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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94화 (43/1,000)

00094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송보다는 복건에 더 관심이 많아.”

“설마 복건성을 정복하시려고요? 우와!”

왕명명이 멋대로 상상하고 멋대로 감탄했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 명나라를 공격할 정도로 이민호가 미친놈은 아니었다.

“그건 아니고, 고산국에 백성이 적잖아. 복건성에 떠돌아다니는 유민들이 많다니까 고산국으로 끌어들였으면 좋겠어.”

“훗! 그럼 진작 제게 말씀하시지 그랬어요. 주인님은 민남어를 아예 모르시죠? 호호! 제가 이래 봬도 오대십국 시대에 복건을 지배했던 민왕의 후손이랍니다. 성신영예문명광무응도대홍효황제(聖神英睿文明広武応道大弘孝皇帝) 강종의 후예이니 알아서 모시세요.”

복건은 기원전까지 한족과 다른 월족이 살던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고조 유방이 민월국을 책봉하고 한무제가 민월국을 점령했다. 삼국시대에 오나라 영토에 복건이 편입된 다음부터 한족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오대십국 시기에 민국이 건국됐고 복건 지역 전체를 영유했으나 40년도 못 넘기고 멸망했다. 그 사이 왕 또는 황제로 즉위한 자가 8명에 이른다.

“동생이 형을 죽이고 즉위하고 장남이 아버지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다는 그 민국?”

“어머나! 잘 아시네요. 호호! 그냥 넘어가요.”

935년 왕계붕은 부친인 4대 혜종을 죽이고 강종 효황제로 즉위했다. 이런 식으로 황실의 내분이 워낙 잦아 금방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민국이 멸망한 지 600여 년이 넘었으니 왕명명의 가문이 설혹 민왕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복건성에 어떤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복건성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봐. 기본적인 건 나도 아니까 빼고 현재 중요한 것만.”

“복건성은 명나라에 들어와서 오히려 인구가 줄어든 지역이에요. 산지가 많고 농지가 적어 장남은 농사를 짓고 차남 이하는 상인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아요. 마닐라를 왕복한다는 광저우 상인들 1만 명도 대부분 복건성 출신이에요.”

1393년 인구조사에서 복건성은 81만 호, 391만이었던 인구가 200년이 지난 현재 51만 호, 173만으로 줄어들었다. 물론 감소분 대부분은 세금과 군역을 피하기 위해 신고를 기피한 탓에 발생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비해 인구가 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복건성 남서부 산악지대에서 특별한 것은 마치 작은 성곽처럼 생긴 토루의 존재였다. 이것은 원형 또는 사각형으로 2층에서 5층 건물을 지어 외부의 공격에 집단적으로 대비하는 공동주택이었다. 비적의 준동으로부터 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객가인들이 스스로를 지켜왔다는 뜻이었다. 혈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해 대대로 혈족끼리 뭉쳐서 살아왔다.

“음. 인구 유출 지대이니 남쪽 나라에 복건성 출신 화교도 많겠군.”

“예전에는 많지 않았는데 요즘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요. 복건성에서 살기 힘드니까 외국으로 나가서라도 살아야죠. 그러니 주인님이 잘 유인한다면 10만 정도는 금방 유입될 거여요.”

동남아시아의 화교는 복건성 출신이 더 많았고 이주 시기도 다른 지역에 비해 앞섰다. 광동성 출신 화교는 진출 시기가 더 늦어 근세에 날품팔이 노동자로서 미주나 유럽, 그리고 그 전에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베트남에 정착했다.

“인구가 빠져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관리는 없어.”

“농사짓기 어려운 복건성의 어려운 사정을 관리들도 다들 알고 있어요. 시간을 두고 조금씩 빠져 나간다면 관리들도 용인할 거여요. 물론 뇌물이 필요하겠죠. 복건성 주민들을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고산국에서 고용했다가 정착시키는 방법도 있어요.”

17세기 초반 네덜란드가 대만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복건과 광동 주민들이 임노동자로서 몰려들었다. 일단 처음부터 이민이 아니라 임금 노동자이기 때문에 명나라 관리들이 철저히 막지 않았다.

“임노동자라. 그게 가장 자연스럽겠어. 이것은 고산국은 물론 복건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해. 그러니 명명이 바쁘더라도 이들을 끌어들일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봐. 복건 순무에게는 내가 자문을 보내 협조를 구할게. 명명이 말한 것처럼 10만 명이라면 적당하겠어.”

“맡겨만 주세요!”

이민호는 단기적인 인구 목표를 500만으로 정하고 한족과 일본인은 10퍼센트 이내로 제한했다. 이민호는 중국인들에게 딱히 호감은 없지만 바로 이웃에 있는 나라인데도 계속 폐쇄할 수는 없었다. 이들을 활용해 명나라의 경계심을 낮추고 무역 규모 확장에도 도움이 되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이민호 마음대로 관리가 될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명나라 이민자들을 잘못 받아들였다가는 최악의 경우 명나라의 대규모 병력을 끌어들이는 화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인구 비율은 확실히 적게 배정하고, 고산국에 유입되는 순서도 조선인 다음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2년 후에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게 된다.

며칠 전에 동부 해안 산악지대로 원정을 보냈던 계복이 돌아왔다. 2개 여(旅), 250여 명이 떠나서 전사자가 세 명이나 나오고 부상자는 스물일곱 명이나 됐다. 휴대한 실탄 2만 5천 발 말고도 따로 외륜선에 적재한 예비 탄약 10만 발을 거의 모두 소진했으니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전사자가 발생했군.”

“죄송합니다, 도련님.”

“질책하자는 게 아니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겠어. 그런데 전사자 시신을 전투 현장에 매장하고 온 거야? 국립묘지를 만들어 매장할 테니 다음부터는 반드시 전사자 시신을 수습해오도록 해.”

“아닙니다. 사실 셋은 실종자인데 끝까지 시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실종 장소에서 총하고 장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전투복과 방탄판, 탄띠 같은 장비는 대부분 찾았는데 몸만 없었습니다.”

“저런!”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계복은 훌륭한 군사지휘관이며 피아간 화력 차이가 커서 전투 중에 아군의 시신을 빼앗길 상황은 아니었다. 아마도 야간경계나 정찰 활동 중에 기습을 당한 모양인데 이민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부상자들을 나을 때까지 치료해주기로 하고 나머지 병사들에게는 포상금을 넉넉하게 나눠준 다음 열흘 간 휴가를 주었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국립묘지를 조성해 전사자들의 가묘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주기로 했다. 세 사람의 신원과 업적을 기록한 묘비도 세울 계획이었다. 전사자 가족에게는 위로금을 지급하는 동시에 특별히 땅도 넓혀주기로 했다. 유족들이 농사를 직접 짓지 못하더라도 주변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면 충분히 먹고 살만한 땅이었다.

고산국에서는 농민들에게 충분한 땅을 나눠줘도 빈 땅을 소작하겠다는 희망자가 많았다. 군인이나 사공, 기술자들에게 배정된 땅이 이런 식으로 경작됐고, 땅주인과 농부가 소출을 나눠 가졌다. 토지제도가 균전제 비슷해서 남의 땅을 소작하는 농부도 기본은 자경농이었다.

드넓은 황무지가 얼마든지 남아있으니 인구 추이를 살펴서 천천히 개간하기로 했다. 대충 개간한 넓은 곳은 관리인 농가 하나를 지정한 다음 나머지는 품삯을 주고 일시적으로 고용한 농부들이 사탕수수를 재배했다. 땅콩은 농가에서 수매하거나 시장에서 매입했다.

“사흘 동안 잠도 못 자고 아주 끔찍했습니다.”

“야간에 기습을 많이 당했어?”

이민호는 오랜 동료와 소파에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민호는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자랑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남이 전공을 자랑하는 것은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어명을 내리신 대로 처음에는 분탕질이 가장 심한 마을 몇 곳만 토벌해서 전체 부족에게 경고를 하려고 했습니다. 사방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일단 해안에 교두보로 쓸 목책부터 세웠습니다. 그런데 온몸에 시커멓게 문신을 한 덩치 큰 놈들이 나타나 혀를 내밀고 발을 굴리며 춤을 추는 겁니다. 말이 안 통하니 이것이 환영인사인지 아니면 적대적 의사 표현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마오리족? 아니, 아니야. 계속해봐.”

남태평양 섬들에 광범위하게 퍼져 사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고향이 대만이다. 멀리 떨어진 남태평양 섬의 원주민들과 대만 원주민 부족이 비슷한 언어체계나 문화를 가지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놈들이 일단 돌아갔다가 저녁이 되면서 한둘씩 나타나서 화살을 쏘는 겁니다. 즉각 응사했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원주민들 숫자가 불어나더니 나중에는 진짜 사방에서 떼 지어 몰려드는 겁니다. 심지어 작은 배를 타거나 수영을 해서 바다 쪽에서도 오더라니까요!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습니다.”

사흘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계복이 이끄는 직할군이 결국 3천 명에 달하는 그 부족 성인 남성들을 남김없이 몰살시켰다고 한다. 주변 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던 파폴라족과 비슷한 꼴을 당한 셈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야만인들의 숫자가 줄어든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숲으로 들어가 마을들을 공격했습니다. 애들부터 노인, 아니 노인은 없었으니 여자들까지 정말 지독하게 싸우더군요. 그래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들은 다 죽여 버렸습니다.”

“으음. 잘했다.”

“끝났다 싶어 돌아오려는데 주변 부족들이 이때다 하고 대대적으로 보복에 나섰습니다. 여자고 아이고 안 가리고 죄다 처참하게 찢어 죽이더라고요. 말리긴 했는데 이 인간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도망간 식인종 여자들이 좀 있지만 생긴 게, 아니 얼굴 장식과 문신이 워낙 특이해서 아마 몇 년 안에 남김없이 잡혀죽을 것 같습니다.”

“쯧! 수백 년 이상 피해를 당해왔을 테니 어쩔 수 없지.”

해중국과 고산국을 건국한 이래 최초로 원주민 부족 하나가 통째로 사라졌다. 이민호는 원주민들을 국민으로 동화시키되 가급적이면 고유의 전통문화는 보존하길 바랐다. 그러나 식인은 보호해줄 만한 문화가 아니었다. 도망간 자들도 서로 잡아먹다가 다 죽었을 것으로 믿었다.

대만 원주민들은 같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지만 다른 부족들과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오랜 세월 분리돼서, 혹은 극소수 부족은 다른 지역에서 시차를 두고 이주해온 탓에 전통문화는 물론 피부색과 생긴 것도 약간 달랐다. 아미족과 파폴라족을 같이 놓고 보면 피부색이 극과 극이었다.

“그 부족이 전리품이랍시고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게 사람 해골, 이빨, 대퇴부 뼈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다 불태워버렸습니다.”

“으으!”

“자세한 보고는 장계를 읽으십시오. 여수와 대정들이 제출한 군공마련기에 더 자세한 전투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전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적당히 상을 나눠주십시오. 전공자 목록은 등급별로 따로 작성했습니다.”

문서 작업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고 특히 계복은 더 싫어했다. 하지만 기록을 보존해 놓으면 나중에 다른 원정을 갈 때 분명히 참고가 된다.

장계를 읽어보니 계복이 그 동안 이민호에게 배운 대로 아래아와 반치음을 없애 현대 국어와 비슷한 맞춤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최 선생은 엄연히 살아있는 발음인 아래아를 없애는 것에 반대했지만 외국 출신 이민자들에게 조선말과 글을 쉽게 가르칠 수 있다는 이민호의 주장에 동의했다.

============================ 작품 후기 ============================

뒤로 좀 더 연결됩니다만, 오늘 연재는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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