는 없더라도 일단 사람만 살려놓으면 된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이민호는 임진왜란 초기에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입을 왜군 침공로 주변의 백성들을 다른 지역으로 피난시킬 준비를 해놓았다. 이민호의 말을 안 믿는 사람들은 할 수 없다 쳐도, 그 동안 쌓아놓은 명성이 사람들을 움직일 것이다.
조선의 모든 고을에서 운영 중인 관아 혹은 민간 사창의 관리자들은 이민호의 수원 본가에서 매주 발행하는 업계 신문인 사창보(社倉報)를 구독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전쟁이 시작되면 이 신문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었다.
사창보는 보통 지역별 쌀과 면포의 시세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그 외에도 한성은 물론 조선 전역에서 발생한 갖가지 소식들을 실어 정보에 목마른 지방 사람들의 욕구를 해소시켜주고 있었다. 또한 새로운 농법이나 요리법, 공중위생 등 생활상식을 실었다. 작년에 고구마의 장점과 재배법을 소개해 팔도에 널리 퍼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창보였다.
기자는 몇 사람 없었지만 지방에서 사창을 관리하는 사람이 그 지역의 사건을 취재해 수원으로 기사를 보내는 식으로 신문을 운영했다. 3월 특집 기사에서는 ‘피난 가는 방법’을 아주 자세히 실었다. 경상좌도에서는 강원도 산골로, 경상우도에서는 전라도의 인구가 적은 고을로 가면 좋다는 둥, 깊은 산에 들어갈 때는 쌀과 간장, 그릇과 두꺼운 옷이 필수라는 둥 조정에서 보면 기겁할 내용도 많았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그냥 대놓고 죽여 버리면 안 됩니까?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계복 네가 더 아깝다. 그리고 그도 조정에서 임명한 장수다. 함부로 손댔다가는 우리가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어. 쉽게 증거를 없앨 수 있는 두리안이 아니라면 방법이 없다.”
어떻게 보면 왜군보다 무섭고 골칫거리가 원균과 조선 조정이었다. 일단은 같은 편이라서 그들이 삽질을 계속할 경우 이민호로서는 정말 대책이 없었다.
달이 바뀌어 임진년 4월이 되었다. 왜군이 부산포로 쳐들어오는 달이었다. 이민호의 부친은 초조해서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다.
그리고 4월 5일 오전, 이민호는 해동상단의 배를 타고 방답 남쪽 연도로 나갔다. 그곳에 시커먼 군선 세 척이 정박하고 있었다.
4월 5일 오후, 이민호는 새로 건조된 전선, 이름 하여 천(天) 자 전선 세 척을 이끌고 대마도로 향했다. 해가 진 다음 남쪽으로 크게 우회해 대마도의 중심이며 섬 남동쪽에 위치한 이즈하라 항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에 도착했다.
“많다. 정말 많다.”
큐슈 북쪽 나고야에서 출발해 대마도 이즈하라에 도착한 일본 배는 천 척이 넘었다. 조금씩 내리는 비를 피해 왜군들은 배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짙은 어둠이 내린 이즈하라 성과 마을에서 간혹 불빛이 비쳤다.
이민호는 전선들을 조금씩 전진시켰다. 바람을 잘못 타서 흩어졌던 왜선들이 오후 늦게까지 돌아오느라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바다에 배 한 척 떠있지 않았다.
“단정 내려!”
“단정을 내리랍신다!”
“쉿!”
이민호가 소리를 지른 사공의 정강이를 까는 사이 직할군 해병들이 단정 두 척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즈하라 포구 앞에 무수히 늘어선 왜선들을 향해 노를 저었다. 그 사이 이민호는 배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돌아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정 두 척에 탄 해병들이 노를 저어 고바야 한 척을 통째로 끌고 왔다. 왜군 병사 두 명과 노꾼 여덟 명이 머리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뱃전에 널브러져 있었다.
조금 전 직할군 해병들은 왜선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홀로 떨어져 있던 고바야를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조용히 접근한 다음 뱃전에 웅크리며 자고 있던 왜군과 노꾼들을 끝에 쇠뭉치가 달린 쇠좆매로 두들겨 패서 기절시켜 데려왔다. 그 와중에 잘못 맞은 다섯 명이 죽었다.
천자 전선들은 왜인들을 실은 고바야를 끌고 그대로 전라좌수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전라좌수영 동헌에서 왜인들에 대한 공초가 있었다. 좌수사 이순신이 직접 물었고 왜학훈도가 통역했다.
“대마도에 왜선이 천여 척이나 있다는 말이 사실이냐?”
“그, 그렇습니다.”
“그렇게 많이 대마도에 모인 목적은 무엇이냐?”
“저야 노꾼이라 다른 건 모릅니다. 그저 관백이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들을 보낸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저는 군사가 아니니 풀어주십시오.”
“부산포에 상륙할 날짜는?”
“4월 중순 남풍이 부는 날이라고 들었습니다.”
“너는 어찌 하여 우리 수군에 잡혀 왔느냐?”
“밤에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선 수군이 나타나 두들겨 패서 끌고 왔습니다. 자는 사이에 배가 조선으로 표류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자는 중에 머리를 두들겨 맞고 끌려온 왜인들은 그들이 대마도에서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비가 와서 얼굴과 몸에 도롱이를 뒤집어쓰고 잔 탓에 이민호가 말한 대로 정말 전라좌수영 해역에서 수군에게 발견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이민호는 고바야를 연도까지 끌고 온 다음 중형 외륜선에 인계해 형식적으로는 간수군들이 좌수영 앞바다에서 표류하던 왜선을 잡은 것으로 했다. 직할군은 명목상 외국군이니 조선 영해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보게, 통지(通之)! 자네 말이 맞았네. 남풍이 부는 3월에 안 온다 했더니 대군이라서 움직임이 느렸었던 거였군.”
“좌수백 영감! 여기 왜군의 정보를 정리했습니다. 1군에서 16군까지 있는데 일단 9군까지 부산과 김해에 상륙해 3로로 나눠서 한성으로 북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민호가 좌수사 이순신에게 건넨 종이에는 왜군의 자세한 편제표와 병력, 그리고 진공 계획이 담겨 있었다. 예를 들어 1군의 병력은 18,700명, 주장은 소서행장인데 일본어 발음은 고니시 유키나가이며 아마쿠사의 다이묘이면서 섭진수라는 관직명을 쓴다는 사실까지 세세히 기록됐다. 1군에 소속된 다른 다이묘들의 신상과 직할 병력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됐다.
“정리가 아주 잘 됐군. 수고했네. 더 이상 물어볼 것 없이 당장 역졸을 도성으로 보내야겠어. 자네가 준 문서를 장계에 별첨하겠네. 통지 자네는 이 장계에 수결하게.”
장계 말미 전라좌수사라고 써진 수결 밑에 이민호도 고산목 목사라고 수결했다.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무서운 사람이 시키니까 할 수 없었다.
이순신은 지체 없이 한양으로 파발을 띄웠다. 며칠 후에 장계를 받을 조선 조정에서는 아주 난리가 날 것이다.
물론 이민호는 이 장계가 조선군의 방어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파발이 오고 가는 사이에 왜군이 그만큼 전진해서 항상 중요한 순간을 놓치게 되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왜군의 편제와 전술, 무기는 조선군이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종류라 미리 알더라도 못 막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 장계가 앞으로 전쟁에서 일본에 관한 정보의 혼선을 막아줄 아주 훌륭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최소한 심안돈과 도진의홍, 그리고 시마즈를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아니, 그런데 형님! 웬 연명장계입니까? 소제는 그냥 문서만 정리했을 뿐입니다.”
공식적인 자리가 끝나자 이민호가 편하게 물었다. 통지라는 자를 만들어준 사람도 이순신이었다. 통지는 뭐든지 알고 미리 준비한다는 뜻이었다.
“자네가 한 일이 있으니까. 왜놈들 땅에 첩자를 보낸 모양이지? 아니면 자네가 직접 갔나?”
“헉!”
이민호가 작성한 문서는 고산국 해병에게 납치된 왜군 조총병 한 명과 노꾼 네 명의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정보가 결코 아니었다. 그 동안 니시무라가 일본에서 조사해 보고한 내용을 납치된 왜군을 심문하면서 알아낸 척하면서 슬쩍 끼워 넣은 것이었는데 좌수사 이순신은 바로 간파해버렸다.
“전쟁이라. 무관은 이럴 때를 위해 길러지는 것. 우리 열심히 싸워보세. 앞으로 많이 도와주게나.”
“예!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건강에 유의해주십시오!”
“뭐라고? 사람, 참!”
이순신 장군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작품 후기 ============================
다음 편부터 임진왜란입니다. 이번 편까지 놀랍게도 99편이나 되는군요.
임진왜란 기간까지가 프롤로그는 아닙니다. ㅡ.ㅜ 1593년에 복건 대기근, 1595년 네덜란드가 향료제도 진출, 1596년 스페인의 국가파산과 유럽에 다시 페스트가 유행한 일 등등 사건이 많고 주인공이 이것을 이용할 계획입니다. 그러니까 임진왜란 기간 중에도 전쟁이 소강상태일 때는 해외진출은 계속 할 예정입니다.
편하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