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9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이후 두 달 동안 마카오 선원들이 고산국 선원들에게 항해 훈련을 시켰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일단 덮어놓고 정복부터 하고 보는데, 인구가 적은 포르투갈은 정복보다는 교역을 우선했다. 물론 믈라카 술탄국처럼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먼저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정복도 사양하지 않았다. 그런 기질 차이가 있어서 포르투갈 사람들은 자상한 선생으로서 잘 어울렸다.
이 시기에는 유럽 국가들 사이에 항해기술의 차이가 거의 없어져서 항해기술과 선박건조 기술은 더 이상 비밀로 취급되지 않았고, 대포와 범선을 외국에 수출하는 시기였다. 선원이나 모험가들이 국가를 넘나들어 같은 배에 여러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타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고산국은 류큐를 거쳐 일본 나가사키를 왕복하는 동방 노선, 조선과 항저우에서 해중국을 잇는 북방 노선, 그리고 복건성과 광동성, 마카오를 잇는 서방 노선의 세 가지 항로를 운영했다. 이제 이민호가 직접 배를 타지 않아도 해관 소속 상인들과 사공들이 알아서 할 수 있었다. 명나라 항구에서 무역을 할 때도 이민호는 첫 기항 때만 참가하고 나머지는 왕명명을 비롯해 다른 이들에게 맡겼다.
필리핀이나 말래카 혹은 그 이상으로 뻗는 남방 노선 개척이 필요했으나 새로 고용된 사공들이 범선과 외륜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사실 범선을 무역선으로 사용하려면 계절풍을 이용해야 해서 연간 단위가 필요해 이미 풍향과 관계없이 움직이는 외륜선을 사용하는 이민호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위해서는 크고 높은 서양 범선이 반드시 필요해서 운용하기로 했다. 사실 이민호에게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외륜선 제작비보다 싼 맛에 샀다. 척당 일만 에스쿠도라면 엄청나게 비싸지만 옥 도자기 원가로 따지면 인건비에 가마 유지비, 석탄 값까지 합해도 외륜선에 딸린 단정 한 척 값도 안 됐다.
이민호가 국왕 집무실에서 류큐왕국 상인들과 만나고 있었다. 상인들은 사람 키를 넘는 묘목을 심은 화분을 조심스레 이민호 앞에 놓았다.
“이것이 후추, 이건 정향, 이건 육두구. 그리고 가배 세 가지 품종.”
“예. 가배는 각각 낮은 곳과 높은 곳에서 키우는 품종이 다릅니다.”
가배는 커피를 음차한 말이다. 이민호는 향신료보다 커피에 더 관심을 가졌다. 운남성이나 대만 동부처럼 열대나 아열대 고산지대는 차와 커피를 생산하기에 적지였다. 햇볕을 많이 받으면서도 덥지 않아야 잘 자라는 식물이 커피와 차였다.
“머나먼 뱃길에 물도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여기까지 잘 살려왔구려. 정말 수고했소. 약속대로 백은 3만 냥을 오늘 지급하고 쌀 2만 석을 보름 안으로 유구국에 보내겠소. 외륜선 다섯 척씩 두 번 갈 테니 놀라지 말라고 전하시오.”
“감사합니다, 국왕전하. 예전부터 귀한 분이실 줄 알았습니다.”
“내가 고산국 왕이라는 사실은 유구국 국왕전하와 그대만 알고 계시오.”
“명심하겠습니다.”
류큐왕국의 왕립 상선대는 어느덧 이민호의 손발이 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왕립 상선대 범선 두 척이 거의 1년에 걸친 항해 끝에 몰루쿠 제도에 가서 여러 가지 향신료의 꺾꽂이 묘목을 구해왔다. 몇 년 안에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의 몰루쿠 제도에 진출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습관처럼 국왕 집무실에서 유구국 상인들을 만난 이민호는 해중국 사신이 아니라 고산국 왕인 것이 들켜버렸다. 지금까지는 쉽게 유구국에 갔었는데 앞으로는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았다.
“유구국에서도 잘 자랄 것 같은데 키워보지 않겠소?”
“향신료는 몰루쿠 같은 산지에서 워낙 싸게 파니 키울 의욕이 안 납니다. 무역항인 말래카에서도 아주 싸게 팝니다.”
동남아 열대 지방에서 후추 생산량은 매우 많은 편이었다. 향신료 제도라는 이름이 붙은 몰루쿠가 아니라 교역 중심지인 말래카나 인도에서도 후추의 가격은 매우 쌌다.
그러나 배에 싣고 일단 유럽에 가져가기만 가면 단번에 100배 이상으로 가격이 뛰어올랐다. 이 시대에 후추를 수입하려면 무역 경로 중간에 인도와 아라비아, 오스만제국과 베네치아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비싼 가격이 유지될 수 있었다. 바로 이 향신료 때문에 1600년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만들어 동남아시아로 몰려들게 된다. 물론 그 전에 포르투갈이 이미 향신료 무역을 시작했고 곧 네덜란드 상선들이 몰려온다.
고려 왕조 때는 무역을 해서 후추 가격이 싼 편이었고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한 원나라 보물선에서도 후추가 발견됐다. 조선 초기에 유구국에서 후추 300근을 조선 왕실에 진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이 무역을 줄이자 조선에서 후추 가격이 급등했다. <징비록>에 나오듯 왜승 현소가 동평관 연회 때 후추를 던지자 관리, 악공, 기생들이 주우려고 난장판을 벌였다는 기사가 있을 만큼 조선 중기에는 후추 가격이 비쌌다.
“일단 고산국에서 키워보겠소. 여기서 잘 자라면 유구국에서도 키워보시오. 말래카에 가면 싸게 살 수 있지만 조선이나 일본에 가서 팔면 비쌀 것 아니오? 나는 유구국에서 생산할 상품작물을 권하고 있는 것이오.”
“그건 그렇습니다만. 조선에는 무역 허가가 안 나오니까 판매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은 남만 상인들 때문에 후추 가격이 너무 쌉니다. 광저우에서도 마찬가지로 남만 상인들이 향료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이든 류큐 상인들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유구국은 지난 세기에 남만 상인들 덕택에 국운이 융성했다가 본격적인 경쟁에서 밀린 다음부터 아예 몰락하다시피 했다. 지금은 이민호가 시키는 일을 하면서 부족한 쌀을 수입할 수 있었다. 물소뿔을 해중국에 대량 납품하면서 유구국의 경기가 점차 살아나고 있었다.
“더운 곳에 가셨으니 이번에는 추운 곳에 한 번 가지 않겠소?”
“어떤 일이든 시켜만 주십시오. 곧 여름이 올 테니 저희들도 추운 곳에 가는 게 낫겠습니다.”
“이번에도 좀 멀어요. 해도와 항해도구를 빌려주고 사용방법을 가르쳐줄 테니 초여름에 출발했다가 북서풍을 받아 늦가을에 돌아오면 될 거요. 바로 이곳이오. 아이누들의 섬이며 일본에서는 에조치라고 부른다오.”
이민호가 해도에서 가리킨 곳은 홋카이도였다. 아직 일본 영토가 되려면 한참 멀었고, 섬 남쪽 끝에 자그마한 영지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아직 마쓰마에로 성을 바꾸지 않은 가키자키 요시히로가 쌀이 나지 않아 석고 수가 없는 영주로서 그 지역을 지키고 있었다.
이민호는 가키자키가 상경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에조와의 무역 독점권을 인정받는 것을 방해할 목적으로 미리 움직였다. 더 늦을 경우 홋카이도 전체에 대해 일본이 영토권을 주장할 우려가 있었다.
“우와! 이렇게 먼 곳입니까?”
“말래카와 몰루쿠를 보시오. 여기에 비하면 거리 자체는 짧아요. 다만 일본 땅에 표류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거요.”
“예. 유구국은 만만한 상인의 나라로 인식돼서 조선이나 일본에 표착했다가 화물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류큐 상인들이나 왕족을 포함한 사신단이 조선에 무역하러 왔다가 왜인으로 오인되어 몰살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제주도에서는 알면서도 류큐인들을 왜인으로 몰아 죽이고 화물을 빼앗았다. 이 시대에는 아직 아니지만 이런 사건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제주도민이 류큐에 표류할 경우 보복할까 겁나서 제주도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으로 위장해야 될 정도였다.
“외람된 말씀이오나 고산국에서 직접 배를 보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야 국왕전하께서 계속 일을 시켜주시니 좋습니다만, 윤선의 속도나 항해거리가 대단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윤선은 아직 연안 항해밖에 못해요. 소가 먹을 꼴을 배에 실어야 하니 잘해야 열흘이 한계요. 이것은 고산국과 해중국의 국가비밀이요.”
앞으로 유채꽃과 사탕수수를 대량 재배해 바이오 디젤 연료를 뽑아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이민호는 얼마 전부터 내연기관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금속가공 기술이 떨어지고 윤활유 문제가 있어서 빠른 시일 내에 외륜선에 엔진을 장착하기는 어려웠다.
“그, 그렇습니까?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농담이오. 조금만 생각해봐도 다 알만한 사실이니까요. 이 큰 섬에 소총 100정과 화약, 철제 무기와 여러 가지 농기구들을 가져가고, 그곳 바다에서 울퉁불퉁한 해삼을 구해오시오. 국왕전하께 국서를 써드릴 테니 총과 무기, 농기구는 유구국에서 만드시오. 선금으로 백은 2만 냥과 정철 이천 근, 화약 오백 근을 내주겠소. 성공하면 3만 냥을 추가로 지급하겠소.”
이민호는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류큐왕국의 공업생산력을 키워주었다. 그런데 화약 오백 근이라면 일본 처녀를 500명 넘게 살 수 있는 분량이었다. 요즘 이민호의 머릿속에 태국의 닭 본위제처럼 처녀 본위제가 자리 잡아 뭐든지 처녀 숫자로 계산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이 일을 완수하겠습니다. 그런데 총과 화약은 누구에게 줘야 합니까?”
“바로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오. 말이 통하지 않을 그 섬의 원주민들에게 거의 공짜로 넘기고 쏘는 방법을 가르쳐주시오. 곰 가죽 한 장에 총 두 정, 녹용 하나에 철제 무기나 농기구 다섯, 이런 식으로 싸게 파시오. 그 섬 남쪽에 일본인들이 소수 살고 있으니 원주민들이 그들과 싸우게 할 요량이오.”
아이누족의 물건과 교환하고 싶어도 가죽 외에는 살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만약 고산국에서 병력을 파견해 일본과 싸우게 할 경우 장기간의 원정이 되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공짜로 총과 철제 도구를 나눠주고 아이누족이 일본인들과 싸우게 하는 것이 훨씬 싸게 들었다.
유사 이래 도래인 계열의 일본인들에게 계속해서 땅을 빼앗긴 아이누족들은 동북지방도 내주고 결국 홋카이도로 밀려났다. 아이누족들은 일본인들과 교역을 하면서도 상시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1457년 동부 족장 코샤마인이 일으킨 봉기가 비록 실패했으나 100년 가까이 반란이 지속됐고 지금도 기회만 생기면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제철 기술이 없는 아이누족들은 일본 무사단에게 항상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해삼을 살려오는 방법도 고민해야겠습니다. 물에 사는 생물들이 다 그렇듯 고인 물에서는 금방 죽을 것 같습니다.”
“그물에 넣어 배 뒤에 끌고 오면 될 거요. 굶어죽지 않도록 가끔 배에 끌어올려서 물고기 가루를 조금씩 주시오.”
“아하! 그런 방법이 있군요.”
“돌아올 때는 고산국이 아닌 해중국으로 입항하시오. 반드시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나 겨울에 입항해야 합니다. 해관 관리에게 말하면 내가 하루 이내에 찾아가겠소.”
이민호는 돌기해삼을 원산 이북의 찬 바다에서 양식할 계획이었다. 아이누 섬에서 바로 원산으로 가면 훨씬 빠르겠지만 조선에 류큐왕국 배가 무역을 위해 함부로 접근했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니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