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85화 (34/1,000)

00085   14. 입조  =========================================================================

“옆방을 치워놨으니 이만 쉬시겠소?”

“국왕전하. 제가 비록 초혼은 아니지만 그래도 첫날밤이에요. 아녀자를 불안하게 만들지 말아주시길 당부드려요.”

공주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공주가 소박 맞을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아 너무 불쌍해서 이민호는 공주를 억지로 옆 방으로 보내지 못했다.

“좋소. 그럼 이제 잡시다. 그런데 공주는 지금 얼굴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해서 피부에 좋지 않을 것 같소. 그러니 침소에 들기 전에 세안을 하지 않겠소? 첫날이니 공주의 진짜 얼굴을 영원히 기억해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오.”

현대 남자들은 여자들의 화장을 둔갑술 내지 분장술의 일종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공주의 화장은 너무 진한 감이 있었다. 두꺼운 화장층을 떼어내면 수염을 깎은 남자 얼굴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세안할 물을 가져오너라.”

잠시 고민하던 공주가 이민호의 무례한 요구를 들어주었다. 시녀들이 참담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가서 따뜻한 물을 퍼오고 욕탕에서 세숫대야를 가져왔다.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공주가 고개를 드는 순간 이민호가 얼어붙었다.

“맨 얼굴을 처음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워요. 비록 박색이라도 내치지만 말아주세요, 전하.”

“님 박색 절대 아님. 최강 미인임.”

이민호의 혀가 굳고 말투도 이상해졌다. 즉시 신방이 차려지고 호위 두 명과 시녀 네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민호가 공주의 옷을 하나씩 벗겼다. 이민호는 조심스럽게 공주의 몸에서 속옷을 하나씩 떼어낼 때마다 조각품 감상하듯 몸을 샅샅이 살폈다. 속옷 종류가 너무 많아 시간이 한참 걸렸으나, 드디어 위아래로 얇고 폭이 넓은 천 두 장만 남았다.

“제가 후원에서 나비나 다람쥐를 따라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살이 많이 붙지 않았어요. 아직 아랫배가 안 나온 것은 정말 죄송해요, 전하. 앞으로 많이 먹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서 살을 찌우겠어요.”

“그게 엘프임. 아니, 지금 몸매가 딱 좋습니다. 아름다워요. 공주는 걱정 마시고 항상 이대로 몸매를 유지하시오. 살 찌울 필요가 전혀 없어요. 후원에서 얼마든지 뛰어 놀아도 좋소. 아니,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뛰어 노시오. 이건 어명이오.”

“어명을 받잡겠습니다, 전하.”

굴마훈이 손수건을 내밀어 이민호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아주었다. 그래서 공주와 시녀들은 보통 명나라 남자들과 다른 이민호의 특이한 취향을 알아보고 조금 안도하는 눈치였다.

공주는 한족 여인답게 하체가 길고 유방은 적당한 편이었는데 전체적으로 가냘픈 체구였다. 일본 무사가문 여자인 네이가 가슴은 크고 유아체형인 것과 정반대였다. 가느다란 발목에 비해 의외로 살짝 근육이 붙은 공주의 허벅지를 보던 이민호의 눈이 이글거렸다.

공주의 얼굴은 이민호가 기억하는 한국의 어느 미녀 여배우와 비슷했다. 눈과 코, 그리고 입술이 예쁘고 볼과 턱선, 귀와 목선도 아름다웠다. 눈길이 닿는 어느 부위라도 다 예쁘고 아름다웠다. 다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서 미모를 깎아먹었다. 피부는 투명하게 하얗고 이민호가 손으로 만져 보니 부드러우면서도 짝짝 달라붙었다.

공주의 발은 아주 작았는데 전족을 해서 굽히거나 억지로 성장을 멈추게 한 것은 아니었다. 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다른 방법으로 발 크기를 적당히 줄이는 황실 특유의 비법이 있는 것으로 이민호는 이해했다.

공주를 침대에 눕힌 이민호가 작고 예쁜 공주의 발을 입 안에 넣어보니 발목까지 쏙 다 들어갔다. 양귀비의 고사가 생각나는 순간이었고, 그 순간에 굴마훈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주인님! 공주전하 발이 예쁘다고 해서 먹으면 안 돼요!”

“아! 나도 모르게.”

이민호가 아직 어려서 무예를 수련할 때 산 속에서 말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숲과 계곡을 돌아다니면서 말을 찾던 이민호는 신선들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훈수를 하게 되었다. 훈수로 인해 내기 바둑에서 진 신선이 노해서 이민호는 신선의 오두막에 붙잡혀서 7년 동안 밥과 빨래를 해주었다.

그 동안 이민호는 신선들의 지도 아래 무예와 학문을 익혔다. 그러다가 신선이 때가 됐다면서 쫓아냈는데, 숲에서 나가니 7년 전에 잃어버렸던 바로 그 말이 투레질을 하며 이민호에게 다가왔다.

이민호는 그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신기하게도 바깥세상에서는 아직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마치 꿈을 꾼 듯했다. 그래서 이민호의 나이는 현재 스무 살이 넘었다. 정말이다.

공주는 처음에 눈을 질끈 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민호는 머리 위까지 이불을 덮고 30분 넘게 공주의 온몸을 애무했다. 공주의 부끄러움도 없애고 몸도 충분히 준비시킨 다음 드디어 합궁을 시도했다.

“읍! 흐읍!”

공주는 왕명명이 장담한 것처럼 역시 처녀였고, 몸이 유달리 좁아 이민호도 힘들었다. 공주는 이민호의 몸 아래에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비명과 고통을 참아냈다. 안 아프고 부드럽게 해주고 싶어도 처음에는 어쩔 수 없었다.

이민호는 공주의 몸을 소중히 다뤄서 공주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주도록 노력했다. 처음에 겁에 질렸다가 중간에 너무 아파서 원망하는 표정을 짓던 공주가 나중에는 이민호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민호는 공주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입을 맞췄다. 그 뒤부터 고통이 많이 줄어든 듯해서 이민호도 안심했다.

끝나고 나서 이민호가 다시 10분 정도 공주에게 후희를 해주었다. 혀로 핥아보면 공주의 몸이 달짝지근하게 느껴졌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내내 옆에서 대기하던 시녀가 다가와 흰색 비단 수건으로 공주의 하체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시녀는 시뻘건 자국을 일부러 이민호에게 보이며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다른 시녀가 젖은 수건과 마른 수건을 교대로 쓰며 깔끔하게 뒤처리를 다했다.

“알았으니까 그거 좀 빨리 치워. 공주 놀라겠다.”

피에 물든 수건을 보고 기절할까봐 이민호가 얼른 공주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공주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 안심했는지 표정이 많이 풀려 더 예뻐 보였다. 공주의 작고 둥근 어깨를 이빨 자국이 나지 않도록 살살 깨물었다.

“수고했소, 공주.”

“부드럽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첫 날이라 아플까봐 다시 하지는 못하고 손과 입술로 공주의 온몸을 희롱하다가 꼭 껴안은 채 잠에 빠졌다. 새벽에 깨어보니 공주가 품에 안겨 쌕쌕 작은 숨소리를 내며 편히 자고 있었다. 첫날밤이라는 대사를 무사히 치르고 뿌듯해 하는 표정으로 잠든 공주가 너무 예뻤다. 이민호가 뽀뽀하려다 공주가 잠이 깰 것 같아 꾹 참았다.

이민호는 어쩐지 불행을 당한 여자들만 주변에 모이는 것 같아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를 잃은 혜영과 혜진, 가문을 잃은 미카와 네이, 멸망한 시전부락의 생존자 호닌과 굴마훈에 이어 이번에는 정치 상황에 따라 원치 않는 이혼녀가 된 주상아 공주였다. 과거야 어떻든 지금은 다들 표정이 많이 밝아진 것 같아 이민호는 뿌듯함을 느꼈다.

침대 주변에 시녀들이 앉아 고개만 숙인 채 자고 있었다. 반면에 호닌과 굴마훈은 아예 침대에 올라 편하게 드러누워서 잤다. 호위가 겨우 둘이라 밤낮으로 지키라고 할 수 없어 이민호가 잘 때는 호위들도 재워야 했다. 교대로 쉴 수 있도록 조만간 호위를 대폭 늘릴 예정이었다.

살결과 향이 모두 달짝지근한 공주를 단 하루라도 내버려둘 수 없어 이민호는 매일 같이 안았다. 이렇게 옥하관에서 며칠 동안 공주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예부에서 호출이 왔다. 관복을 차려입고 나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통사 복장을 입은 계복이 계속 헛기침을 하며 재촉해야 했다.

“전하께서 오실 때까지 소녀는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어요.”

“그대 모습을 보고 싶어 관리들을 때려눕히고 뛰어올지도 모르겠소.”

“도련님 얼른 가요. 늦었어요.”

이민호는 회동관으로 가서 예부 우시랑과 사설감 태감을 만났다. 예부는 외교관계의 주무 부처라 우시랑과 만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환관의 대표 부서인 사례감도 아니고 황제의 거둥에 관계되는 천막 등을 담당하는 사설감 태감이 온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명나라는 6부와 환관기구가 서로 견제 또는 협력하면서 정국을 이끌어 나갔다. 황권이 강한 만큼 환관들의 힘이 강했다. 특히 무기와 화약을 제조하는 병장국이 환관의 지휘 하에 있었고 한때는 화약무기를 다루는 병력이 환관의 지휘를 받았을 정도였다.

예부 우시랑은 가만히 있고 사설감 태감이 먼저 제문(題文)를 등서한 사본을 내밀었다.

“참판 각하. 이것은 고산국에서 국왕의 책봉을 청하여 예부에 첩련하여 보낸 주와 신(奏申)입니다. 이것은 예부에서 책봉을 청하는 제문이며 이것은 저 사설감 태감 등이 주청한 제문입니다. 넉 달 만에 받은 성지는 내일 정식으로 도달할 것 같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책봉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이민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어째서 환관들이 나서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관례라는 것은 그 정치체제의 오랜 경험과 여러 정치집단 사이에 합의된 정치 산물이었다. 이해하기보다는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황제가 태정 중이라도 국내 정치가 아니라면 중요한 외교관계 정도는 이렇게 가끔 챙겼다. 이민호가 제문을 읽었다. 미사여구를 제하고, 인용에 인용을 더한 서류형식에서 내용만 뽑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내부 문서라서 그런지 인용은 확실히 하면서도 실제 내용이 무척 간결했다.

‘예부에서 고산국 국왕의 책봉을 청하는 일. 이주에 새로운 작은 나라가 들어서서 원주민들에게 교화를 베푸니 유구국 국왕이 예부에 게첩하고 예부 관리가 확인하여 소문과 사실이 일치한 바, 신 등은 유구국 상씨의 혈족인 고봉명을 국왕에 책봉하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삼가 아뢰어 성지(聖旨)를 청합니다.’

이에 대한 조칙을 어제 예부상서가 봉천문에서 받았는데 내용은 ‘그리 하라. 고봉명을 고산국 국왕으로 책봉하는 것을 준허한다. 다만 휘를 민호로 고친다.’였다.

이민호는 조칙에 자기 이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뭔가 이유를 알고 있는 사설감 태감은 가만히 있고 예부 우시랑이 헛기침을 하며 양해를 구했다.

“국왕의 휘를 바꾸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만, 황상폐하께서 직접 지어주신 휘이니 고산국왕께서 그 휘를 사용하셨으면 좋겠소. 하지만 고산국에도 법례가 있고 사정이 있을 테니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황상폐하께서 성뿐만 아니라 휘까지 사사해주셨으니 저희 국왕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