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3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아주 가끔 행사 때나 사용하는 궁궐의 정전(正殿)으로 부족 대표들을 불렀다. 그들에게 확인해 보니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그 고산족 부족은 확실한 식인종이었다. 주변에 사는 숫자가 많은 부족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오랜 전통인지 몰라도 식인 습성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종교적 의식 혹은 다른 의식의 일부로서 식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투가 끝난 뒤 적의 힘과 용기를 얻는다는 뜻에서 적의 시체 일부를 먹는다면 혐오스럽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도 있었다. 친척이 죽어 장례식에 모인 일가친척이 그 시체를 나눠 먹는다면 역겹더라도 특이한 장례 풍습으로 인정해줄 수도 있었다. 죽은 그 친척이 다른 친척들의 몸속에서 영원히 살아남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 부족은 가리지 않고 잘 먹어 아예 인육이 주요 식단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뜻이었다. 이들은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하지도 않고 오직 다른 부족의 영역에 침입해 사람들을 죽이거나 납치해오는 것이 생활이었다. 이민호로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특히 주변 여러 부족들이 연명으로 청원해왔으니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과인이 이곳에 나라를 세운 뜻은 모든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에 있었소. 내 오늘에야 그런 악독한 부족이 있음을 알았으니, 그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 수 없소.”
“성은이 망극하오이다.”
원주민 부족 대표들이 보는 곳이라 몇 안 되는 신하들이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주었다. 옥좌에서 일어선 이민호가 지휘권 위임의 상징으로 커다란 도끼를 계복에게 내렸다.
“부월을 내려줄 테니 계 원수가 2개 려를 이끌고 그 부족 영역에 가시오. 다른 부족에 대한 침해가 유독 심한 마을 몇 개만 징치하고 오시오.”
“신 계복, 어명을 받드옵니다.”
계복은 그 날로 원정군을 꾸려서 바로 다음날 오전 직할군 250명과 각종 보급품을 대형 외륜선 두 척에 나눠 싣고 떠나갔다. 배웅하는 가족들은 절반이 조선인이었고 나머지는 일본인과 원주민 여자들이었다. 조선인 아내를 둔 직할군들도 대부분이 고산국에 온 다음 결혼했으니 정착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요즘 조선 국적의 간수군을 고산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수군 대부분이 방답이나 거제도에서 훈련 중이었고, 가끔 외륜선이나 판옥선을 타고 해상훈련도 받았다. 임진왜란을 일 년 앞두고 5일 훈련에 5일 휴식을 실시한 다음부터 이탈자도 많이 줄어들었다. 간수군을 관뒀다가 재입대하려는 자들도 있었으나 후보 명단 맨 뒤에 이름을 올린 후 결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후에도 이민호는 일에 치여 살았다. 고산국 궁궐 앞을 흐르는 강을 아리수라 칭하고 서쪽 강 하구에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대포 10문의 포좌를 바다와 강으로 향하도록 설치하면서 바퀴 달린 포가를 사용해 이동이 가능하도록 통로를 설계했다.
깎아지른 듯이 높이 세우는 당시 성곽들과 달리 이 요새는 사면의 경사가 비스듬했다. 그리고 평시에 군인 50명을 배치하고 유사시 250명, 본격적인 전쟁 때는 500명까지 증원 병력이 들어가 싸울 수 있도록 넉넉하게 만들었다. 서양 범선의 대포 공격에 대비한 방어용 시설물이었다.
강변 부두에 자리 잡은 해관의 옆에도 작은 요새를 만들었다. 선착장에 정박한 서양 무역선들이 갑자기 해적으로 돌변할 것에 대비한 시설이었다. 그리고 이 요새는 궁궐을 방어하는 훌륭한 1차 관문이기도 했다.
이민호는 집무실에서 서류 결재를 하고 있었다. 건국 초기라 할 일은 많고 사람은 적어 국왕인 이민호에게 모든 결정권이 집중된 탓이었다. 인사 문제가 심각한데 백성들 대부분이 지식수준이 낮아 아무에게나 맡기기도 어려웠다. 최 선생이 조선에 편지를 써서 많이 데려오긴 했으나 아직도 인재가 많이 부족했다.
미카는 조선말을 익히긴 했어도 대화가 통하는 수준이지 서류를 읽고 판단할 수준은 아직 아니었다. 최 선생이 유능하긴 해도 학교 늘리고 교사들에게 연수를 시키며 관리하는 것만도 벅찼다. 그런데도 국왕 비서실장 역할까지 맡겨서 지금 비서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이민호의 일을 나눠서 하고 있었다. 이렇게 부려먹으니 최 선생이 이민호에게 호감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 선생이 하는 일도 이민호가 보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역시나 혜영이 어서 고산국에 와야 안심하고 일 전부를 떠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인님. 저 광저우에 다녀왔어요.”
“오! 우리 멍멍이 수고했어.”
왕명명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하며 집무실에 들어왔다. 매달 정기적으로 광저우와 푸저우, 항저우에 가서 무역하는 것은 왕명명에게 다 맡겨버렸다. 그래서 왕명명은 항상 바깥으로 나돌고 있었고, 고산국에 있을 때도 수출품 선적과 수입품 하역, 물품 교환과 결제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번에는 왕명명이 광저우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왕명명이 내민 보고서 요약본을 쓱 훑어본 이민호가 결재도장을 쾅 찍어줬다. 단 5초도 안 걸렸지만 이번 달에는 새로운 사업이 시작된 것이 아니니 손익계산서만 확인하면 됐다.
왕명명이 광저우에 매달 한 번 갈 때마다 구리와 유황을 빼고도 최소 백은 10만 냥을 벌어들였다. 항저우와 푸저우에서 얻는 이익의 두 배에 달했다. 해삼이나 홍삼을 거래하지 않고서도 이 정도니 대단한 수익이었다.
신라방은 거의 고산국의 어용상단이 되어 중형 외륜선을 타고 다녔다. 항저우에서 해삼을 대상단 상인들을 모아 경매로, 광저우에서 홍삼을 주로 부자들과 개별접촉 방식으로 팔고 있었다. 나가사키를 왕복하는 배도 신라방이 맡았다. 금과 은을 교환하는 재정거래를 감안하면 수익은 신라방 쪽이 컸다.
“주인님도 항상 바쁘니 투정을 할 수가 없어요.”
“멍멍이가 어디서 사람 좀 구해봐.”
“바빠서 몇 달째 집에도 못 갔잖아요! 사람 구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동생들이 똑똑해서 앞으로 상인으로서 유망하다며? 여기 데려와서 일도 좀 가르치고 그럼 좋지 않겠어?”
“흥! 이렇게 일을 많이 시키는 분에게 어떻게 소개해줘요? 아직 어린 동생들을 과로사 시키고 싶지 않아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민호가 왕명명을 잡아당겨서 무릎에 앉혔다. 피차 바쁘니 성질 받아줄 시간도 없었다. 뺨에 뽀뽀를 하자 왕명명이 헤~ 웃고 화를 가라앉히면서도 여전히 토라진 척했다.
“제 꽃다운 나이가 덧없이 지나가고 있어요, 주인님. 사랑 한 번 못 받아보고 이대로 시들 것 같아 걱정이에요!”
“그럴 리가 있나. 멍멍이는 항상 귀여워.”
이민호가 왕명명의 머리를 강아지 쓰다듬듯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이 참에 항상 수고하는 왕명명에게 상을 더 내려주기로 했다. 키스를 하고 몸을 5분쯤 만져주자 소녀의 꼭 감은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상의 옷깃을 열고 틈으로 이민호의 손이 파고들었다. 굵고 탄탄한 허벅지와 달리 상체는 빈약한 편이라 혜진에게 써먹어서 성공했던 마사지를 왕명명에게 해주었다.
집무실 밖에 비서들이 있어 더 이상 진행할 수도 없었지만 왕명명에게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잠시 후 왕명명이 이민호의 품에 새빨개진 얼굴을 묻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전에 이민호가 죽을 뻔한 이후로 아무리 흥분해도 목을 감싸 안지는 않았다.
“광저우에서 마닐라를 왕복하는 상인들하고 몇 번 접촉했어요. 이번에 또 서반아 사람들하고 큰 싸움이 났대요. 시가지 절반이 불탔어요.”
“같은 도시에서 살면서 잘도 싸운다.”
광저우 상인들을 마닐라로 끌어들인 것은 사실 에스파냐 총독이었다. 에스파냐 배들은 광저우 바로 앞 마카오에 자리 잡은 포르투갈 상인들이 신경 쓰이는지, 아니면 명나라 관리들에게 쫓겨났는지 광저우에 직접 입항하지 않았다. 대신 명나라 상인들을 마닐라로 불러들여 무역을 하고 있었다. 매년 갈레온 몇 척이 멕시코에서 은을 가득 싣고 마닐라에 왔다가 비단과 도자기를 싣고 돌아갔다.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자연히 마닐라에 중국인 거주자가 늘어났다. 마닐라를 왕복하는 명나라 상인이 만 명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들 중 일부만 거주한다 해도 수천 명에 달했다. 시내 한쪽에는 일본에서 밀려난 낭인들과 기리시탄들이 자리 잡고 명나라와 에스파냐 양쪽의 일을 해주고 있었다. 브루나이 제국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화된 필리핀 원주민들의 세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마닐라의 지배자인 필리핀 총독은 시가지 중심부에 요새를 쌓고 에스파냐 상인들을 거주시키며 때로는 무역을 하고 때로는 전쟁을 하며 마닐라 전체에 긴장감을 높이고 있었다. 외국인들을 불러들인 다음 잘 지내지 못하고 싸우는 것은 무섭도록 불어나는 중국인, 일본인들이 두려워진 탓이었다. 이 와중에 에스파냐 신부들은 마닐라를 벗어나 그 주변 지역으로 활발하게 전도를 하고 다녔다.
“주인님이 한 500명만 데려가면 마닐라는 물론 여송 전체를 하루아침에 점령할 수 있을 거여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여송이라 하면 필리핀 전체가 아닌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을 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루손 섬을 점령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마닐라에만 에스파냐, 명나라, 일본인, 여송인들이 있고 마닐라에서 밀려난 브루나이 제국과 남동쪽의 술루 술탄국도 언제든 마닐라를 노릴 수 있었다.
“여송을 점령해서 내게 무슨 이익이 있지?”
“넓은 땅과 수많은 백성, 그리고 해상교통로를 장악할 수 있어요. 상왕 전하의 옛 땅이라면서 고토수복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도 있어요.”
“여송을 갖더라도 딱히 돈이 될 것 같지 않은데?”
“마닐라는 요즘 급속히 떠오르는 무역의 중심지에요. 서반아와 광저우 상인들 사이에서 거래되는 물품 가액의 1할만 세금으로 징수해도 어마어마할 거여요.”
마닐라 갈레온들이 멕시코에서 은을 공식 비공식 합쳐 매년 200톤 넘게 가져오는데도 돌아갈 때는 항상 비단과 도자기를 가득 채우고 떠났다. 마닐라에서만 매년 수백 만 냥의 거래가 이뤄지는 셈이었다. 물론 광저우에서 거래되는 금액에 비하면 소액에 불과했지만 이민호 입장에서 만만한 상대는 명나라가 아니라 에스파냐 필리핀 총독부였다.
“내가 마닐라를 점령한다 해도 서반아 상인들이 무역 근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면 그만이야. 그리고 내가 마닐라를 점령하면 매년 천 명씩 멕시코에서 군사를 보낼 것 같아.”
“일단 점령하고 나면 지키기는 쉽지 않아요?”
“서반아가 그 정도 병력을 꾸준히 보낸다면 계속 성공적으로 막아내더라도 부담이 커. 고산국 병력이 2천 명을 갓 넘었는데 그 중에서 500명을 마닐라에 묶어두면 나도 곤란하거든.”
그리고 내년에는 임진왜란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남방으로 손을 뻗고 싶더라도 도저히 제2 전선을 형성할 여력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당장은 지켜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