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90화 (39/1,000)

00090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해중국 사신단이 한성에 입조했다. 중형 외륜선 세 척과 서양 범선 세 척, 합 여섯 척이 한강을 통해 들어가기 전에 일단 강화도 어귀에서 며칠 기다려 허락을 받았다. 조선 조정에서 첫 입조에 한해 한강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것으로 논의가 끝나 마포에 입항한 다음 사신단이 내렸다. 피차 다 아는 사이에 마포든 인천이든 빨리 결정해주면 좋을 텐데, 결정은 안 내리고 시간만 질질 끄는 인간들이 꼭 있었다.

코끼리나 공작 같은 동물을 조선 왕조에 진상하면 불쌍하다고 남해 따뜻한 섬에 풀어주는 탓에 사람들만 남대문에 들어섰다. 이민호는 정식 사신이 아닌 구경꾼으로 따라갔고, 사신단이 동평관에 머무는 동안 이민호는 오랜만에 서소문 집에 가서 잤다.

“혜영, 혜진은 올해 말에 나하고 같이 고산국으로 가자. 수원 본가와 서소문 집은 당분간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겨놓기로 했어. 그런 줄 알고 사창 사업 같은 것은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다른 것도 정리하거나 미리 준비해 둬.”

“예. 도련님의 명을 따르겠어요.”

“고향 떠나기는 싫은데요. 뭐, 할 수 없죠.”

혜영과 달리 혜진은 괜히 툴툴거렸다. 그 동안 요리를 만들어도 맛있게 먹어줄 사람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겨울 동안 잘 발효된 진짜 김장 김치를 먹게 된 이민호가 진심으로 기뻐해 혜진도 활짝 웃을 수 있었다.

“제대로 만들어졌구나. 아우~ 시어! 정말 맛있다. 밥하고 김치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필요가 없겠다.”

“그래도 골고루 드세요.”

혜영과 혜진이 젓가락으로 갖가지 반찬을 집어 이민호 입에 들이 밀었다. 여러 의미로 짜릿한 밥상이었다.

“내년 봄에 전쟁이 일어날 거야. 다들 예상하듯이 왜군이 쳐들어 와. 그래서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혜영과 혜진은 조선을 떠나야 할 거야.”

“전쟁 기간 동안 도련님이 바쁘실 테니 그 동안 제가 한성이나 수원에 남아 도와드릴 일이 많지 않을까요?”

“혜영과 혜진은 내게 너무 소중한 사람이라 위험한 곳에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 고산국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으니 혜영이 할 일이 많을 거야. 가서 나를 도와줘.”

“고마워요, 주인님.”

“흥!”

이민호가 혜영을 안자 혜진이 토라졌다. 몸을 당겨 같이 안으니 혜진이 헤헤 웃었다. 그런데 풋풋한 여자들보다는 김치에 더 손이 가는 이민호였다. 장독대 째로 김치를 고산국에 가져가고 싶었으나 고산국은 너무 더워서 김치가 삭을까 걱정됐다.

다음 날 아침 정식으로 해중국 국왕의 입조가 있었다. 일본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져 온 나라가 뒤숭숭했지만 사신단을 맞는 한성 백성들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작은 나라 사신단이 각종 구경거리를 가지고 오는데 싫어할 백성은 없었다.

사신 행렬을 뒤따르는 아이들이 처음 보는 인종들을 구경하며 신기해했다. 금발과 적발의 백인 궁녀들이 지날 때는 수군수군하더니 조선과 비슷하게 도안한 무관복을 차려입은 체격 좋은 흑인 호위병들이 발 맞춰 걸을 때는 박수가 터져 나올 정도로 인기가 아주 좋았다.

이번에도 역시 한중일-원주민 합동 취타대와 아미족 민속기예단이 사신 행렬을 뒤따랐다. 보수적인 조선에서 문제가 될까봐 원주민들은 울긋불긋하면서도 피부 전체를 가리는 제대로 된 옷을 입어야 했다. 추운 겨울 북경에서는 웃통을 벗고 늦봄 한성에서는 껴입는다고 원주민들이 투덜거렸다.

이민호는 첨지중추부사로서 관복을 차려입고 조회에 참가했다. 꽤 긴 절차에 이어 해중국 국왕이 조선 국왕에게 절을 하고 국서를 바침으로써 중요한 입조 절차가 끝났다.

해중국 국왕 역할을 맡은 젊은 여송인과 왕비를 맡은 일본인 처녀가 연기를 아주 잘했다. 이민호는 그를 여송이나 말래카, 태국 같은 곳에 외교사절로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여기 저기 입조하다 보면 동아시아의 국제적인 사대교린 관계 속에서 해중국이 가장 위치가 낮은 나라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체면이 깎이더라도 이익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 대만 섬 통틀어 볼 때 대부분은 고산국 영토이고 해중국은 도시 하나 크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만간 무역이 활성화된다면 수출액으로 따져서 해중국이 고산국의 열 배 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자그마한 베네치아가 오스만제국이나 에스파냐와 맞먹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역의 힘이었다.

“조선국의 속국으로서 해중국왕이 조선국왕 전하께 청한 해중국의 왕실기를 하사하겠습니다.”

“성운니 망큭하오니이다.”

선조 임금에게서 받은 태극기를 환관이 떠받쳐들고 그 아래 정중히 허리를 숙인 해중국 국왕에게 전달했다. 해중국 국왕은 비록 키는 작지만 그 동안 잘 먹어서 풍채가 아주 좋아졌다. 행동거지에 기품이 느껴져서 누구나 그가 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해중국의 정체를 알고 있는 대신들도 마찬가지로 그가 진짜 국왕인 것처럼 여기며 서로 읍을 할 때는 최대한 정중하게 대했다.

해중국 왕실기는 이민호가 이미 손댄 도안이라 그냥 현대의 태극기와 똑같았다. 주역 괘와 낙서가 혼합된 좌독기를 간략화시켜 만든 것이 태극기인데, 원래 조선왕실의 깃발로 가끔 사용하던 도안에서 절반으로 간소화한 것이었다. 조선 조정 입장에서는 해중국이 조선국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더 확실히 나타낼 수 있어서 기꺼이 태극기를 하사했다.

조회를 마치고 임금은 물론 신하들도 매우 기뻐했다. 물론 해중국이 꼭두각시 나라라는 것은 알았지만 조선에 사대를 해주는 작은 나라를 거느렸다는 사실에 대신들은 뿌듯해했다.

그리고 중개무역을 통한 실제적인 이익도 컸다. 왕실 외에 호조에서도 앞으로 매년 백미 십만 석의 세금을 선불로 받기로 했다. 그 대가로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에서 일정 금액 이하로 무역하는 경우 면세 혜택을 받기로 합의했다.

이제 밀무역이나 보따리 장사가 아니라 정식으로 무역허가를 받은 셈이었다. 고산국이나 해중국에서 조선으로 가는 물건 중에서 사치품이 없기에 이런 무역 허가가 가능했다.

또한 천 명의 간수군이 받은 봉급 일부와 고산국에 이민 간 사람들이 친척에게 송금한 돈으로 인해 꾸준히 조선으로 자본유출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민호가 전체적인 수지 균형을 우선한 탓에 무역 개방으로 인한 반발은 크게 없었다. 그리고 전쟁물자인 유황과 물소뿔, 구리는 조선에서 더 이상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구리와 유황을 비롯해 여러 가지 공물을 많이 바치고 회사품으로 모시와 종이, 부채와 화문석, 인삼, 그리고 여진 말을 잔뜩 얻었다. 여진 말은 회령에서 여진족과 교역해 한성으로 보낸 것이었다.

조선은 여진족에게서 면포 40필에 말을 사서 명나라에는 면포 500필에 팔아먹는 나라였다. 해중국에 하회품을 내릴 때도 마리당 면포 500필로 계산한 것 같았다. 사실 조선 내에서 상등마 가격이 500필이니 딱히 바가지 씌운 것도 아니었다. 결국 어떻게 계산해도 해중국에 남는 장사가 되었다.

마포에서 사행무역 개시가 열렸다. 진귀한 이국의 기물을 구경하러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그러나 사실 해중국에서 자체 생산한 물건은 한 가지도 없었다.

양반들이 사는 사치품은 향신료와 자명종이었다. 서양 자명종과 달리 한 시간이 아니라 한 시진마다 은은한 종소리를 내서 가격이 비싼데도 인기가 좋았다. 이민호가 마카오 잡화상에서 하나 사서 복제한 것이었다. 서민들이 살 만한 싼 것은 열대과일과 설탕이었다. 더 널리 팔도에 소문이 퍼지라고 과일과 설탕을 원가에 풀었다.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공짜로 나눠주었다.

해중국 어용상인들은 고산국과 해중국에서 나지 않는 종이와 모시, 삼베를 잔뜩 사들였다. 한지가 좋긴 한데 이것도 노동집약 산업이라 이민호가 차마 손을 대지 못했고, 조선에서 생산한 종이가 품질이 좋으니 웬만하면 앞으로도 계속 조선에서 수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선 관리의 입회하에 수삼 2천여 근을 싸게 사들였다. 홍삼 제조 과정 중에 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해도 엄청나게 큰돈이 될 것이다.

해중국 사신단은 바로 돌려보내고 이민호는 해동상단 배를 타고 오랜만에 전라좌수영으로 향했다. 조선에서는 전쟁이 터진다며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성곽을 고치고 해자를 파면서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의 불만이 커졌다.

임진년을 일 년 앞두고 이민호의 부친은 안절부절못했다. 수시로 수영에 가서 좌수사 이순신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민호는 그 동안 부친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꾸준히 정보를 교환했다.

여수 집에 도착한 이민호는 전라좌수사가 부른다는 소식에 수영을 방문했다. 시전부락에서 전우로서 함께 싸운 이순신 장군이 수사로 와 있었다. 길게 이야기를 나누며 그 동안 쌓인 회포를 풀었다.

“자네 엉뚱하게 사창 관리권을 내 안사람에게 넘겼더군.”

“형님이 국사로 항상 바쁘시니 형수님께서 고생하실 것 같아 도와드렸습니다. 미리 말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자네에게 돌려줄까 하다가 그냥 아산 관아에 넘겨 백성들을 위해 잘 쓰고 있네. 고맙네. 자넨 부자니까 괜찮지?”

“어이쿠! 그 많은 걸.”

“내가 받는 녹봉이 비록 적지만 집에 땅이 넓어 먹고 살 정도는 된다네. 앞으로는 그러지 말게.”

“예. 죄송합니다.”

이순신이 정읍현감으로 근무할 때 남솔의 혐의로 비난을 받았지만 가난해서 식구들을 데리고 다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이순신이 데리고 다녔던 식구는 의지할 곳 없는 조카라고 분명히 언급하며 남솔로 인해 벼슬이 떨어지더라도 할 수 없다고 했으니, 요절한 형 희신과 요신의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수사가 헛기침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민호가 수영에 오기 전에 예상했던 주제가 나왔다.

“자네 윤선을 여러 척 갖고 있지?”

“그렇습니다. 조운도 하고 상선으로도 쓰는 작은 배가 열 척, 고산국에 왕복도 하고 상행도 하는 큰 배가 열 척이 넘습니다.”

“그것을 해전에 쓸 수 있겠나? 바람 방향과 상관없이 움직일 수 있으니 장점이 많아.”

“방략에 의해 동원하면 민간의 배라도 당연히 쓸 수 있겠지만, 판옥선으로 충분하니 별로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전쟁 전에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병력과 군비를 증강했다고 흔히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군이 사병 집단도 아닌데 정해진 숫자 이상의 군사를 보유하고 있다면 당장 역모죄에 몰릴 것이다. 각 고을에서도 정해진 숫자 이상의 병력을 수영에 보내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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