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3 13.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 =========================================================================
망나니가 마음껏 칼을 휘두르던 시기가 지나고 나서 이민호가 조선에 조용히 입국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경인년(1590년) 7월이었다. 선비들은 지난 1년 동안 기축옥사로 인해 일어난 참혹한 일들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에 출발한 통신사가 올해 2월에 일본에 입국하고 아직 돌아오지 않아 나라 전체가 뒤숭숭할 때였다. 이민호는 서소문 저택에 틀어박혀 평상시처럼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시절은 벌써 한여름이었다. 이민호는 가끔 유명한 학자들을 찾아가 배우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성균관에 나가서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이민호는 이미 당상관에 오른 탓에 앞으로 문과 과거시험을 볼 자격이 없었다. 문과는 정3품 하계 통훈대부까지만 응시가 가능했다. 그래서 무과 시험을 보려고 사정에 나가서 활쏘기를 연습했다.
분위기가 살벌했던 작년 말에는 고산국에 있던 이민호도 겁을 많이 먹어서 커다란 봉황을 왕실에 바쳤다. 이민호는 작년 하반기에 조선 땅에 발을 딛지도 않았지만, 황소보다 무거운 황금 봉황상이라 임금이 기뻐했다고 나중에 전수를 통해 전해 들었다.
올해 여름에는 임금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거북이를 바쳤다. 임금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십장생에 더 많은 관심을 표했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는 학을 바칠 예정이었다. 십장생 중에서 거북이와 학, 소나무와 사슴, 그리고 불로초까지는 어찌 어찌 황금상으로 만들 수 있겠으나 해, 산, 물, 돌, 구름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갈수록 황금상의 무게가 점점 더해갔으나 왕실에서 거북이와 학, 봉황을 녹여서 팔 리가 없었다. 그리고 황금 황소는 처음 바친 물건이니 더 애착을 가질 것 같았다. 이민호는 다음에는 어떤 황금상을 제작해야 하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냥 쉽게 생각해서 12지에 해당하는 동물을 만들어 매년 2개씩 바친다면 6년은 훌쩍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비슷한 크기의 쥐와 황소, 호랑이와 토끼라니, 조금 어이가 없다.”
“네? 그런 커다란 쥐나 토끼를 만들면 너무 징그러울 것 같아요. 동물 모습이 아닌 신장상처럼 만드는 게 어떨까요?”
“오! 그 방법이 있구나. 남는 황금은 기단 뒤로 돌리면 되겠다. 혜영이 이리 와.”
시원한 물이 담긴 욕조에 누운 이민호에게 속치마만 입은 혜진이 안겨왔다. 이민호가 혜영을 껴안았다. 이민호가 신경 써서 먹여서 혜영과 혜진은 같은 나이 처녀들에 비해 발육이 무척 좋았다.
이민호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며 피조물인 혜영의 크고 하얀 가슴을 만졌다. 하얗게 반짝이는 피부가 워낙 좋아 이민호는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살짝 베어 물었다. 항상 그랬듯이 혜영이 바들바들 떨었다.
“그런데 혜영이는 언제 고산국에 갈 거야? 거기서 여왕 노릇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야.”
“여기서 도련님을 도와드릴 일도 많아요. 그리고 첫 아이는 고향인 이곳 조선에서 낳고 싶어요.”
혜영은 혜진과 달리 멀리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오늘부터 준비해야겠네.”
“뭘요? 꺅!”
이민호가 벌떡 일어서자 이미 벌떡 일어선 그것이 혜영의 눈앞에서 덜렁거렸다. 혜영은 다리를 오므리고 두 팔을 당겨 가슴을 감쌌다. 숫처녀로서 본능적인 행동이겠지만 남편 될 사람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하니 이민호는 조금 섭섭함을 느꼈다.
이민호는 욕조 주변에 줄줄이 늘어선 촛대마다 양초를 꽂았다. 그리고 이민호의 집에서만 쓰는 성냥을 켜서 양초 심지에 차례로 불을 붙였다. 촛불이 어른거리면서 물에 영롱하게 비쳐 묘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민호는 혜영의 목을 당겨 길게 입을 맞추고 혜영의 하얀 몸을 더듬어갔다. 기쁨과 부끄러움이 혜영의 표정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눈을 꼭 감은 혜영의 숨소리가 점점 가빠졌다.
욕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혜영의 몸을 닦아준 이민호는 알몸으로 침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민호에게 손목을 잡힌 혜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왔다.
금침에 눕히자 혜영이 실눈을 뜬 채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민호가 눈부시게 빛나는 혜영의 몸 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이 단계에 온 적은 많았지만 그 이상은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혜영, 너는 내 반려야. 평생, 영원히 내 반쪽이야. 앞으로 둘이 함께 오래 오래 살자. 나 혼자 남기고 먼저 가면 절대 안 돼. 알았지?”
“도련님, 제 삶의 의미이며 제 영혼의 주인이시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민호는 민망하고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고백했고, 혜영도 평소 생각했던 말을 용기를 내어 입 밖으로 꺼냈다. 혜영의 목소리가 무척 떨렸다. 다시 입 맞추는 순간 혜영의 눈자위에서 시작된 이슬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혜영은 도망가지 않았고 웅크리지도 않았다. 오래도록 기다렸던 그 순간을 기쁘게 맞이했을 뿐이었다. 이민호는 혜영을 조심조심 소중하게 안았다.
다음 날 아침 식사 때 여동생 혜진이 두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이민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잠시 후 고개를 숙여 가슴을 살피고 언니 것과 비교한 다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민호는 그 모습이 너무 웃겼지만 겉으로 소리 내어 웃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이민호가 무게를 잡고 있는 동안 혜영이 혜진의 손을 잡았다.
“혜진아.”
“몰라!”
토라진 동생을 언니가 충분히 달랠 수 있겠지만 이민호는 자기 때문에 일어난 분쟁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혜진을 침실로 데려가 언니에 비해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혜진이 아직도 토라진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화는 이미 풀린 것 같았다.
“혜진이는 내년에. 내 마음 알지?”
“칫! 도련님 마음은 모르겠고 도련님 것은 잘 느껴져요.”
이민호가 혜진이에게 혼 구멍을 내줄려다가 결심한 것이 있어서 꾹 참았다. 그 대신 이곳저곳 많이 만졌다. 지금까지 둘은 직접적인 행위 빼곤 다 하고 있었지만 다만 표현할 수 없을 뿐이었다.
고산국에서 근무하는 간수군들이 한 달마다 꾸준히 교대하자 사병 무력집단인 간수군에 대한 세간의 의혹과 우려가 조금씩 사그라졌다. 말 많은 양반들도 원래 나라에서 군사를 파견해 백성들을 지켜줘야 하는 것을 이민호가 돈을 들여 운영하는 것뿐이라고 인정했다.
선착장에 도착하는 순간 무장을 해제하고 심지어 군복도 벗고 내리는 경우가 많아 간수군들이 길에 돌아다녀도 거의 군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해안 섬에 흔한 마장을 경비하는 간수군들과 전혀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일반 백성들과 싸우거나 민폐를 끼치면 즉각 파면하기 때문에 군기도 훌륭하게 유지되는 편이었다.
간수군과 그 가족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아졌다. 고산국에서 원주민과의 전투가 한 번, 해적 토벌이 한 번 있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확실히 치안이 안정된 탓이다. 지금은 일은 편한 대신 보수를 많이 받아 좋은 일거리로 손 꼽혔다. 위험한 일도 없고 훈련이나 근무도 편해서 간수군들은 경상우수영과 전라좌수영에서 고산국까지 왕복하는 이삼일 간의 승선기간을 가장 힘들어했다.
고산국이 안정되면서 단점에 비해 장점이 많아지고 이주 희망자도 조금씩 늘어났다. 특히 봄에는 소작지를 지주에게 빼앗긴 농민들이 이주를 신청하는 경우가 확 늘었다. 해동상단에서는 꾸준히 노비 가족을 사서 대만으로 보냈다.
“고산군의 세금은 지난해에 이미 내지 않았소? 새로 개간한 땅인데도 몇 년 동안 면세 혜택을 못 줘서 미안하거늘, 또 바친다는 말이오?”
“그건 작년 가을 농사고 이번은 올해 봄 농사 전세입니다, 대감. 그 사이 개간한 면적이 늘어나 소출도 늘었습니다.”
“이 첨지는 정말 대단한 충신이오. 그런데 고산군이 따뜻한 곳이라더니 과연 쌀농사를 일 년에 두 번이나 짓고 농지 면적에 비해 백미 생산량이 높구려.”
간수군들이 조선에 수시로 들락거려서 고산국의 웬만한 정보는 호조에서 이미 입수했기에 호조판서가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고산국, 조선에서 칭할 때는 고산군(高山郡)에서 개간한 농지를 왕토로 편입하기로 했으니 특별히 공납과 부역이 면제됐다 해도 이민호가 전세(田稅)를 걷어서 내야 했다. 고산군을 관할하는 지방 관아가 따로 없어 이민호가 호조에 은으로 직접 납부했다.
현재 고산국의 영향력은 대만 섬 남부까지 느슨하게 미쳤으나 직할 영토는 여전히 섬 북부의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 그래도 삼남 지방의 웬만한 군현 대여섯 개에 맞먹는 넓이라 백미로 환산한 세곡이 일만 섬에 달했다. 조정에서 군사를 보내 야만인을 토벌해야 할 일도 없고 자금을 들이붓지도 않았는데 세곡이 매년 두 번씩 꼬박꼬박 들어오니 조정 대신들도 고산군 개척이 잘 됐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쌀값이 오르는 봄에는 쌀로 세곡을 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계속 은납으로 해도 된다오. 운송의 어려움을 내가 알거늘 바다 먼 곳에서 고생하는 이 첨지에게 그런 수고까지 끼칠 수는 없소.”
이민호가 지방 수령의 자격으로 특산품을 바치는 진상품은 파파야와 바나나, 두리안, 파인애플 등 대만 섬 중부와 남부에서 자생하거나 재배하는 열대 과일 위주였다. 원주민들에게 쌀로 바꿔주는 조건으로 사탕수수를 대량 재배하고 있어서 흑설탕과 백설탕도 진상했다.
작년에 처음 바칠 때 과일 요리법과 보관법을 기록한 서류도 같이 납부했었다. 열대 과일은 수랏상에 자주 오르고 종친부에도 진상되지만 특히 달짝지근한 음식을 좋아하는 어린 왕자와 옹주들이 가장 좋아했다.
“이 첨지! 이런 과일을 한성 가까운 곳에서 직접 재배할 수는 없겠소? 수랏상에 더 자주 올리면 좋겠고, 종친들께서도 마음에 들어 하시더이다.”
“더운 지방에서만 나는 과일이라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호판께서도 아시다시피 더운 지방 화초를 키울 때는 유리로 온실을 만들고 겨울에는 온돌에 불을 때야 합니다. 그런데 열대 과일나무들은 키가 10척, 20척에 달하기도 해서 쉽지 않을 겁니다.”
“그거 참. 제주도에서 키우더라도 뱃길이 멀어서......”
“아마 제주도에서도 못 키울 겁니다. 사실 맛도 떨어집니다.”
이민호의 대답에 호조판서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이민호는 왕실에서, 혹은 임금이 강력히 원한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수영과 고산국을 정기 왕복하는 외륜선을 통해 매달 왕실에 더 많이 진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교육적인 효과가 더 중요할 것 같아 생각을 바꾼 이민호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과일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매달 진상하는 것으로 바꾸고, 판유리를 많이 구해서 궁궐 후원 한쪽에 커다란 온실을 만들어 보면 어떻겠습니까? 햇볕이 잘 드는 언덕 아래에 온실을 지으면 판유리와 땔감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주상전하께서 온갖 기화이초가 피어 있는 열대의 숲을 산책하시면 건강에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그 정도 규모라면 온실이 아니라 식물원이라 부른다.
“오오! 이 첨지는 근래에 보기 드문 충신이오! 이 첨지만 믿을 테니 온실을 만들어보시오. 올 가을에는 세곡을 바치지 않아도 좋소.”
“온실이 커서 유리 사는 값만 백미 오만 섬보다 더 들 텐데요.”
“험! 험! 전세를 몇 년 치 감해줄 테니 어떻게 방도를 마련해보시오. 잘 되면 고산군을 도호부나 목으로 승격시켜주도록 상께 주청하겠소.”
결국 이민호에게 비용을 다 대라는 소리였고, 이민호는 망설이는 척하다가 결국 수용했다. 현재의 임금보다는 자라나는 왕자들이나 대신들이 온실에서 자라는 열대 과일나무를 보고 사고의 폭을 넓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백성들에게 공개하면 더 좋겠지만 직접 못 보더라도 궁궐에서 일하는 아랫사람들을 통해 시중에 소문이 돌기를 기대했다.
온실의 위치는 침전과의 거리를 감안해 경회루 뒤쪽 현대의 청와대 가까운 언덕으로 결정했다. 선공감에서 동원한 인력을 이민호가 직접 지휘해 땅을 다지고 물길을 내는 기초공사를 끝나고 온돌을 얹은 다음 흙을 두껍게 덮었다.
그리고 목재로 규격에 맞게 틀을 짠 다음 수원 본가에서 가져온 판유리를 끼웠다. 인부들의 분업화를 통해 신속히 공정을 진행했다. 겨우 2주 만에 온실이 완성되자 창문을 닫고 싸리나무를 태워 연기가 새는지 최종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