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1 13.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 =========================================================================
언제나 하던 거래를 짧은 시간에 마쳤다. 이민호가 가진 상품 및 금과 교환하기 위해 겐타로가 동원하는 자금이 나가사키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은을 가득 실은 궤짝들이 외륜선으로 향했다. 이민호가 나가사키에 와서 한 번에 가져가는 은의 양은 톤 단위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였다.
염초를 살 생각으로 왔으므로 가져 온 물량이 전혀 없어서, 금을 주고 일본 처녀들을 샀다. 이민호는 외륜선 두 척에 일단 일본 처녀 400명을 나눠 태웠다. 대만으로 돌아가면 외륜선을 총동원해 다시 나가사키로 보낼 예정이었다. 이민호가 왕복하는 사이 겐타로는 처녀 노예들을 되는 대로 사서 주변에 수용하기로 했다.
“도련님! 조선 여자보다 일본 여자 가슴이 더 큽니다.”
배에 실린 일본 처녀 200명의 크기를 파악해 평균을 낸 계복이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이 당시 일본 평민 여성의 복장은 앞섬이 여유가 있어서 웬만큼 움직이면 속살이 겉으로 드러났다.
“쓸데없는 보고는 하지 말고.”
“그런데, 도련님! 염초를 얻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염초약장과 취토꾼들이 한 마을을 통째로 뒤져서 겨우 열 근도 얻지 못하는 것이 함토입니다. 함토 열 근을 넘게 끓이고 졸여도 염초는 단 한 근도 안 나옵니다. 취토하려면 처마 밑이나 뒷간 근처의 오래된 흙을 모아야 하는데 오래된 집이 없는 고산국에서 어떻게 함토를 구해 염초를 끓일 수 있겠습니까?”
길가나 담 밑 부근의 흙도 이용하게 된 것은 17세기 후반 신전자초방이 저술된 다음의 일이었다. 그때부터는 대량 생산이 가능하나 지금은 아직 아니었다.
“무식한 놈이 염초 제조법을 잘도 알고 있구나. 포도아 놈들은 어디서 염초를 대량으로 만들 것 같아? 고국에 돌아가서 흙을 긁어모아 끓여서 염초를 만들어서 이곳까지 오는 줄 알아? 여송이나 마카오에서 직접 만들 거다.”
“그럼 염초를 대량으로 만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그놈들이 하는 대로 염초밭을 만들면 돼. 이건 비밀이니 믿을 만한 사람 열 명 정도만 모아라. 나중에 조선에도 가르쳐줘야겠다. 아니다! 기술을 가르쳐줬다간 일본에 샐 지도 모르니 차라리 염초를 대량으로 만들어 조선에 바치자.”
“우와앙~ 도련님의 지혜는 정말 무궁무진하군요.”
염초밭에서 초석, 즉 질산칼륨을 얻는 것도 시간이 많이 드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민호는 급한 물량은 일단 화학적으로 합성하기로 했다. 염화칼륨과 질산나트륨을 반응시켜 얻거나, 탄산칼륨이나 수산화칼륨을 질산에 녹여 만들 수 있다. 이 기회에 질산암모늄을 만들어 비료와 화약으로 써먹을 계획도 세웠다. 무연화약을 쓰다 보니 흑색화약을 만드는 과정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필요한 전기는 이제 언제든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얼마 전 발전기 제작을 끝내서 계곡에 세운 수력발전소가 준공을 앞두고 있었다. PRC-999K 무전기나, 딸딸이라는 별명으로 옛날에 쓰던 군용 수동전화기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수동 발전기였다. 갈수기에 사용할 자전거식 발전기도 일단 설계만 해두었다.
고산국과 나가사키를 바쁘게 오가던 이민호가 오랜만에 휴식을 취했다. 미래에서 온 사람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줄 수 있다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특히 보들보들 부풀어 오른 황태 살을 찢어먹으며 그런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조금만 먹어야지 하다가도 배가 터지도록 먹게 되는 것이 황태였다.
1960년대 초반에 강원도 용대리에서 처음 만들어진 황태를 이민호는 1590년에 다른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었다. 흔해 빠진 명태를 잡아 북어로 말려 팔던 동해안 어부들은 지난 늦가을에 농한기의 농민들과 힘을 합쳐 덕장을 지었다. 그리고 황태라는 올해 조선 최고의 인기 식품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민호의 사주를 받은 영덕 어부 김 가가 춥지만 양지 바른 곳을 잘 골라서 이렇게 좋은 품질의 황태가 나왔다. 영하 15도 이하에서 수십 번 얼었다 녹았다 반복해야 이렇게 맛있는 황태가 생산된다.
서해 안면도에서는 대하 양식을 하고 있었다. 명나라에 판매할 해삼 외에도 동해의 황태, 남해의 전복, 서해의 대하가 대량 생산돼 조선은 물론 고산국의 식탁에 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고산국은 너무 덥습니다. 끔찍해요.”
“궁성 후원은 그나마 시원한 곳이야.”
고산국 궁궐 후원, 야자나무 그늘 아래 수영장에서 노는 주제에 계복은 불만이 많았다. 웃통을 벗고 물에 젖은 속바지만 입은 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마른 오징어와 땅콩을 먹는 모습은 퓨전의 절정이었다. 상투를 틀고 반바지를 입은 채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이민호도 남 말할 때가 아니었다.
“저는 강원도나 함경도가 좋아요. 시전부락 토벌할 때가 제일 좋았는데 말이죠.”
“계복이 너 혹시 만주에서 살고 싶은 생각 있어?”
“어우~ 겨울에 칼바람, 좋죠. 북풍한설에 말 타고 달리면 더 짜릿할 겁니다.”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녀석! 추운 게 뭐가 좋아?”
금발의 궁녀가 얼음 넣은 망고 주스를 가져와 탁자에 놓고 제자리로 돌아가 시립했다. 이민호는 고산국의 법제개편이나 직제개편보다는 복제개편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 의상 디자인을 먼저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하녀급 궁녀들에게는 메이드복을, 시녀급 궁녀들에게는 하늘하늘한 실크드레스를 입힐 수 있었다. 더운 곳이라 옷이 좀 짧았다.
열대의 바닷가 휴양지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이 후원은 이민호만의 파라다이스였다. 가끔 후원에 찾아오는 눈치 없는 계복만 아니라면 더 자유롭게 즐길 수 있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예? 제가 몸에 열이 많나 봐요.”
“나중에 만주에서 왕 노릇해라. 어때?”
“저 혼자요? 싫어요. 도련님 옆에 있으면 더 재미있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잖아요. 그리고 땅을 넓히면 도련님 후사에게 한꺼번에 다 물려줘야지, 공신이랍시고 나눠주면 나중에 서로 싸우잖아요.”
“그거야 그놈들 능력으로 알아서 하겠지. 내가 왜 신경 써야 해?”
“전쟁에 동원돼서 백성들이 고달파질 것도 생각하셔야죠.”
“그건 그렇네. 너 참 훌륭하구나.”
고구려와 발해의 잃어버린 땅을 수복해서 만주 벌판에서 말 달리고 하는 꿈은 이민호에게 없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동북아의 세력판도가 뒤바뀌면서 여진족이 발흥하게 되고, 조선으로 쳐들어가는 병자호란을 일으킨다.
청나라를 성공적으로 막아내다 보면 이민호든 조선이든 만주로 진출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여진족이 명나라로 진군하도록 놔둘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전에 조선이 완전히 황폐화되는 꼴을 지켜보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임진왜란이 코앞이라 만주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명나라 사신이 갑작스레 고산국을 방문했다. 명나라 군선인 사선(沙船)이라고 누군가가 알려줘서 이민호가 얼른 군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고 마중 나갔다. 병력이 너무 많아 보이면 곤란하기에 간수군들은 모두 산으로 올라가 숨게 했다.
이민호는 궁궐과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급히 소집해 선착장에 내린 명나라 사신단을 영접했다. 조사(詔使)라고 하는, 한국에서는 보통 칙사(勅使)라고 불리는 사신이라 접대에 최선을 다했다. 조사를 따라온 명나라 관원들도 잘 대접했다.
“내년부터 정조사(正朝使)로 입조하십시오. 팽호도에서 해적들을 소탕한 전공을 인정받아 다른 나라들과 달리 1년에 1공으로 결정됐습니다. 축하합니다.”
“성은이 하해와 같습니다. 어느 항구로 가면 되겠습니까?”
칙사가 의외로 예의바른 사람이었다. 환관이 칙사로 오면 그 나라 조정을 압박해 뇌물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는데, 이 칙사는 문관이라 그런지 예상과 전혀 달리 매사에 신중했다.
조선이 정조사, 동지사, 성절사까지 해서 1년 3공, 나중에는 1년 4공에 진위사, 경하사, 변무사 등등 온갖 핑계꺼리를 만들어 북경에 들락거렸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은 보통 3년 1공이거나 유구국처럼 공이 많아도 2년 1공에 불과했다.
고산국에 허락된 1년 1공이면 조공국 입장에서는 정말 특혜였다. 물론 고산국이 해적 토벌로 능력을 인정받고 명나라 해안에서 거리도 가까우니 나중에 수군 세력으로 동원하려는 명나라 조정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민호는 왜구가 명나라 해안에서 설쳐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돈 받아가면서 왜구를 때려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절강성 항저우로 입항해서 대운하를 타고 황도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10월 하순에 항저우에 도착하시면 제도까지 안내할 예부 관리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관리의 안내를 따르시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국왕전하를 직접 알현할 수 있겠습니까?”
“국왕...... 까만똥 찌찌뽕 전하는 남쪽의 야만인들을 정벌하러 가셨습니다. 저는 배신(陪臣) 고산국 예국(禮局) 참판 이민호입니다.”
이민호는 왕으로 내정된 여송 사람의 이름도 몰라서 대충 주워 삼켰다. 그 필리핀 사람의 암기력은 정말 끝내줬고, 이민호는 비슷하게 따라갈 엄두도 못 냈다. 국왕의 이름은 나중에 그럴 듯한 한자 이름으로 바꿀 예정이었다.
“국왕 전하께서 휘가 참 특이하시군요.”
“남쪽 바다에는 성현의 교화가 덜 미쳐서 천조의 사신께서 듣기에는 불편하실 것입니다. 국왕은 유구국의 왕성인 상(尙) 씨의 먼 친척입니다.”
“국왕 전하께서 원래 조선국의 둘째나 셋째 왕자라고 들었소만, 사실이 아니었습니까?”
“그거야 백성들에게 존경받으려고 그런 이야기를 지어 퍼뜨린 겁니다. 천조 외의 나라 중에서 조선이 적당히 크고, 침략도 안 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상이 좋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칙사가 조금 수긍하는 듯했다. 만주에서 일어나는 신흥국들은 고구려나 발해의 계승국을 자처했다.
“사실 우리 국왕은 원래 여송의 바닷가 작은 나라 왕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커다란 배를 타고 온 간악한 남만인들에게 왕국을 빼앗기고 유민들을 모아 여기서 새로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국왕께서는 서반아라 칭하는 남만인들을 몰아내고 여송을 되찾을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오! 그 계획이 꼭 성공하면 좋겠습니다. 오랑캐들이 자꾸 배를 몰고 와서 남쪽이 시끄럽지요.”
“예. 남만인들은 저희들의 원수입니다. 남만인을 죽입시다.”
이민호는 고산국이 서양인들을 적대하고 있다고 해야 명나라로부터 호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이것이 의외로 먹혔는지 칙사는 이민호를 호의적으로 대했다.
“훌륭하시오. 그런데 부두에 정박한 바퀴 달린 배는 원래 남만에서 만든 배 아니오?”
“절대 아닙니다. 윤선은 <대학연의 보유(大學衍義補遺)>의 윤선제(輪船制)> 항목에 나온 배입니다. 원래 천조에서 창안한 배인데 남만인들이 보고 베낀 것뿐입니다. 요즘 조선과 일본, 유구국에서도 윤선을 만들어 조운에 운행하고 있습니다. 복건성 앞바다에서도 윤선이 돌아다니고 있다 합니다.”
“오오! 대학연의라면 송나라의 거유 진덕수가 지은 책이 아니오? 윤선이라는 제도가 그리 오래 됐다니 놀랍소.”
물론 서양에서 만든 외륜선은 독립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이민호는 얼마 전에 신라방 상인들에게 조선에서 상선으로 쓰는 것과 같은 작은 윤선을 몇 척 팔았다. 이 배들이 명나라 해안을 쏘다닌 다음에는 이민호가 외륜선을 타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 작품 후기 ============================
오전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