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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74화 (23/1,000)

00074  13.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  =========================================================================

공사 기간 동안 고산국에서 열대나무와 각종 열대 화초를 실어 날랐다. 온실 한쪽에는 작은 텃밭을 만들어 겨울 동안 수랏상에 올릴 채소를 심도록 했다. 온실 전체와 열대나무의 관리는 사옹원이, 텃밭은 내자시가 관리를 맡았다.

온실이 완공된 다음 왕실 가족들에 이어 종친부에서도 온실에 나들이를 종종 갔다. 겨울에 가봐야 진가가 드러나겠지만 지금은 여름이었다. 아직 불을 때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나오는 사람들은 20척 높이의 열대나무들을 보고 무척 만족하는 것 같았다.

온실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민호가 슬쩍 물었다. 채소가 담긴 소쿠리를 든 내자시 소속 하인인 듯한 남자였다.

“온실에는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소? 열대나무라는데 사실이오?”

“옛사람은 온실의 나무를 말하지 않았는데 위에서 하는 일을 외간에 어찌 알릴 수 있단 말입니까?”

“아이구 두야!”

한무제 때 관원인 공광은 집안사람에게도 조정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황제의 겨울 거처인 온실에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느냐고 누가 물었을 때 공광은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린 것으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그 고사를 조선 임금이 인용한 적이 있었으니, 후원에 장막을 두른 것은 임금의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간원들이 비판했을 때의 연산군이었다.

여름에 너무 더워서 서빙고에서 얼음을 사왔다. 그 얼음을 깨서 집안 여종들을 시켜 동네 사람들에게 얼음물을 나눠주었다. 한여름에 임금이 조정 대신들이나 고령의 노인들, 옥에 갇힌 죄수들에게 얼음을 나눠주는 선행을 흉내 내 여유 있는 양반들이 동네 사람들에게 얼음을 공짜로 베푸는 풍습이 있었다.

이민호는 그저 얼음만 나눠주지 않고 얼음을 깬 물에 미숫가루와 설탕을 넣어 만든 음료를 만들어 동네사람들과 나눠 마셨다. 한직이라도 가끔 중추부에 출근하고 조회에도 참가하니 첨지중추부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신기하다면서 고맙게 받아갔다.

“어? 생원 아니었나요?”

“이번에 한직이긴 하지만 첨지중추부사에 올랐다오.”

“그럼 당상관이잖아요! 꼬마가, 아니, 아직 젊은 선비가 관직이 너무 높은 것 아녀요?”

“누가 누구한테 꼬마래요?”

이민호가 고개를 숙여보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꼬마 아가씨가 있었다. 3년 전에 전라좌수사 심암이 함거에 실려 올 때 길에서 마주친 당돌한 꼬마 아가씨였다.

그 사이 많이 자라서 이민호의 허리께에 머리가 왔다.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서 여종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은 3년 전과 같았다.

“경하드려요. 첨지 영감께서는 뭔가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아악! 그냥 저번처럼 이 생원이라고 부르시오.”

“훗! 아직도 저를 기억하고 있었군요.”

이민호는 거대한 홰나무 고목 아래 그늘에 만들어놓은 의자로 꼬마 아가씨를 안내했다. 그리고 여종을 불러 얼음물을 가져오게 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과 달리 열대 과일을 으깨 만든 시원한 빙수였다. 그렇게 일곱 살 먹은 꼬마 아가씨와 데이트를 했다.

이민호는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 꼬마 아가씨에게 말을 놓지 못하게 됐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계속 양반가 규수로 대하기로 했다.

“후우~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공부만 하고 계세요. 사마시는 이미 통(通)하셨는데 언제 관직에 진출하고 언제 문과를 통해서 도대체 언제 영의정이 되실 건지 한심해요. 벌써 20대 후반에 내일 모레가 서른인데 말이예요.”

“선비에게 관직이 전부는 아니지 않소?”

어린 애들이 무조건 높은 관직을 좋아하는 것은 현대 한국과 같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 꿈이 현실화, 또는 낮아지는 것은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치원 때는 대통령, 초등학교 때는 의사, 과학자를 꿈꾸다 대학 졸업할 때는 취직이 꿈이 된다.

그런데 이 꼬마 아가씨는 조금 달랐다. 나쁜 말로는 지극히 권력지향적이라고 봐야 했다.

“다들 말은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양반들의 속내가 말과 다른 것은 첨지 영감도 아시지 않습니까?”

“큭!”

“왜 웃는 것이오? 내가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이요?”

“아니오. 아가씨가 예뻐서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오.”

“흠! 흠! 보는 눈은 있으시구려.”

그런데 같이 앉아 있어도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나이 차도 나고, 서로 관심사도 달랐다. 빙수를 다 마신 꼬마 아가씨가 일어났다.

“얼음물 잘 마셨어요. 소녀는 연안 김 씨 김 진사의 막내딸이며, 고조부께서는 중종 때 상국을 지내신 나헌 선생이시랍니다.”

뭔가 어려운 말이 쏟아진 것 같은데 김 진사의 막내딸보다는 훨씬 분별력이 높아졌다. 나헌은 영의정 김전의 호였다. 김종직의 문인이었으나 기묘사화 때 조광조 일파를 숙청하면서 사림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인물이었다. 김전의 증조부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김자지였다.

불볕더위가 살짝 꺾이자 이민호는 한성 서소문과 수원, 그리고 전라좌수영과 경상도 남해안 도요지들 사이를 오갔다. 조공품과 무역 상품들이 차근차근 고산국으로 건너갔다.

화순에서 캔 석탄을 소가 끄는 수레에 실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바다를 지나 전라좌수영으로 옮겼다. 일부는 야장들에게 보내 가마의 온도를 높여 철의 품질을 올리게 하고 일부는 이민호가 합성 시험하는데 사용했다.

그러나 화순에서 난 석탄은 유연탄이 아닌 무연탄이라 석탄액화가 되지 않았다. 합성염료를 빼내는 것도 아직은 실패했으나 일단 여러 가지 물질을 분리해냈다. 그러나 정제가 제대로 안 됐는지 분리된 물질이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석탄을 사용하기 어려워지자 이민호는 자연스레 석유로 눈을 돌렸다. 석유의 정제와 분류가 더 쉬운 편이었기 때문이다.

브루나이 세리아 유전은 해안에 위치한 지상유전이라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지만 필리핀을 지나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더 두고 보기로 했다. 여차하면 바그다드에서 도로 포장재로 사용하고 있는 타르라도 수입할 생각이었다.

이민호는 내연기관 연료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고산국의 풍부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바이오 디젤을 써도 되기 때문이다. 식물성 플랑크톤을 배양해서 바이오 디젤 연료를 추출할 수도 있었다. 경제성이 없어서 문제지만. 그러나 석유는 연료로서가 아닌 각종 화학공업의 원료로서 중요해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자원이었다.

북경에 입조하기 위해 출발할 날을 보름쯤 남기고 이민호는 다시 고산국으로 돌아왔다. 조공할 물품과 사행무역에 내놓을 상품, 심지어 사신단 소속 개인들이 팔 사무역용 상품까지 다 준비했다. 입조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얻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입조 때 배 세 척의 입항만 허락됐기에 그 사이 기존 외륜선보다 큰 배를 만들었다. 갈레온과 맞붙더라도 더 높은 곳에서 총을 쏠 수 있도록 선수루와 선미루를 확실히 더 높였다. 좌우 폭에 비해 전후 길이가 늘어나 속도 면에서 유리해졌으나 안정성은 조금 떨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지는 외륜선들을 대, 중, 소 윤선으로 명명했다. 대형 외륜선인 대 윤선에는 배 후방은 물론 좌우에도 바퀴를 달고 황소를 몇 마리 더 태웠다.

그러나 축력만으로는 더 이상 배를 대형화시키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증기기관이나 내연기관을 만들지 않는다면 여기까지가 외륜선의 한계였다. 내연기관과 바이오 연료를 쓰기로 하고 황무지에 유채밭을 조성했다. 사탕수수와 콩과 식물도 바이오 디젤의 좋은 원료였다.

급속히 확장 중인 일본인 마을을 이민호가 시간을 내어 방문했다. 마카오에서 들어온 선교사와 기술자들이 신자들을 지도해 성당의 기초부터 다지고 있었다. 나중에 도시로 확장될 마을에서 성당이 랜드 마크가 될 것을 감안해 이민호는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화약 한 통에 50명 비율로 바뀌어 매춘 노예로 팔려갈 뻔했다가 새로 정착한 일본 처녀들은 임시 조치로 협동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요금도 꾸준히 외륜선 또는 이민호가 고용한 포르투갈 상선에 잔뜩 탄 처녀들이 포구에 쏟아져 들어왔다. 일본인 처녀들은 마을에 거주하는 남자들과 눈이 맞으면 언제든 마을로 옮길 수 있어서 다들 희망을 품고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여기에 대마왕이 나타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일본 여자들의 꿈을 깨뜨렸다. 이민호가 반반한 처녀들 몇을 골라 고산국 궁궐에 보내고, 튼튼한 여자들은 해중국 양식장으로 보냈다. 뽑힌 처녀들이 원할 경우 자매나 친척도 함께 가도록 했다. 궁녀와 양식장 직원들은 일종의 국가 공무원이라 녹봉이 넉넉히 나와서 다들 만족해서 떠났다.

“도련님! 반반한 애들을 어떻게 해보려고요?”

“안 하더라도 주변에 예쁜 꽃이 많으면 좋지. 계복이 너도 마음에 들면 서너 명 골라봐. 원수부에 배치해 주마.”

이민호는 일본인 촌장을 대동해 눈치 봐가면서 적당히 골랐는데, 계복은 여자들을 줄 세운 다음, 마치 쇼윈도에서 상품 고르듯이 적나라하게 손으로 가리켜 가면서 고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계복이 고른 처녀들은 궁궐 앞에 원수부라고 이름 붙인 허름한 기와집에 하녀로 배치됐다.

일본 여자들은 지배자인 사무라이에게 무조건 복종하던 오랜 관습 때문에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처녀들은 오히려 신분상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도련님. 오늘부터 당장 거처를 옮기겠습니다. 궁궐이 좁아서 제가 살기에 좀 불편해서요.”

“미친놈! 건들면 책임져야 하는 건 알지?”

“평생 책임지려고 잘 골랐습니다. 이 처녀들은 이미 도련님의 백성이니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싫다고 하면 건들지 말고 돌려보내!”

“다 좋다는데요?”

이민호는 ‘부러운 놈!’이라는 욕설을 남기고 궁궐로 돌아갔다. 잘못하면 간수군이나 조선 출신 백성들이 일본인 처녀들을 우습게보고 함부로 납치할까봐 이민호는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계복이 물꼬를 튼 덕택에 노총각 간수군들이 일본 여자를 정식 처로 삼아 고산국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퇴직한 간수군들 중에서 군에 남을 자들은 직할군으로 재배치하고 농사짓겠다는 자들에게는 농지를 나누어주었다.

빈자리만큼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에서 대기번호를 받은 자들이 새로 입대해 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퇴직해 정착한 간수군의 가족 일부도 고산국에 들어와 정착했다. 현재 간수군은 천 명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고, 직할군은 500명 선에 달했다. 여진족 청년들은 친위군이라 해서 따로 편제됐다. 이름을 대충 지은 티가 났다.

그 동안 배가 꾸준히 늘어나 해중국과 전라좌수영 노선의 정기편을 사흘에 한 척으로 증편시키고 경상우수영에도 입항하도록 했다. 중형 외륜선인 연락선들이 꾸준히 조선과 대만을 오가며 사람과 물자, 그리고 소식을 실어 날랐다. 전라좌수영의 해동상단 분점에서 고산국의 물자를 받아 한성으로 수송했다.

“안뇽하세요? 제 이름은 파티마임니다. 저는 고산국 싸람입니다. 고향은 오스만 제국임니다. 제 여동생 이름은 아이샤임니다.”

“아주 잘 했어요. 다음에는 카디자가 자기소개를 해볼래요?”

마카오에서 사온 갈라티아 노예 80명은 궁궐과 후원에서 2교대로 근무하면서 조선 처녀에게 조선말을 배우고 있었다. 이 수업에 얼마 전부터 일본 처녀들 20명이 추가됐다.

갈라티아 노예들 중에 남자가 몇 섞여 있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이민호의 착각이었다. 오랫동안 못 먹어서 광대뼈가 돌출된 여자일 뿐이었다. 그러나 고산국에 와서 잘 먹고 살이 붙어서 이제는 제법 여자 모양을 갖췄다.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색목인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금발이나 적발을 처음 보고 놀라는 경우는 없었다. 그리고 명나라 남부 해안과 동남아시아 해역에는 남만인들이 수시로 출몰했다.

조선말 교사는 조선에서 서얼 집안이라 교육을 좀 받은 아가씨가 맡아 댕기머리를 휘날리며 잘 가르치고 있었다. 읽기용 독본을 직접 써서 이민호에게 예쁨 받는 똑똑한 아가씨였다. 이민호는 이 아가씨에게 예국 교육과를 맡길까 생각 중이었다. 그러나 아직 너무 어려서 기다려주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내용추가가 많아졌네요.

오전에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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