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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70화 (19/1,000)

00070  13.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  =========================================================================

13.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

이민호는 오랜만에 외륜선 두 척을 끌고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그 남쪽에 사쓰마 지역에서 군선의 활동이 보이지 않아 조금 안심하고 지나갈 수 있었다.

사실 이민호가 바다에서 사쓰마를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1609년 사쓰마번이 류큐를 정복했을 때 배 100척에 병력 3천 명을 몰고 갔었다. 한 척당 평균 30명이 탑승했으니 세키부네 몇 척에 나머지 대부분은 고바야라고 봐도 됐다. 노량해전 때 사쓰마군이 사용한 300척의 배와 노꾼들은 부교들이 배정해줬기 때문에 사쓰마군의 수군 세력이라 할 수 없었다.

“이번에 관리로 임명된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던데요. 도련님이 간수군들에 대한 상이 과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번에 팽호도에서 해적을 토벌했을 때 은 열 냥씩 주셨지 않습니까?”

“일할 만큼 받아야지.”

전리품을 제대로 안 나눠주고 대규모 횡령을 했던 이민호는 속으로 뜨끔했다. 그러나 계복은 그것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가난하고 소작 지을 땅도 없어서 수군 정병 대신 복무하는 대립군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간수군입니다. 돈이 많아지면 땅을 사서 정착할 겁니다. 간수군을 관둔다는 이야기입니다. 요즘 간수군들 분위기가 좀 이상해요. 도련님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젊었을 때 많이 벌어놨다가 땅 사서 정착하면 좋지 뭘. 은 열 냥이면 면포 60필도 안 돼. 말이나 소는커녕 노비 한 명도 못 살 돈이야.”

“도련님이 매달 꾸준히 주는 늠료도 있고, 상여금도 종종 주십니다. 오래 된 간수군 몇몇은 벌써 은 200냥도 더 모았습니다.”

간수군들이 매달 교대하니 은을 들고 다니다가 도둑맞을 염려는 없었다. 간수군들이 늠료를 많이 받는다지만 수시로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 욕심쟁이는 아무리 많이 벌어도 다른 사람의 것을 욕심내기 마련이었다.

“오오! 누군데? 저축왕이라고 해서 상으로 은을 더 내려야겠군.”

“도련님! 지금 저 농담하는 것 아닙니다. 군인은 체력이나 훈련보다 경험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상태라면 매달 신병을 받아 계속 훈련시켜야 하는 고충이 따릅니다.”

“그럼 훈련소에 간수군 몇 명을 고정으로 배치하자. 아예 신병훈련소를 만들어야겠다.”

계복과 현대인 출신 이민호의 생각은 이렇게 많이 달랐다. 이민호는 새로 나라를 세워 대만을 개척하느라 인력이 많이 필요한 입장이었지만, 어느 나라든 자작농이 많이 늘어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앞으로는 퇴역한 간수군의 자립을 더욱 신경 써주기로 했다.

“늠료가 모자라지 않다니 다행이야. 그런데 나가사키에 범선이 없네? 어떻게 된 거야?”

“풍랑에 다 침몰했을까요?”

“경쟁자들 없어지면 나야 좋지.”

어느덧 나가사키 항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난번과 달리 포르투갈이나 에스파냐의 배가 보이지 않고 부두에도 서양인을 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금령을 내렸다 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이민호는 그 이유를 겐타로의 집에 묵으면서 알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 텐데도 겐타로의 집은 여전히 소박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남만 상인들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된 거요?”

“포도아 상인들이 1년에 두 척으로 상행 규모를 줄였습니다. 태풍이 불 때쯤 그 바람을 타고 올 것입니다.”

“상행 규모를 줄이다니,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소?”

“얼마 전에 마카오에서 큰 거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인기 품목이었던 유황을 남만 상인들이 더 이상 사지 않습니다. 명나라 비단을 팔고 구리를 가져가는 것은 여전합니다.”

마카오의 큰 거래라면 이민호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민호는 고산국에서 명나라로 수출하는 유황의 양을 대폭 늘려서 일본의 유황 수출선을 완전히 끊어 놓았다. 일본은 구리와 은 수출에 더욱 매달려야 했다.

겐타로에게 물어 보니 요즘 일본에서 은 가격이 제법 올랐다 한다. 그 동안 이민호가 금과 은을 교환하는 재정거래를 너무 크게 해서 명나라에서는 금값이 오르고 일본에서는 은값이 올랐다. 이민호가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귀금속 가격이 국제시세에 비슷하게 맞춰지게 돼 있었다.

“일본에서 화약이나 염초 가격은 어느 정도요?”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입니다.”

“뭐라고요? 은 50냥을 잘못 말한 거요?”

“화약 한 통에 처녀 50명이 맞습니다.”

화폐 단위가 이상해서 이민호가 다시 묻자 겐타로가 그대로 다시 대답했다. 이민호 앞에 무릎 꿇고 앉은 겐타로가 지난 40년 넘게 진행된 참혹한 일들을 설명했다.

화약일준(火薬一樽)에 처녀 50명이라는 말은 1582년에 출국해 교황청을 방문하고 1590년에 돌아온 덴쇼 소년사절단의 기록에서 나온다. 유태인 상인들과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 화약이나 초석을 팔고 처녀를 사서, 유럽 전역에 일본인 처녀 50만 명이 매춘부로 팔려갔다고 한다.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톨릭 신부들을 추방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나가사키에 오는 포도아 상선은 매번 일본 처녀들을 가득 싣고 돌아갑니다. 화약과 처녀를 맞교환하고 바로 배에 태워가는 바람에 노예시장에 처녀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씨발!”

이민호가 열 받아서 찻물을 벌컥 들이켰다. 찻물에 곡식 가루 같은 것이 많이 섞여있어 마시고 나니 오히려 더 답답해졌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확실해요? 마카오에서는 일본인 처녀는커녕 일본인 노예라곤 한 명도 못 봤는데 말이오. 자유민 기리시탄이 몇 십 명 있었을 뿐이오.”

“명나라 영토에 일본인이 들어가지 못하니 노예무역선들이 여송으로 직행하는 것 같습니다. 기리시탄 다이묘들이 포도아 상인들에게서 화약을 사면서 은이 부족해 처녀를 팔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이 벌써 50년이 다 돼 갑니다. 일본인들이 부끄러운 짓을 하지 못하도록 주인님께서 막아주십시오.”

“으음.”

이민호가 고민하고 겐타로가 부복하는 동안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어느 순간 겐타로가 칼을 뽑아 펄쩍 뛰어올랐다. 이민호가 권총을 빼내려고 앞섬을 더듬는 사이에 겐타로가 칼을 크게 휘둘러 천장을 길게 베었다. 겐타로가 이민호를 노렸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 투두둑!

천장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피가 만든 선이 탁자 위를 지나갔다. 잠시 후에 짙은 남색의 야행복을 입은 닌자가 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우당탕 소리가 나며 탁자가 반으로 쪼개졌다.

“물러서십시오, 주인님!”

이민호가 권총을 꺼내 닌자를 겨눴다. 닌자의 입에서 거품이 일고, 얼굴을 가린 복면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타들어갔다. 겐타로는 닌자의 허벅지 절반 정도만을 베었는데 닌자가 그 사이 독약을 먹고 자살한 것 같았다.

“적이다! 찾아라!”

응접실 주변 네 곳에서 사람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이후 다시 침묵이 가라앉았다. 겐타로가 이민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괜히 남만의 제도를 흉내 내어 응접실에 천장을 만들었다가 정체 모를 적에게 허점을 노출했습니다. 할복으로 이 죄를 갚겠습니다.”

“잠깐! 됐소. 니시무라 씨는 이미 사무라이가 아니지 않소?”

평소에도 가끔 다른 상회에서 겐타로의 상회를 염탐하려고 닌자를 보낸다고 한다. 오늘 이민호의 외륜선이 나가사키에 도착하자 경쟁 상회들이 무리를 해서 닌자를 투입해 천장으로 잠입하다가 걸린 것 같았다.

옆방으로 옮겨 상담이 계속됐다. 멀리 바깥에서 삑~ 하는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겐타로의 저택에 침입한 닌자가 더 있는 모양이지만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 일을 어떻게 막아야 되겠소? 처녀들을 되사서 집으로 돌려보내더라도 금방 다시 잡혀서 팔려갈 것 아니오?”

“처녀들을 사서 주인님의 땅에 정착시켜 주십시오.”

고산국 궁궐 후원에 일본 처녀들을 가득 채워 넣는 상상을 하던 이민호가 고개를 저었다. 당시 일본 인구를 감안하면 자그마치 50만 명이나 유럽에 팔려가 매춘부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는 과장이라 해도, 겐타로 말로는 매년 수천 명 이상이 노예로 팔려간다고 했다.

“지금 일본인 3천 명이 사는 마을을 건설하고 있소. 그곳을 확장해서 정착시키겠소. 이젠 남자가 더 부족하겠군.”

“감사합니다, 주인님.”

남자한테 주인님 소리는 듣기 싫지만 이민호도 처녀나 닌자로 인해 많이 놀라서 겐타로의 요청을 즉각 수용했다. 뭔가 많이 잘못 됐다. 포르투갈 상인이나 선교사, 기리시탄 다이묘들에 대한 그 동안의 호감이 싹 사라진 것 같았다. 오히려 혐오감이 들었다.

이번에 이민호는 일본에서 염초를 대량으로 사들여서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사용할 화약 양을 줄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나가사키에 왔다. 그러나 일본에 염초를 파는 것으로 급히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만약 염초를 팔지 않고 처녀 구입 대금을 은으로 지급하더라도 어차피 포르투갈 염초는 일본으로 들어오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포르투갈의 염초 무역을 박살내기로 결심했다. 염초는 화약의 재료, 전쟁 무기였다. 전쟁상인은 죽음의 상인이라 피해자 입장인 나라에서는 도무지 좋은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조선인에게는 아편전쟁 전후에 아편을 청나라에 판 영국 상인들보다 더 나쁜 놈들이 포르투갈 상인들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마카오에서 활동하는 포르투갈 상인이라도 동 두아르테 같은 사람은 노예매매에 관여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오히려 노예를 불쌍히 여겨 구해주자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마카오가 아닌 필리핀을 왕복하는 포르투갈, 또는 에스파냐 상인들을 때려잡아야 했다.

일단 포르투갈 상인들이 파는 염초보다 훨씬 싸게 팔았다가 반응을 봐서 가격을 더 내리기로 했다. 가격을 점점 내리다 보면 제조 원가와 운송비 부담이 큰 포르투갈 상인들이 먼저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일본 농민들이 공납으로 만들어 바치는 염초 생산량을 0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에 이미 들어온 염초 제조 기술이 아예 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화약제조 기술이 후퇴할 것만은 분명했다. 이민호는 몇 년 동안 염초를 대량으로 팔아 포르투갈 상인들의 수출을 막았다가, 임진왜란이 시작되는 동시에 염초 수출을 중단할 계획을 세웠다.

이미 중종 때 조선의 염초 제작기술이 일본으로 흘러 들어갔다. 다네가시마에서 시작된 조총 제작 기술이 일본 전국으로 퍼지면서 화약 원료인 염초는 일본 농민들이 공납을 바치는 주요 품목이었다. 조총 화약접시에 불을 꽂는 기다란 화승도 마을 단위로 공납이 배정돼 백성들이 만들어서 바쳤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 흘러간 조선의 염초 제조기술이 효율이 낮아 다이묘들이 포르투갈 상인에게서 대량으로 구매한 것으로 이민호는 이해했다.

요양의 염초 값은 은 1냥에 20근, 선조 당시 조선에서는 염초 1근에 면포 2필이었다. 16세기 중반에 은 8만 냥에 면포 45만 필이었으므로 대략 은 1냥에 면포 5필로 치면 조선 염초 가격이 4배나 비싸다. 이 시기 조선의 염초 생산 능력이 명나라보다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염초를 자체 생산하면서도 국초부터 명나라를 통해 꾸준히, 대량으로 수입했다. 일본에서도 염초 제작 기술 자체는 갖고 있었지만 대량 구매를 위해 처녀들을 노예로 팔아치운 것 같았다.

명나라의 염초 제작 기술은 당시에 조금 더 앞서 나갔다. 명나라에서는 바닷물을 끓여 염초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실록에 나온다. 1595년 서천군에 사는 임몽이 중국의 염초 제조 비법인 바닷가 흙을 끓여서 염초를 만드는 방법으로 5일 동안 염초 한 근을 제작해 문관 6품을 제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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