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7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
15. 전쟁준비에 광분하는 사람들
올해는 만력 19년, 선조 24년, 서기로 1591년인 신묘년이었다. 임진왜란 1년 전에 해당하는 해였다.
그리고 조선 고추와 산동에서 씨앗을 받아와 궁궐 텃밭에 심은 통배추, 고산국 염전에서 나온 소금을 재제염해서 만든 고운 소금으로 김치를 처음으로 담가 먹은 역사적인 해였다. 이민호는 고산국 궁궐의 수랏간에 직접 행차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젓가락을 집었다. 고춧가루로 벌겋게 버무린 배춧잎을 한 입에 물고 씹으니 눈물이 쏟아졌다.
바로 이 맛이었다. 매워서가 아니라 그 동안 천방지축 사방을 싸돌아다니면서 해온 일이 드디어 보상을 받은 것 같아서 흘린 기쁨의 눈물이었다.
“아! 살 것 같다.”
“그렇게 맛있으세요, 전하? 꺄악!”
배추에 고춧가루를 버무리던 최 선생이 새빨개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다가 지옥을 맛보았다. 입에 매운 고춧가루가 잔뜩 묻은 최 선생이 맵다고 난리를 피웠다.
아직 겉절이 수준이었지만 젓갈과 몇 가지 양념을 더했으니 훌륭한 배추김치가 만들어질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이민호는 깍두기, 열무김치, 부추김치, 갓김치도 조만간 먹을 수 있겠다며 침을 꼴깍 삼켰다.
“배추에 젓갈, 고춧가루와 소금을 쏟아 붓고 파와 마늘과 생강을 양념으로 넣는 것까지는 다 됐어요. 이제 천천히 숙성시켜 가면서 두고두고 먹는다는 거죠? 정말 비싼 음식이군요.”
“조만간 모든 백성들이 김치를 반찬으로 만들어먹을 수 있을 거요.”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최 선생은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혜진이 없는 이곳 고산국에서 이민호의 말 겨우 몇 마디를 듣고 비슷하게 만들어내는 훌륭한 재주를 가졌다. 몰랐는데 최 선생의 부친은 해관에서 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최 선생은 이민호가 북경에 간 사이 미카를 보좌하면서도 교사들을 단기간에 양성하고 마을마다 초등학교를 세우는 일을 성공시켰다. 앞으로 몇 년 동안 방학 때마다 교사들 위주로 추가 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그 외에도 조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건너와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나머지 김치는 갈라티아 출신 백인 궁녀들에게 맡기고 미카와 최 선생이 손을 씻고 이민호를 따랐다. 이민호는 접시에 겉절이를 담아 밥도 없이 으적으적 먹으면서 집무실을 향해 걸었다.
“전하! 농업과 어업뿐만 아니라 요리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좋긴 한데, 공부할 과목이 늘어나면 학생들이 싫어해요. 자수와 요리, 간단한 목공 같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합해서 가정생활이라는 과목을 만드는 게 어때요?”
“그게 좋겠습니다. 역시 전하께서는 훌륭한 혜안을 갖고 계세요.”
국왕 집무실에 들어선 이민호가 의자에 앉고 미카와 최 선생이 건너편에 앉았다. 이민호가 보고를 듣거나 대신들과 회의를 하는 곳은 바로 이 탁자였다.
고산국에 돌아오자마자 여송 출신 국왕은 상왕으로 물러앉았고 이민호가 옥좌를 차지했다. 그러나 즉위식 같은 것은 없었다. 정치적 선전효과를 기대하고 즉위식과 축제를 열 수도 있겠지만 고산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민호를 진짜 왕으로 알고 있었기에 의미가 없었다.
최 선생이 눈이 나빠 고생하기에 이민호가 유리를 깎아 안경을 만들어주었다. 최 선생은 워낙 엄격한 선생 인상이라 안경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안경과 색안경도 무역상품 목록에 올랐다.
안경 쓴 여선생이란 이미지가 떠올라 이민호가 궁녀들을 시켜 흰 블라우스와 검은 색 스커트를 만들어 보냈다. 그러나 최 선생은 끝내 입지 않았다. 말로는 국왕이 하사하신 옷이라 보관만 하겠다는데, 꽉 조이는 치마를 통해 몸매가 훤히 드러나서 거부하는 것 같았다.
“주인님! 염전은 도성 부근보다는 멀리 남쪽에 만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남쪽으로 갈수록 햇빛이 더 많이 들고 날씨가 좋으니까 소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을 거여요. 남부 순행대가 탐사를 마친 다음 작성한 보고서를 읽어 보니까 남서쪽 끝에 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어요. 근처에 항구로 쓰기 적당한 곳도 발견했어요.”
이민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해온 일들을 미카가 보고했다. 두 달 사이에 열심히 배웠는지 예전보다 조선말이 훨씬 많이 늘었다.
이민호는 격식 따지지 말고 말을 편하게 하라고 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쉽게 따르기 어려운 명령이었고, 미카나 최 선생, 그리고 다른 신하들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그래? 배로 가면 왕복 이틀이면 되니까 운송은 문제가 아니야. 아니면 남방으로 무역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배가 염전에 들러서 소금을 실어오면 되겠다.”
이민호는 대만 섬 남부에 순수 국내용 염전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 시대에 쌀도 부피가 커서 무역하기 쉽지 않아 값이 더 싼 소금은 동아시아에서 무역 품목으로 그리 인기가 없었다. 요즘에는 세계 곳곳에서 암염이나 자염이 생산되는 탓에 고조선이나 페니키아처럼 소금무역으로 부를 쌓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그리고 명나라는 소금을 전매제 품목에 포함시켰기 때문에 전쟁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명나라와 소금 무역을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동남아시아는 수천 년 전부터 천일염을 만든 곳이었다. 조선은 이민호에 의해 곳곳에 염전이 생겼다. 결국 일본 외에는 소금을 팔 곳이 없었다.
일본에 소금을 팔아 구리를 사면 좋겠는데 구리 산출량이 무한한 것도 아니었다. 여차하면 처녀로 대금을 지급하는 곳이 일본이라 소금무역을 포기하고 고산국 내수용으로만 소금을 생산하기로 했다.
“전하! 남쪽 지방에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를 하나 건설하는 게 좋겠어요. 남부 지방에도 교역과 산업의 중심이 될 곳이 필요해요.”
“흐음. 궁궐이 너무 북쪽에 치우쳐 있으니 그 말이 맞소. 장기적으로 섬 중부 서쪽 해안에도 도시를 만들어야겠소. 항구 바깥에 요새를 세우고 군사를 파견해야 하니 인구가 적은 지금은 도시를 새로 건설하긴 어렵다고 보오.”
“하지만 주인님. 도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외부 인구를 유입하는 효과도 있어요.”
“그것도 그렇군. 내일 아침에 대신들과 자세히 상의해 보자. 최 선생이 조정회의를 준비해주시오.”
“예, 전하.”
사고의 폭이 넓은 최 선생은 미카를 돕다가 이제는 국왕 비서실장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고산국에서 중요한 역할은 다 여자가 맡은 것 같았다. 총괄은 미카, 교육은 최 선생, 무역은 왕명명이 관할하고 있었다. 양식업은 네이가 관리하고 호위는 호닌과 굴마훈이 맡았으니 이민호만 빼면 거의 여인왕국이었다.
그러나 계복이 군권을 총괄하고 해관에서 일하는 관리들, 상인과 사공들은 죄다 남자였다. 이민호가 매일 같이 만나기는 싫은 인간들이었다. 여자들은 왕명명 빼고 궁궐 안에서 일하고, 남자들은 다 밖에서 일하니 남자로서 궁궐에 혼자 남은 이민호는 흡족했다.
2월 중순에 해동상단 대방이 고산국 궁궐에 보고하러 왔다. 이제 황금으로 만든 12지신상을 내수사에 바치는 것도 그가 할 일이었다. 상계에서 오래 일한 탓에 접대 솜씨도 좋아 내수사 전수가 흡족해했다. 돈을 적게 들이고도 고객을 만족시키는 능력으로 따지면 이민호보다 훨씬 고수였다.
“동지사 상사가 역관 강세영에게 서장을 들려서 먼저 조정으로 보냈습니다. 상사의 서장 등본을 입수했습니다.”
“어디 봅시다. 불만이 많겠죠?”
이민호는 북경에서 옥하관을 고산국 사신단이 차지한 것을 두고 조정에서 말이 많을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동지사 정사의 서장에는 공식 보고만 잔뜩 기록돼 있었다.
읽어보니 주로 사행 일정에 대한 기록이 이어지다가 황제를 알현하고 표문과 자문, 방물을 무사히 헌납했다는 일반적인 간략한 보고서였다. 그러나 명나라와 조선에 공통적으로 예민한 문제인 황태자 책봉 건에 대해서는 아주 상세하게 보고했다.
<중국 조정에는 별로 긴요한 기별이 없습니다. 황제는 3일, 6일, 9일의 시조(視朝)를 모두 생략했습니다. 중로에서 신들이 듣건대 내년에 있을 황세자 책봉에 대한 성지(聖旨)가 이미 있었다고 하였으므로 북경에 도착하여 다시 더 알아보니 객사의 부사, 서반(序班), 예부 서리(禮部胥吏) 등이 모두 ‘내년에 제반 일을 준비하고 내후년 봄에 책봉하라는 성지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통보(通報)를 얻어 보니 지난 11월 5일 내합(內閤)에서 성유(聖諭)를 접출(接出)하였는데 ‘태자 책봉의 일을 내년에 각 해당 관서에 전하여 돈과 양식을 준비토록 할 것이며 내후년 봄에 책봉을 거행하도록 하라. 각 관서가 소요(騷擾)하여 더욱 지연되는 것을 다시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허실을 알아보기 위하여 통사 이춘란(李春蘭)을 시켜 제독 주사(提督主事)에게 ‘듣건대 조정에 책봉 대례(冊封大禮)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배신(陪臣)이 이곳에 왔으니 알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을 분명히 알고 가서 우리 국왕에게 보고하게 하여 달라.’ 하였더니, 대답하기를 ‘그러한 의견은 있으나 성지(聖旨)가 과연 있었는지는 나는 아직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살피건대 자못 숨기려는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은 전부터 있었지만 사실 여부를 모르는 이상 경솔하게 장계를 드리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지금은 성유(聖諭)와 통보에 분명히 쓰여 있었는데 과연 거행할는지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이 중대하므로 우선 들은 대로 써서 치계합니다. 또 이번에 군관 부장(軍官部長) 최철곤이 중도에서 병을 얻어 이달 8일에 황도에서 사망했습니다.>
“흐음. 잘 읽었소. 역시 조선 선비들이 기록 정신이 투철해요.”
이민호는 만력제가 가까운 시일 내에 태자 책봉을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다. 조선에서 임진왜란 초기에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는데 명나라에서 임진왜란이 끝날 때까지 승인을 해주지 않은 것은 당시 명나라의 태자 책봉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련님께서도 궁궐에 사관을 두시지 그러십니까?”
“기록하는 부서는 필요하지만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사관을 뒀다간 사초에 무슨 소리를 쓸지 두렵소.”
어쨌든 옥하관을 고산국에게 빼앗긴 이야기는 없었다. 나중에 사신단이 돌아온 다음에나 그 문제가 불거질지도 몰랐다. 아니면 객사를 배정해주는 것은 전적으로 명나라 예부의 일이니 아예 아무 말도 안 나올 수도 있었다. 괜히 이민호 혼자 걱정하면서 노심초사한 것 같아 씁쓸했다.
“명나라 황제가 태정 중이라는데 대방도 알고 있지 않았소?”
“그런 소문이 잠깐 돌긴 했는데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어 보고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황제가 6부 조직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듣긴 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 같으면 확인하지 못했더라도 보고하셨어야죠.”
“죄송합니다. 황제가 조선에서 보낸 사신단에게 알현을 허락하고 매번 조선에 칙서를 보내고 있습니다. 조선에서 보기에 황제가 조회만 참가하지 않았다 뿐이지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설혹 그런 보고가 들어갔다 해도 조정의 대신들도 상황을 잘 모르거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행이나 도련님의 사행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문제라서 더 확인을 한 다음 보고하려 했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사죄드립니다.”
“아니오. 정보를 알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상인의 의무 아니오? 하지만 여기서는 딱히 이용할 방법이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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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이 이상하네요. 다시 올릴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