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1화 (40/1,000)

00091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판옥선은 물론 임진왜란 직전에 진수한 거북선도 추가로 만든 배가 아니라 수영의 보유 선척 수에 포함된다. 경국대전에 고을별, 진포별로 배정된 대맹선과 중맹선, 소맹선 숫자를 일정 비율로 전환한 판옥선 숫자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 계사년에 판옥선을 증강했을 때도 조정의 허락을 받고 나서야 추진할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런가? 내가 듣기로 속도도 빠르고 튼튼하던데. 조총도 여러 정 갖고 있지 않은가?”

“윤선에 탄 사람들은 수군이 아닙니다. 간수군이나 사공들에 불과하고, 그러니 당연히 화포가 없습니다. 왜선들처럼 위에서 조총이나 팡팡 쏘면 모를까, 수군의 진법에 맞춰 움직이면서 대포를 쏘고 그럴 수는 없다 이 말입니다.”

“대포야 수영 것을 실어서 쏘면 돼. 화포장들 숫자도 전선에 태우고도 좀 남네.”

“그럼 좋지요. 그런데 배가 부족해 고민이십니까?”

“전라좌수영이 명색이 수영인데 겨우 5관 5포가 뭔가? 전선은 30척이 안 돼. 국초에는 전라우수영과 같은 규모였는데 뱃길이 이상해서 진포를 하나둘 우수영에 다 빼앗기다 보니 이렇게 쪼그라들었단 말일세.”

경상우수영이 경상좌수영보다 큰 이유는 왜구의 주요 침입로가 경상우수영 관할구역에 있기 때문에 세월에 따라 계속 증강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경상우수영은 경상도 남해안, 경상좌수영은 경상도 동해안이 관할구역이었다.

마찬가지로 전라우수영은 전라도 서해안, 전라좌수영은 전라도 남해안 전체가 원래 관할구역이었다. 그러나 해류 탓에 전라좌수영에 빠른 시간 내에 집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보성 서쪽의 전라도 남해안 절반이 몽땅 전라우수영으로 넘어가 버렸다. 왜구의 주요 침입로 중 하나인 전라좌수영이 다른 수영들보다 규모가 확 줄어든 이유였다.

“비록 배가 적지만 형님이라면 잘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장수야. 배든 군사든 많을수록 좋지.”

“옳으신 말씀. 전쟁이 나면 즉시 부르십시오. 가친과 저는 언제든지 배를 몰고 수영으로 달려오겠습니다. 가친께서 왜적들에게 쓰겠다며 칼을 갈고 계시는 것을 형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첨사는 애국자이시네.”

“현재 중형 윤선 열 척이 있고 간수군 천 명이 지금 훈련 중에 있으니 만약 전쟁이 난다면 형님이 잘 활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지휘권은 간수군과 윤선을 잘 아는 가친께 일단 몰아주시기 바랍니다. 윤선과 간수군 모두 가친을 통해 형님 직속으로 삼아주십시오.”

“지금은 자네 부친께서 한후장 직책인데 유군장으로 바꿔야 할까?”

“열 척이면 3할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비슷하니 유군장이 낫겠습니다.”

간수군들은 대부분 젊어서 수군 정병이나 육군 정병으로 아직 지정되지 않았다. 법에 따르면 군적 개정이 3년마다 이뤄져야 하지만 성인의 도로써 백성을 교화해야 하는 유학자들은 백성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정을 싫어했다. 그래서 현재 수군과 육군 병사들은 선임자가 늙어죽어서 특별히 보충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나이 40을 넘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면 고을 수령이 장정들을 징집할 수 있으니 상황에 따라 간수군이 순식간에 해체될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이순신에게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는 즉시 장계를 올려 간수군 전체의 지휘권을 확보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전쟁에 쓸 수 있는 훈련된 장정이 천 명이나 된다니, 그거 참 고마운 일일세. 육전도 가능한가? 그리고 보급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하겠군 그래.”

“물론 바로 그것 때문에 훈련 중입니다. 간수군들에게 들어갈 조총과 화약, 군량은 제가 다 댈 테니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형님.”

“뭔가? 말해보게.”

“왜적과 싸울 때 수급을 철저히 챙기십시오. 나중에 사람들 사이에 전공을 두고 여러 가지 말이 많아지면 결국은 명확한 증거를 확보해야 유리합니다.”

“그깟 수급을 줍느니 차라리 왜적 한 명을 더 죽이겠네.”

“형님이 계속 이 자리에 계셔야 왜적을 막을 수 있습니다. 불쾌하시더라도 길게 보십시오.”

“음. 생각해보겠네.”

이민호는 수원 본가에서 만든 강화유리를 전라좌수영으로 옮겼다. 이순신 수사가 판옥선 장대에 오를 때 왜군의 조총으로부터 보호해줄 물건이었다.

해전 때마다 판옥선에 유리한 포격전으로 왜선을 격침시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당시 화포의 장전 주기기 길기 때문에 매 해전마다 항상 근접전 상황이 일어났고, 매번 빠짐없이 전라좌수영 좌선에서 조총이나 화살로 인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장대에 오른 조선 수군 장수는 왜군 조총수에게 매우 고가치의 표적이었다.

유학생을 많이 뽑아 마카오에 갔다가 숙소로 쓸 건물 몇 채를 구입했다. 그러나 지내기 불편할 것 같아 아주 단순한 설계로 단기간에 기숙사 건물 한 동을 세웠다. 2인 1실에 층마다 공용 화장실과 샤워장이 딸린 3층 석조 건물이었다. 강당과 식당 등 부속 건물들을 건축하던 중에 이민호가 잠시 고민하더니 마카오에 아예 대학을 설립했다.

그 후 예수회 선교사들과 일부 상인들이 고산국 백성들인 조선인, 일본인, 여진인, 원주민, 흑인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생들은 전공별로 의학과 신학, 자연과학과 항해학, 그리고 부전공으로 유럽 몇 개국의 언어 중에 하나씩을 배웠다. 신학을 배우면서 라틴어에 처음 접한 학생들은 엄청나게 고생하게 되었다.

마카오의 포르투갈 노예상인에게서 흑인 노예 300명을 구입한 이민호는 새로 흑인 노예가 들어올 때마다 고산국으로 보내달라고 선금을 지불했다. 이민호는 고산국에 도착하는 즉시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고 집과 논밭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모두 군인으로 고용했다.

고산국에서는 군 복무가 의무가 아니라 흑인들이 농사를 지어도 되지만 농업기술이 딸리는 흑인들은 일본인, 조선인 농부들과 경쟁하기 어려웠다. 이웃들에게 배우려 해도 언어 문제가 장애로 작용했다.

그래서 신체가 건강한 흑인 남자라면 웬만하면 군에 입대했다. 군인 봉급은 농민들의 가구당 월 평균 수입보다 확실히 많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하고 이미 마을은 노예 사냥꾼들에 의해 초토화되었으므로 흑인 병사들은 이민호 개인에게 대단한 충성심을 보였다.

이민호는 노예상인에게 흑인 여자들도 구해달라고 부탁해 흑인 병사들이 가정을 갖고 제대로 정착하도록 도왔다. 흑인 노예들을 대량 구매한 탓에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흑인들이 납치될 것 같아 이민호는 속이 많이 불편했다. 거액의 은을 받고 희희낙락하는 노예상인들을 꼴도 보기 싫었다.

그러나 노예상인들에게도 변명할 말이 있었다. 간악한 노예상인들이 평화롭게 사는 아프리카 흑인들을 학살하고 납치한 다음 마카오까지 와서 파는 것이 아니었다. 흑인 왕국 병사들이 다른 지역에서 납치, 또는 매입해서 이미 노예가 된 흑인들을 노예상인들이 사오는 것뿐이었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었다. 이것이 나중에 노예 약탈을 막기 위해 노예무역은 물론 노예제를 폐지하는 원인이 되었다.

흑인들이 주로 정착한 마을은 궁성과 일본인 마을 중간쯤이었다. 일본인 마을에서 가깝다 보니 일본인 처녀와 흑인 남자가 부부로 맺어지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마치 요코스카 항에 미 7함대 항공모함이 들어오는 날 도쿄 여자들이 몰려가 흑인 애인을 구하는 것과 비슷한 광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고산국 전반적으로 여초 지대라서 여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선 탓이었다.

누구든 결혼을 자유로이 할 수 있으니 다들 알아서 할 일이라 이민호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인 남자들이 불쾌하게 여기는 것 같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결혼했으니 여자를 둘 이상 데리고 살 용기가 없으면 입을 다물어야 했다. 마카오에서 들어오는 흑인들보다 일본에서 팔려온 처녀들이 더 많이, 그리고 꾸준히 고산국으로 유입되고 있으니 여초현상은 당분간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이민호는 일본인 처녀들을 구입하기 위해 궁녀들을 시켜 염초밭에 말똥과 오줌을 뿌리게 했다.

“전하. 이것은 무엇인가요?”

“배를 움직일 동력기관이요. 자! 이제 물러서시오.”

궁궐 후원 뒤쪽 언덕 공터에서 고산국의 미래를 결정할 아주 중요한 시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민호가 미카와 최 선생, 호닌과 굴마훈을 데리고 방탄유리 뒤쪽으로 움직였다.

시험은 지금까지 여섯 번 실패했다. 한 번은 기관이 폭발하면서 장인 한 명이 큰 화상을 입고 아직도 붕대를 감고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화상을 입은 초반에 소독을 잘해줘서 염증이 생겨 죽지는 않았지만 몇 안 되는 유능한 장인이라 손실이 컸다.

장인 두 명이 기관 앞쪽에서 시동 막대기를 손으로 잡고 1분 정도 돌렸다. 전방의 압축기가 돌아가야 공기흡입구를 통해 공기가 압축되면서 연소실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장인 한 명이 연료기를 개방하고 다른 장인이 내부에 불을 붙이는 장치를 켰다. 두 사람은 즉시 벽 뒤로 돌아들어갔다. 아직 유압식 시동기를 못 만들어서 손으로 돌리니 좀 없어 보였다.

- 텅! 덜컹덜컹! 삐이이~ 위이이잉~

“오! 이번에는 성공인가?”

“소리가 너무 커요, 전하. 고장 난 것 아닌가요?”

“원래 커. 방음은 나중에 쉽게 할 수 있어.”

기다란 원통형의 기관은 겉을 양철판으로 덕지덕지 기운 탓에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몇 세기를 앞선 터보 샤프트 엔진, 가스 터빈이었다. 제트엔진 종류가 다 그렇듯 구조는 무척 단순했다. 초음속 엔진인 램제트는 앞에 공기압축기도 없는 앞뒤가 텅 빈 깡통이었지만 터보 샤프트는 앞에 바람개비가 달려 그나마 기계장치처럼 보였다.

구조가 단순하고 시동이 빠르며, 소형화가 가능하고 다양한 연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민호는 터보 샤프트 엔진을 선택했다. 윤활계통이 간단하고 비싼 윤활유 소모가 적다는 결정적인 요인도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ADD에서 연구했던 순항미사일의 엔진인 터보팬과 구조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이민호가 기관의 구조를 환히 아는 엔진이기도 했다.

공기흡입구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압축기를 지나며 고온, 고압의 압축공기가 되어 연소실에서 분사되는 연료와 섞이며 불이 붙었다. 고압의 배기가스가 전방의 압축기와 연동된 터빈, 그리고 동력축 터빈을 돌리면서 뒤로 빠져 나갔다. 항공기 엔진이라면 배기가스가 추진력 일부분을 제공하겠지만 이것은 선박용 엔진이라서 단순한 에너지 손실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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